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선군정치방식을 전면적으로 확립한 력사적과정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지난 세기 90년대 후반기에 인류정치사에서 처음으로 새로운 정치방식인 선군정치방식을 확립하였다.

이 글에서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독창적으로 확립한 새로운 정치방식인 선군정치방식확립의 력사적과정에 대하여 서술하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당은 수령님의 선군사상을 계승하여 그것을 오늘의 현실적조건에 맞는 하나의 정치방식으로 심화발전시켰습니다.》                                                      

선군정치방식은 사회주의정치방식의 본질적의미와 군사선행의 원칙, 선군후로의 원칙을 하나로 결합시켜 인류정치사에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독창적인 정치방식이다.

선군정치는 군사를 국사중의 제일국사로 내세우고 혁명군대를 핵심으로, 주력으로 하여 조국과 혁명, 사회주의를 보위하고 전반적사회주의건설을 힘있게 다그쳐나가는 정치방식이다. 군사선행의 원칙, 선군후로의 원칙을 구현한 사회주의정치방식이라는데 선군정치의 본질적의미가 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는 탁월한 선군령장이신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1990년대 후반기에 과학적이며 독창적인 선군정치방식을 전면적으로 확립하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확립한 선군정치방식은 1990년대 중엽부터 날로 가증된 미제국주의자들의 공화국에 대한 고립압살책동으로 말미암아 더욱 엄혹해지는 정세의 요구를 반영하여 전면적으로 실현되였다.

공화국에서 선군정치방식확립의 력사적과정에 대한 옳바른 리해를 가지는데서 선군정치가 어떤 사회력사적배경속에서 전면적으로 실현되였는가에 대하여 아는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

20세기 90년대에 들어와 세계정치구도와 력량관계에서는 커다란 변화가 일어났다.

이전 쏘련과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붕괴되여 동서랭전이 종식되고 세계사회주의체계가 허물어졌으며 동유럽이 통채로 제국주의 지배권안에 들어가게 되였다.

동유럽에서의 사회주의붕괴를 기화로 하여 미국은 《유일초대국》으로 자처하면서 저들이 주도하는 《새로운 세계질서》를 세우는것을 주요 전략적목표로 내세웠다. 1991년 1월 당시 미국대통령이였던 부쉬1세는 미국회에서 한 일반서신연설에서 《오래동안 바라오던 새로운 세계질서를 수립할수 있는 기회》가 왔다고 하면서 《랭전의 위험이 없고 시장과 민주주의가 번성하는 세계질서》를 세우겠다고 떠벌이였다. 미국이 세우겠다고 하는 《세계질서》란 자본주의시장경제와 미국식민주주의가 지배하는 세계, 다시말하여 지구상에 사회주의가 없고 미국이 주인노릇을 하는 자본주의세계를 의미하였다.

1991년의 만전쟁과 1998년의 이라크전쟁, 1999년 유고슬라비아(당시)에 대한 군사적침략, 2003년의 이라크전쟁 등 침략전쟁들에서 미국의 목적은 주요자원지대이며 군사전략적요충지인 페르샤만과 발칸지역에서 군사적통제권을 더욱 강화하고 전략적우위를 획득하며 나토의 행동권을 확대시켜 강권으로 1극세계를 수립하고 세계제패를 실현하자는데 있었다.

한편 미국은 저들 주도하의 1극세계수립에서 사회주의붉은기를 들고나가는 조선에 공격의 예봉을 돌리였다.

제국주의자들은 공화국이 1996년 5월을 넘기지 못한다는 《5월 위기설》과 그 무슨 《체제붕괴설》을 내돌리며 공화국에 대한 고립압살책동을 강화하였다.

우리 공화국에 대한 미제국주의의 광란적인 고립압살책동은 강도높은 군사적압력책동을 위주로 한 정치, 경제, 사상, 문화의 모든 면에 걸쳐 진행된 력사상 있어보지 못한 가장 악랄한 공세였다.

