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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자애로운 품은 만사람을
뜨겁게 안아주는 한량없이 넓은 품 1)

2018-04-15    김충일

우리 당과 인민의 영원한 수령 김일성동지

 

민족최대의 경사의 날인 태양절을 맞이하고있는 오늘 온 겨레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특출한 위인상과 더불어 만민의 어버이로서의 그이의 숭고한 인간애를 감회깊이 되새겨보고있다.

오늘도 온 겨레가 영생의 모습으로 마음속에 고이 간직하고있는 위대한 수령님은 사상리론의 영재, 령도의 거장, 희세의 군사전략가인 동시에 온 겨레와 인류의 자애로운 어버이이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에 대한 수령님의 사랑의 품은 만사람을 뜨겁게 안아주는 한량없이 넓은 품입니다.》

만사람을 뜨겁게 안아주는 숭고한 덕망은 오직 인간에 대한 무한대한 사랑, 가장 고결한 인간애를 지닌 절세의 위인만이 체현할수 있다.

불보다 뜨거운 인간애를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사상과 리념, 거주지와 생활경위가 각이해도 나라를 사랑하는 모든 민족성원들과 국적과 정견, 피부색과 언어가 달라도 정의와 진보를 지향하는 수많은 외국의 벗들과 인사들을 한없이 넓은 품에 따뜻이 안아주시고 사랑을 부어주신 참다운 인간애의 체현자이시였다.

 

애국, 애족, 애민의 가장 숭고한 리념을 지니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자애로운 품은 민족성원모두를 한품에 안아주는 한량없이 넓은 품이였다.

우리 인민에게 자주적이고 창조적인 삶을 안겨주시려고 한평생 애민헌신의 길을 걸으신 위대한 수령님의 넓은 품에는 언제나 한피줄을 이은 남녘겨레들만이 아닌 해외동포들모두가 안겨있었다. 곁에 둔 자식보다 멀리 떨어져있는 자식들을 더 위해주는 어머니의 심정과도 같이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남녘겨레들과 해외동포들에게 주실수 있는 사랑을 다 베풀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한평생 남녘겨레들을 자애로운 한품에 안으시고 뜨거운 동포애의 정과 크나큰 믿음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녘겨레에게 뜨거운 동포애적사랑을 안겨주시였다.

해방직후 미군정하에서 온갖 생활고에 허덕이는 분계연선 남조선인민들에게 전기를 보내주시고 구암저수지와 례의저수지의 물을 보내주시여 농사를 짓도록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전화의 그 어려운 시기에는 서울시민들의 땔감문제에까지 각별한 관심을 돌리시여 인민군군인들을 전선에서 떼내여 설악산에서 나무를 하도록 조치를 취해주시였고 전후에는 남조선대학생들에게 장학금을 보내주도록 하시고 파괴된 남조선경제를 위해 목재와 세멘트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구제조치들을 취하도록 세심한 사랑을 베풀어주시였다.

남녘겨레들을 위한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은 한평생 변함이 없었으며 날이 갈수록 더욱 커가기만 하였다.

주체73(1984)년에 남조선의 서울을 비롯한 주변지역에 큰물이 났을 때에 공화국에서 취한 구제조치는 남녘겨레들에게 돌려주신 어버이수령님의 사랑이 얼마나 뜨겁고 열렬하며 숭고한것인가를 단적으로 보여주고있다.

 

주체73(1984)년 8월말~9월초 남조선에서는 큰물피해를 입었다. 남조선당국의 공식발표에 의하더라도 300여명이 죽고 20만 7 000여명이 리재민으로 한지에 나앉았으며 3만 6 700여채의 살림집이 파괴되고 6만 7 000여정보의 농경지가 류실매몰된 큰 재해였다.

 

남조선인민들이 큰물피해로 한지에 나앉아 고생하고있다는 사실을 보고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당일군들을 찾으시여 즉시 구제조치를 취하도록 하시고 몸소 그 량까지 가늠해주시면서 어떤 일이 있어도 보내줄데 대한 간곡한 가르치심을 주시였다. 그리고 구호물자들을 짧은 기간에 최상의 수준에서 보장하도록 국가적인 조치를 취해주시였다.

그리하여 분렬사상 처음으로 막대한 량의 구호물자들이 분계선을 넘어 남녘의 인민들에게 가닿게 되였다.

