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혁명가들의 결정적역할에 의한 국제련합군편성과 력사적의의 2)

 

2. 2. 국제련합군편성에서 논 조선혁명가들의 역할

 

1940년대 전반기 조, 중, 쏘 세 나라 무장력의 련합을 실현하는데서는 여러가지 난문제들이 제기되였다.

조선의 혁명가들은 조, 중, 쏘 세 나라 무장력의 련합을 실현하는데서 제기되는 난관을 타개하고 국제련합군을 편성하는데서 결정적역할을 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1942년 7월에 우리는 쏘련, 중국의 동지들과 함께 국제련합군을 편성하고 조선혁명의 주체적력량을 백방으로 강화해나가면서 국제반제력량과의 공동투쟁을 통하여 일제의 격멸과 제2차 세계대전의 승리에 기여하였습니다.》

 

조선의 혁명가들은 무엇보다도 세 나라 무장력의 련합을 실현하는 문제를 매개 나라 무장력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를 발양하여 공동의 리익에 맞게 풀어나가도록 하였다.

1940년 12월부터 1941년 3월 중순까지 하바롭스크에서는 조, 중, 쏘 세 나라 군사지휘관들의 회의가 진행되였다. 회의에서 론의된 중심의제는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의 장래활동방향에 관한 문제였다. 결국 조선과 동북에서의 유격투쟁과 쏘련군대와의 호상관계를 어떻게 맺으며 그것을 새로운 정세의 요구에 맞게 어떻게 적응시키고 강화발전시켜나가겠는가 하는것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바롭스크회의에 참석하시였다.

당시 제1로군 군장 양정우는 희생되였고 1로군 정치위원이며 남만성위 서기인 위증민은 병중에 있었다. 그리고 방면군군장들인 조아범, 진한장 등은 모두 전사한 상태였다.

이런 조건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안길, 서철과 함께 조선인민혁명군을 대표하시였을뿐아니라 중국공산당 남만성위와 동북항일련군 제1로군도 동시에 대표하시였다.

1941년 9월 15일 왕신림에게 보낸 서한에서 주보중은 《김일성 남만 제1로군에서 현재 유일하게 중요한 간부이다. 양정우, 위증민 두 동지가 희생된 이후 오직 김일성 남만유격운동의 령도와 남만전체와 관련된 문제들을 계속 책임지고있다.》고 썼다.

회의에는 동북항일련군 제2로군을 대표하여 주보중, 최용건, 제3로군을 대표하여 장수전, 김책 등과 쏘련원동군 대표, 국제당대표도 참가하였다.

하바롭스크회의가 열릴 당시 국제당대표는 쏘련원동군 정보부장 류쉔꼬였고 그의 가명은 왕신림이였다.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 부대들이 쏘련경내에 들어가 활동하던 시기 국제당과 쏘련당, 쏘련원동군을 대표한 인물은 자기를 왕신림으로 행명하였다. 하바롭스크회의가 마감고비에 이르렀을 때 쏘련원동군의 쏘르낀장령이 류쉔꼬가 맡아하던 임무를 넘겨받았는데 그도 역시 왕신림이라는 이름으로 행명하였다.

하바롭스크회의에서 쏘련측은 련합한 파쑈들과의 싸움에서 공동투쟁을 강화하기 위하여 동북항일련군이 독자성을 포기하고 쏘련원동군과 통합할데 대한 제안을 내놓았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 중, 쏘 무장력의 단결과 협조를 실현하는 문제를 공정하고 정당하게 풀어나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국제당과 쏘련원동군의 대표들이 혁명투쟁에서 자주성은 생명이라는 옳은 인식을 가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제당이나 쏘련군부측의 의도를 충분히 리해할 만 하지만 조선혁명이나 동북혁명을 위하여 피를 흘려 싸워왔으며 앞으로도 싸워야 할 우리들에게 독자성을 포기하고 쏘련군대에 통합되라는 제의에는 심중한 문제가 있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개 나라 혁명은 그 나라 혁명가들과 인민이 자기 나라 실정에 맞게 자기의 힘으로 수행하는것이다, 그러므로 혁명투쟁에서 자주성, 독자성이 없이 남을 쳐다보면서 남의 덕으로 혁명이 승리할 때를 기다린다는것은 말도 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쏘련인민은 자기 나라의 실정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자기 머리로 생각해낸 옳바른 전략전술을 세우고 전체 인민을 불러일으켜 혁명에서 승리하였다, 이것은 혁명수행에서 자주성과 독자성이 얼마나 중요한것인가를 말해주는 하나의 실례이라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리하여 국제당과 쏘련군부측의 대표들은 자주성, 독자성문제는 혁명의 원리로 보나 력사적경험으로 보나 혁명의 생명선이며 승패를 좌우하는 근본열쇠이라는것을 깨닫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조, 중, 쏘 무장력의 단결과 협조를 실현하기 위한 원칙적립장에 대해서도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쏘련측이 승리한 나라의 혁명을 보위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승리하지 못한 나라의 혁명을 추진시키는것도 그만 못지 않게 중요하다는데 대하여 옳은 인식을 가지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 그리고 쏘련원동군과의 공동투쟁의 형식과 방법은 쏘련에도 도움이 되고 조선혁명이나 중국혁명의 리익에도 다같이 맞아야 한다고 강조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천명하신 원칙적립장은 국제당과 세 나라 지휘관들의 지지를 받았으며 조, 중, 쏘 세 나라 혁명적무장력사이의 단결과 협조를 실현하는데서 커다란 작용을 하였다.

