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의 전패국-도이췰란드와 일본의 과거청산에 대한 비교분석 1)

 

1. 서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인민은 국제법의 공인된 원칙과 국제관례에 비추어 일제가 조선인민에게 입힌 모든 피해에 대하여 일본에 배상을 요구할 응당한 권리를 가지고있으며 일본은 이에 응할 법적의무가 있습니다.》

지난날 일본제국주의는 조선을 비법적으로 강점하고 40여년에 걸치는 오랜 기간 식민지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이루 헤아릴수 없는 불행과 고통을 강요하였다.

일제가 식민지통치전기간 우리 인민에 대한 무참한 탄압살륙을 감행하였으며 840만여명의 조선사람들을 《징병》, 《징용》, 일본군성노예로 강제련행하여 그중 100여만명을 살륙한 죄행, 조선의 자연부원을 깡그리 략탈하고 민족의 귀중한 문화재들을 파괴략탈한 죄행 등은 시효가 없는 반인륜적범죄이다.

일본은 제2차 세계대전의 전패국으로서 지난 시기의 모든 침략죄행들에 대하여 사죄배상하여야 할 의무를 지니고있다.

우리 나라에 대한 일본의 과거청산의 본질은 한마디로 지난날 우리 인민에게 끼친 불행과 재난에 대하여 인정하고 사죄하며 그에 해당한 충분한 물질적배상을 하는것이다.

과거청산이 없는 조일관계정상화란 있을수 없다.

이 론문에서는 과거청산을 한사코 회피하고있는 일본의 파렴치한 책동을 같은 시대의 전범국으로서 성실한 자세와 립장을 가지고 과거죄행에 대한 사죄와 배상을 실시해온 도이췰란드와의 비교분석을 통하여 과거청산이 일본의 법적, 도덕적책임이라는것을 강조하려고 한다.

 

2. 본론

 

2. 1. 과거침략력사를 대하는 상반되는 태도

 

지구의 동서방에서 식민지를 재분할하고 전인류를 노예화하려는 목적으로 침략전쟁의 불을 질렀던 파쑈적인 도이췰란드와 일본은 1945년 5월과 8월에 세계적인 반파쑈세력앞에 무릎을 끓고 완전패망하였다.

패전후 도이췰란드와 일본에서는 파쑈를 반대하는 진보적인류의 념원과 련합국들의 일치한 합의에 따라 채택된 포츠담선언과 같은 국제법적문건들을 수락한 새로운 정부들이 출현하였다. 이 정부들은 고유한 의미에서 침략전쟁의 불을 질러 인류에게 커다란 참화를 들씌운 종래의 파쑈정부들과 정치적으로 결별하고 평화와 민주주의를 지향하는 성격을 띠였다. 따라서 새 정부들은 과거의 침략력사를 전면부정하고 신파시즘을 철저히 배격하는 립장을 전제로 하였다.

그것은 파쑈국가들에 의하여 감행된 침략의 력사를 전면부정하고 배격하는것이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에서 중요한 정치적문제의 하나로 되기때문이다.

그러나 제2차 세계대전후 도이췰란드와 일본은 과거력사를 대하는데서 상반되는 태도를 보여주었다.

도이췰란드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에서 히틀러나치스가 패망한지 60년이 되는 2005년 4월에 수상이 자국의 와이마르시에 있는 나치스시기의 부헨왈드수용소 희생자추모비앞에 무릎을 끓고 앉아 나치스가 저지른 야만적인 행위에 대하여 전인류앞에서 진심으로 사죄하였다. 그리고 이어서 진행된 반파쑈련합군에 의한 수용소해방 60돐 기념행사에서 《나치스가 저지른 범죄를 잊지 않는것은 도이췰란드의 도덕적의무로 남아있으며 … 도이췰란드는 과거를 변화시킬수도, 그 책임에서 벗어날수도 없다.》고 강조하였다.

