애민헌신의 위대한 한생​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는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생의 순간순간을 깡그리 불태워오신분이시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인민에 대한 믿음과 사랑은 우리 수령님의 천품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을 가장 귀중히 여기시고 끝없이 사랑하시며 인민의 존엄과 행복을 위하여 한평생을 바쳐오십니다. 수령님의 모든 사색과 활동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민에 대한 사랑이 놓여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위대한 생애의 한평생을 오직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이어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인가 자신의 머리가 점점 더 세여지는것을 가슴아파하며 안타까와하는 일군들에게 원래 우리 집안 사람들은 머리가 세여지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나만은 머리가 세여졌습니다, 나의 머리가 세여진것은 어떻게 하면 하루빨리 조국을 통일하여 우리 인민이 겪고있는 민족분렬의 고통을 덜어주겠는가, 어떻게 하면 인민들을 잘살게 하겠는가 하는 걱정때문입니다, 더우기 흰쌀밥에 고기국을 먹으며 비단옷을 입고 기와집에서 살려는 우리 인민의 세기적숙망을 실현시켜주려고 밤낮으로 마음을 쓰며 생각하다보니 머리가 셀수밖에 없습니다라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모든 사색과 활동의 시작도 끝도 인민에 대한 사랑이였다. 인민에 대한 사랑에서부터 출발하고 인민에 대한 무한한 사랑으로 일관되여 끝없이 펼쳐진것이 곧 그이의 거룩한 사색이였고 위대한 활동이였으며 한평생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생애의 전과정에 초인간적인 정력을 지니시고 헤아릴수 없이 많은것을 구상하고 설계하시였으며 실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인민에 대한 사랑을 떠난 한순간의 사색이나 한가지의 실천활동도 있어본적이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사색과 활동의 중심에는 언제나 인민에 대한 숭고한 사랑이 자리잡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지니고계시는 모든 사물현상의 가치평가기준은 다름아닌 인민의 리익이였다.

언제인가 정원을 거니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 희귀한 닭 한마리를 보게 되시였다. 과중한 집무로 피곤을 푸실 사이도 없이 일하시는 그이께서 산책의 한순간이라도 즐겁게 보내도록 하기 위해 일군들이 새로 구해놓은 관상용닭이였다. 발뒤축에 여러가지 색갈의 털이 길게 나있어 《털발닭》이라고 하는 그 닭은 정말 보기에도 깜찍하고 희귀하였다.

 

흥미가 동하시는듯 닭을 유심히 바라보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문득 일군에게 그 닭이 1년에 알을 얼마나 낳는가고 물으시였다. 80알정도 낳는다는 대답을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매우 놀라시는 표정으로 일군을 피뜩 뒤돌아보시였는데 그이의 눈에는 실망의 빛이 어려있었다. 이어 그이께서는 보통 닭은 200~250알을 낳는데 80알을 낳아서야 어디에 쓰겠는가고 하시면서 몹시 서운해하시였다. 일군은 그이께 이 닭은 고기와 알을 생산할것을 목적으로 한것이 아니라 관상용닭이라고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그이께서는 닭이야 알을 많이 낳아야지 보기나 좋아서 무엇하겠는가, 자신께서는 아무리 보기 싫게 생겨도 알을 많이 낳는 닭이 있으면 매일 보러 나오겠다고 하시며 자신께서는 1년에 알을 한 400알 낳는 닭이 있으면 좋겠다고. 그러면 우리 인민들에게 더 많은 알을 공급할게 아닌가고 교시하시였다.