특히 이전 쏘련과 동유럽사회주의나라들의 붕괴로 세계적범위에서 사회주의시장이 무너진것과 때를 같이한 제국주의자들의 끈질긴 경제봉쇄책동과 련이은 자연재해로 인한 경제적손실 등은 공화국에 커다란 경제적난관을 조성하였다. 미제는 공화국을 경제적으로 질식시키기 위한 전면적인 봉쇄를 실시하면서 공화국과의 통상 및 금융관계와 우편, 전신 등을 모두 단절하였으며 여러 국제은행에서 거래되던 자금들을 모두 동결시키였다. 동시에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 압력을 가하여 공화국과 무역 및 경제적련계를 가지지 못하도록 하였다. 한편 미제는 《와쎄나협정》을 비롯한 각종 경제봉쇄 악법들을 모두 발동하여 공화국에 대한 경제봉쇄의 도수를 더욱 높이였다. 이로하여 나라의 경제형편과 인민생활은 더욱더 어려워지게 되였으며 그로하여 인민들은 고난의 행군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공화국이 이처럼 어려운 환경에 처해보기는 처음이였다. 사회주의진영도 없었고 도움을 청할만한 나라도 없었다. 단독으로 제국주의련합세력의 침략책동에 맞서야 했고 모든 시련과 고난을 이겨내야 했다.

공화국과 제국주의자들의 대결은 힘의 대결이며 반제군사전선은 나라와 민족, 사회주의존망을 좌우하는 혁명의 기본전선으로, 제일생명선으로 되였다.

이러한 현실은 제국주의자들에게 결정적타격을 가하고 사회주의를 수호하며 그 승리적전진을 위한 새로운 로선과 전략전술을 요구하였다.

이러한 사태앞에서 일부 사람들은 경제문제에 집중하여야 조성된 난국을 뚫고 나갈수 있다고 생각하기도 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총대를 더욱 억세게 틀어쥐고 인민군대에 의거하여 제국주의와 전면대결을 벌려야 한다고 결심하시였다.

이것은 총칼을 들고 달려드는 적들과는 더욱 강력한 총대로 맞서야지 당면한 먹고 사는 일에 몰두한다면 사회주의를 지켜내지 못하는것은 물론이고 또다시 식민지노예의 운명에 처하고만다는 심중한 타산에서 내리신 결단이였다. 다시말하여 오랜 군령도를 통하여 품을 들여 강화발전시켜오신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 주력군으로 내세워 나라와 민족의 운명도 수호하고 사회주의위업전반을 다그쳐나가는 선군후로의 선군정치를 펴나가시려는 결단이였다.

그것은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지난기간 총대중시, 군사중시사상을 빛나게 구현하여 실현하여온 선군정치를 자기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전면적으로 펼쳐나가시려고 한다는것을 의미하였다.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결단에 의하여 공화국에서는 1990년대 중엽에 인류정치사에서 처음으로 되는 독창적인 선군정치가 전면적으로 확립되게 되였다.

이와 같이 선군정치는 혁명발전의 합법칙적요구를 반영하여 자기 발전의 새로운 높은 단계에서 전면적으로 확립된 정치방식이다. 다시말하여 선군정치는 쏘련과 동유럽의 여러 나라들에서 사회주의가 좌절된것을 기화로 더욱 강화되기 시작한 제국주의자들의 반사회주의, 반공화국 고립압살책동으로 인하여 엄혹해지는 정세의 요구를 반영하여 전면적으로 확립된 정치방식이라는것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확립한 선군정치방식은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특출한 정치실력에 의하여 전면적으로 실현되게 되였다.

특출한 군사적자질과 풍모, 비범한 실력에 토대하여 1960년대 말에 선군정치를 시작하신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는 1970년대, 1980년대를 거쳐 선군정치를 더욱 심화발전시켜나가시였다.

