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사회경제적성격을 옳게 해명할수 있는 지침을 마련해주신 불멸의 업적​

고구려는 지난날 우리 나라 력사에서 제일 강대한 나라였다. 고구려는 삼국시기에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서 중심적인 역할을 놀았을뿐아니라 그 이후 력사발전에 큰 영향을 준 나라였다.

그러나 지난 시기 대국주의사가들과 사대주의사가들에 의하여 우리 나라 력사 특히 고구려를 중심으로 삼국시기가 력사적사실과 맞지 않게 심히 외곡되여 꾸며지고있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김일성종합대학에서 혁명활동을 벌리시면서 우리 나라 력사를 전면적으로 검토하여보고 조선력사서술에서 고구려중심의 력사서술체계를 세우도록 하시였으며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에 대한 문제를 옳게 해명하기 위한 원칙과 방도들도 환히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에 대한 문제를 옳게 해명하기 위하여서는 그 문제를 주체적립장에서 풀어나가야 합니다.》

고구려의 사회경제적성격에 관한 문제는 고구려를 봉건국가로 보는가 아니면 노예소유자국가로 보는가 하는 문제인것으로 하여 해방후부터 력사학계에서 연구가 진행되였지만 의견일치를 보지 못하고있었다.

 

생산력발전수준을 력사발전의 각이한 단계의 사회경제적성격을 해명하는 출발점으로 삼던 기성리론에 맞추다보니 삼국시기를 노예사회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은 삼국시기 우리 나라의 생산력발전수준이 봉건제도에 맞으리만큼 높은 단계에 이르지 못하였다고 하면서 그것을 증명하려고 력사적사실을 외곡하는데까지 이르게 되였다. 어떤 사람들은 삼국시기에 철제농기구마저 빈약한 상태에 있었고 5세기말까지도 소로 밭을 가는 법조차 도입되지 못했다고 하고있었다.

 

이 문제를 둘러싸고 벌어지고있는 론쟁과 론조들의 심각성을 통찰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49(1960)년 10월 18일 김일성종합대학 학생들과 하신 담화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을 옳게 해명할데 대하여》에서 고구려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를 옳게 풀어나가기 위한 지침을 명시해주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구려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를 옳바로 풀어나가기 위하여 무엇보다도 해당 사회의 계급관계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옳게 해명하도록 하시였다.

 

해당 사회의 사회경제적성격을 밝히는데서 생산력발전문제는 중요한 대상의 하나로 된다. 그러나 그것을 절대화하거나 문제의 중심에 놓아서는 안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해당 사회의 사회경제적성격을 해명하는데서는 그 사회의 계급관계와 생산수단의 소유관계를 옳게 해명하는것이 중요하다고,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도 이런 각도에서 보아야 한다고 밝혀주시고 특히 고구려의 착취계급이였던 대가의 성격과 피착취계급이였던 하호의 처지에 대하여 깊이 파고들어 연구해볼 필요가 있다고 가르쳐주시였다.

 

대가의 성격에 관한 문제는 대가가 봉건지주였는가 아니면 노예소유자였는가 하는 문제이며 하호의 처지에 관한 문제는 하호가 노예였는가 아니면 빈민이였는가 하는 문제였다. 이 문제가 해명되면 고구려에서 국가정권을 장악하고있는 착취계급이 노예주계급이였는가 아니면 봉건지주계급이였는가 하는것이 명백해지고 피착취계급이 빈민이였는가 노예였는가 하는것이 갈라지게 된다. 결국 고구려가 봉건국가였는가 노예제국가였는가 하는것이 밝혀지게 되는것이다.

 

위대한 장군님의 가르치심을 받아안고 력사학자들이 연구를 심화시킨 결과 고구려의 착취계급인 대가는 바로 봉건대지주이며 하호는 봉건지주들의 땅을 소작하는 가난한 농민이라는것이 밝혀지게 되였다.

 

《삼국지》고구려전에는 《그 나라에서 대가들은 농사를 짓지 않는다. 앉아서 먹는자가 만명이나 되는데 하호들이 먼곳에서 쌀, 량식, 물고기, 소금 등을 져다가 그들에게 바친다.》라는 기록이 있다.( 《삼국지》권30위서 고구려전)

이 기록은 고구려에서의 대가와 하호 즉 그들사이의 착취계급관계를 반영하고있는 자료이다.

기록에서의 《대가》란 《큰집》이라는 뜻으로서 주로 관료, 귀족, 큰 부자집들을 가리키는것이며 《앉아서 먹는자》는 대가들과 함께 하층관리들, 상인, 고리대금업자들과 그밖의 물질적생산에 종사하지 않는자들이였다. 그런데 《앉아서 먹는자》의 기본은 대가이며 그들의 대부분이 대토지소유자였던것이다. 이들이 바로 농사도 짓지 않으면서 앉아서 하호들의 로동의 대가로 이루어진 생산물로 기생충적생활을 한자들이였다.

기록에서의 《하호》는 현지에서 지주의 땅을 경작하는 가난한 농민이였다. 다시말하여 자기 땅이 없어 지주의 땅을 경작하고 지대를 무는 소작인이였던것이다.

《한서》권24 상 식화지 안사고의 주에는 《하호는 자기 땅이 없어 부호, 귀족의 땅을 경작하여 10분의 5세를 지주에게 날라다준다.》라고 되여있다.

