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조선의 돌화페

화페의 출현과 화페경제제도의 발전은 그 시대의 로동생산, 교환, 소비관계의 총체를 반영하며 경제발전면모를 엿볼수 있게 한다.

주체83(1994)년에 평양시 삼석구역 호남리의 표대유적에서 발견된 고조선시기의 경제발전을 보여주는 화페유물들이 학계의 주목을 끌고있다.

화페유물들은 4개의 문화층으로 이루어진 표대부락터유적의 1기층과 2기층, 3기층의 집자리들에서 드러났다.

이중에서 고조선시기의 화페들은 표대부락터유적의 2기층과 3기층에 놓인 집자리들에서 발견되였는데 모두 점판암을 원형으로 다듬고 가운데부분에 자그마한 원형구멍을 뚫어만든것들로서 형태상 서로 공통하였다.

또한 돌화페들은 외부직경이 42~84㎝정도이고 안쪽의 구멍직경이 3.5~16㎝, 두께가 3~8㎝정도로서 크기에서 별반 차이가 없었다.

돌화페들중에서 보존상태가 좋은것은 3기층의 6호집자리에서 나온것으로서 검푸른색에 갈색기운이 많이 섞인 점판암으로 제작되였다.

이 돌화페의 크기는 바깥직경이 60㎝이고 안쪽구멍직경이 5㎝, 두께가 7㎝정도였다.

주목되는것은 표대부락터유적에서 이러한 돌화페들이 1~2개정도의 적은 수가 아니라 고조선시기의 사람들이 살던 집자리유적에서 다량적으로 드러난것이다. 이것만 놓고보아도 당시의 사람들속에서 상품생산과 교환이 활발히 진행되였다는것을 알수 있다.

표대유적에서 알려진 돌화페유물들은 우리 나라의 첫 노예소유자국가인 고조선에서 일찍부터 상품화페관계가 발전하였고 경제생활에서 화페상품의 류통이 활발하게 진행되였다는것을 보여주는것으로서 우리 민족의 우수성을 잘 알수 있게 하는 귀중한 자료로 된다.

CAPTCHA Image
가+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