그러던 주체83(1994)년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너무도 뜻밖에 서거하신것으로 하여 조선혁명발전에서는 새로운 정황이 조성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이후 나라와 민족의 운명, 시회주의 장래운명과 관련하여 사람들은 많은것을 생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영생을 어떻게 지켜드리고 주체혁명위업을 어떻게 계속 전진시켜나가며 나라와 민족의 장래운명을 어떻게 해결해나갈것인가. 이것은 본질에 있어서 위대한 김정일동지께서 혁명과 건설을 어떠한 방식으로 령도하여 나갈것인가 하는 커다란 기대가 담겨져있는 문제라고 할수 있었다.

한편 세계정치계와 보도계는  《김일성주석서거이후 조선의 정치양상》에 대해 이러저러하게 추측하고있었다. 그들은 앞으로 조선에서 《선행로선과는 일정한 정도의 간격을 가진 정책이 실시될것》이라느니, 《개혁, 개방에로의 정책변화가 있을것》이라느니 하는 억측도 내돌렸다.

온 세계가 이렇게 조선을 주시하고 위대한 장군님께로  향한  인민의  기대가  하늘땅을  꽉  메우고  있을 때  장군님께서  많이  생각하신것은 어버이수령님께서 해방직후에 걸으시였던 만경대갈림길이였다.

혁명의 큰 뜻을 품으시고 만경대고향집을 떠나시였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강도 일제를 때려부시고 조국에 개선하시여 조부모님들이 기다리는 만경대에도 들리지 않으시고 강선의 로동계급부터 찾아가시였다.

당도 국가도 정규군대도 없고 국고도 텅 비여있던 그때 위대한 수령님께서 믿을것이란 오직 로동계급밖에 없었으며 그들을 불러일으켜 하루빨리 새 조국을 일떠세워야 했기때문이였다. 그러나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지금은 사정이 다르다고 보시였다. 지금 우리에게는 강력한 당과 국가가 있고 자립적민족경제의 토대도 튼튼히 마련되여있다, 이러한 조건에서 조국의 안전만 수호된다면 경제를 활성화화고 인민생활을 추켜세우는것은 문제로 되지 않는다, 현시기 가장 절박한것은 원쑤들의 침략책동으로부터 사회주의운명, 조국과 인민의 안전을  수호하는것이다,  이것이  장군님께서  만경대갈림길에  대하여  생각하시면서  찾으신  결론이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한생을 바쳐 키워오시였고 혁명의 고귀한 유산으로 물려주신 인민군대를 혁명의 기둥으로 내세워 사회주의도 지키고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하실 단호한 결심을 내리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4(1995)년 1월 1일 수령님의 서거이후 첫 현지지도로 공장길, 농장길이 아니라 군령도를 위한 다박솔중대에로의 현지시찰의 길에 오르시였다. 여기에는 중대한 의미가 깃들어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박솔중대에 대한 현지시찰을 통하여 자신의 정치는 사회의 그 어느 부문보다도 군사를 중시하며 군대에 의거하여 혁명과 건설전반을 이끌어나가는 정치라는것을 내외에 엄숙히 선포하신것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다박솔중대를  현지시찰하심으로써  인류정치사에  있어본적이  없고  아직은  세상사람들이  그  이름조차  알수 없는  김정일장군님식정치, 선군정치가 높은 단계에서 전면적으로 확립되게 되였으며 제국주의가 살판치는 오늘의 세계에서 강력한 혁명무력에 의거하여 나라와 민족의 운명, 사회주의를 믿음직하게 지키고 인류의 자주위업을 성과적으로 실현해나갈수 있는 새로운 정치방식의 서막이 열리게 되였다.

다박솔중대에 대한 현지시찰로부터 력사가 일찌기 알지 못하는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장정의 길이 끊임없이 이어지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다박솔중대를 현지시찰하신데 이어 감나무중대, 길영조영웅비행대대 등 천리방선의 초소들과 병사들을 찾아 끊임없는 현지시찰의 길을 이어가시면서 인민군대를 백두산혁명강군으로 키워 시대와 혁명을 선도해나가는 혁명의 기둥, 주력군으로 더욱 강화해나가시였다.