2014년 3월 7일에도 도이췰란드대통령 가우크가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 도이췰란드군이 많은 민간인들을 학살한 그리스 서북부의 링기아데스를 방문하여 사죄하였다. 그리고 그리스대통령 빠뿔리아스와 함께 1943년 10월 3일 파쑈도이췰란드군이 그리스의 빨찌산이 도이췰란드군 사관을 살해한데 대한 보복으로 링기아데스에서 어린이를 포함한 민간인 83명을 살해한 학살현장에 세워진 위령비를 찾아 화환을 진정한 다음 《수치와 마음속고통을 느끼면서 나는 도이췰란드의 이름으로 살해된 사람들의 유가족들에게 용서를 빌며 무서운 범죄의 희생자들에게 머리를 숙인다.》고 말하였다.

과거침략력사를 솔직하게 인정하고 사죄하는 도이췰란드수상이나 대통령의 행동과 발언은 세계의 인정과 여론의 환영을 받았다.

그러나 같은 시대의 전범국으로서 지구의 동방에서 침략전쟁의 불을 지르고 인류사에 전무후무한 죄악을 저지른 일본의 태도는 그와 상반되는 대조를 이룬것으로 하여 인류의 경악을 자아냈다.

제2차 세계대전에서 파쑈일본의 패망 60년을 맞는 2005년 8월 14일 당시 일본정부의 경제산업상 나까가와, 이전 총리 하시모또를 비롯한 고위정객들이 야스구니진쟈를 참배하였고 8월 15일에는 후생로동상 히데히사, 환경상 유리꼬 그리고 야스구니진쟈를 참배하는 초당파국회의원그루빠에 속한 47명의 국회의원들과 당시 자민당간사장대리 아베, 도꾜도지사 이시하라 등 고위정객들이, 10월 17일에는 당시 일본총리 고이즈미가 야스구니진쟈를 련이어 참배하였다.

패망 70년이 되는 2015년 8월 15일에는 일본수상 아베가 야스구니진쟈에 제물비를 봉납하고 총무상과 국가공안위원장을 비롯한 정부의 각료들, 모두가 야스구니진쟈를 참배하는 국회의원모임에 소속되여있는 60여명의 국회의원들도 무리로 야스구니진쟈에 찾아가 참배하는 소동을 벌리였다.

일제패망 73년을 맞는 2018년 8월 15일에도 일본 초당파국회의원들이 야스구니진쟈에 집단적으로 몰려가 군국주의망령들에게 참배하는 망동을 부리였다. 수상 아베는 내외여론이 두려워 참배는 못하고 자민당총재의 자격으로 야스구니진쟈에 제물을 봉납하였다.

결국 아베는 2013년부터 2018년까지 이런 식으로 내외여론을 기만하고 간접참배를 하였다. 아베를 대신하여 진쟈를 찾은 자민당 총재특별보좌관은 기자들에게 《아베는 선조영령들께 꼭 참배해주기 바라며 직접 참배하지 못해 죄송하다고 말하였다.》고 진속을 털어놓았다.

일본의 이러한 행위는 매해 반복되고 날이 감에 따라 더욱 확대되고있다.

그러면 량국의 당국자들이 찾아간 도이췰란드의 부헨왈드수용소와 일본의 야스구니진쟈는 과연 어떤 곳인가.

부헨왈드수용소가 제2차 세계대전시기에 히틀러악당들이 유럽의 무고한 인민들과 유태인들을 강제로 끌어다가 학살한 범죄를 고발하고 희생자들을 추모하는 비가 세워져있는 력사의 증견물이라면 야스구니진쟈는 파쑈일본이 감행한 해외침략전쟁에서 죽은 전몰자들, 지어는 도죠 히데끼와 같은 수급전범자들의 위패가 보관되여있는 일본군국주의의 상징이다. 

과거의 침략죄행을 규탄고발하는 강제수용소와 과거 침략전쟁에 나섰다가 죽었거나 전범자로 처형된자들의 명복을 비는 신사, 그 의미가 완전히 상반되는 두 장소를 찾은 두 나라 정치인들의 걸음은 그들이 과거력사를 어떻게 대하고있는가를 똑똑히 보여주었다.

도이췰란드가 제2차 세계대전시기 히틀러나치스가 감행한 침략과 범죄행위에 대하여 사죄한것은 물론 이때가 처음이 아니였다.

도이췰란드는 오래전부터 히틀러나치스의 침략력사와 범죄에 대하여 솔직히 인정하고 세계앞에 여러차례 진심으로 사죄하였다.

