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득신(1754-1822)​

조선봉건왕조시기의 화가. 자는 현보, 호는 긍재, 홍월원이다. 도화서 화원으로서 숙조 첨사의 벼슬을 지냈다. 18세기 우리 나라 사실주의풍속화창작의 새로운 경지를 개척한 화가의 한사람이다. 일가친척들이 화원으로 있은 세습적인 도화서 화원가문에서 출생하였다. 당대 화단에서 중추적역할을 논 화가 김응환(1742-1789)은 그의 삼촌이였다.

김득신은 김홍도(1745-?)와 가까이 사귀면서 당시 사실주의회화의 전성기를 마련하는데서 중요한 역할을 놀았다. 그는 자기의 그림에 근로하는 인민들을 주인공으로 등장시키고 그들의 생활을 폭넓고 깊이있게 형상하여 당대의 계급신분관계와 경제생활, 세태풍속 등을 생동하게 펼쳐보이였다. 길가에서 우연히 만난 농민과 량반을 그린 《량반과 농민》, 강에서 고기잡이하는 모습을 그린 《천렵도》, 시장에서 무리지어 돌아오는 장군들을 그린 《귀시도》, 고양이에게 물린 병아리의 울음소리에 놀란 늙은 부부의 헤덤비는 모습을 형상한 《고양이를 쫓는다》 등 풍속화와 함께 산수화, 동물화 등을 남기였다. 그의 인물풍속화들은 묘사대상의 폭이 넓고 주제내용의 깊이가 있다. 풍속화들은 또한 구도를 잘 잡았고 구체적인 생활계기들을 재치있게 설정하였으며 섬세한 필치로 등장인물들의 성격을 예리하게 형상함으로써 개성적이면서도 세련되고 해학적이면서도 친근감을 안겨준다. 이밖에 《수하로승도》, 《신선도》와 같은 현실생활과 동떨어진 그림들도 남기였는데 이것은 김득신의 시대적 및 계급적제한성을 반영하고있다. 김득신은 형상의 폭과 묘사력에서 당대의 화가들인 단원 김홍도와 혜원 신윤복(1758-?)을 따르지 못하였으나 개성적인 인물풍속화의 우수한 작품들을 수많이 남긴것으로 하여 그리고 진지한 현실탐구에 기초한 생활계기설정에서의 뛰여난 재치, 인물성격형상에서의 예리성, 섬세성을 안받침한 생활묘사의 생동성과 현실반영의 진실성 등으로 하여 사실적인 인물풍속화발전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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