격변하는 정세속에서 자기 발전의 새로운 리정표를 세운 선군정치는 인민군대에서 주체혁명의 새시대를 대표하는 혁명적군인정신이 창조되고 일반화되는 과정을 통하여 전면적으로 확립되여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펼치실 결심을 하시면서 기둥으로 믿으신것은 인민군대였다.

참다운 혁명군대가 로동계급보다 혁명성과 전투성이 더 강한 사회적집단인것만큼 군대를 앞장에 내세워야 혁명과 건설전반을 원만히 떠밀고나갈수 있다는것이 장군님께서 력사상 처음으로 내놓으신 선군후로의 원칙이다. 장군님께서 독창적으로 선군후로의 원칙을 제시하신것은 사회주의운동발전에 공헌하신 불멸의 업적이며 위대한 발견이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군후로의 원칙을 내놓으신 다음 인민군대를 강화하시고 인민군대를 본보기로 하여 사회의 모든 성원들을 교양하고 불러일으키기 위하여 인민군대안에서 주체혁명의 새시대를 대표하는 혁명정신이 창조되도록 정력적으로 령도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의 크나큰 신임과 믿음을 조국과 인민, 시대와 력사의 요청으로, 사명감으로 받아들인 인민군군인들은 조국보위도 사회주의건설도 우리가 다 맡자는 숭고한 사상정신력으로 무비의 희생성과 대중적영웅주의를 발휘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고난의 행군시기에 인민군군인들속에서 높이 발양된 수령결사옹위정신, 결사관철의 정신, 영웅적희생정신을 혁명적군인정신으로 명명해주시였다.

수령결사옹위정신을 핵으로 하는 혁명적군인정신은 인민군군인들이 수령에 대한 끝없는 충실성에 기초하고있는 가장 고결한 사상감정이며 수령을 위해 청춘도 생명도 다 바치는 투철한 투쟁정신, 육탄정신, 자폭정신이다.

혁명적군인정신은 주체혁명의 새시대, 선군시대를 상징하는 위대한 혁명정신으로서 그후 전사회적으로 커다란 영향을 미치였다.

혁명적군인정신을 온 나라의 로동계급과 인민들이 따라배웠다. 그리하여 강계정신이 창조되고 성강의 봉화, 라남의 봉화가 타올랐으며 경제활성화의 세찬 동음이 울려퍼지고 고난의 행군, 강행군이 승리적으로 결속되고 온 나라에 사회주의강성국가건설의 북소리가 울려퍼졌다. 그것은 곧 사회의 모든 성원들이 선군사상으로 무장되고 인민군대식으로 일해나가는 과정이기도 하였다.

혁명적군인정신의 일반화는 곧 선군정치방식의 전면적확립과정으로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렇듯 어버이수령님의 서거후 선군의 기치를 더욱 높이 드시고 인민군대를 강화하는것으로 선군정치를 새로운 높은 단계로 심화발전시키시였으며 인민군대에서의 혁명적군인정신창조와 그 일반화과정을 통해 선군정치방식을 전면적으로 확립해나가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강위력한 국방위주의 국가기구체계를 확립하는 과정을 통하여 선군정치를 하나의 체계화된 정치방식으로 확립하시였다. 선군정치가 완성된 정치방식으로 되자면 그에 맞는 국가기구체계를 가져야 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어버이수령님께서 서거하신 직후에 벌써 우리의 국가기구체계를 계승성이 확고히 보장되고 군사중시사상의 요구에 맞게 발전시킬 구상을 펼치시였으며 그후 그 구체적방향과 방도에 대하여 세심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이에 따라 국방위원회를 중추로 하는 새로운 국가기구체계를 세울데 대하여 규정한 새로운 헌법이 작성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7(1998)년 9월 5일 최고인민회의 제10기 제1차회의에서 새로운 사회주의헌법을 심의채택하고 그에 기초하여 우리의 국가기구체계를 국방위원회를 중추로 하는 군중시사상이 철저히 구현된 새로운 국가기구체계로 완성시켜주시였다.

