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근대개혁사상가들의 교육계몽실현방도에 관한 견해​

19세기말~20세기초 우리 민족앞에는 력사발전의 합법칙적요구로부터 출발하여 낡은 봉건사회를 뒤집어엎고 나라의 근대화를 실현하여야 할 과제가 제기되였다.

당시 애국적이며 진보적인 근대개혁사상가들은 나라의 근대화를 실현하는데서 국민의 지식계발, 계몽이 선차적이고 중요한 문제로 나선다고 보았다. 여기서도 특히 교육을 통한 지식계발, 계몽에 대하여 극구 강조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어느 시대, 어떤 민족을 막론하고 교육사업을 떠나서는 사회적진보도 민족적번영도 이룩할수 없다.》

교육사업은 사회적진보와 민족적번영을 이룩하게 하는 중요한 사업이다. 그것은 교육사업이 사람들을 보다 힘있는 사회적존재로 키우며 사회발전을 다그치기 위한 중요한 담보로 되기때문이다.

나라의 독립과 근대적발전을 지향한 근대개혁사상가들은 교육이 사회발전, 민족발전에서 차지하는 중요성으로부터 출발하여 교육계몽을 통한 사회개혁을 적극 주장하였으며 교육계몽과 관련한 가치있는 견해들을 제기하였다.

여기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는것이 바로 교육계몽의 실현방도에 관한 견해이다.

 

근대개혁사상가들은 교육계몽을 실현하기 위한 방도로써 우선 학교교육을 발전시킬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학교교육의 발전을 교육계몽의 중요한 방도로 내세운 그들의 견해는 인간의 지식이 발달되여가는 과정에서 학교교육이 가지는 중요성에 대한 일정한 인식에 기초하고있다.

 

그들은 《자식이 태여나면 부모가 이를 교육하여 그 지혜를 먼저 열고 나이가 점점 들어감에 따라 학교에 보내여 그 지식을 점점 성숙시키기때문에 학교를 세우는것이 선차이다. 》(《서유견문》제3편 <인민의 교육>)라고 하였다.

 

여기서 보는바와 같이 교육계몽을 주장한 근대개혁사상가들은 인간의 지혜발달의 첫걸음은 부모교육에 의하여 이루어지지만 지식을 체계적으로 전면적으로 성숙시키는것은 학교교육이라고 인정하였다.

인간의 지식형성에서 학교교육이 노는 중요한 역할을 강조한 근대개혁사상가들은 그로부터 출발하여 《교육은 개화의 근본이다. 애국의 마음과 부강의 방법이 다 학문으로부터 시작되니 오직 나라의 문명은 학교의 성쇠에 기인한다.》(《고종실록》권33 32년 9월 28일), 《널리 신식학교를 설립하여 사람들의 지식을 개발하는것이 급선무》(《김옥균》1964년 사회과학원출판사 569페지)라고 강력히 주장하였다.

학교교육을 《개화의 근본》으로 인정한 근대개혁사상가들은 학교교육을 실현하는데서 소학교, 중학교, 대학교의 교육단계를 설정하며 교원양성에 큰 힘을 넣을데 대하여 주장하였다.

학교교육을 발전시킬데 대한 근대개혁사상가들의 진보적인 사상의 영향하에 우리 나라에서는 1894년 갑오개혁시기 국가적조치로서 학무아문이라는 근대적 교육행정기구가 세워지고 근대적인 학교교육을 실시하기 위한 일련의 조치들이 취해졌으며 근대적인 학교교육제도가 법적으로 제도화되였다.

 

근대개혁사상가들은 교육계몽을 실현하기 위한 방도로써 또한 녀성교육, 아동교육을 발전시킬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당시 우리 나라에서 절반인구를 차지하고있는 녀성들을 교육계몽하여 사회사업에 적극 참여시키고 자라나는 어린이들에 대한 교육을 잘하는것은 사회성원들을 근대적인 사상문화로 교육계몽하고 근대사회발전의 미래를 담보하기 위한 중요한 사업이였다.

녀성교육과 아동교육의 이러한 중요성에 비추어볼 때 조선봉건사회는 봉건적유교사상에 기초한 남존녀비관념에 따라 녀성들에 대한 교육에서 정조관념의 주입에 치우치는 등 심히 편파적이였으며 아동들에 대한 교육에서도 많은 경우 봉건유교교육에 국한되여있었다.

근대개혁사상가들은 근대적 문명개화를 이룩하자면 녀성들과 아동들에 대한 편견적이며 불평등한 봉건교육을 타파하고 인구의 절반을 차지하고 나라의 미래를 대표하는 녀성들과 아이들을 나라의 부국강병에 이바지하는 실지 쓸모있는 지식을 갖춘 인재로 키워야 한다고 보았으며 이로부터 녀성교육과 아동교육을 중시하고 그에 힘을 넣을데 대하여 강조하였다.

