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일안보체제》재정비를 통한 미제의 일본지배책동

미제는 랭전종식후 새롭게 수립한 세계제패전략, 동북아시아지배전략을 실현하기 위하여 일본을 자기의 손아래동맹자로 더욱 틀어쥐려고 교활하고 집요하게 책동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미제국주의자들은 일본을 통제밑에 넣어야 아세아의 다른 나라들을 식민지와 같이 취급할수 있다고 생각하고있습니다.》  

랭전종식후 미제의 대일전략은 저들의 세계제패전략의 중심이 유럽으로부터 동북아시아지역에로 옮겨진 현실에 맞게 일본과의 종속적 《동맹관계》를 더욱 강화하여 그들을 저들의 세계지배전략실현책동에 리용하는것이였다.

미제는 랭전시기 미일종속적동맹관계의 법적담보였던 《미일안보체제》를 재정비함으로써 랭전종식후에도 일본을 손아래동맹자로 계속 틀어쥐려 하였다.

《미일안보체제》의 재정비가 필요하게 된것은 우선 《미일안보체제》유지의 구실로 삼았던 《공동의 주적》이 없어졌기때문이였다.

《쏘련의 위협》, 《사회주의의 위협》을 구실로 랭전시기 조작한 《미일안보체제》는 사회주의를 건설하던 동유럽나라들이 붕괴되자 자기의 존재명분을 상실하게 되였다. 따라서 《미일안보체제》의 존속을 위해서는 새로운 구실이 필요했던것이다.

미국 라이샤워쎈터의 년차보고 《1991년의 미일관계》는 《1960년의 미일안보조약의 론리적근거였던 <쏘련>이 없어지자 미일량국의 정치적, 경제적결속을 위한 새로운 근거를 요구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고 지적하였다.

《미일안보체제》의 재정비가 필요하게 된것은 또한 오끼나와미군기지의 철거를 요구하는 일본인민들의 투쟁이 《안보체제》를 부정하는 정치문제로까지 제기되였기때문이다.

1995년 9월 4일 오끼나와주둔 미군병사 3명이 12살나는 일본인소녀를 강간하는 사건이 발생하였다. 오끼나와주민 8만 5 000명은 사건후인 10월 21일에 《미일지위협정》의 재검토와 미군기지의 철수를 요구하면서 항의집회를 가지였다. 오끼나와현에서 들고일어난 미군기지반대투쟁은 곧 전국에 번져가 도꾜도의 스나가와투쟁이후 최대규모로 확대되였다. 이와 관련하여 당시 일본총리였던 무라야마는 국회연설에서 《앞으로도 광범한 미일관계의 정치기반인 <미일안보체제>를 견지하고 그 원활하고 효과적인 운용에 노력할것이다.》고 《안보》로선을 고집하면서 발생한 문제를 무마해보려고 하였다.

정부의 이러한 립장에 대하여 전국각지에서 오끼나와현 인민들의 투쟁을 지지하고 정계와 언론계를 비롯한 각계에서는 《미일안보조약》의 유지문제를 놓고 《미일안보체제》의 근본적인 재검토를 요구하였다.

《미일안보체제》의 재정비가 필요하게 된것은 또한 랭전종식후 미일관계에서 결탁보다도 대립과 모순이 점차 표면화되였기때문이다.

이 시기 미일관계에서는 경제적리익을 둘러싼 대립과 모순이 격화되였다.

랭전종식이후 미일사이의 무역마찰은 주로 일본이 자기의 리해관계로부터 미제의 압력에 맞서고있는데서 알수 있다.

방대한 대일무역적자와 일본의 급격한 대미투자는 일본이 경제력을 배경으로 미국을 사들이는데 달라붙고있다는 인상을 조성하였고 미국에서는 대일감정이 급격히 악화되여 랭전이 종식된 후 일본의 경제기술적진출이 이전 쏘련의 위협을 대신하는 위협으로 된다고 인식하게 되였다.

랭전종식후 미국신문 《워싱톤 포스트》가 진행한 《쏘련의 군사적위협과 일본의 경제적위협가운데서 어느쪽이 미국의 장래에 위협으로 되는가》하는 여론조사에 의하면 일본의 위협이 75%, 쏘련의 위협이 21%였다.