선군정치방식이 국가적기틀우에 확립됨으로써 선군정치확립의 제도적, 법적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선군정치가 이러한 력사적과정을 거치면서 국가사회생활의 전반에 걸쳐 체계화된 사회주의정치방식으로 확립되고 선군정치의 정당성과 생활력이 뚜렷이 나타났을 때 비로소 선군정치를 자신의 기본정치방식으로 선포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88(1999)년 2월 8일 선군정치는 자신의 기본정치방식이며 우리 혁명을 승리에로 이끌어나가기 위한 만능의 보검이라고 밝히시고 온 세상에 선포하시였다.

자신의 정치가 어떤 정치라고 먼저 표명하지 않으시고 소문없이 그 기초를 튼튼히 다지고 여러 단계를 거치며 과학성을 확증하고 위력을 나타낸 다음에야 비로소 그것이 선군정치라고 천명하신것은 말보다 실천을 중시하시고 실리를 중요시하신 위대한 장군님의 로련한 정치예술과 특출한 정치실력의 과시로 된다.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로숙하고 세련된 령도에 의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확립된 선군정치는 인류정치사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독창적인 정치방식이다.

그러나 정치와 군사의 호상관계문제는 선군정치이전시기까지에는 과학적으로 해명되지 못하였으며 더우기 군사중시, 군사선행의 정치방식은 그 어느 시대, 그 어느 나라에서도 제기하지 못한 독창적인 정치방식이였다.

선행한 사회주의리론에서는 군대를 사회주의위업수행의 군사적력량으로, 나라를 지키는 보위자로 보면서 혁명군대를 로동자, 농민의 아들딸로 편성하고 인민의 군대로 만들며 혁명의 전취물을 수호할데 대한 문제 등 군건설에 관한 일련의 문제를 제기하였지만 군사중시의 정치방식을 내놓지 못하였다.

선군정치가 군사를 중시하고 혁명군대를 주력군으로 내세운다고 하여 군권정치(일명 군국주의정치)와 같은 정치로 리해하여서는 절대로 안된다.

군권정치는 지배계급이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군사화하고 침략전쟁을 위한 군사력증강에 모든것을 복종시키는 정치를 말한다. 원래 군국주의정치는 봉건사회에서 발생하였으나 자본주의 특히 독점자본주의단계에 와서 지배적인 자리를 차지하고 그의 중요한 특징으로 나타났다. 지난 세기 30|40년대에 파쑈도이췰란드와 군국주의일본을 비롯하여 력사에 존재하였거나 지금도 존재하고있는 군국주의국가들은 례외없이 국가체제를 반동화하고 전쟁소동을 일삼으면서 대외적으로는 다른 나라, 다른 민족에 대한 침략정책에 매달린다는데서 공통적이다. 군국주의정치가 군사적폭압과 강권에 의거한다고 하여 일명 파쑈정치, 군권정치라고도 한다.

군권정치는 군사가 정치를 그가 응당 차지해야 할 지위로부터 물리치고 그 자리를 강탈함으로써 군권이 정치를 가로챈 정치라고 말할수 있다. 

군권정치를 실현하려면 우선 정치화된 군부세력이 형성되여야 한다. 군부상층에 틀고앉은 일부 군인들은 그전까지는 자기들의 후견역할을 해오던 지배계급세력을 그대로 믿고있다가는 더 이상 저들의 리해관계를 실현할수 없다는 의식이 생겨나고 또 그러한 사태가 조성되였을 때에 정치세력화되여 전면에 등장하게 된다. 이렇게 정치화된 군부세력들은 모든 정치를 군대식명령과 지시⇒복종과 굴종의 순환의 관계로 바꾸어내며 사회를 적아로 량분하여 저들에게 대항하는 적대세력에 대해서는 가차없이 탄압한다. 그들은 저들의 리해관계에 맞기만 한다면 서슴없이 예속의 길을 선택하며 그것을 인민대중에게 강요한다. 뿐아니라 남의 나라, 다른 민족의 자주성을 여지없이 탄압하는것도 서슴지 않는다.

