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김일성종합대학시기
정치경제학을 주체적립장에서 체계화하는데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던 시기에 정치경제학연구에서 견지하여야 할 립장문제에 과학적인 해답을 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정치경제학의 리론문제들을 우리 나라의 력사적사실과 우리의 현실에 기초하여 연구하여야 합니다.》

민족국가를 단위로 하여 전개되는 자주성을 위한 인민대중의 투쟁이 성과적으로 진행되자면 자기 나라의 구체적조건을 과학적으로 타산하고 그에 맞게 전개되여야 한다. 

 

※ 당시 정치경제학과목의 체계와 내용은 우리 당의 사상과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전개되여있는것이 아니라 생산력과 생산관계의 호상관계에 관한 선행리론을 기초로 하여 구성되여있었으며 강의에서는 다른 나라의 교재내용을 그대로 해설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러한 실태를 깊이 통찰하시고 정치경제학연구에서 주체적립장을 견지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김일성종합대학시기 정치경제학을 주체적립장에서 체계화하는데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에서 중요한것은 무엇보다먼저 우리 나라 노예소유자국가형성문제를 새롭게 해명해주신것이다.

1960년대초까지만 하여도 학계에서는 우리 나라 노예소유자국가형성문제에 대한 옳바른 견해를 가지고있지 못하였다.

 

※ 당시 어떤 학자들은 우리 나라에 노예소유자국가가 없었다고 하면서 원시사회로부터 비약하여 삼국시기 봉건사회에 들어섰다고 주장하였으며 또 어떤 학자들은 우리 나라에 노예소유자국가가 있었다고 하면서도 그것을 많은 경우 고구려, 백제, 신라와 결부하여 론의하였다. 학자들이 이러한 주장을 하게 된것은 제국주의어용사가들이 내놓은 반동학설의 여독과 관련되여있었다. 지난날 일제어용사가들은 우리 선조들이 기원후 수세기까지도 문명이전의 락후한 원시상태에서 헤매인것처럼 묘사하기 위하여 고조선과 부여, 진국을 무시하고 마치도 고구려, 백제, 신라가 조선력사상의 첫 국가인듯이 주장하였다.

 

우리 나라에서의 첫 계급국가, 노예소유자국가형성문제를 옳게 해명하는것은 학술상의 범위를 벗어나 우리 민족의 존엄을 지키는 중대한 정치적문제의 하나로 제기되였다.

학계의 실태와 문제의 중요성을 깊이 헤아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구체적인 력사자료에 기초하여 삼국이전시기 우리 나라에서 노예소유자국가가 형성되였다는것을 과학적으로 론증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조선, 부여, 진국을 계급국가로 보시고 그의 사회경제적성격을 분석하시였다. 

 

※ 자료에 의하면 부여에서는 귀족들이 단번에 사람을 100여명씩이나 순장하였다. 순장은 어디까지나 노예소유자사회의 고유한 풍습이다. 부여에 이러한 순장제도가 있었다는것은 부여가 노예소유자국가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범금8조》의 내용은 고조선에 노예제가 지배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범금8조》의 3개 조항에는 남을 죽인자는 즉시 사형에 처하고 남에게 상처를 입힌자는 곡식으로 그 값을 갚아야 하며 남의 집물건을 도적질한자는 그 집의 노비가 되거나 노비가 되지 않으려면 50만의 돈을 내야 한다는것이 밝혀져있다. 《범금8조》에는 노예주를 한편으로 하고 노예와 평민을 다른 편으로 하는 두 계급사이의 적대적대립과 투쟁이 사회관계의 기본을 이루고있었던 당대의 사회현실이 잘 반영되여있다.

 

진국의 전쟁포로와 관련된 자료는 진국에 노예제가 지배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 진국에서는 한때 1 500명의 전쟁포로를 머리를 빤빤히 깎은 다음 들판에서 강제로동을 시켰는데 로동이 얼마나 가혹하였던지 3년동안에 무려 500명의 전쟁포로들이 죽었다고 한다. 이 전쟁포로들이 노예였다는것은 의심할바없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부여의 순장제, 고조선의 《범금8조》, 진국의 포로노예와 관련된 자료들을 근거로 하여 고조선, 부여, 진국이 노예소유자국가였다는 결론을 내리시였다.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김일성종합대학시기 정치경제학을 주체적립장에서 체계화하는데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에서 중요한것은 다음으로 우리 나라 봉건사회발생발전문제를 새롭게 밝혀주신것이다.