이처럼 조선혁명가들의 결정적역할에 의하여 하바롭스크회의에서는 조성된 긴박한 국제정세에 대처하여 조, 중, 쏘 세 나라의 무장력을 각기 독자성을 인정하는 조건에서 통합할데 대하여 의견일치를 보게 되였다.

 

조선의 혁명가들은 다음으로 동북지방에서 무장부대들의 유격활동방식을 옳게 확정해나가도록 하였다.

하바롭스크회의에서 론의된 중요한 문제의 하나는 동북지방에서의 무장부대들의 유격활동방식에 관한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선 금후 유격활동방식문제와 관련하여 력량보존에 중점을 두고 소부대활동을 벌릴데 대한 전략적방침이 새로운 정세의 요구에 부합되는 정당한 방침이라는데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대부대활동을 고집하는 동북항일련군의 지휘관들에게 정세가 근본적으로 달라졌다고 하시며 혁명의 오늘뿐아니라 래일을 위해서도 력량보존문제를 소홀히 해서는 안된다고 가르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를 패망시키고 조국을 해방하자면 조선인민혁명군도, 동북항일련군도 력량을 보존하고 확대해나가야 한다, 소부대활동을 하게 되면 전민항쟁을 위한 조직건설도 활발히 벌릴수 있고 식량도 쉽게 구할수 있다, 그리고 활동을 하기에도 편리하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러시면서 우리가 지난해 여름부터 소부대활동을 해보았는데 결과가 대단히 좋았다고, 해볼만 한 일이라고, 대부대활동은 필요한 때 벌려도 된다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또한 쏘련군측과 동북항일련군의 지휘관들이 소부대활동의 투쟁방식과 내용에 대한 옳은 리해를 가지도록 하시였다.

당시 국제당이나 쏘련군측에서는 동북에서의 유격활동이 일제에게 쏘련침략의 구실을 줄수 있다는 위구로부터 소규모의 활동을 제기했지만 구체적인 활동방식, 내용에 대해서는 별로 준비된 안을 내놓지 못하고있었다.

항일련군의 지휘관들 역시 지난 시기 대부대활동과 소부대활동을 배합하는 의미에서의 소부대활동에 대해서는 리해하고있었지만 전략적으로 새로운 투쟁단계를 의미하는 소부대활동의 형식과 내용에 대해서는 들은적도 없고 경험도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소부대활동이라는것은 단순하게 소규모의 전투행동만을 하자는것이 아니라 인민대중이 있는 모든 곳에 혁명조직망을 펴고 그들을 하나의 정치적력량으로 묶어세우며 적을 최대한 고립시키기 위한 투쟁이라고 하시면서 그러므로 수많은 소부대, 소조를 무어가지고 인민대중속에 깊이 들어가 군중정치사업, 조직건설사업을 적극 벌려 인민의 보다 뜨거운 지지성원을 받으면서 혁명투쟁전반을 계속 고조에로 이끌자는것이 소부대활동의 투쟁방식이며 내용이라고 볼수 있다고 가르치시였다.

쏘련군측과 항일련군측이 소부대활동을 벌릴데 대한 전략적방침의 정당성과 소부대활동의 투쟁방식과 내용에 대한 옳은 리해를 가지게 됨으로써 하바롭스크회의에서는 앞으로의 활동에서 기본을 소부대활동, 군중공작, 조직건설, 실력배양에 둘데 대한 합의가 이룩될수 있었다.

그리하여 그후 시기의 소부대활동에는 동북항일련군 부대들도 참가하게 되였다.

