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시조 동명왕

반만년의 유구한 력사와 찬란한 문화를 가진 우리 나라의 전 력사를 더듬어보면 중세 동방의 《천년강대국》으로 그 위용을 널리 과시하였던 대고구려가 있었다. 당시 아시아에서 가장 발전된 나라의 하나로 이름떨친 고구려는 건국시조인 동명왕의 이름과 떼여놓고 생각할수 없다.

동명왕(고주몽)은 우리 나라 력사에서 첫 봉건국가인 고구려를 세운 시조왕이다. 낡고 뒤떨어진 세력들을 물리치고 새로운 봉건국가를 건립한 그는 주변의 수많은 소국들을 통합함으로써 강대한 고구려의 터전을 닦아놓았다.

그러면 우리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과 더불어 오랜 세월을 두고 자랑스럽게 전하고있는 동명왕은 과연 어떤 사람이였는가.

그는 B.C. 298년 4월 부여의 한 귀족(왕족)출신 청년인 해모수와 청하(압록강)남쪽지방 정치세력가 하백의 딸 류화사이에서 태여나 부여왕궁에서 성장하였다.

처음에는 부여왕실에서 왕자들과 비슷한 대우를 받으면서 살았으나 워낙 출중한 용력과 재능을 가지고있었던탓에 왕자들과 관료들의 시기와 모해를 받았다. 그는 활을 매우 잘 쏘았기때문에 《주몽》이라고 불리우게 되였는데 《주몽》이라는 말은 당시 부여사람들속에서 《활을 잘 쏘는 사람》이라는 뜻이였다.

때때로 그는 부여왕자들과 함께 사냥을 하군 하였는데 그때마다 왕자들보다 많은 짐승을 잡아 사람들을 놀라게 하였다.

그의 재주와 사람됨을 늘 시기하던 부여왕의 맏아들 대소는 어느날 왕에게 주몽을 그대로 두었다가는 앞으로 사직의 운명이 위태로울것이니 미리 화근을 제거함으로써 사직을 보존해야 한다고 말하였다.

부여왕도 태자의 말이 뜻없는 말이 아니라는것을 알았으나 그 한마디 말에 가볍게 처리할수도 없어 일단 말 기르는 일을 시켜놓고 주몽을 더 지켜보리라고 생각하였다.

한편 주몽은 날마다 궁중의 말 기르는 일을 하면서 자기의 기구한 처지를 생각하니 분한 마음을 금할수 없었다.

그러던 어느날 밤 그는 조용히 어머니에게 말하였다.

《어머니, 지체 높은 가문의 자손으로 태여난 제가 어찌하여 말먹이군노릇을 해야 하나이까? 그런것을 하느니 차라리 죽으니만 못하옵니다. 그래서 저는 남쪽으로 가서 새 나라를 세워볼 생각인데 어머니를 홀로 남겨놓고 떠나자니 마음이 괴롭고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소이다.》

《네 마음을 알겠다. 나도 그 일때문에 밤낮으로 속을 썩이고있는중인데 네가 그런 장한 뜻을 품었다니 이 에미도 기쁘다. 그러나 사내대장부가 집안일에 마음을 쓰면 큰일을 못한다. 그러니 한번 먹은 마음 변치말고 기어이 해내야 한다. 그런데 먼길을 가는 사람은 반드시 날랜 말이 있어야 하느니라. 내가 말을 고를줄 안다.》

이렇게 말한 어머니는 그길로 아들을 데리고 마구간으로 갔다. 마구간에 들어선 어머니는 긴 채찍을 휘둘러 말들을 마구 때리기 시작하였다.

이때 주홍빛 말 한마리가 사납게 울부짖으며 두길이나 되는 울타리를 훌쩍 뛰여넘었다.

그놈을 붙잡은 주몽의 어머니는 혀뿌리에 바늘을 찔러놓아 여물을 먹지 못하게 하여 비루먹은 말처럼 만들어놓고 다른 말들은 잘 먹여 살찌게 하였다.

그러던 어느날 마구간을 돌아보던 부여왕은 말들을 잘 기른 상으로 그에게 제일 여윈 주홍빛 말을 주었다.

주몽이 곧 바늘을 뽑고 잘 먹이자 며칠이 안되여 점차 준마의 자태를 드러내였다.

주몽은 마구간에서 일하면서 사회의 하층사람들과 사귀는 과정에 부여사회의 심각한 계급적모순과 대립에 대해서도 알게 되였다.

이렇게 그가 한창 건국대업을 이루기 위한 준비사업을 하고있을 때 부여왕자들과 관리들은 주몽을 없애버릴 흉계를 꾸미고있었다. 부여왕자들과 관리들의 모해가 날이 갈수록 로골화되자 주몽의 어머니 류화는 이미부터 점찍어두었던 처녀를 며느리로 맞아들였다.