1960년대초까지만 하여도 정치경제학에서는 봉건제도의 발생을 주로 유럽나라들의 자료들을 가지고 설명하였다.

 

※ 정치경제학강의에서 로마의 노예제국가의 멸망과 봉건화과정에 대하여서는 장황하게 설명하면서도 우리 나라에서 봉건제도가 발생한 문제에 대하여서는 언급조차 하지 않았다. 일부 사람들은 우리 나라에 노예사회가 없었기때문에 봉건제도의 발생과정을 우리 나라 사료에 기초하여 설명하면 일반성을 띠지 못한다고 하면서 유럽나라들의 자료를 가지고 사회의 봉건화과정을 해설하려고 하였다.

 

유럽나라들에서 사회발전과정은 보편성을 띠고 우리 나라에서의 사회발전과정은 특수성을 띤다고 하는것자체가 주체가 서지 않은 표현이다. 이런 립장에 서면 우리 인민들을 애국주의정신으로 교양할수 없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봉건사회의 발생을 주로 유럽나라들의 자료를 가지고 설명하는 구체적표현과 그 원인. 해독성에 대하여 밝혀주시였을뿐아니라 주체적립장에서 봉건사회에 대한 연구를 우리 나라 력사사료에 기초하여 진행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사대주의, 교조주의현상은 대비연구를 한다고 하면서 다른 나라 력사의 틀에 맞추어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에 대하여 해석하려고 하거나 삼국의 사회경제발전에 미친 이웃 나라의 영향을 과대평가하는데서도 나타났다.

당시 일부 학자들은 삼국이 노예사회를 거치지 않고 단번에 원시사회로부터 봉건사회로 발전하였다고 주장하면서 그 비약의 요인을 외부의 충격적영향에서 찾으려고 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당 사회의 사회계급적성격을 밝히는데서 생산력발전문제가 중요한 문제의 하나로 되지만 그것을 절대화하거나 문제해결의 중심에 놓아서는 안된다고 밝혀주시였다.

 

※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당 사회의 사회경제적성격을 해명하는데서는 그 사회의 계급관계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옳게 해명하는것을 중요하게 보아야 하며 우리 나라 력사를 억지로 다른 나라 력사의 틀에 맞추어 설명하려하거나 자체발전의 합법칙성을 무시하고 외부적영향을 절대시하여서는 안된다고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삼국이전시기에 존재한 고조선과 부여, 진국의 력사를 어떻게 푸는가에 따라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의 사회경제적문제의 해명에서 큰 전환이 일어날수 있다고 하시면서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를 그 이전시기 력사와 잘 결부시켜 통일적으로 검토하며 삼국시기의 력사를 자료가 명백한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력사와도 결부시켜 대비분석할 필요가 있다고 밝혀주시였다. 그리고 고려와 조선봉건왕조가 봉건사회였다는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한것만큼 그것과 대비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내면 문제해결의 실마리를 쥘수 있을것이라고 강조하시였다.

 

그후 학계에서는 삼국에 선행한 고조선, 부여, 진국이 노예소유국가였으며 고구려, 백제, 신라가 이러한 고대국가에 토대하여 설립된 봉건국가들이였다는것을 명백히 밝히고 의견일치를 보았다.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김일성종합대학시기 정치경제학을 주체적립장에서 체계화하는데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에서 중요한것은 다음으로 도시와 농촌의 대립을 없애는 문제를 새롭게 밝혀주신것이다.

 

※ 당시 정치경제학에서는 민주주의혁명단계에서 토지소유의 사회화를 레닌의 토지국유화리론에 기초하여 설명하고 우리 나라에서는 그것과 다르게 하였다는 식으로 설명하고있었으며 혁명의 첫 단계에서 토지를 국유화하는것을 토지소유의 사회화를 위한 보편적인 방도로, 그밖의것은 특수한 형태로 설명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당시 정치경제학의 이러한 부족점을 통찰하시고 그것을 전면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도시와 농촌의 차이를 없앨데 대한 문제를 과학적으로 밝혀주시였다.

