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동강류역에서 새로 알려진 동암동유적의 성격​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우리 나라 력사에서 아직도 과학적으로 해명하여야 할 문제들이 많습니다. 례를 들면 우리 나라에서 사람이 언제부터 독자적인 문화를 창조하면서 살았는가 하는것을 완전히 해명하여야 합니다.》

고고학연구의 중요한 목적은 발굴된 유적과 유물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켜 당시 사람들이 어떠한 문화를 어떻게 창조하면서 살아왔는가 하는것을 해명하는데 있다. 따라서 유적유물에 대한 분석과 종합을 잘하여 옳은 결론을 내리는것은 당시 사회경제형편과 문화발전정도를 해명하는 매우 중요한 사업으로 된다.

우리 나라의 대동강류역에 자리잡고있는 순천시 동암동에서 구석기시대유적에 대한 발굴을 진행하고 수십여점의 석기와 골기, 수천여점의 짐승뼈화석과 포분화석들을 찾아내고 발굴된 유적과 유물들에 대한 고고학과 년대측정학, 고지리학, 고생물학 등의 연구를 심화시켜 유적의 면모를 보다 정확히 밝히였다.

이 글에서는 연구된 자료들에 기초하여 동암동유적이 어느 시기에 어떤 사람들이 남겨놓은 유적인가 하는것을 구체적으로 밝혀보려고 한다.

 

연구된 자료들은 무엇보다먼저 동암동유적이 구석기시대전기유적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주고있다.

유적의 년대를 과학적으로 해명하기 위하여 여러가지 상대년대와 절대년대결정을 진행하였다.

우선 유적에서 발견된 고생물화석들을 놓고 유적의 상대년대를 결정하였다.

유적에서는 큰해리, 큰쌍코뿔이, 큰곰, 큰뿔사슴과 같은 이미 사멸해버린 짐승뼈화석들과 제3기부터 번성하면서 살아온 윤노리나무, 늪삼나무, 고사리, 고란초 등과 같은 포분식물화석들이 수많이 발견되였다. 이에 따라 동암동유적의 동물상은 여기에 포함된 사멸종들의 비률에 의하여 지질학적으로 제4기 하갱신세 상부~중갱신세 하부에 해당되며 동암동유적의 포분식물상도 기온지수에 따르는 년대결정결과 균쯔~민델간빙기(제4기 하갱신세 상부~중갱신세 하부)에 해당된다는것이 밝혀졌다.

 

제4기 하갱신세 상부는 180만~78만년전에 해당되며 중갱신세 하부는 78만~60만년전에 해당된다. 이것은 유적에서 나온 고생물화석들이 180만년전부터 60만년전사이에 묻혔다는것을 보여준다. 이 년대는 고고학적으로 볼 때 구석기시대전기(100만년이전~30만년전)에 해당된다. (《제4기과학》(영국)윌리국제과학출판사 2010년 99페지)

 

동암동유적이 구석기시대전기유적이라는것은 또한 이 유적에 대한 여러가지 절대년대측정결과들을 보고 알수 있다.

유적의 년대를 보다 정확히 확증하기 위하여 열형광년대측정과 전자스핀공명년대측정을 진행하였다.

 

열형광년대측정법으로는 동암동유적의 5층(2문화층)에서 나온 방해석을 시료로 하여 진행하였는데 그 결과 이 층의 년대가 74±8만년전이라는 값이 나왔다. 전자스핀공명년대측정법으로는 동암동유적의 4층(1문화층)과 5층(2문화층)에서 나온 말이발화석과 서우이발화석을 시료로 하여 측정하였다. 결과 4층에서 나온 말이발화석의 년대는 88.1만년전이였고 5층의 서우이발화석의 년대는 70.4만년전이였다. (《전국력사학부문 과학토론회론문집》김일성종합대학출판사 주체106(2017)년 86~88, 93~96페지)

 

이상의 절대년대측정값들은 동암동유적의 5층은 70만년이전에, 4층은 88.1만년전에 형성된 지층이라는것을 확증해주는 동시에 이 유적이 구석기시대전기유적이라는것을 정확히 보여주고있다.