 

쌀 5만석, 천 50만m, 세멘트 10만t, 여러 종류에 많은 량의 의약품이였는데 총량을 액수로 따지면 1 800만US$에 해당한것이였다. 남조선의 《우방》으로 자처하던 미국이나 일본이 당시 명색상 주었다는 《구호금》이 각각 2만, 10만US$였고 당시까지 120여년의 적십자구제력사에서 가장 많은 량으로 기록된 1983년 인디아가 큰물피해를 입었을 때 스웨리예로부터 받은것이 75만US$였다는 사실에 비추어볼 때 그것은 말그대로 엄청난 량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이 사랑의 구호물자를 실은 1 400여대의 화물차와 14척의 배가 판문점분계선을 넘고 바다의 물결을 헤가르는 광경을 목격하면서 우리 겨레는 물론 온 세상사람들이 끝없는 격정에 휩싸였다. 비단 구호물자의 량이 커서만이 아니였다. 세월이 흐르고 강산도 변하였지만 변함없는 위대한 어버이의 동포애가 너무도 뜨거워서였다.

ㅡ 남녘겨레를 위하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은 사상과 리념, 정견과 신앙을 초월하여 그들모두를 참된 삶에로 이끌어주는 한없이 숭고한 사랑이였다.

민족적량심이 조금이라도 있다면 그가 누구이든 차별하지 않으시고 넓은 도량과 포옹력으로 사랑의 한품에 안아 따뜻한 정을 부어주시고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분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이시였다.

나라가 해방된 후 김석형, 박시형, 도상록과 같은 학자들은 물론 통일애국에 뜻을 둔 려운형, 홍명희, 김규식과 같은 정치인들과 김구와 같이 지난날 반공사상에 뿌리깊이 물젖어있던 완고한 민족주의자들을 비롯하여 수많은 남녘동포들이 위대한 어버이를 뵈옵고 그이의 애국애족의 큰뜻과 동포애에 끌리여 인생의 방향전환을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특히 남조선에서 통일애국을 위해 헌신하는 사람들을 귀중히 여기시고 그들에게 크나큰 믿음과 사랑을 안겨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의 청년학생들이 자주, 민주, 통일을 위해 싸우는것을 몹시도 자랑스럽게 여기시면서 통일애국에 한몸바친 청년학생들을 공화국의 대학들에 명예학생으로 등록하고 영생하도록 하시였으며 평양에서 열린 제13차 세계청년학생축전에 참가한 전대협대표를 몸소 만나주시고 높이 치하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조선의 전국민족민주운동련합(전민련) 고문인 문익환목사가 평양으로 왔을 때에도 그들모두를 따뜻이 포옹해주시고 문익환목사와 영원히 가를수 없는 깊은 우정을 약속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를 조국통일의 상징적인 인물이라고 높이 치하하시며 자신께서는 구면친구인 문익환목사를 절대적으로 믿는다는 분에 넘치는 영광을 안겨주시였다.

남녘의 동포들을 위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한없이 따뜻한 동포애에 대하여 공화국을 방문하고 그이를 만나뵈온 남조선 대우그룹 회장이였던 김우중이 방문을 마치고 가진 기자회견에서 김일성주석님께서 앞으로 제집처럼 생각하고 들리라고 하였다고 하면서 그분은 《매우 친근하고 부드러우면서도 편안한 느낌을 주었다.》고 자기의 솔직한 심정을 그대로 터놓은것은 민족의 어버이이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끝없는 흠모심의 반영이였던것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위대한 생애의 전기간 해외에 사는 동포들도 사랑의 한품에 안아 따뜻한 정과 사랑을 부어주시였다.

집떠난 자식을 더 생각하고 위해주는것은 자식을 둔 모든 부모들의 공통된 심정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날 쓰라린 민족사의 고통을 안고 세계의 곳곳에 널려사는 해외동포들을 슬하를 떠난 친형제, 친자식으로 대해주시며 그들을 따뜻한 동포애의 정으로 보살피고 이끌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본땅에서 살고있는 재일동포들의 운명문제에 제일 큰 관심을 돌리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식민지민족의 설음을 안고 현해탄을 건너간 수많은 조선동포들을 언제 한번 잊지 않으시고 해방과 더불어 재일조선인운동의 강화발전을 위해 특별한 관심을 돌리시였다.

조국해방전쟁이 한창 벌어지고있던 시기에 재일조선인운동의 로선전환방침을 제시하시여 재일조선인들이 조국을 위한 애국운동을 벌리도록 하시고 그들의 민주주의적민족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구체적인 대책들을 세워주시였다. 그리하여 주체44(1955)년 5월에는 공화국의 존엄높은 해외공민단체이며 강력한 통일전선체인 총련(재일본조선인총련합회)이 결성되게 되였다.

재일조선인들의 련합조직인 총련을 무어주신후 재일동포들이 총련을 중심으로 굳게 뭉쳐 공화국의 해외공민으로서의 권리를 가지고 당당하게 살아가도록 걸음걸음 손잡아 이끌어주신 위대한 수령님의 사랑을 다 전하자면 끝이 없다.

