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적인 력사학자 김석형​

위대한 수령, 위대한 당의 현명한 령도를 받을 때에만 민족의 유구한 력사가 빛을 뿌릴수 있고 조상전래의 찬란한 문화도 만년재보의 가치를 가질수 있다.

이것은 당시 사회과학원 원장이였던 원사 교수 박사 김석형선생이 최고인민회의 제9기 제6차회의에서 한 토론내용인 동시에 그의 한생의 총화이기도 하다.

1915년 경상북도에서 태여난 김석형선생은 대학을 졸업한 후에 향락을 누릴수 있는 길도 있었지만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직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에 합세하기 위한 반일지하투쟁에 참가하였으며 원쑤들에게 체포되여 옥중에서 조국해방을 맞이하게 되였다.

해방후 남녘땅에서 교편을 잡고있던 그는 주체35(1946)년 어버이수령님께서 보내주신 위촉장을 받아안고 평양으로 와서야 새 조선의 학자, 교육자로서 참다운 인생의 첫걸음을 떼게 되였다.

주체41(1952)년 4월 김일성종합대학이 자리잡고있던 백송리를 찾아주신 그날 조국의 력사와 문화유산을 옳게 정립하고 체계화하는데서 나서는 주체적인 방법론을 하나하나 가르쳐주시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뜻을 가슴깊이 새기며 공화국의 력사학자된 긍지와 자부심에 더욱 충만된 그는 수령님께서 우리 나라 병제사를 쓸데 대하여 주신 영예로운 과업을 받아안고 온넋을 바쳐 불과 몇달만에 책을 집필완성하여 기쁨드리였다.

김석형선생은 그후 우리 나라 력사에 대하여 깊이있게 인식할수 있게 하는 《조선봉건시대 농민의 계급구성》을 비롯한 가치있는 도서, 론문들을 련이어 써냈는데 특히 고대일본에 미친 조선의 영향을 론증하고 일본반동사가들이 조작한 《임나일본부》설의 허황성을 까밝힌 도서인 《초기조일관계연구》는 세계력사학계를 놀래웠으며 일본에서도 대대적으로 번역출판되여 커다란 반향을 일으켰다.

김석형선생은 주체61(1972)년 우리 나라 대표단단장으로 일본에 가서 일본의 력사와 문화발전에 미친 우리 나라 특히 고구려의 거대한 영향력에 대하여 풍부한 력사적자료로 당당하게 론증하였다.

김석형선생은 절세위인들의 세심한 지도속에 우리 민족의 력사가 집대성된 《조선전사》를 훌륭히 집필완성하는데도 적극 기여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1960년대초 어느 한 나라의 수정주의자들이 우리 나라의 력사를 적지 않게 외곡한 도서를 집필출판하였을 때 김석형선생이 력사학자들과 함께 그 부당성을 신랄히 비판하여 쓴 글을 보시고 높이 평가해주시며 앞으로도 력사연구와 서술에서 주체적립장을 철저히 견지할데 대하여 가르쳐주시였다. 또 한분의 불세출의 위인을 높이 모신 크나큰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은 김석형선생이 세계 여러 나라들을 방문하면서 우리 나라의 빛나는 력사에 대하여 과학적론거를 가지고 배심있게 론증하며 세계력사학계가 인정하는 관록있는 학자로 명성을 떨칠수 있게 한 자양분이였다.

조국과 민족을 알고 애국의 신념을 지킬줄 아는 력사학자, 주체가 선 조선의 지식인으로 자라나도록 걸음걸음 이끌어주신 절세위인들의 그렇듯 크나큰 믿음과 사랑속에 어제날 불우한 식민지지식인이였던 김석형선생은 김일성종합대학 강좌장, 학부장으로,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소장, 고문으로, 사회과학원 원장으로,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으로 일하면서 재능있는 력사학자들을 많이 키워내고 우리 나라의 력사를 종합체계화하는데서 커다란 공적을 남길수 있었다.

조국이 기억하고 인민의 추억속에 영생하는 김일성훈장수훈자이며 김일성상계관인인 김석형선생의 값높은 삶은 위대한 태양을 모시여 민족의 력사도 빛을 뿌리고 개인의 운명도 빛난다는 진리를 다시금 뚜렷이 새겨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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