1993년 4월 16일의 클린톤-미야자와회담은 미일의 대립과 모순을 명백히 보여주었다.

지난 시기의 수뇌자회담들은 대체로 큰 테두리의 문제 례하면 《안전보장분야에서의 미일간의 협조》와 같은 문제를 협의하였으며 두 나라사이에 존재하는 《현안문제》에 대하여서는 추상적으로 언급하고 차후에 실무급에서 구체적으로 교섭하게 하는것이 상례였다. 그러나 이 회담에서는 두 나라사이의 경제문제를 둘러싸고 치렬한 론쟁이 벌어졌다.

미제는 이러한 문제들로 하여 《미일안보체제》의 재정비를 본격적으로 다그쳤다.

《미일안보체제》의 재정비방향을 처음으로 제기한것은 미국 전략국제문제연구소의 주임연구원 크로닌과 방위분석연구소 연구원이며 죤즈 흡킨스대학 교수인 그린이 내놓은 론문 《미일동맹의 재정의-도꾜의 국방계획》(1994년)이였다.

크로닌과 그린은 론문에서 《첫째, 아시아에서의 전방전개와 힘의 균형유지를 위하여 미일동맹의 존속을 필요로 하며 둘째, 아시아에서의 새로운 <위협>에 대응하기 위하여 일본이 미국과의 동맹관계속에서 보다 적극적인 역할을 하기를 바라며 셋째, 일본이 미일동맹을 해치거나 지역의 다른 대국들을 자극하는것과 같은 일방적인 행동을 하거나 그러한 능력을 소유하는것을 반대한다.》고 미국의 《미일안보체제》재정비목적을 요약하였다. 크로닌과 그린의 제안은 《안보》면에서 일본이 미국의 손아래동맹자로서 미국으로부터 리탈하는것을 견제하면서 미일동맹을 재활성화하자는것이였다.

미국정부가 《미일안보체제》의 재정비를 공식적으로 밝힌것은 1995년 2월 27일에 발표된 《미국의 동아시아태평양지역안보전략》(나이보고서)이였다. 미제는 이어서 3월 1일 《미일안전보장관계에 관한 보고서》를 공포하였다.

이 보고서는 우선 랭전종식후에도 동아시아의 전략적환경이 불안정하며 예측불가능한 사태가 발생할수 있다는 인식으로부터 안전보장은 그것이 담보되였을 때에는 고마움을 모르지만 그것이 없으면 안되는 《산소》와 같은것이라고 하면서 《미일안보체제》존속의 필요성을 강조하였다. 그리고 미국만이 《지구적규모에서 군사력을 전개할수 있는 태평양국가》라고 하면서 동아시아에 약 20년간 10만명규모의 미군병력을 계속 유지해야 한다고 하였다.

보고서는 또한 다국간의 안보대화는 《미일동맹》과 같은 2국간 동맹을 보완하는것이며 그 대체물로는 될수 없다고 강조하였다. 그러면서  《미일안보체제》의 전략적중요성을 고려하여 미일사이의 경제마찰이 《안보》문제를 훼손시켜서는 안된다고 하였다.

《나이보고서》는 《미일안보체제》의 지위를 동아시아에 대한 전반적전략에서 명확히 규정하고 2국간 동맹과 다각적지역안보협력에서 우선 순위를 뚜렷이 밝히려 하였다.     《나이보고서》는 미국무성과 국방성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았다.

나이는 이 보고서에 이어 1995년 8월 《미군의 철수는 론의밖이다》라는 제목의 론문에서 동아시아에서의 미국의 전략에는 여러가지 가능성이 있으나 그중에서도 미국의 지도력을 견지하는 전략이 이 지역의 평화와 안보를 위한 담보로 된다고 강조하면서 미국의 지도력유지전략은 3개 부분으로 구성되였는데 첫째는 랭전종식후시대에 있어서의 동맹관계의 강화, 둘째는 미국의 전방전개무력의 존재와 유지, 셋째는 지역기구를 구축해나가는것이라고 규정하였다.

