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식살림집의 지붕형식과 그 특징​ 1)

1. 서 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의 고유한 민족건축형식인 날아갈듯 우아한 조선식지붕의 조형적형상은 끊임없이 발전하고 높이 지향하는 우리 인민의 락천적인 생활감정과 슬기로운 기상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있다.》

우리 민족의 락천적인 생활감정과 슬기로운 기상을 상징적으로 나타내고있는 조선식살림집의 지붕형식은 인민들이 생산활동과 가정생활에 편리하게 집을 짓고 리용하는 과정에 창조하고 계승발전시켜온 지붕형식이다.

살림집의 지붕은 비, 바람, 눈, 태양열 등 대기의 영향으로부터 집을 보호하기 위하여 설치한 건물의 제일 웃부분 구조요소이다.

조선식살림집의 지붕은 그 유래가 오래며 전통적인 민족살림집의 고유한 건축형식으로 되여오고있는데 그 대표적인것이 배지붕, 우진각지붕, 합각지붕이다. 조선식살림집의 지붕은 원시, 고대의 움집들이 지상살림집으로 변천되는 과정에 살림집의 기본지붕형식으로 발생하였으며 오랜 력사적기간 우리 나라의 자연기후조건과 자연지리적조건, 우리 인민의 민족적감정과 정서를 반영하여오면서 민족적특징을 갖추게 되였다.

조선식살림집의 지붕을 보면 도리 또는 기둥우에 덧서까래나 주두를 설치하여 처마가 들리우게 하는것과 함께 룡마루의 량끝에 기와를 덧쌓아 휘임을 조성한것이였다. 그리고 살림집지붕을 구성하고있는 룡마루, 박공마루, 추녀마루, 처마 등 지붕의 모든 요소들이 다른 민족의 살림집지붕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자연스러운 곡선을 지어주고있는것으로 하여 민족고유의 특성과 우리 인민의 창조적인 지혜와 재능, 락천적인 생활감정과 슬기로운 기상을 상징적으로 잘 표현하고있다.

이 론문에서는 선행연구성과에 기초하여 조선식살림집지붕의 형식들과 그 변천과정, 계승관계를 종합적으로 분석하고 발생초기부터 나타나고있는 민족적특징들을 밝힘으로써 조선식살림집의 우수성을 과학리론적으로 론증하려고 한다.

 

2. 본 론

 

2. 1. 조선식살림집의 배지붕과 특징

 

조선식살림집의 배지붕형식은 량면으로 물매를 짓고 옆면은 끊은듯이 마무리한 량면경사지붕을 말한다. 배지붕은 신석기시대에 그 형식이 이루어지고 전통적으로 계승발전되여온 지붕형식의 하나이다.

살림집의 배지붕은 초기움집의 원추형초막에서 지붕과 벽체를 겸하고있던 고깔지붕이 지붕과 벽체가 분리되면서 자기의 면모를 나타낸 움집지붕에서 유래되였다.

초기움집의 평면륜곽은 원형, 긴 타원형, 방형 등 여러가지가 있었는데 그가운데서 대부분은 원형이였다.

평면륜곽이 둥근 이 시기의 집들은 벽체가 없는 초막형태였다. 따라서 외형상벽체가 없는 이러한 초막형태의 집은 서까래들을 땅에 의지해서 집안쪽으로 경사지게 세워 벽체와 지붕을 겸하게 한것이였다.

평면륜곽과 기둥구멍이 그대로 남아있는 이 시기의 대표적집자리인 궁산유적 1호집자리를 보면 21개의 기둥구멍 대부분이 움벽을 따라 배렬되면서도 모두 안쪽을 향하여 경사지게 뚫려져있다. 이것은 서까래를 받들기 위한 기둥이 섰던 자리가 아니라 서까래밑이 땅에 박혔던 자리의 흔적이라는것을 보여준다.

궁산유적 1호집자리의 이러한 상태는 이 시기 평면테두리가 원형인 집은 모두 원추형고깔지붕의 움집이였다는것을 말해준다.