나치스패망후 새로 출현한 도이췰란드정부는 나치스시기의 력사를 침략과 범죄로 얼룩진 부정의의 력사로 규정한 새로운 력사관을 국가정치와 사회문화전반에 구현하였다.

이에 따라 뉴른베르그국제공판이후에도 스스로 나치스전범자처벌을 위한 국내특별법을 제정하여 나치스정부의 책임있는자들을 처벌하고 공직취임을 배제하였으며 이전 히틀러제국의 침략력사와 죄행을 전면적으로 솔직하게 인정하고 규탄배격하며 시효를 두지 않고 엄하게 처벌하는것을 정책으로 집행하여왔다.

실례로 2014년 2월 20일에 도이췰란드의 바덴 뷔르텔베르그주 수사당국은 변성명하고 숨어살던 88살, 92살, 94살 고령의 이전 수용소간부들과 나치스친위대원들을 구속처형하였다.

이 사실은 세기가 지난 오늘에 와서도 나치스의 범죄는 절대로 용서하지 않는다는 도이췰란드정부의 의지를 충분히 보여주고있다. 패전후 출현한 도이췰란드국가와 정부의 대통령 및 수상, 관리들은 나치스가 인류앞에 저지른 침략과 범죄에 대하여 세계앞에 공식적으로 인정하고 피해국들에 진심으로 되는 사죄를 표명하였으며 외국방문시에도 포로수용소들을 비롯한 나치스의 만행지나 희생자추모비들을 방문하고 꽃을 증정하는 등 성실한 자세를 보여주었다.

도이췰란드정부는 과거침략에 대한 사죄의 의미에서 그리고 이러한 범죄를 영원히 잊지 않고 재발을 방지하는 의미에서 스스로 자금을 지출하여 나치스시기의 수용소들을 비롯한 만행시설들을 복구하고 희생자추모비를 건립하며 그에 대한 참배를 장려하는 조치도 취하였다.

2005년 도이췰란드정부가 나치스의 범죄를 고발하는 력사적증거물인 부헨왈드수용소추모비수복을 위해서만도 100만€를 지출한것이 그 대표적실례이다.

특히 도이췰란드정부는 새 세대들에게 철저한 반나치스력사교육을 실시하였다.

패전이후 히틀러의 나치스제국과 정치적으로 결별한 정부는 옳바른 력사교육을 나치스의 패망후 국가의 건전한 발전과 관련되는 문제로 보고 그 어떤 외곡이나 편향도 없이 나치스시기의 반인륜적범죄를 새 세대들에게 그대로 알려주어 그들이 과거의 범죄를 증오하고 평화를 지향하는 세계관을 가지도록 하였다. 이것은 전후 도이췰란드가 전쟁이 아니라 평화적발전을 지향하는데 도움이 되였으며 나치스의 침략을 당했던 유럽나라들이 도이췰란드를 리해하도록 하는데서 중요한 작용을 하였다.

이렇듯 도이췰란드의 이러한 성근한 자세와 진심어린 노력은 제2차 세계대전시기 히틀러나치스의 침략과 만행을 겪었던 피해국들의 인정은 물론 전세계 평화애호력량의 동정을 받았다. 

그러나 패전후 일본은 이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어왔다.

제2차 세계대전이후 출현한 력대 일본정부와 정계의 고위인물들은 죄악에 찬 과거력사를 한사코 부정하고 외곡은페하며 심지어 정당화하는것도 서슴지 않았다.

그것은 년대와 년대를 이어가며 과거사 특히 조선침략사를 부정외곡, 미화분식하여온 일본정치인들의 망언과 정부의 외곡된 력사교육을 통하여 잘 알수 있다.

이미 1953년 10월 15일 제3차 남조선─일본회담 본회의에서 일본측수석대표 구보다 강이찌로는 일본의 식민지통치는 《조선에 유익하며 은혜를 준 면도 있다.》고 하였으며 제7차회담 일본측수석대표 다까수기 싱이찌는 1965년 1월 7일 기자회견에서 《… 일본은 조선을 지배하였지만 … 좋은 일을 하려고 하였다. … 창씨개명도 좋았다. 조선인을 동화시켜 일본인과 같이 취급하기 위하여 취해진 조치였지 착취라든가, 압박이라든가 하는것은 아니였다.》고 뻔뻔스럽게 말하였다.