 

주체46(1957)년에 위대한 수령님의 지도밑에 어느 나라 재정예산항목에도 있어본적이 없는 《재일동포자녀들을 위한 교육원조비와 장학금》이라는 새로운 재정예산항목이 세상에 생겨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인가 조선대학교의 졸업반학생들이 조국방문을 오던중 태풍을 만나 위험에 처했을 때에는 비상구조작전을 펼치시여 전원모두를 무사히 조국에 데려오도록 하시였고 또 어느해인가는 총련일군의 자녀들을 저택에 부르시고 그들과 식사도 함께 하시면서 귀중한 시간을 함께 보내기도 하시였다. 재일본조선청년동맹(조청)의 대표들이나 총련의 일군들이 너무도 보고싶으시여 긴장한 지방현지지도일정까지 뒤로 미루시고 평양에 올라오시여 그들을 만나주시고 따뜻한 사랑을 부어주신적도 한두번이 아니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총련일군들의 건강문제까지 일일이 알아보시고 극진한 사랑과 배려를 돌려주시였으며 동포상공인들의 애국심을 무엇보다 귀중히 여기시면서 국가가 손해를 보는 한이 있더라도 그들의 기업활동을 힘자라는껏 도와주시였다.

 

어느해인가는 일본의 동포상공인들의 상품판로가 막혔다는것을 아시고는 우리가 그들의 물건을 사도록 해주시였고 또 언제인가는 재일동포신발업자들을 구원하시기 위해 100만컬레의 구두를 통채로 사주도록 하여주시였으며 동포상공인들이 기업활동에 필요한 원료와 자재들을 조국에서 가져다 쓸수 있도록 조치도 취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한 동포상공인의 소행을 크게 내세우시면서 그와 식사도 함께 해주시고 그의 식성까지도 헤아려 음식을 권하신 이야기며 총련의 한 교수를 위한 생일연회까지 마련해주신 사실을 비롯하여 재일동포들에게 돌려주신 사랑과 배려에 대한 이야기는 세월이 흐를수록 영원히 지울수 없는 전설과도 같이 길이 전해지고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세계의 곳곳에 널려사는 수많은 해외동포들에게도 친어버이정과 사랑을 부어주시였다.

세계 그 어느 나라에서 살고있어도 해외동포들의 운명은 조국과 민족의 운명과 하나로 잇닿아 있다는 투철한 민족관을 체현하신 어버이수령님께서는 해외동포모두를 참된 삶의 길로 이끌어주시기 위해 마음을 쓰고 또 쓰시였다.

 

위대한 어버이의 진정에 넘치는 동포애에 이끌리여 인생의 새 출발을 하고 겨레의 통일과 번영을 위한 길에서 인생의 참된 의미를 새롭게 새겨안은 동포들가운데는 미국에 있는 조국통일촉진회 회장이며 남조선사람들의 교회련합회 고문이였던 김성락목사도 있고 국제태권도련맹 총재 최홍희나 세계평화련합 총재 문선명도 있으며 도이췰란드의 명망높은 동포음악가 윤이상, 재미동포 녀류기자 문명자 등 각이한 직업과 정견, 국적을 가진 수많은 해외동포들이 있다.

 

해외동포들을 위해 부어주시는 그이의 사랑이 얼마나 따뜻하고 진실한것이였는가 하는것은 세계평화련합 총재 문선명과 맺으신 인간적인 뉴대를 통해서도 잘 알수 있다.

한때 《반공》선전에도 앞장서고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일에도 나섰던 그로서는 위대한 수령님앞에 나설 자격이 없었으나 수령님께서는 조국통일을 위해 무엇인가 이바지하고싶어하는 그의 마음을 귀중히 여기시고 그를 친히 만나주시였다.

 

세계평화련합 총재 문선명은 위대한 수령님을 뵙는 과정에 겨레에 대한 열렬한 사랑과 높으신 덕망에 반하여 그이께 자기의 형님이 되여달라는 청탁을 드리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의 무랍없는 이 제의를 흔연히 받아들이시였다. 그러자 문선명은 그 자리에서 《우리는 의형제입니다.》라고 하며 너무 기뻐 어쩔줄 몰라하였다. 그의 방문과 접견이 얼마나 격동적이였으면 남조선의 《서울신문》은 《그의 공화국방문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파문을 일으켰다.》고 하면서 그 과정을 상세히 실었다.

 

세상에는 조국애, 민족애가 강하고 조국과 민족을 위한 애국애족의 특기할 공적을 쌓아올린것으로 하여 이름을 떨친 위인들과 명인, 명장들이 많았지만 우리 수령님처럼 천하를 그러안는 한없이 넓은 도량과 포옹력을 지니시고 겨레에 대한 열렬한 사랑으로 한생을 깡그리 불태워오신 민족의 자애로운 어버이는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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