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성산성의 물보장체계와 그 우수성​ 2)​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구려사람들은 대성산성안에 더 많은 물을 저축해두기 위하여 물줄기가 있는 곳에는 못을 만들어 물을 잡아두고 물이 없는데서는 땅을 깊이 파서 인공적으로 물주머니를 만들어놓았습니다.》

고구려시기 대성산성안에 세워져있었던 물보장체계의 우수성은 고구려사람들의 높은 애국심과 창조적재능을 잘 보여준다.

대성산성의 물보장체계의 우수성은 첫째로, 용도에 따라 필요한 량의 물을 충분히 보장할수 있도록 되여있는것이다.

우선 사람이 마시는 음료수의 질을 매우 높은 수준에서 보장하였다.

고구려사람들은 높은 수질의 음료수를 얻기 위하여 당시로서는 매우 발전된 정화기술을 창안리용하였다.

대성산성안의 못들에서 발견된 물정화구조물이 그러한 실례로 된다.

 

대성산성안에서 발견된 1호, 2호, 6호, 10호못을 비롯한 거의 모든 못들의 입구에는 잔돌을 쌓아 흐려진 물이 그것을 통과하면서 1차적으로 려과되도록 하였다. 못안에는 2중, 3중의 물도랑을 쌓아놓아 물이 물도랑을 따라 못의 가장자리부분으로 흐르면서 밑에 있는 다음 못으로 빠지도록 되여있다. 그리고 못의 가장자리를 따라 흐르는 물이 물도랑뚝을 통과하면서 2차, 3차로 려과되여 못의 중심부분에 고이도록 되여있다. 그리고 3호못(형제못)과 7호못에서와 같이 못의 바깥도랑주위에 2~8개의 박우물(스밈식물잡이구조물)을 설치하여 수질을 최대로 높이기 위하여 노력하였다.

 

산골짜기에 흐르는 맑은 물과 우물물은 특별한 시설이 없어도 그대로 먹을수 있었다. 다만 많은 사람들이 산성안에 들어가있는 조건에서 오염되지 않도록 일정한 차단대책만 세우면 될것이였다.

또한 말이나 기타 짐승이 먹는물도 높은 수질을 보장하였다.

산성자산성 남문부근의 장대터근방에 있는 음마지라는 못의 이름은 고구려시기 군마전용의 물공급못이 있었다는것을 보여준다.

또한 성방어전에서 물은 사람과 짐승의 음료수로뿐아니라 성벽에 붙어 기여오르는 적들에게 끓는 물을 퍼부을 때 쓰는 전투용, 건물에 화재가 났을 때 쓰는 소화용, 남새밭에 물을 주는 관수용 등으로도 쓰이였다.

여기에 필요한 방대한 량의 물을 보장하기 위하여 고구려사람들은 물줄기가 있는 곳에는 못을 만들어 물을 잡아두었고 물이 없는데서는 땅을 깊이 파서 인공적으로 물주머니를 만들어놓았다. 대성산성안에서 발견된 크고작은 170개의 못자리는 고구려시기 성안에 방대한 량의 물이 확보되여있었음을 잘 보여준다.

이처럼 고구려사람들은 물이 바른 산성조건에서도 비상한 지혜와 재능을 발휘하여 용도에 따라 물을 넉넉히 쓸수 있도록 하였다.

 

대성산성안의 물보장체계의 우수성은 둘째로, 성의 방어력을 최대로 높이도록 물잡이구조물들이 배치되여있는것이다.

우선 고구려사람들은 물이 나오거나 고일수 있는 지점들에 못을 비롯한 물잡이구조물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하여 물을 확보할수 있는 가능성을 최대로 리용하였다.

 

실례로 대성산성안의 장수봉남쪽 1호못(잉어못)가까이에는 크고작은 48개의 못이 집중되여있고 장수봉동쪽 10호못(구룡못)가까이에도 25개의 못이 있으며 남문 안쪽 소문봉아래에는 12개의 못이 한곳에 나란히 있다. 이렇게 못이 한곳에 많이 모여있는 곳은 산속이면서도 비교적 지대가 낮은 곳이여서 비가 오면 물이 그곳으로 모여들게 되여있거나 지하수가 있는 곳들이다.

 

장수봉골짜기에 있는 108개의 못자리가운데서 1호못(잉어못), 9호못(사슴못), 10호못(구룡못)은 예로부터 아무리 가물어도 말라본적이 없다고 전하여지는 물원천이 풍부한 못들이다. 이러한 샘물잡이구조물가까이에 크고작은 땅겉면물잡이구조물들을 집중적으로 배치함으로써 지하수와 비물을 효과적으로 잡아 많은 물을 확보할수 있도록 하였다.

또한 고구려사람들은 생활용 및 전투용, 소화용 등으로 쓰기 편리하게 물잡이구조물을 배치하였다.

대성산성에서는 음료수원천으로 리용되던 우물이나 샘, 박우물과 같은 땅속물잡이구조물 및 스밈식물잡이구조물들과 건물의 화재방지용이나 전투 및 방어용으로 리용되던 물을 저장하던 못(땅겉면물잡이구조물)들이 례외없이 병영이나 성문, 장대, 성벽가까이에 집중적으로 배치되여 전투와 사람들의 생활상편의를 최대로 도모하도록 되여있다.