 

조선의 혁명가들은 다음으로 조, 중, 쏘 세 나라 무장력의 가장 리상적인 련합형태에 관한 구상을 내놓고 국제련합군편성을 위한 사업을 적극적으로 추진해나가도록 하였다. 

조, 중, 쏘 세 나라 무장력의 협동을 어떤 형태로 실현시키는가 하는것은 매개 나라의 민족적리익과 세 나라 혁명의 공동의 리익에 맞게 조선과 중국, 쏘련의 혁명가들자신이 스스로 결정해야 할 문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하바롭스크회의이후 조, 중, 쏘 세 나라 혁명적무장력이 서로 지지협조하면서 진행한 소부대활동과 정찰활동, 집중적인 군정훈련에서 이룩된 성과와 경험을 연구하시면서 세 나라 무장력의 리상적인 련합형태를 국제련합군으로 보시였다.

국제련합군형태는 세 나라 무장력이 하나의 군사체계로 련합하되 매개 나라 무장력의 독자성을 유지하면서 일제를 괴멸시키기 위한 공동작전, 공동행동을 성과적으로 전개해나갈수 있게 하는 리상적인 련합형태였다.

이 련합형태는 매개 나라 혁명과 혁명군대의 독자성을 존중하는 기초우에서 세 나라 혁명무력이 공동투쟁을 잘해나갈수 있게 하는 과학적이며 독창적인 련합무력형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1(1942)년 봄 쏘련의 고위군사관계자들을 만나시여 국제련합군편성과 관련한 전략적구상을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자력독립은 우리가 시종일관하게 견지하고있는 원칙이지만 그것은 국제적협조나 국제혁명력량과의 련합을 배제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국제적으로 다른 나라의 도움을 받거나 다른 나라의 혁명력량과 련합하여 투쟁하는것은 사대주의가 아니라고 명확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전략적구상은 중국과 쏘련측의 정치군사적요구와 일치되였으며 이것은 쏘련군사당국과 국제당에 그대로 전달되여 시급한 현안문제로 제기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국제련합군편성구상을 실현하기 위하여 조중 두 나라 혁명적무장력의 지휘관들, 국제당 및 쏘련군사당국과 진지하게 협의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원동의 림시기지에서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인 안길동지와 동북항일련군안의 조선인지휘관들인 김책, 최용건, 강건동지들과 협의를 하시고 그후 주보중, 장수전 등 동북항일련군 제2, 3로군 지휘관들과도 협의하시였다.

그들은 세 나라 무장력의 련합은 성숙된 요구이라고 하면서 적극 지지하였다. 국제당과 쏘련의 군사당국도 위대한 수령님의 구상을 환영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31(1942)년 7월 중순 동북항일련군과 쏘련원동군의 군사간부들과 함께 조, 중, 쏘 세 나라 무장력의 련합문제를 최종적으로 토의하시였다.

세 나라 군사간부들은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의 독자성을 그대로 유지한다는 전제하에 국제련합군을 편성할데 대하여 결정하였다. 

1942년 8월 1일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련군, 쏘련원동군 대표들의 합의에 따라 원동기지에서는 국제련합군의 편성이 선포되였다.

조, 중, 쏘 세 나라 혁명군대의 련합무력인 국제련합군은 형식상 쏘련원동군 독립88려단(대외번호 8461보병특별려단)으로 불리우는 특수부대로 조직되였다.

국제련합군은 자기의 존재와 활동의 비밀을 보장하며 위장을 철저히 하기 위하여 축소하여 편성하는 원칙을 세워 려단규모로 조직되였으며 군사관등급도 적들의 첩보암해활동으로부터 군사정치간부들의 신변을 보호할 목적으로 실제보다 낮게 정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기본집단은 제1지대로 편성되였다. 제1지대는 그 내용으로 볼 때 국제련합군의 조선지대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제1지대의 지휘를 맡으시였다.

국제련합군이 편성되던 시기에 모든 부대들이 북야영에 집결하였다. 남야영에 있던 조선인민혁명군 부대도 북야영에로 이동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의 일부 성원들은 쏘련원동군의 요청에 따라 쏘련군 정찰부대에 파견되는 국제련합군의 별동대에 망라되여 활동하였다.

이처럼 국제련합군의 조직과 그 강화발전을 위해 기울인 조선혁명가들의 고심어린 노력은 혁명투쟁에서 매개 나라의 자주성, 독자성과 국제적인 단결과 협조의 두개 원칙을 옳게 결합시킨 모범으로 되였다. 

김일성종합대학 부교수 안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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