농촌의 토지를 사회화하는데 영향을 주는 요인의 하나는 토지에 대한 농민의 소유관념이다. 나라마다 토지소유에 대한 농민들의 지향과 념원은 서로 다르다. 

우리 나라와 같이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단계를 거쳐 사회주의혁명을 하는 나라에서는 농민들이 토지를 자기자신의 소유로 하였으면 하는 지향을 가지고있기때문에 먼저 토지개혁을 통하여 근로농민적토지소유제도를 세웠다가 사회주의혁명단계에 와서 그것을 다시 협동적소유로 전환시키고 그후 조건이 조성되는데 따라 점차 전인민적소유로 전환시키게 된다.

토지를 자기자신의 소유로 하였으면 하는 농민들을 대상으로 처음부터 토지국유화를 실시하면 농민들을 쟁취할수 없으며 혁명과 건설을 망쳐먹게 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나라의 정치경제학교과서는 마땅히 우리 당의 경제정책을 기준으로 하여 서술되여야 한다고 밝혀주시였다.

 

△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 김일성종합대학시기 정치경제학을 주체적립장에서 체계화하는데서 이룩하신 불멸의 업적에서 중요한것은 다음으로 토지개혁과 중요산업국유화의 위치문제를 새롭게 밝혀주신것이다.

 

※ 당시 정치경제학교과서에서는 과도기와 프로레타리아독재문제를 먼저 서술한 다음 토지개혁과 중요산업국유화문제를 취급하고있었다. 이것은 우리 나라의 구체적인 현실에서 출발하지 않고 선행리론의 명제에 기계적으로 매달려 정치경제학리론을 전개한것과 관련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당이 제기하고 수행한 토지개혁과 중요산업국유화문제를 어떤 위치에 놓고 취급하겠는가 하는데 대하여 명철하게 밝혀주시였다.

 

※ 모든 나라와 민족이 사회주의에로 나아가는것은 필연적이지만 거기에 이르는 로정은 매개 나라가 처한 구체적조건에 따라 다르다. 자본주의발전단계를 정상적으로 거친 나라들에서는 직접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하여 사회주의에로 이행하지만 제국주의의 식민지통치로 말미암아 식민지반봉건적인 사회경제관계가 지배하고 락후한 경제토대를 물려받은 나라들에서는 사회주의혁명을 수행하기에 앞서 반드시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단계를 거치게 된다. 이러한 나라들에서는 자본주의로부터 사회주의에로의 과도기과업을 수행하기에 앞서 토지개혁과 중요산업국유화를 실시하게 된다.

 

과도기문제를 먼저 취급하고 그 다음에 토지개혁과 중요산업국유화문제를 취급하는것은 자본주의발전단계를 정상적으로 거치지 못한 나라들의 실정에 맞지 않는다.

과도기문제를 취급하기에 앞서 토지개혁과 중요산업국유화문제를 취급하는것이야말로 이러한 나라들에서의 혁명의 순차적단계에 맞는것이다.

우리 나라는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거쳐 사회주의에로 이행하는 길을 처음으로 개척한 나라이다. 경험은 토지개혁과 중요산업국유화문제를 과도기문제보다 먼저 취급하는것이 우리 나라 실정에는 물론 세계 대다수 나라들의 실정에도 맞는다는것을 보여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밖에도 우리 나라에서 자본주의적관계의 발생발전에 관한 문제, 농업협동화와 사회주의공업화의 위치문제 등 수많은 경제적현상들과 과정들을 주체적립장에서 새롭게 해명해주시였다.

그리하여 정치경제학의 주요리론문제들이 주체의 방법론에 기초하여 독창적으로 해명되고 주체의 정치경제학리론은 가일층 발전풍부화되게 되였다.

이처럼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시기에 벌써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언제나 자기 나라를 중심에 놓고 자기 나라 혁명의 리익의 견지에서 풀어나가는 실천적모범을 보여주시였다.

김일성종합대학 리경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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