군권정치는 반인민적정치이며 파쑈정치이다. 그것은 정치군사화된 파쑈군부세력이 실시하는 정치이며 군국주의정치방식이다.

그러나 선군정치는 이와는 본질적으로 다른 전혀 새로운 정치방식이다.

선군정치는 군권이 정권을 가로채거나 군사가 정치를 그 응당한 지위로부터 밀어내는것이 아니라 정치가 주도적지위를 차지하면서 정치실현에서 주력군으로 되는 사회력량을 혁명적군인집단에서 찾고 적극적인 정치실현방식으로서 군대를 정치실현의 핵심력량으로 내세우는 정치방식이다.

그러한 조건에서 정치가 자기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을 무엇보다도 신성불가침의 근본적권리로, 요구로 내세울뿐아니라 남의 나라와 민족의 자주성도 역시 같은 지위에서 보장하며 바로 그렇게 대할것을 요구한다.

선군정치와 군권정치에서 군대가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도 근본적으로 다르다. 선군정치에서 중요한것은 정치실현의 주력군으로 될 군대가 어디까지나 나라와 민족,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것을 자기의 력사적임무로 간주하고있는 혁명군대이다. 이것은 군권정치가 반드시 그 뒤면에서 저들의 리해관계에 기초하여 지배계급과 긴밀한 협조와 공생관계를 형성하고있다는 사실과 근본적으로 다른 점이다.

또한 선군정치는 그 목적과 성격에서 세계제패와 독점적고률리윤의 추구와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를 군사화하고 침략적군사력증강에 희생시키는 군권정치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며 그것을 철저히 짓부셔버릴수 있게 하는 위력한 정치방식이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확립된 선군정치방식은 위대한 김정일동지의 존함과만 결부되여 있는 정치방식이다.

인류정치사에서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새롭고 독창적인 정치방식인 선군정치는 위대한 김정일동지를 떠나 생각할수 없다.

이것은 선군정치가 실현될수있는 결정적담보가 위대한 장군님의 선군혁명위업수행에서 차지하는 령도자로써의 지위와 역할, 정치군사적자질과 실력에 있다는것을 말해준다.

선군정치실현의 결정적담보는 첫째로 비범한 정치군사적실력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을 조선로동당과 인민군대의 령도자로 높이 모신데 있다.

정치방식은 정치지도자의 령도방식이다.

이미 1960년대초에 선군령도의 길에 나서시고 1960년대 말 1970년대 초에 선군정치를 시작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군사중시의 원칙에서 인민군대를 수령의 군대, 조선로동당의 군대로 만드는것을 군건설의 충적임무로, 전군 주체사상화를 군건설의 최고강령으로 제시하시고 정력적인 령도로 인민군대의 정치사상적, 군사기술적위력을 강화하여오시였다.

일찍부터  탁월한  선군령장으로서의  높은  자질과  품격을  지니신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를  받아온 인민군장병들은 누가 시키지 않아도 장군님을 최고사령관으로 존경하고 장군님의 령도를 충성으로 받들어나갔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높은  군사적실력과  선군령도업적으로  하여  주체63(1974)년  2월에  소집된  당중앙위원회  제5기  8차전원회의에서 어버이수령님의 후계자로 추대되시였으며 그후 조선로동당 중앙위원회 제6기 제19차전원회의에서 조선인민군 최고사령관으로, 최고인민회의 제9기 5차회의에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국방위원회 위원장의 직책을 맡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을 선군혁명의 최고령도자로 높이 모신것으로 하여 선군정치를 전면적으로 확립할수 있는 결정적담보가 마련되게 되였다.

선군정치실현의 결정적담보는 둘째로 공화국에서 위대한 장군님의 명령일하에 전군이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령군체계를 철저히 세운것이다.