1974년 1월 일본정부를 대표하는 당시 수상 다나까는 국회에서 한 연설에서 과거 조선강점시기를 《합방시대》라고 부르면서 《조선사람들은 일본이 이 시기에 김을 재배하는것을 가르쳐준것을 감사히 여기고있으며 일본의 교육제도를 지금도 지킬수 있는 훌륭한것이라고 말하고있다.》고 하면서 우리 민족을 심히 모독하고 과거침략사를 미화분식하였다.

1980년대이후에도 일본의 정계인물들은 앞을 다투어 공공연히 과거를 부정하고 미화분식하는 망언을 련발하였으며 그것은 새 세기에 들어와 더욱더 로골적인 형태를 띠였다.

특히 일본의 극우익적인 호전분자인 이전 도꾜도지사 이시하라 신따로는 2003년 10월에 《조선에 있어서 일본의 식민주의는 인간적이였다.》고 과거를 찬양미화하였고 2009년 4월 22일에도 《유럽선진국에 의한 아시아식민지통치에 비해서 일본이 한것은 오히려 부드러웠고 공평했다.》는 얼토당토않은 궤변을 늘어놓았다.

심지어 일본정계에서는 일본이 서명하고 인정한 전범국가로서의 일본의 패전과 전후처리를 규정한 국제문건들까지 부정하는 망언들이 탕탕 튀여나왔다.

일본수상 아베는 2013년 3월 12일 중의원예산위원회에서 제2차 세계대전시기의 전범자들을 재판한 극동국제군사재판과 관련하여 《대전에 대한 총화는 일본인들자신이 아니라 이른바 련합국측의 승자들의 판단에 의해 단죄가 이루어졌다.》고 하면서 일본을 《적국》으로 규정한 국제사회의 판결까지 전면부정하는 태도를 취하였다.

일본은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외곡된 력사교육도 실시하고있다.

일본의 력사교육은 한마디로 그 내용에서 과거에 대한 외곡은페, 그 실시에서 정부의 직접적개입으로 특징지을수 있다.

이것은 2015년 일본 문부과학성의 검정에서 통과되여 교육에서 리용되고있는 《후소사》판 중학교용력사교과서인 《최신일본사》의 내용을 통하여 잘 알수 있다.

이 력사교과서에서는 우리 나라의 고대, 중세의 력사를 일본의 비위에 맞게 날조하고 깎아내린것은 물론 특히 일제의 조선침략력사를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외곡서술하였다.

교과서는 조선침략을 제창한 《정한론》이 일본의 개국권고를 거절해온 조선의 태도가 무례한데로부터 사무라이들속에서 주장된것으로, 조선이 로씨야의 지배하에 들어가면 일본의 안전을 지키는것이 곤난하므로 일본이 할수 없이 로일전쟁을 진행한것으로, 일본의 안전과 만주의 리익을 보장하기 위하여 조선을 병합한것으로, 일제의 조선강점시기 악독한 식민지노예화와 민족말살, 강제련행 및 대학살만행은 얼핏 스치거나 《소요》가 있었다는 식으로 침략적본질과 죄행을 외곡, 은페, 정당화하고있다. 교과서는 전대미문의 일본군성노예범죄내용을 아예 삭제(2001년판에서는 외곡서술)하였으며 일제의 조선강점통치가 《조선의 근대사를 도왔다.》고 외곡서술하는 등 과거 조선침략사를 공공연하게 미화하고있다. 또한 조선의 고유한 령토인 독도를 일본의 《령토》로 서술하고 표지에 독도의 사진까지 받치였다.

일본에서 발행되는 고등학교용력사, 지리교과서에도 독도령유권문제, 일본군성노예문제, 창씨개명과 야스구니진쟈참배문제 등 여러가지 주요한 력사문제들이 외곡서술되여있는데 그 정도는 중학교용력사교과서의 외곡보다 더 우심한 형태를 띠고있다.

