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나라 성씨를 본딴 일본성씨​

현재 일본사람성씨의 30%는 옛 조선사람의 성씨에서 유래되였다고 한다. 

일본의 력사책들인 《고사기》(712년)나 《일본서기》(720년)에 의하면 일본에는 성씨가 없었으며 백제의 구수왕(214~234년)때에 왜국으로 건너간 백제사람 왕인에 의하여 한자가 퍼지기 시작하면서 왕실과 무사들속에서 먼저 성씨를 쓰기 시작하였다.

오늘 일본사람들의 성씨에 《장강》(나까오까)이라든가 《산촌》(야마무라) 등 복성이 많은것은 삼국시기 우리 나라 사람들이 복성을 많이 쓴것과 관련되며 특히 백제의 고관이나 명인들이 진모선문, 목소귀자, 사택기루 등 복성을 많이 쓴데 기인된다고 한다.

고대일본의 씨족관계를 기록한 책인 《신찬성씨록》(815년 편찬)에 의하면 우리 나라 삼국시기 사람들의 성씨는 일본의 주요성씨중 300개이상에 달하며 그중에서도 90%이상이 복성으로서 《암야》(이와노), 《궁원》(미야하라), 《국본》(구니모또) 등 150여개 성씨가 백제계 성씨이고 나머지는 고구려와 신라의 성들이라고 한다.

일본사람들은 자기의 직위와 이름을 표시하는 방법도 백제식대로 하였다. 《신찬성씨록》에는 일본사람들의 관직과 성명을 백제식대로 기록하고있다. 일본고대사학자 히라노 구니오는 《정식으로 관직명칭과 성씨, 이름의 세 요소를 갖춘 인명은 백제표기법의 영향을 받아서 게이타이천황(507~531년에 집권한 왕)무렵부터 썼다.》고 인정하였다. 왕족이나 무사들과는 달리 평민들은 1875년경에 와서야 쓰기 시작하였다.

《명치유신》이후 일본에서는 세금징수나 징병 등의 목적으로부터 평민들까지 성씨를 가지도록 통제하기 시작하여 성씨를 쓰지 않으면 엄벌에 처한다는 포고령까지 내렸다.

이로 하여 어떤 사람들은 자기 주인이나 지방의 이름을 따서 성씨를 짓기도 하였으나 주민의 95%가 문맹자들이였으므로 제나름대로 성씨를 짓다나니 간장이라는 의미인 《쇼우》, 녀자속치마라는 의미인 《고시마끼》 등 별의별 잡성을 가지게 되였으며 그 수자도 약 10만개로 늘어나게 되였다고 한다. 또한 고구려를 뜻하는 《사라기니》, 《시라끼시》 등은 모두 우리 나라 삼국시기의 나라이름을 그대로 자기네 성씨로 만든것이다.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