나이는 또한 론문에서 일본의 《안보》에 대해서도 3개의 문제를 지적하였는데 첫째로 기지문제, 재정적지원, 병참과 보급 등 일본의 방위를 둘러싼 2국간 문제, 둘째로 동아시아의 안보상황에 관한 예측과 전략에 관한 대화문제, 셋째로 유엔평화유지활동, 인도주의적지원활동과 같은 지구적문제에 대한 관여라고 규정하였다.

《미일안보체제》재정비는 미제가 주동이 되고 일본은 그에 대한 찬성 혹은 반대를 주장하는 방향에서 《미일안보공동선언》과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는 방법으로 진행되였다.

미제는 일본을 손아래동맹자로 틀어쥐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미일안보공동선언》을 채택하였다.

1996년 4월 17일 당시 미국대통령 클린톤이 일본을 방문하여 하시모또 전 총리와 회담하고  《미일안전보장공동선언-21세기로 향한 동맹》(《미일안보공동선언》)을 발표하였다. 이《선언》은 미국과 일본이 21세기를 향하여 어떠한 동맹관계를 구축할것인가를 밝힌것으로서 새로운 력사적조건에 맞게 《미일안보체제》를 재정비한것이였다.

그 내용은 《미일안보조약》이 지난 시기는 물론 오늘에 와서도 계속 유효하며 《미일안보체제》를 미일동맹관계의 《중핵》으로 하여 21세기까지 유지하며 《미일안보조약》의 적용범위를 아시아태평양지역으로 확대하며 이 지역에서 일어나는 지역분쟁은 물론 재해를 비롯한 《비상사태시》에도 미국과 일본이 공동으로 대응한다는것이다.

이 《미일안보공동선언》에 의해 미일의 《안보》는 그 대상이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불안정성 및 불확실성》으로, 《일본유사시》로부터 《일본주변유사시》로 바뀌여지게 되였으며 적용범위가 극동으로부터 아시아태평양으로 확대되게 되였다.

《미일안보공동선언》은 미제가 벌리는 전쟁에 일본이 공공연히 참전하고 협력하도록 함으로써 《미일안보체제》에서 변화를 가져왔다. 군사적유착을 통하여 미국은 아시아지역 나아가서는 세계에서의 《지도력》을 계속 유지하려는것 즉 세계의 《유일지배자》로 되려는것이며 일본은 미제가 조종하는 배를 함께 타고 군사경제적인 팽창으로 아시아의 《맹주》가 되려는것이였다.

이에 대하여 중국의 《인민일보》(1996년 4월 19일부)는 《미일안보체제는 이미 <쏘련억제>로부터 <극동유사>의 대응에로 전환하고 <1극형>으로부터 <지역형>에로, <방위형>으로부터 <공격형>에로 변하고 일본도 <피보호형>으로부터 <참전형>에로 변하였다.》고 강하게 비난하였다.

미제는 《미일안보공동선언》의 개악으로 《복수》의 앙심을 품고 아시아의 패권을 노리면서 군사대국화를 맹렬히 다그치고있는 일본을 자기손안에 계속 틀어쥘수 있는 수단을 가질수 있게 되였으며 경제중심의 대일외교로 하여 벌어질수 있는 미일관계를 회복하여 저들이 아시아문제에서 완전히 배제되는 결과를 막을수 있게 되였다.

미제는 일본을 손아래동맹자로 틀어쥐기 위하여 다음으로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개정하였다.

미제는 《미일안보공동선언》에 의하여 《미일안보체제》가 랭전시기의 《쏘련위협》으로부터 《지역분쟁》과 《재해》로, 《일본유사시》로부터 《일본주변유사시》로 명분이 바뀌게 되자 그에 따르는 작전분담과 군사적협력관계를 구체화하기 위한 《미일방위협력지침》의 재검토를 본격적으로 진행하였다.

미제와 일본은 1996년 5월 29일 《미일안보공동선언》에 기초하여 하와이에서 《미일방위협력지침》의 전면적인 재검토를 시작하였다. 재검토는 평상시의 미일간의 협력과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시 미일간의 협력, 일본주변유사시의 미일간의 협력 3개 분야에 걸쳐 진행되였다.