일본의 력사교과서외곡은 단순히 일부 어용학자들에 의해서가 아니라 일본정부와 극우익적인 군국주의정치세력에 의하여 추진되였다는데 그 위험한 특징이 있다.

《최신일본사》를 집필한 이른바 학술단체인 《새 력사교과서를 만드는 모임》하나만 보아도 일본자민당의 이전 력사검토위원회가 정치적배경이 되고 여기에 《밝은 일본국회의원련맹》, 《일본의 앞날과 력사교육을 생각하는 젊은 의원모임》 등 자민당내 극우보수정치조직들과 전 수상, 문부과학상 등 전직, 현직 정계인물들의 정치적지원, 가시마건설, 스미또모계렬기업들, 미쯔비시중공업, 가와사끼중공업 등 100여개 대기업체의 막대한 재정적지원 그리고 우익보수신문인 《산께이신붕》의 언론적지원을 받고있다.

일본정부가 외곡된 력사교육을 직접적으로 주도하고있다.

문부과학성은 2006년이후 고등학교용검정신청본 교과서들에 《독도가 일본의 령토라는 사실이 명확히 드러나있지 않다.》고 하면서 《독도가 시마네현에 속해있으나 남조선이 령유권을 주장하고있다》로 고치도록 하였다.

이것은 《… 일본은 폭력과 탐욕에 의하여 략취한 다른 모든 지역으로부터 축출될것이다.》라고 규제한 제2차 세계대전시기 련합국들의 《까히라선언》과 패망후 일본의 령토를 규정한 포츠담선언, 《련합국최고사령부의 지령》 제677로, 제1033호 등에 전적으로 위반되는 력사외곡행위이다.

문부과학성은 또한 《<일본군에 의하여 위안부가 된 녀성>이라는 문구도 일본이 가해자로 될 우려가 있다.》고 하면서 《일본군의 위안부가 된 녀성》으로 고치도록 하였고 그후에는 이 부분을 아예 삭제하도록 하는 등 창씨개명문제를 비롯한 일본의 조선 및 아시아침략시기 력사의 많은 부분을 저들의 비위에 맞게 고치게 하였다.

문부과학성은 검정에서 통과된 외곡된 력사교과서의 리용률을 높이기 위하여 이전 도꾜도지사 이시하라 신따로를 비롯한 극우정치인들과 결탁하여 종래의 교과서채택제도까지 고치고 모든 수단을 동원하여 채택률을 높임으로써 외곡된 력사교과서에 의한 교육범위를 넓히려고 책동하였다.

력대적으로 9.18사변 등 일제의 중국침략사를 부정하는 일본반동정부는 중국국내에서 과거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는 목소리가 높아지고 남경대학살관이 건립되자 2013년 12월 문부과학성을 내세워 과거 일제의 의한 남경대학살에 대한 서술이 불공평하다는 자민당의 개혁안과 근대 및 현대사의 력사적사실에 대한 정부의 견해에 따라 소, 중학교의 사회과목분야 교과서검정기준을 개정하기로 하는 조치를 취하였다.

일본은 이렇게 과거사를 뻔뻔스럽게 외곡하고도 우리 나라와 중국 등 주변나라들이 강하게 항의하는데 대하여 《비판은 자유지만 일본이 그때문에 흔들릴 필요는 없다.》고 오만한 태도를 취하고있다.

사실들은 일본정부가 학자들에 의하여 집필된 교과서들의 구체적인 내용에까지 간섭하면서 외곡을 강요하고있다는것을 보여준다.

2014년 5월 유럽행각에 나선 일본수상 아베는 과거력사문제와 관련한 기자들의 질문에 일본은 도이췰란드를 본따 지난 시기의 침략죄행에 대하여 사죄하지 않을것이라고 로골적으로 망언함으로써 과거력사에 대한 전면부정이 일본의 립장이라는것을 확언하였다.

일본이 집요하게 과거력사를 부정외곡하는 목적은 한마디로 일본의 침략력사를 부정의의 력사로 규정한 제2차 세계대전의 전후처리결과를 인정하지 않고 일본국민들과 자라나는 새 세대들에게 군국주의사관을 주입시켜 《강력한 일본》을 되찾자는데 있다.

김일성종합대학 김병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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