 

실례로 대성산성의 남문터안쪽 소문봉아래에 있는 12개의 못들은 남문을 지키는 군사들이 쓰기 위하여 판것이며 주작봉 장대자리주변에 있는 7개의 못은 장대를 지키는 사람들에게 필요한 물원천이였다. 소문봉정점도 산성방어에서 중요한 지점이였으므로 11개의 못자리가 있었고 국사봉정점과 북문이 있던 국사봉근처에도 3개의 못자리가 있었다. 대성산성방어에서 요충지의 하나였던 장수봉에도 11개의 못이 있었고 을지봉에도 2개의 못과 1개의 샘이 있었다.

 

대성산성안에는 성벽을 따라가면서 그와 멀지 않은 곳에 하나둘씩 못이 널려있는 곳도 많았다. 이런 못들은 전투시 성벽을 방어하는 수단으로 군대들이 쓰기 위하여 필요하였을것이다. 고구려사람들은 성벽가까이에 큰 가마를 걸어놓고 물을 끓이다가 외적이 성벽으로 기여오르면 펄펄 끓는 물을 적의 머리우에 들씌웠던것이다.

특히 대성산성 남문터앞에 있던 못은 남문의 방어를 위하여 파놓은것으로서 해자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이처럼 산성안의 물잡이구조물들은 많은 물량을 확보하면서도 전투와 생활에 편리하게 리용할수 있도록 배치된것으로 하여 성의 방어력을 높이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대성산성안의 물보장체계의 우수성은 셋째로, 불리한 기상기후조건에서도 물보장시설들이 자기의 기능과 사명을 원만히 수행할수 있도록 되여있는것이다.

대성산성안에서 발굴된 170개의 못자리들은 모두 성돌과 같은 돌을 여러겹으로 쌓아 못뚝을 튼튼히 하고 그밖으로 도랑을 만들어 장마때에 골짜기물이 갑자기 불어나도 어지러운 물이 못으로 곧장 흘러들거나 못이 메워지지 않도록 하였다.

 

실례로 장수봉 남쪽골짜기에 있는 2호못이 있는 지형은 사방이 다 경사지로 되여있기때문에 비가 오면 사방에서 물이 모여들게 되여있으며 특히 북쪽골짜기에서는 우로부터 많은 물이 흘러내리게 되여있다. 그러므로 장마때 한꺼번에 많은 물이 갑자기 모여들어 이 못이 흙으로 메꾸어질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 고구려사람들은 이런 지형조건과 기상조건을 고려하여 서쪽못뚝은 네겹으로 두텁게 쌓고 그사이에 2개의 물도랑을 만들어놓았으며 동쪽못뚝은 세겹으로 쌓았다. 그러므로 장마때 이 못에 흙물이 한꺼번에 많이 모여들어도 그것이 못안에 들어가지 못하고 못뚝도랑을 돌아서 무너미도랑으로 빠지거나 못뚝의 돌짬을 통과하여 깨끗한 물만 못안에 스며들게 하였다. 이렇게 되면 못은 메꾸어지지 않고 물에 씻겨내려온 흙은 못도랑에 쌓이게 되므로 흘러내려온 흙을 파내는것도 쉽게 된다. 이것은 못이 평지가 아니라 우묵한 곳에 있는 지형조건과 해마다 장마철에 비가 많이 오는 우리 나라 기상조건을 잘 고려한데서 나온 못뚝의 형식이였다. 이러한 못뚝의 구조는 대성산성의 다른 못들에서도 볼수 있는것으로서 고구려사람들이 못을 만드는데서 창안한 독특한 수법이였다.

 

고구려사람들은 물이 바른 가물철에도 물을 넉넉히 보장하기 위하여 산성안의 높은 지대에서 샘줄기를 찾아내여 효과적으로 리용하였다.

대성산성안의 잉어못, 사슴못, 구룡못, 장수못과 소문봉정점에 있는 못들은 가물철에도 물이 차넘치는 못들로 유명하다.

이러한 샘물잡이구조물들이 높은 곳에서부터 물을 잡아 아래못으로 흘러보내므로 물이 바른 가물철에도 성안의 못들에는 항상 맑은 물이 흘러넘치게 되였다. 이러한 물잡이구조물들은 고구려의 다른 산성들에서도 흔히 볼수 있다.

이처럼 높은 애국심을 간직하고 뛰여난 창조적지혜와 재능을 지닌 고구려사람들은 방어요새인 산성을 튼튼히 쌓고 무기와 군량과 함께 물원천도 넉넉히 확보하였으므로 아무리 포악한 침략자들이 달려들어 장기전을 하게 된다고 하여도 끄떡하지 않고 성을 지켜냈으며 끝끝내 승리하였던것이다.

고구려사람들이 창조한 대성산성의 물보장체계는 그 우수성으로 하여 오늘도 많은 사람들의 감탄을 자아내며 조선민족의 슬기와 재능을 전하여주고있다.

김일성종합대학 박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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