재검토에 대한 내외의 여론이 분분한 가운데 두 나라 정부는 1997년 9월 23일 재검토를 끝내고 미국무장관 알브라이트, 미국방장관 코헨, 일본외상 오부찌, 방위청 장관 규마로 구성된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를 열고 새로운 《미일방위협력지침》을 결정, 발표하였다.

이것은 이전 《지침》과 새 《지침》이 근본적으로 다르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새 《지침》은 우선 《랭전의 종결에도 불구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에는 잠재적인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 의연 존재하며 이 지역에서 평화와 안정의 유지는 일본의 안전을 위해 한층 중요하게 되였다.》고 하였다. 아시아나라들의 《잠재적인 불안정성과 불확실성》이《위협》이라는것이다. 여기서 《불확실》한것을 《위협》으로 본다는것은 아시아태평양나라전체를 《적》으로 한다는것이였다.

이전 미국무장관 알브라이트는 새 《지침》발표후의 기자회견에서 《1978년의 지침은 주로 랭전시대의 위협에 대처하기 위한것이였다면 이번의 새 지침은 새로운 시대의 새로운 과제에 직면하여 마련되였다.》고 언급하였다. 특히 아시아태평양지역의 불안정요인으로서 조선과 중국을 지적하였다. 새 《지침》은 우리 공화국을 첫번째 과녁으로 삼고있다. 일본당국자들은 이전 《지침》의 재검토가 조선반도 《유사시대응》, 《북조선유사시를 가상한것》이라고 공공연히 떠벌이였다. 일본내각관방장관 가지야마 세이로꾸는 1997년 8월 17일 《주변사태》의 《주변》의 범위와 관련하여 《미일안보조약의 범위는 필리핀이북이고 그것은 대만과 조선반도를 포함한다.》고 하였다.

새 《지침》이 우리 공화국을 첫번째 과녁으로 하고있다는것은 미일군부가 실지행동을 통하여 확증하여주었다.

1999년 3월 일본공산당 서기국장 시이가즈오는 《미일방위협력지침》에 관한 특별위원회에서 일본 《자위대》가 클린톤정권의 조선반도 전쟁계획에 기초하여 비밀리에 대미군사지원계획을 작성하였던 사실을 폭로하였다. 《자위대》의 비밀계획들은 만일 현실적으로 조선반도에서 전쟁이 일어나면 《자위대》가 사실상 참전한다는것을 명백히 하고있다. 이것은 일본전령토를 전쟁기지로 하는 《미일안보체제》의 위험성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새 《지침》은 또한 《후방지역지원》이라는 간판밑에 일본헌법상 금지되여있던 병참지원을 미일군사협력에 포함시키고 미일군사협력을 위한 체계를 구축하도록 규정하여 《미일안보체제》의 내용을 더욱 확대하였다.

새《지침》은 《미일 두 나라정부는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시의 공동작전계획에 대한 검토 및 주변사태시의 호상협력계획에 대한 검토를 포함한 공동작업을 진행한다. 이러한 노력은 쌍방의 관계기관의 관여를 얻은 포괄적인 구조에서 진행되며 미일협력의 기초를 구축한다.》고 《주변사태》시 《자위대》가 연료나 물자의 보급, 수리, 정비 등의 병참지원을 진행한다는 호상협력계획을 작성할것을 결정하였다.

새 《지침》에서 규정한 《후방지역지원》은 《주변사태》에 관한 미일협력의 항목으로서 미군에 대한 일본의 물자공급, 일본령해와 주변공해에서의 기뢰제거 등 40개항목에 이르는 협력범위를 지적하였다.  이 《후방지역지원》에 포함된 보급, 수송, 수리, 정비, 위생, 경비, 통신 기타 다른 지원은 미국뿐아니라 일본도 병참활동으로 규정하고있다. 병참활동은 일본헌법이 금지하고있는 전쟁행위인것이다.

그런데 일본은 이 병참활동들을 《후방지역지원》으로 《정의》하고 미국이 전투행동을 진행하고있는 구역이 아니라 《후방》지역에서 하는 활동이기때문에 헌법상문제는 없다는 주장을 표시하였다.