 

그들은 장차 국가를 떠메고나갈 담당자 즉 나라의 근본이 다름아닌 아동이기때문에 아동교육을 중시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이것을 봄에 씨뿌리는데 비유하여 《…농사하는 사람이 봄에 량식이 없다고 봄에 씨도 심지 않고 밭도 갈지 아니하면 그 사람은 가을이 되여도 봄보다 더 낫지 못할터이다, 그러니 봄에 남의 집에 가서 일을 하면서라도 기어이 씨를 땅에다 뿌려두면 가을에는 추수를 할터인즉 그때는 집에 먹을것이 있어 늦겨울까지라도 걱정없이 날터이니 어찌 봄에다 비유하리오, 지금 자식을 교육하는것이 곧 봄에 씨뿌리는것이니, 추수하고싶은 부모는 자식을 교육을 시키기를 봄에 씨뿌리는줄로 생각하기를 바라노라.》(《독립신문》 건양원년(1896년) 5월 12일 론설)라고 하였다. 이와 함께 《남존녀비》를 고취하며 녀성들의 사회사업에 대한 참가를 불허하는 봉건사회의 남녀차별제도가 《녀자들을 당초에 사람으로 치지를 아니하여 교육들을 아니 시키니 전국 인구중에 반은 그만 내버린것》(《독립신문》1896년 9월 5일 론설)이나 마찬가지라고 개탄하면서 녀자들을 가르치기 위해 녀학교를 많이 설립해야 한다고 주장하였다.

 

녀성교육이 가정과 나라에 유익하고 나아가서 나라의 부강을 가져오는 사업(《독립신문》 1897년 10월 2일 잡보 참고)이라고 간주한 그들은 《지금 정부에서 녀학교를 세워 실지 공부로 녀자를 가르칠진대 우리 나라 2천만 동포중에 1 000만 버렸던 물건을 사람으로 가져옴이요, 이후에 녀자들은 자기의 권리를 찾고 천대를 받지 않을것이요, 자녀되는 아이들은 사랑하는 스승을 믿을것이요, 사나이는 100년의 아름다운 친구를 얻을것이요, 나라가 자연히 문명한 지경에 이르리니 우리는 그 학교가 잘되여 실지 효력이 있기를 바라노라.》(《독립신문》 광무 3년(1899년) 5월 26일 론설)라고 주장하며 녀성교육의 실현을 위한 여러가지 활동들을 벌리였다.

이처럼 근대개혁사상가들은 봉건사회가 남겨놓은 편파적이며 불평등한 아동교육과 녀성교육의 페해를 가시고 그들을 근대지식으로 교육할것을 주장하면서 그와 관련한 가치있는 견해들을 내놓았다.

 

근대개혁사상가들은 교육계몽을 실현하기 위한 방도로써 또한 사회교육에 주목을 돌리면서 여기서도 특히 언론출판을 통한 대중계몽에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였다.

 

그들은 언론출판을 통한 대중교육의 필요성과 의의에 대해 《조선도 오늘부터 시작하여 인민교육하는 일만 몇해동안 힘쓰게 되면 불과 얼마 안가서 사람마다 다 직업이 있어 나라안에 노는 사람이 없을터이요, 빈천은 없어지고 사람마다 모두 부귀하게 될터이니…… 인민교육하여 몇해후에는 조선도 남과 같이 되기를 바란다.》(《독립신문》 건양원년(1896년) 4월 25일)라고 강조하였다.

 

출판물을 통한 대중계몽에 커다란 주의를 돌리며 그것을 교육계몽의 중요방도로 내세운 진보적인 근대개혁사상가들은 부르죠아개혁운동의 초시기부터 신문과 출판물발간에 큰 관심을 돌렸다.

 

김옥균을 비롯한 개화사상가들이 《한성순보》와 《한성주보》를 비롯한 우리 나라 첫 근대신문들을 발간하여 사람들을 개화사상으로 계몽시키고 《독립협회》의 애국적지식인들이 《독립신문》과 《황성신문》을 통한 대중계몽에 적극 이바지한 사실은 근대개혁사상가들이 언론출판을 통한 대중계몽에 중요한 의의를 부여하고 그 실천을 위해 적극 활동하였다는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근대개혁사상가들이 제기한 교육계몽의 실현방도에 관한 견해는 당시 우리 나라에서 힘차게 벌어진 낡고 부패한 봉건사회를 반대하고 나라의 근대적발전을 이룩하며 외래침략자들로부터 민족적독립을 이룩하기 위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 일정한 기여를 한 진보적이며 애국적인 견해였다.

그러나 그들의 견해에는 교육계몽의 대상인 인민대중에 대한 그릇된 관점으로부터 초래되는 근본적인 제한성이 있다.

사실 근대개혁사상가들이 부르죠아혁명을 준비하면서 대중을 근대적인 사상의식으로 깨우치기 위해 여러가지 교육활동을 벌린것은 그들을 저들의 반봉건투쟁에 리용하기 위한데 주되는 목적이 있었다.

 

그들은 광범한 근로인민대중을 저들의 계급적지배를 실현하기 위한 반봉건투쟁에 리용하기 위하여 교육계몽활동을 벌리였다. 결과 그들의 교육계몽의 실현방도에 관한 견해의 근저에는 피압박근로대중을 무지한 존재로 천시하는 반동적인 사상적립장이 놓여있었으며 광범한 근로인민대중을 정치적무권리와 경제적불평등에서 해방하기 위한것과는 인연이 없었다.

 

총체적으로 근대개혁사상가들의 교육계몽의 실현방도에 관한 견해는 그의 계급적기초로부터 초래되는 간과할수 없는 제한성을 가지고있지만 나라의 근대적발전을 이룩하고 그에 토대하여 민족적독립을 고수하려고 한 우리 인민의 투쟁에 일정하게 긍정적작용을 하였다.

사회과학원 심청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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