이러한 집들은 구조상 서까래를 땅에 박고 경사지게 세워 지붕이 되게 한것만큼 벽체가 따로없었다.

그러나 움집에서 지붕과 벽체의 분리는 점차 배지붕이 형성될수 있는 조건을 지어주게 되였다.

서포항유적 2기 3호, 17호집자리, 궁산유적 4호집자리와 같이 기둥구멍이 모두 수직으로 뚫려져있는것은 그것이 움집안의 벽체를 겸하면서도 지붕서까래를 떠받들었다는것을 보여준다.

이런 경우 움집의 서까래들은 움밖에 세우게 되여있었으나 집내부에서는 지붕과 벽체가 분리되여있었다.

지붕과 벽체의 분리는 움집이 점차 얕은 움집으로 변천되여가는 과정에 자기의 뚜렷한 모습을 나타냈으며 그에 맞게 집자리평면은 원형으로부터 방형, 장방형으로 되여갔다.

신석기시대의 신락유적 2호집자리를 보면 기둥구멍이 긴 두 벽선쪽으로 치우쳐 각각 두줄로 배렬되여있었다. 이러한 기둥구멍의 배렬상태는 기둥우에 서까래를 받치는 도리가 설치되였다는것을 보여주며 이에 기초하여 량면경사지붕을 가진 살림집이 지어졌다는것을 알수 있게 한다. 다시말하여 장방형의 움집은 움깊이도 얕았던것만큼 벽체를 형상한 기둥들우에 도리나 보를 올려놓고 보우에 대공을 세워 룡마루를 놓은 다음 룡마루와 베개도리우에 서까래를 걸어 서까래끝이 땅에서 분리된 집이였던것이다.

이와 같이 신석기시대 사람들은 움집의 불합리성을 극복해나가는 과정에 량면경사지붕을 한 움집을 기본으로 하면서 벽체가 땅우로 드러나고 지붕이 땅에서 분리되여 독자적인 지붕형식을 갖춘 집을 짓고 생활하기 시작하였으며 이것은 곧 배지붕형식의 지붕이 발생할수 있는 전제조건을 지어주었다.

이 과정에 당시 사람들은 움집을 보다 견고하면서도 지상살림집에 가까운 집으로 발전시켜 점차 룡마루식배지붕을 살림집의 기본지붕형식으로 하였던것이다.

대표적으로 신석기시대 방형집자리인 범의구석유적 9호집자리를 보면 기둥구멍이 가로세로 4줄로 뚫려져있으며 바닥복판에는 동쪽으로 약간 치우쳐 강돌로 만든 화독시설이 있다.

이 집자리의 기둥배렬상태를 보면 벽선을 따라 세워놓았던 기둥우에 도리를 올려놓고 움바닥 화독둘레의 4개 기둥우에는 중도리를 놓을수 있게 만든 다음 도리와 중도리우에 서까래를 걸어 지붕을 만들었다고 할수 있다. 그러므로 이 집의 생김새는 도리에 의하여 지붕과 벽체가 분리되였을뿐아니라 량면 또는 4면경사지붕을 한 움집이였다고 할수 있다.

량면경사의 배지붕형식은 금탄리유적 3호, 11호집자리와 신흥동유적의 2호집자리에서도 찾아볼수 있다.

신석기시대유적인 평양시 사동구역 금탄리유적 3호집자리를 보면 방안의 중심선상좌우끝에 직경이 30㎝되는 큰 구멍이 각각 한개씩 있었다. 여기에서 방안의 중심선상에 세운 높은 기둥우에 룡마루를 올려 고정시키고 벽가에 촘촘히 세운 기둥들에 베개도리를 올려 고정시킨 다음 서까래를 경사지게 올리면 룡마루좌우에 량면으로 된 경사지붕을 복원할수 있다. 그리고 신석기시대의 많은 집자리들에는 집변두리를 따라 작은 기둥자리들이 남아있는것이 대부분이다.