정치방식은 정치실현을 위한 사업체계이고 질서에 관한 문제이기도 하다.

정치지도자의 령도체계를 떠난 정치실현이란 있을수 없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장군님의 령도를 높이 받들어나가려는 인민군장병들의 요구와 의사를 담아 주체68(1979)년 12월 인민군대에 대한  장군님의 유일적령도체계를 세우는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특히 주체71(1982)년 6월에 소집된 당중앙군사위원회에서 인민군대안의 당정치사업과 함께 군사사업전반을 장군님께서 직접 장악지도하도록 하시였다.

년대와 년대를 이어오며 인민군대안의 지휘간부들과 모든 장병들이 위대한 장군님을 령도의 중심으로 받들어 모시고 인민군대의 사명을 책임적으로 수행하도록 이끌어주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마지막 나날들에도 장군님의 령군체계확립을 위해 심혈을 다 바치시였다.

주체83(1994)년 4월 25일 인민무력부의 책임일군들과 조선인민군 각 군종, 병종사령관들을 부르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백두산》권총을 수여하시면서 위대한 장군님의 명령에 절대복종하며 장군님을 높이 받들어 모시고 주체혁명위업을 완성할데 대하여 가르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로동계급이 만든 기관단총을 처음으로 김책, 최용건동무들에게 수여한것이 1949년이였는데 그때로부터 45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갔다고 하시며 지나온 총대혁명력사를 감회깊게 돌이켜보시였다. 그러시고는 그때로부터 45년이 지난 오늘 자신께서 두번째로 동무들에게 권총을 수여하는것은 동무들이 지금까지 나를 받들어 잘 싸워온것처럼 앞으로 최고사령관 김정일동지를 높이 받들어 백두산에서 시작된 우리의 혁명위업을 반드시 성취하려는 나의 기대가 어려있기때문이라고 말씀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날 우리가 개척한 주체혁명위업을 대를 이어 계승완성하려면 전군이 김정일최고사령관을 잘 모시고  그의  령도를  진심으로  받들어나가야 한다고 하시면서 전군이 최고사령관의 두리에 한사람같이 굳게 단결하며 인민군대안에 최고사령관의 명령을 무조건 집행하는 혁명적군풍을 철저히 세워야 한다고 가르치시였다.

인민무력부책임일군들과 인민군대의 군종, 병종사령관들은 항일혁명투쟁시기 항일혁명투사들이 위대한 김일성동지를 민족의 태양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고 한목숨 서슴없이 바쳐 싸웠던것처럼 김정일동지를 최고사령관으로 높이 받들어 모시고 결사옹위하여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할 불같은 맹세를 다지였다.

한편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수십성상에 걸치는 군령도과정에 특출한 전략적안목과 조직전개력, 지휘통솔력을 지니시고 비범한 정치실력으로 전군을 틀어쥐고 이끌어나가심으로써 인민군대안에 령군체계를 훌륭히 세워나가시였다.

이렇듯 어버이수령님의  예견성있고  적극적인  조치들,  그리고  위대한  장군님의  특출한  정치군사실력에  의해  인민군대의 모든 사업이 장군님께 집중되고 장군님의 유일적결론에 따라 처리해나가는 혁명적질서가 튼튼히 서게 되였으며 전군이 장군님의 명령일하에 하나와 같이 움직이는 명령지휘체계가 세워지게 되였다.

이것은 선군정치실현의 또하나의 결정적담보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에서  전면적으로   확립된  선군정치는  또  한분의   선군태양  

경애하는  김정은동지를 당과 군대, 국가의 최고수위에 높이 모심으로 하여 빛나게 계승되고있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위대한 수령님들을 선군조선의 태양으로 높이 모시고 경애하는 김정은동지의 선군정치를 높이 받들어 자주의 길, 선군의 길, 사회주의의 길로 힘차게 전진할것이다.

 

김일성종합대학 김경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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