 

 

인민을 더 잘 먹이고 잘살게 하시려고 늘 사색하고 또 사색하시는 위대한 수령님께 있어서 모든 가치평가의 절대적기준은 오직 인민의 리익이고 행복이였다. 아무리 현란하고 새로운것이라도 인민들에게 실제적인 덕을 줄수 없는것이라면 전혀 무의미하다는것이 바로 위대한 수령님의 평가기준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사랑하시고 위해주신 그 인민의 첫자리에는 언제나 그이께서 나라의 왕으로 내세워주시는 아이들이 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언제나 우리 혁명은 후대들을 위한 혁명으로 되여야 한다고 간주하고계시였다. 하기에 우리 수령님께서는 한평생 누구보다 아이들을 사랑하시였고 그들을 위해서라면 자신이 하실수 있는 모든것을 다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아이들과 함께 해마다 찾아오는 새해를 맞으시군 하였다는것은 세상사람들 누구나가 다 알고있지만 옥류관에서 그이를 모신 설맞이모임이 진행된 일도 있었다는것을 아는 사람은 그리 많지 못할것이다.

웅대한 제1차 7개년계획의 첫해인 1961년 새해를 앞두고 그이의 마음은 해마다 전통적으로 아이들과 함께 맞으시던 새해의 설맞이모임을 어디서 하겠는가 하는 문제때문에 몹시도 무거우시였다. 당시까지 설맞이모임을 하던 대동문영화관이 이제 와서는 설맞이모임의 규모나 참가자들의 수에 비하여 적합치 않다고 여겨지셨던것이다.

 

일군들과 이 문제를 두고 협의회를 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 조업도 하지 않았을뿐아니라 국가연회장으로 쓰려고 했던 옥류관에서 하는것이 어떤가고 일군들에게 물으시였다. 한 일군이 국가연회장에서 어떻게 하겠는가고 위대한 수령님께 자기의 생각을 솔직히 말씀드리였다. 그러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직 조업하지 않은 건물이 더 좋지 않은가, 우리는 아이들에 대한 관점과 태도부터 바로가져야 한다, 국가연회는 다른 곳에서 하는 한이 있더라도 아이들에게는 마음껏 춤추고 노래부르도록 옥류관을 내주어야 한다고 뜨겁게 말씀하시였다.

 

이렇게 되여 옥류관은 1961년 새해를 맞는 아이들의 설맞이공연장소로 선정되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인민에 대한 숭고한 사랑을 지니시고 한평생을 인민을 위한 헌신의 자욱자욱으로 이어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에 대한 사랑의 일념에서 혁명의 첫걸음을 내디디신 그때로부터 생애의 전과정을 인민의 행복을 위하여 세월의 온갖 고초를 다 겪으시며 투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찍부터 혁명 그자체를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간주하고계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한생에서 가장 가슴찢어지는 아픔을 당하시던 나날중의 하나는 항일혈전의 나날 마안산의 음침한 밀영에서 《민생단》의 감투를 뒤집어쓰고 온갖 고초를 겪던 아동단원들의 처참한 광경을 목격하시던 때이다.

 

그때 가슴터지는 아픔을 가까스로 누르시며 그이께서는 밀영의 후방부일군들에게 갈리신 음성으로 나는 오늘 여기서 혁명가의 가치관을 두고 다시한번 심각한 음미를 하지 않을수 없다, 우리가 무엇때문에 혁명을 시작했고 지금도 무엇때문에 만난을 무릅쓰고 혁명을 계속하고있는가고 하시면서 우리는 그 무엇을 파괴하고싶어서가 아니라 인간을 사랑하기때문에 혁명의 길에 들어선 사람들이다, 온갖 불의와 페습으로부터 인간을 해방하고 인간적인것을 옹호하며 인간이 창조해낸 모든 부와 아름다움을 지켜내기 위하여 우리모두가 이 저주로운 세상을 향해 반기를 든것이 아니겠는가고 준절하게 말씀하시였다.

 

그이의 준절한 이 말씀은 인간을 존중하고 인간적인것을 옹호하며 인간이 창조한 모든것을 지켜내는것을 다름아닌 혁명으로 간주하시는 그이의 투철한 관점이 집약된 말씀이였으며 투쟁의 길에 나선 사람들에게 언제나 뜨거운 인간애를 안고 혁명을 해야 한다고 가르치시는 열렬한 호소였다.

