위대한 태양을 노래한 혁명시인 리찬​

우리 공화국의 자랑찬 70여년력사에 뚜렷한 자욱을 남긴 지식인들가운데는 불멸의 혁명송가김일성장군의 노래》와 더불어 영생하는 혁명시인 리찬선생도 있다.

리찬선생은 1910년 함경남도 북청군에서 출생하였다. 물지게장사를 하던 홀어머니의 눈물겨운 지성속에 서울에서 중학교를 졸업한 후 일본땅에 건너가 대학에 입학하여 고학하였으나 학비난과 일제의 박해로 1년도 못 채우고 중퇴당한 리찬선생은 《카프》의 성원으로 활동하면서 애국적인 시작품들을 창작한것으로 하여 여러차례 일제경찰에 체포구금되였다.

리찬선생은 1930년대 후반기에 위대한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한없는 동경의 마음을 담아 서정시 《눈내리는 보성의 밤》과 《국경의 밤》을 창작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안아오신 조국의 해방은 불우한 식민지청년이였던 그에게 운명전환의 계기로 되였다.

해방후 리찬선생은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신임으로 당시 함경남도 혜산군인민위원회 부위원장, 함남일보사 편집국장, 조선문학예술총동맹 중앙위원회 부위원장으로 사업하였다.

그는 주체35(1946)년 4월 위대한 수령님을 몸가까이 모신 자리에서 송시 《김일성장군찬가》를 지어읊었다. 련이어 그는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전체 조선인민의 다함없는 흠모와 칭송의 감정을 뜨겁게 노래한 영생불멸의 혁명송가김일성장군의 노래》의 가사를 창작하였다. 시인은 그이후에도 《3천만의 화창》, 《더욱 굳게 뭉치리 장군님 두리에》 등 위대한 수령님을 칭송하는 많은 작품들을 창작하였다. 뿐만아니라 그는 서정시 《나무 한그루 바로 못 선 고지에서》, 《자랑하노라 나의 조국》 등 많은 시들을 써서 우리 인민을 혁명투쟁에로 고무하였으며 우리 시문학의 발전에 이바지하였다.

리찬선생은 극도로 악화된 병을 걱정하며 입원치료도 받고 휴식할것을 권고하는 동지들에게 전사는 죽어도 고지에서 죽어야 하고 문필가는 쓰러져도 취재길에서 쓰러져야 한다고, 《김일성장군의 노래》를 쓴 자기가 그 누구보다 마지막발걸음을 빛나게 찍어야 한다고 말하였다.

그는 주체63(1974)년 1월 위대한 수령님의 신년사를 학습하다가 세상을 떠났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영생불멸의 혁명송가김일성장군의 노래》를 비롯하여 훌륭한 작품들을 많이 창작한 그에게 혁명시인이라는 값높은 칭호를 안겨주시였으며 그가 창작한 시작품들을 묶어 시집으로 출판하도록 크나큰 은정을 베풀어주시였다. 애국렬사릉에 그의 유해를 안치하도록 하신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그의 해방전 애국활동을 높이 평가하시여 반일애국렬사증을 수여하도록 해주시였으며 다부작예술영화 《민족과 운명》(《카프》작가편)의 주인공도 그를 원형으로 하도록 하시여 우리 인민이 혁명시인을 영원히 잊지 않도록 해주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주체99(2010)년 1월 혁명시인 리찬선생의 생일 100돐 추모모임을 애국렬사릉에서 진행하도록 하시였으며 그후에는 그가 위대한 수령님을 처음으로 만나뵈온 함흥땅에 그의 반신상을 세우도록 하시였다.

혁명시인 리찬선생은 오늘도 위대한 태양의 품속에서 영생불멸의 혁명송가김일성장군의 노래》와 더불어 조국과 인민의 기억속에 영생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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