병참활동은 전쟁수행에서 없어서는 안될 전투행동이며  《후방지역지원》이라는 말은 그것이 헌법에서 금지된 무력행사가 아니라는 기만을 위해 만들어낸 《일본특유》의 개념이다. 결국 《후방지역지원》은 헌법상의 제약에서 벗어나기 위한 기만이다.

그리고 이러한 미일협력을 효과적으로 실현하기 위한 미일공동의 틀거리로 지금까지 존재하지 않았던 《포괄적인 구조》와 《조정구조》를 구축한다고 규정하였다.

《포괄적인 구조》란 《미군 및 자위대뿐아니라 매개 정부의 기타 관계기관이 관여한다.》는 전시국가기구수립이며 《조정구조》란 《관계기관의 관여를 얻어 미일간의 조정구조를 평소부터 구축하여 일본에 대한 무력공격 및 주변사태시 각자가 진행하는 활동을 조정한다.》는 전시때의 전쟁지휘기구이다.

새 《지침》은 또한 이 《지침》의 실효성을 두 나라 정부가 직접 책임지고 확보하도록 하였다.

이전 《지침》은 그 위치를 《연구》단계로 정하였었다. 이와 관련하여 이전 《지침》은 《연구, 협의의 결론을 미일안전보장협의위원회에 보고하고 그 취급은 미일량국정부의 판단에 맡기는것이다. 이 결론은 량국정부의 립법, 예산 혹은 행정상의 조치를 의무로 하는것은 아니다.》고 하였다.

그러나 새 《지침》은 《미일협력을 위한 효과적인 태세의 구축이 지침 및 그밑에서 진행되는 조치의 목표이기때문에 미일량국정부는 자기의 판단에 따라 이러한 노력의 결과를 각자의 구체적인 정책과 조치에 적절한 형태로 반영시킨다.》고 하였다.

이에 따라 일본 하시모또내각은 1997년 9월 27일 《일미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의 실효성확보에 대하여》라는 내각결의에서 《새로운 일미방위협력을 위한 지침의 실효성을 확보하고 또 일본의 평화와 안전을 확보하기 위한 태세의 성실을 도모하기 위해 법적인 측면을 포함하여 정부전체로써 검토한 기초우에서 필요한 조치를 적절히 강구한다.》고 결정하였다.

새 《지침》에는 이외에도 《주변사태》와 관련하여 미군이 진행하는 경제제재의 실효성확보를 위해 일본이 선박검사를 실시한다는것도 포함되였다.

《미일방위협력지침》은 문장상으로는 《집단적자위권》을 행사하지 않는다는 일본헌법내용과 모순되지 않도록 교묘하게 작성되였다. 그러나 《동맹》이란 곧 집단적방위이며 공동으로 전쟁을 한다는 개념이다. 따라서 이것은 《집단적자위권》의 행사를 인정하지 않는 일본헌법을 기만한것이였다.

《미일방위협력지침》재검토로 《미일안보체제》의 침략성과 위험성은 더욱 농후하게 되였다.

《미일방위협력지침》의 기본목적과 사명은 동북아시아나라들을 침략하고 아시아태평양지역에 대한 지배권을 확립하기 위한것이다.

《미일방위협력지침》은 철두철미 일본령역밖에서 미일공동군사행동을 합법화한 전쟁교리이다.

《미일방위협력지침》은 미군의 군사작전에 대한 《자위대》와 일본의 지원태세를 확인한것이며 전시는 물론 평시에도 미일협력의 세부사항을 구체적으로 결정하고 포괄적인 군사협력체제를 확약한것이였다.

《미일방위협력》의 개악은 막대한 군사경제적잠재력과 전쟁경험을 가지고있는 일본을 《돌격대》로 내세워 아시아를 침략하고 세계를 제패하려는 미제의 책동이 극히 위험한 단계에 이르렀다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미일안보체제》의 재정비로 하여 일본은 더욱더 미제의 세계제패전략, 동북아시아지배전략의 돌격대로 나서게 되였으며 랭전종식후에도 여전히 미제의 지배하에 놓이게 되였다.

온 겨레는 《미일안보체제》의 반동적본질을 똑똑히 알고 미일제국주의자들의 군사적침략책동을 저지파탄시키며 아시아와 세계평화를 수호하기 위한 투쟁에 한사람같이 떨쳐나서야 할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 강기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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