이것은 기둥우에 베개도리를 한 다음 그에 의지하여 들보를 얹고 대공을 세워 룡마루식배지붕이 형성되게 하였다는것을 보여준다.

금탄리유적 11호집자리는 장방형의 평면테두리로 되여있으며 방바닥의 넓이도 비교적 크고 움도 깊다.

방바닥에는 크고작은 여러개의 구멍들이 뚫려있으나 기둥구멍으로 인정되는것은 다만 동서 두 벽가에만 있는것들이다.

그러므로 이 집의 지붕도 량면경사를 이룬 배지붕이였다고 볼수 있다.

신흥동유적의 2호집자리는 남북의 길이가 약 12m되는 좁고 긴 움바닥중심선상에 기둥이 없었으므로 이것은 들보에 대공을 써서 룡마루를 올린것으로 보인다.(《조선민족살림집풍습》 과학백과사전출판사 주체96(2007)년 66페지)

또한 고대의 심귀리유적 2호집자리에서는 서로 좌우벽에 병행되게 주추돌이 마주 놓여있었다.

주추돌이 대칭적인 위치에 마주 놓여있는것은 기둥들이 옆으로 혹은 안으로 기울여지는것을 막기 위하여 거기에 세운 기둥에 베개도리와 들보를 올렸다는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들보를 받들어주는 사이기둥이 따로없이 들보우에 세운 대공만으로도 룡마루를 받치였다는것을 의미한다. 즉 이 시기 살림집지붕은 방안에 2개의 기둥을 세우고 룡마루를 올리거나 들보우에 세운 대공으로 룡마루를 받친 량면경사지붕이였다고 할수 있다.

배지붕이 살림집의 기본지붕형식으로 되면서 살림집의 구조는 짧은 통나무나 가는 나무가지를 리용하여 원추형집을 짓는것과는 달리 곧고 굵은 긴 통나무를 리용하여 도리와 룡마루 등의 수평재를 갖춘 집으로 평면구조가 원형으로부터 방형이나 장방형으로 된 집으로 변화되였으며 당시 사람들은 그에 맞는 기둥보식의 골조결합을 한 살림집을 짓고 생활하였다.

이러한 살림집에서 배지붕형식은 그후 사회가 발전하고 살림집이 움집으로부터 지상살림집으로 변천되여가면서 점차 벽체와 분리된 자기의 독자적인 형태를 갖추기 시작하였다.

이렇게 원시, 고대 우리 선조들은 움집을 보다 편리한 생활거처지로 발전시키기 위한 창조적인 활동과정에 살림집의 지붕을 벽체와 분리시키고 지붕을 떠받들수 있는 힘받이요소와 지붕을 결합시킬수 있는 조립골조를 갖춘 살림집에 룡마루식배지붕을 할수 있는 량면경사지붕을 창조하고 그것을 기본지붕형식으로 하여왔다.

벽체와 분리된 배지붕은 살림집을 보호하는것과 함께 살림집의 외부구조에서 눈에 띄우게 나타나는 웃부분에 위치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살림집전반을 보기 좋게 하는데서 매우 중요시되였다.

그리하여 삼국시기 사람들은 살림집지붕을 실용성과 함께 장식적의의가 있게 여러가지 부재형식이 갖추어진 지붕으로 만들기 시작하였다.

삼국시기 고구려무덤벽화들에서 보이는 배지붕은 바로 이러한 원시, 고대살림집의 배지붕형식과 그것을 계승발전시킨 모습을 잘 나타내고있다.

삼국시기 사람들은 앞선 시기의 배지붕형식을 계승하면서도 지붕장식을 강조하였으며 그것을 살림집은 물론 경리시설에까지 적용하였다.

삼국시기 계승발전된 배지붕을 보면 도리 또는 기둥우에 덧서까래나 주두를 설치하여 처마가 들리우게 하는것과 함께 룡마루의 량끝에 기와를 덧쌓아 휘임을 조성한것이였다.