인간에 대한 사랑이 곧 혁명이라는 위대한 수령님의 투철한 견해는 아직까지 혁명을 한다고 하던 수많은 혁명가들중 그 누구도 지녀본적이 없는 숭고한 관점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의 근본목적도 그 수행방식도 결코 타도와 숙청에 있다고 보지 않으시였다. 그이께서는 참다운 혁명은 인간, 인민에 대한 사랑에 그 뿌리가 있고 투쟁을 통하여 이루려는 숭고한 목적이 있다고 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선혁명의 닻을 올리시던 시기 맑스주의창시자들의 계급투쟁론에 대한 교조적인 태도에 매여달리고있던 적지 않은 사람들속에서는 사랑하는 감정보다도 증오하는 감정이, 포섭하고 용서하는 도량보다도 징벌하고 규탄하는 비타협성이 더 강하게 류포되고있었다. 지어 행세식맑스주의자들은 무조건적인 비타협성을 혁명가의 특질인듯이 제창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러한 현실에서 커다란 교훈을 찾으시면서 혁명을 자기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시작해야 하겠다는 확고한 관점을 간직하게 되시였고 맑스주의고전을 연구하시면서도 먼저 비타협성을 찾으려고 노력하신것이 아니라 사랑과 단결에 대한 사상부터 얻어내려고 애쓰시였던것이다.

 

혁명을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여기신분이시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들의 리익을 침해하거나 해를 주는 현상과는 비록 자그마한것이라고 해도 묵과하지 않으시고 투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지지도를 하시다가도 인민을 더 잘살게 하기 위해 애쓰는 일군들을 만나시였을 때 제일 기뻐하시였다. 하지만 아래에 내려가서 인민들을 욕설하고 추궁하기만 하는 일군들을 보시면 조금도 묵과하지 않으시며 엄하게 비판을 주군 하시였다.

그이께서는 인민들의 생활에 불편을 주는것을 가장 큰 죄악이라고 늘 강조하군 하시였다. 그리고 그런 요소가 나타날 때에는 아무리 작은것이라도 용서치 않으시였다.

자신께서는 온갖 세상풍파를 다 겪으시면서도 인민을 위해서는 한몸이 그대로 방패가 되시여 인민을 지켜주고 보호해주시는 그이의 열렬한 애민헌신이 있어 우리 인민은 언제나 두려운것도 아픈것도 모르고 살았다.

인민을 열렬히 사랑하고 위해주시는 위대한 수령님의 사색과 활동은 인민생활에 대한 각별한 관심과 세심한 지도에서 절정을 이루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일 불안해하신 때는 인민들의 먹는 문제가 걸렸다는것이 제기될 때였다. 입는 문제는 천천히 해결할수도 있지만 인민들의 먹는 문제와는 한치의 양보나 에누리도 허용하실수 없는분이 우리 수령님이시였다. 그이께서는 인민들을 잘 먹이지 못하여 불편을 주고있다는 사실을 보고받으시면 너무도 불안하시여 잠마저 제대로 못이루시였다.

 

언제인가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어느 한 도에서 식량공급이 제대로 되지 않는다는것을 아시고 너무나도 가슴아프시여 해당 일군들을 엄하게 추궁하시였다. 식량문제만이 아니였다. 인민들에게 기초식품을 제때에 공급하지 못한다는 말만 들으시여도 그이께서는 너무도 마음이 아프시여 일손을 잡지 못하시였다. 어버이수령님께서 해방후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위원장사업을 하실 때에 북조선림시인민위원회 협의회에서 처음으로 토의한 문제가 장문제였다는것을 알고있는 사람들도 얼마 되지 않을것이다.

 

정녕 인민에 대한 사랑을 모든 사색과 활동의 중심에 놓으시고 한평생 인민의 행복을 위해 모든것을 다 바쳐오신 어버이수령님의 위대한 인민사랑에 대하여 다 이야기하자면 끝이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생애는 참으로 인민을 하늘로 떠이시고 인민에 대한 사랑으로 생의 자욱자욱을 이어오신 열렬한 애민헌신의 한생이였다.

김증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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