여기서 명백히 해야 할것은 하호들이 착취당하는 량식과 물고기, 소금 등이 모든 하호들이 일률적으로 략탈당하는 생산물이 아니라는것이다. 그것은 하호가 총체로서 착취당하는 항목을 렬거한것이다. 모든 하호들이 다 일률적으로 량식과 물고기, 소금을 바친것이 아니라 어떤 하호들은 쌀을, 어떤 하호들은 물고기나 소금 등 특산물을 공물로 착취당하였던것이다. 강이나 바다를 끼지 않은 산골의 하호들이 물고기와 소금을 공물로 바칠수 없었을것이며 산골하호는 또 다른 종류의 특산물을 바쳤을것이다.

 

지주적토지소유제도에서 하호들은 지주의 토지를 소작한 대가로 생산물의 거의 대부분을 지대형태로 착취당하였다.

이와 같이 고구려에서 대가와 하호와의 관계는 봉건지주와 농민과의 관계였으며 대가를 비롯한 지주계급은 생산수단인 토지를 장악하고 그를 통하여 하호를 비롯한 근로농민들에 대한 지대적착취를 감행하였던것이다. 이것은 고구려가 봉건국가였다는데 대한 증명으로 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고구려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를 옳바로 풀어나가기 위하여 다음으로 우리 나라 사회발전의 합법칙성과 력사발전의 구체적실정에 기초하여 해명하도록 하시였다.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과 관련된 종래의 주장을 종합하여보면 삼국이 원시사회에 뒤이어 형성된 노예사회라고 보는 견해와 노예사회를 뛰여넘어 원시사회로부터 봉건사회로 비약하였다고 보는 견해로 갈라볼수 있었다. 이 두 부류의 주장자들은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에 대하여 서로 다른 견해를 가지고있었지만 대체로 그 이전시기 우리 나라의 력사에 대해서는 원시사회라는 공통된 립장에 서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선 삼국 이전시기 력사연구에 더 깊은 주목을 돌려야 하며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를 반드시 그 이전시기 력사와 잘 결부시켜 통일적으로 검토해보도록 하시였다.

삼국 이전시기에 존재한 고조선과 부여, 진국의 력사를 어떻게 푸는가 하는데 따라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해명에서 큰 전환이 일어날수 있었다.

그런데 일부 사람들속에서는 대비연구를 한다고 하면서 사회경제적성격에 대한 문제를 사대주의, 교조주의적사고방식에 매달리는 현상이 나타나고있었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문제해명에서 사대주의, 교조주의적사고방식을 철저히 없애고 이 문제를 어디까지나 우리 나라 사회발전의 합법칙성과 력사발전의 구체적실정에 기초하여 해명하여야 한다고 하시면서 고조선의 범금8조를 비롯한 력사적자료들을 보면 고조선과 부여, 진국을 노예소유자국가로 보는것이 옳은것 같다고 가르쳐주시였다.

그리하여 력사학자들은 고조선과 부여, 진국의 력사에 대한 연구를 심화시키는 과정에 고조선과 부여, 진국에는 최고통치자인 국왕과 국왕의 통치를 실현하기 위하여 귀족민주주의합의기관과 중앙의 부문별행정장관직들이 설치되여있었고 지방통치체계가 정연하게 세워져있었다는것을 밝혔으며 나라에는 국가권력을 장악한 노예소유자계급과 노예를 비롯한 피지배계급간의 계급신분관계가 지배하고있었고 국가통치실현수단인 법이 있었다는것을 해명하게 되였다.

 

고조선과 부여, 진국이 노예제국가였다는것이 밝혀짐으로써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시기의 국가들이 봉건국가들이였다는것이 자명한 력사적사실로 증명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또한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을 옳게 밝히기 위하여서는 삼국시기의 력사를 자료가 명백한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의 력사와도 결부시켜 대비해보도록 하시였다.

고려나 조선봉건왕조가 봉건사회였다는것은 누구에게나 명백한것만큼 그것과 대비하여 공통점과 차이점을 밝혀내면 문제해결의 실머리를 쥘수 있다. 삼국시기의 계급관계는 고려, 조선봉건왕조시기와 별로 큰 차이가 없었다. 이것은 삼국이 봉건사회였다는것을 명백히 시사해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가르쳐주신대로 력사학자들은 삼국시기의 력사와 고려시기의 력사를 결부시켜 대비연구하였다.

 

고구려와 백제, 신라에서는 고려와 같이 봉건지주계급이 국가권력을 장악하고 노비를 비롯한 광범한 근로인민들을 봉건적으로 지배하고있었으며 봉건지주들은 많은 토지와 노비를 소유하고 농민들에 대한 지대적착취를 하였다는것과 특히 나라의 최고통치자인 왕은 최대의 지주였다는것이 력사사료로서 론증됨으로써 삼국이 봉건사회였으며 고구려는 봉건국가였다는것이 정확히 해명되게 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이밖에도 력사연구에서는 사료가 매우 중요하다고, 사료를 모르고서는 당대 사회의 구조와 성격, 발전정도를 옳게 리해할수 없다고 하시면서 우리 나라 력사와 관련된 사료들가운데는 당대의 집권자들과 반동사가들에 의하여 외곡되였거나 날조된것이 적지 않기때문에 우리 나라 력사와 관련한 참고서적들을 볼 때 반드시 주체적립장에서 비판적으로 보아야 한다는데 대하여 강조하시였다.

이처럼 고구려를 비롯한 삼국의 사회경제적성격에 대한 과학적인 해명은 위대한 장군님의 불면불휴의 정력적인 사색과 탐구의 고귀한 결실이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는 불멸의 주체사상을 구현하여 우리 민족의 현대력사를 찬연히 빛내주시였을뿐아니라 반만년의 민족사를 옳바로 정립해주시고 조선민족의 우수성을 세계에 떨쳐주신 민족의 어버이, 절세의 애국자, 대성인이시다.

김일성종합대학 김명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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