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확실(1917.7.10-1938.4.27) ​

조선인민혁명군 지휘관이다.

화전민의 가정에서 출생하였다. 중국 동북지방의 연길현 8도구 룡수평 서골에서 14살의 어린 나이에 가난한 집 민며느리로 들어가 고역의 나날을 보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도밑에 진행된 추수투쟁에서 큰 혁명적영향을 받고 15살에 혁명투쟁에 참가하여 공청원으로, 부녀회원으로 자라났다. 주체23(1934)년 여름에 조선인민혁명군에 입대한후 처창즈유격구의 동남차수림속에서 작식대원으로 일하였다. 좌경배타주의자들과 종파사대주의자들에 의하여 《민생단》혐의자의 억울한 루명을 쓰고있다가 주체25(1936)년 4월 무송현 마안산에서 위대한 수령님께서 《민생단》문서장들을 불태워버리심으로써 정치적생명을 다시 받아안게 되였다. 그후 사령부직속녀성중대원이 되여 대영전투, 동강전투를 비롯한 수많은 전투에 참가하여 위훈을 세웠다. 특히 주체25(1936)년 8월 무송현성전투때에는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의 지휘밑에 녀대원들과 함께 잘루목을 목숨으로 지켜냄으로써 사령부의 안전과 부대의 전투승리를 보장하는데 크게 기여하였다. 이 전투에서 적을 단꺼번에 6명이나 찔러눕히고 전투공로를 크게 세운것으로 하여 위대한 수령님으로부터 《녀장군》이라는 별호와 함께 금반지를 표창으로 받았다. 이해 8월말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만강부락에서 혁명연극 《피바다》를 공연할 때 주인공인 어머니역을 훌륭하게 형상하여 이곳 인민들을 반일투쟁에로 불러일으키는데 이바지하였다. 그해 9월 부대가 장백현 대덕수촌에 머물렀을 때 망원초에서 보초를 서다가 갑자기 달려드는 200여명의 적들을 대담하게 자기쪽으로 유인하여 타격함으로써 사령부의 안전을 보장하고 부대의 작전에 유리한 조건을 지어주었다. 주체26(1937)년 6월 보천보전투때에 보천보시가지에 대한 정찰임무를 훌륭히 수행함으로써 전투승리에 기여하였으며 장백현 간삼봉전투때에는 기관총수가 부상을 당하자 사수를 대신하여 기관총을 틀어잡고 적들을 무리로 쓸어눕히는 영웅적위훈을 세웠다. 전투에서 영웅적으로 싸우다가 전사하였다.

대성산혁명렬사릉에 그의 반신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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