이와 같은 형식은 지붕의 내림마루와 서로 어울려 지붕전반을 경쾌한 모습으로 보이게 하였으며 살림집의 채광을 보장하는데서도 실용적이였다.

고구려무덤들인 쌍기둥무덤, 통구2호무덤의 벽화에 보이는 살림집지붕과 고국원왕릉벽화의 부엌지붕형식은 량면경사의 배지붕이면서도 지붕마루가 부드럽게 릉을 이루고있으며 지붕룡마루와 박공마루끝에 치미를 설치하여 장식적효과도 나타내고있는 모습을 보이고있다.

삼국시기 실용성과 장식성을 겸한 배지붕이 살림집지붕으로 일반화된것은 그것이 우진각지붕이나 합각지붕보다 구조가 간결하고 살림집들에 쉽게 적용할수 있는 지붕형식이였던것과 관련된다.

발해 및 후기신라시기에도 배지붕은 앞선 시기의 배지붕형식을 계승하면서 살림집의 지붕형식으로 되여왔다.

발해시기의 금호지구 오매리절골유적 금산 1호건물터를 보면 장방향평면에 6개의 주추돌이 동서로 규모있게 놓여있다.

이 건물의 지붕형태를 복원하여 본다면 기둥우에 베개도리를 놓고 대들보우에 대공을 세워 룡마루를 설치한 배지붕을 련상케 한다. 그리고 이러한 주추돌배렬상태에서 가장 합리적인 지붕형식은 배지붕이며 발해시기 두줄로 규모있게 배렬된 주추돌자리에는 배지붕을 한 집들이 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고려시기 살림집의 배지붕은 현재 남아있는 황해북도 사리원시 성불사의 극락전과 청풍루의 지붕형식에서 잘 찾아볼수 있으며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배지붕은 우리 나라의 중서부지역들의 옛 살림집지붕형식들에서 그 면모를 찾아볼수 있다.

조선봉건왕조시기에도 배지붕은 형식이 아담하고 간소한것으로 하여 많은 살림집의 지붕형식으로 되여있었으며 그밖의 경리시설, 일각대문의 지붕형식으로도 되여있었다.

조선식살림집의 배지붕특징을 보면 우진각지붕이나 합각지붕과 같이 지붕면이 옆에 설치되지는 않았으나 룡마루끝에 휘임을 조성하면서도 량옆에 박공판을 대여 비바람으로부터 살림집을 잘 보호할수 있게 한것이다.

산자벽을 한 살림집에서는 눈과 비, 바람으로부터 산자벽보호를 위해 지붕처마를 밖으로 길게 돌출시키게 되며 이로부터 오는 채광과 통풍의 부족점을 해결하기 위해 지붕처마를 들어주는 부재들이 첨부되게 된다.

이로부터 배지붕은 단순한 량면경사지붕이 아니라 처마밖으로 길게 나온 지붕서까래를 들어주는 두공부연이 첨부되고 룡마루에 휘임이 조성된 독특한 형식의 지붕면모를 갖추게 되는것이다.

배지붕의 이러한 특징은 살림집의 벽체형성이 다른 민족의 건물벽체형성에 리용된 벽돌이나 돌, 통나무가 아니라 우리 나라의 실정에 맞게 기둥과 기둥사이에 인방을 대고 산자를 엮어 벽체를 형성한 산자벽이였던것과 관련된다.

배지붕은 경사면에 있어서도 다른 민족의 급경사로 된 량면지붕이나 평지붕이 아니라 유순한 물매선을 가지고있으며 지붕의 룡마루선과 처마선의 부드러운 곡선에 의해 조형적으로 잘 형상되여있었다.

이렇게 배지붕은 우리 인민들의 창조적인 지혜와 재능에 의하여 살림집의 지붕형식을 갖추기 시작한 초기부터 민족살림집의 특징을 나타내는 한 부분으로 되여왔으며 조선식살림집의 뚜렷한 모습을 보여주는 지붕형식으로 널리 적용되였다.

김일성종합대학 박사 부교수 조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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