이것은 고생물화석에 의한 지질년대와도 잘 비교된다.

이렇게 동암동유적은 년대가 지금으로부터 88만~70만년전에 해당되는 구석기시대전기의 유적이다.

 

연구된 자료들은 다음으로 동암동유적이 짐승사냥과 식물채집을 기본생업으로 한 사람들이 남겨놓은 유적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동암동유적은 발견당시 동굴로서의 형체를 전혀 알수 없을 정도로 심히 풍화되여 파괴된 상태에 있었다. 결과 동굴안에 있었던 많은 퇴적층도 함께 류실된 상태였다.

 

연구결과에 의하면 현재 이 유적에서 발견된 퇴적층은 동굴이 현존하고있을 당시의 퇴적층가운데서 불과 10%도 안되는 매우 적은 량으로 추산되고있다. 이렇게 적은 퇴적층이지만 여기서는 적지 않은 로동도구들과 많은 고생물화석들이 발견되였다. 이 유물들은 유적을 남긴 사람들이 당시 어떤 생활을 하였겠는가 하는것을 비교적 정확히 알수 있게 한다.

 

동암동유적은 짐승사냥과 식물채집을 기본생업으로 한 사람들이 남겨놓은 유적이다.

동암동유적이 짐승사냥과 식물채집을 기본생업으로 한 사람들이 남겨놓은 유적이라고 하는것은 우선 이 유적에서 짐승사냥을 하였다는것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많이 발견된것을 놓고 잘 알수 있다.

 

유적에서는 14점의 석기와 8점의 골기들을 비롯한 여러 종류의 로동도구들이 발견되였는데 여기에는 짐승을 타격하거나 각을 뜨는데 리용된 주먹도끼, 찍개, 자르개 등의 사냥용도구들이 전체 석기점수의 72%에 달하는 11점이나 있다. 또한 유적에서 나온 골기들가운데는 당시 짐승을 찌르거나 자르는데 리용된것으로 보아지는 예리한 끝을 가진 찌르개형골기 2점과 자르개형골기 2점이 발견되였다. 이렇게 짐승사냥이나 그 가공에 리용된 도구들이 많은 비중을 차지하는것은 당시 사람들이 짐승사냥을 많이 하였다는것을 알수 있게 한다.

 

한편 유적에서는 105마리분에 해당되는 5 000여점의 짐승뼈화석들이 발견되였다. 마리수로 볼 때 작은 규모의 퇴적층에서 이렇게 많은 짐승들의 뼈화석이 발견되였다는것은 당시 사람들이 결코 우연적으로 생긴 짐승들을 가져다 먹었다고 볼수 없다.

유적에서는 대체로 큰쌍코뿔이, 물소, 넙적큰뿔사슴, 누렁이 등 큰 짐승들의 마리수가 많은 비중을 차지한다. 이러한 짐승들은 한두명의 인원으로는 사냥할수 없으며 많은 사람들이 협력을 잘할 때에만 이루어질수 있다. 이것은 당시 사람들이 짐승의 고기를 식생활에 많이 리용하였으며 동시에 짐승사냥을 주되는 생업활동의 하나로 여기고 생활하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동암동유적이 짐승사냥과 식물채집을 기본생업으로 한 사람들이 남겨놓은 유적이라고 하는것은 또한 이 유적에서 식물채집을 많이 하였다는것을 보여주는 유물들이 적지 않게 발견된것을 놓고서도 잘 알수 있다.

 

유적에서는 식물채집에 리용된 도구들도 발견되였다. 골기들가운데는 뚜지개형골기가 4점이나 발견되였는데 이것들은 식물의 뿌리를 뚜지는데 매우 적합하게 만들어졌으며 날끝들은 사용과정에 너무 닳아 반들반들하다.

