리린영(1867-1909)​

반일의병장.

리시영, 리인영이라고도 불렀다. 갑오농민전쟁 실패후인 1896년에 의병투쟁을 벌린적이 있었다. 일제침략자들이 《을사5조약》을 날조하자 리은찬(1878-1909), 리재구 등과 함께 다시 의병투쟁에 나섰으며 관동창의대장이 되여 강원도 홍천, 춘천 등지에서 활동하였다. 그후 경기도 양주에서 허위(1855-1908), 리강년(1861-1908) 등이 이끄는 의병부대와 련합군을 조직하고 13도창의대장(13도의병총대장)으로 되였다. 전국의 의병들이 앞을 다투어 그의 휘하에 모여들었는데 그 수는 1만명에 이르렀으며 소총으로 무장한 3 000명의 정부군도 이에 합류하였다. 그는 크게 확대된 의병부대를 이끌고 서울공격을 단행하다가 도중에 부친상을 당하여 부대지휘를 리은찬에게 넘기고 고향으로 돌아갔으며 결국 서울공격은 실패하고말았다. 그는 충청북도 황간지방에 은신하여있다가 일본헌병들에게 체포되여 희생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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