 

한편 포분화석에는 고사리, 고비, 벼, 콩, 능쟁이, 질경이(길짱구), 가래, 밤, 도토리 등 사람들이 식용으로 리용할수 있는 많은 종류의 열매식물과 풀류식물들이 포함되여있다.

당시 조건에서 짐승이 아무리 많고 잡기 쉬웠다고 해도 짐승의 고기 하나만으로는 식생활을 유지할수 없었다. 그것은 집단의 인원수가 많은 조건에서 한개 집단의 식량을 전부 고기로 보장한다는것은 어려운 일이였으며 사람이 신체상 식물성음식재료에 포함되여있는 영향성분을 중요하게 요구하고있기때문이다.

그러므로 당시 사람들은 짐승사냥에 못지 않게 식물채집도 많이 하였던것이다. 포분화석과 당시의 환경조건, 사람의 생리적요구 등은 사람들이 식물채집도 많이 하였다는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이처럼 동암동유적은 짐승사냥과 식물채집을 기본생업으로 한 사람들이 남겨놓은 유적이다.

연구된 자료들은 또한 동암동유적이 매우 오래전에 사멸된 동굴유적으로서 당시 사람들이 비교적 오래동안 거처지로 리용한 유적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동암동유적은 사람들이 살던 당시 벽체부분과 천정이 다 있었던 살아있는 자연동굴이였으나 오늘 현재는 그 형체가 사멸되여 보이지 않는 동굴유적이다.

고결퇴적물은 석회암으로 이루어진 자연동굴속에서만 생겨나는 퇴적물이다. 이러한 고결퇴적물이 이 유적의 퇴적층에서 발견되였다는것은 이 유적이 사람들이 살던 당시에는 자연동굴이였다는것을 보여준다.

한편 유물이 나온 구역을 분석해보면 평면상으로 볼 때 ㄱ자모양의 퇴적구역에서만 유물들이 알려지고 다른 구역들에서는 유물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다.

만일 이 유적이 동굴유적이 아니고 로천유적이였다면 유물이 나오는 구역이 이렇게 ㄱ자모양을 가지지 말아야 한다. 다시말하여 유물출토구역이 원형이나 방형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이 유적의 유물출토구역은 그 어떤 곬을 따라가듯이 서쪽에서 동쪽으로 직선으로 나가다가 다시 방향을 바꾸어 남쪽으로 향한 ㄱ자모양을 이룬다. 이것은 유적이 형성당시에 자연적인 요인에 의하여 유물분포구역과 그밖의 구역으로 경계되여있었기때문이라고 분석할수 있으며 그 원인이 다름아닌 자연동굴의 벽체에 의한것이라는 결론을 가지게 한다. 이러한 분석결과들은 이 유적이 당시에 자연동굴이였다는것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동암동유적은 유적형성당시 사람들이 거처하면서 비교적 편안하게 살수 있게 천정과 벽체부분이 다 형성되여있었던 동굴유적이다.

동암동유적은 당시 사람들이 비교적 오래동안 거처지로 리용한 유적이다.

동암동유적에서는 많은 짐승뼈화석들이 발견되였는데 발견된 짐승들의 종류를 보면 대부분이 풀을 뜯어먹고 사는 큰 짐승들이다. 여기서 큰쌍코뿔이와 같은 짐승은 무게가 거의 1t이나 되는 매우 큰 동물이다.

그런데 이렇게 작은 규모의 퇴적층속에 105마리분에 해당한 그처럼 큰 짐승뼈화석들이 많이 묻혀있다는것은 당시 사람들이 잠간 거처하면서 남겨놓은 유적이 아니라 일정한 기간 거처하면서 생활하는 과정에 남겨놓은 유적이라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이상의 모든 연구자료들은 동암동유적이 구석기시대전기에 짐승사냥과 식물채집을 기본생업으로 하는 사람들이 거처지로 리용하면서 남겨놓은 동굴유적이라는것을 뚜렷이 보여준다.

김일성종합대학 리재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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