그것은 주몽이 장가를 들어 바깥일에는 전혀 무관심하고 안해에게 빠져버린것처럼 보임으로써 왕자들의 의심도 풀고 안심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러나 그렇게 해서도 왕자들과 관리들의 눈을 속일수 없었다.

이제 더는 어쩔 도리가 없다고 생각한 류화는 어느날 주몽을 앉혀놓고 사나이 품은 결심 변치 말고 꼭 대업을 이루어야 한다고 그의 등을 떠밀었다.

주몽이 집을 나서자 어머니 류화와 안해 례씨가 동구밖까지 따라나섰다.

이렇게 사랑하는 어머니와 안해를 하직하고 그는 평소에 친하게 지내며 뜻을 같이하던 오이, 마리, 협보 세사람과 함께 길을 떠났다.

그러나 주몽은 이것이 어머니와의 마지막리별로 될줄은 꿈에도 생각하지 못하였다. 류화는 주몽이 나라를 세운지 13년후인 B.C. 264년에 세상을 떠났다.

주몽은 어머니와 안해의 부탁을 잊지 않고 기어이 새 나라를 세우리라 결심하고 다시 말에 올랐다. 도중에 그는 당시 사회의 불합리성을 깨닫고 그것을 개변하기 위하여 길을 떠난 청년들을 규합하였다.

그후 부여의 이웃나라인 구려에 자리를 잡은 그는 얼마후 유력한 귀족가문출신의 젊은 과부인 소서노의 후원으로 정치군사적지반을 닦아나갔다. 워낙 지략과 용맹이 뛰여난 그인지라 구려에서도 능숙한 정치군사적수완을 발휘하였다.

주몽은 점차 구려사람들의 높은 평가를 받았고 그의 명성도 급속히 높아지게 되였다.

B.C. 278년 한해가 다 저물어가던 어느날 주몽은 국왕을 만나기 위하여 대궐에 들어갔다.

구려왕은 주몽의 성품과 뛰여난 지략에 대뜸 현혹되였다.

그후 주몽을 만나는 도수가 잦을수록 왕의 기대와 관심은 나날이 커갔다.

사실 그에게는 명치끝에 검질기게 달라붙어 떨어지지 않는 한가지 걱정이 있었다.

그것이 바로 자기의 뒤를 이어줄 아들이 없는것이였다. 그런데 요즘 무술과 용맹을 겸비하고 성품이 강직한 주몽을 대하게 되자 그의 마음에는 파동이 일기 시작하였다.

날이 갈수록 국왕의 가슴속에는 어느덧 주몽을 사위로 삼아 자기의 대를 잇게 하리라는 결심이 무르익어갔다. 드디여 결심을 내린 국왕은 주몽에게 나라의 장래를 맡길 생각으로 자기의 둘째딸과 짝을 뭇게 하였다. 당시는 일부다처제가 허용되던 시기였다.

그로부터 얼마후 왕이 급병으로 죽자 주몽은 그의 뒤를 이어 구려국의 합법적인 통치자로 되였다.

뒤이어 구려땅을 뒤흔드는 사변들은 련이어 닥쳐왔다. 주몽이 당시까지 지배적이던 노예소유자적관계를 대신하는 새로운 봉건적질서를 세우기 시작한것이였다.

그리고 나라이름도 종전의 국호에 높을 고(高)자를 붙여 고구려라고 하였으며 고로서 자기 성을 삼았다. 이렇게 되여 B.C. 277년 우리 나라에서 첫 봉건국가 고구려가 력사무대에 등장하게 되였다.

고주몽은 이 나라의 천기와 슬기로운 기개를 타고난 고구려의 첫 임금이였으며 당시 22살의 청년호걸이였다.

오래동안 고대하던 새 인물을 맞이한 고구려는 앞으로 줄달음치기 시작하였다.

고주몽은 나라의 기틀을 마련한 다음 주변소국들을 련이어 통합하였다. 건국한 이듬해에는 비류국왕 송양이 스스로 투항하여왔으므로 그를 다물후로 삼았다.

건국후 몇해어간에 령역도 확장되고 주민들도 늘어나게 되자 고주몽은 봉건왕권의 권위를 높이며 이웃나라의 있을수 있는 침입에 대처하기 위하여 졸본(오늘의 중국 료녕성 환인현)지방에 수도를 정하고 B.C. 274년 7월 졸본성을 쌓고 왕궁과 관청들을 건설하게 하였다. 그후에도 그는 국력을 더 늘이기 위하여 통합전쟁을 부단히 벌려 2년후인 B.C. 272년 10월 행인국을, B.C. 168년 11월에는 북옥저를 공격하여 점령하고 그 지역들을 성읍(고을)으로 만들었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오늘의 함경북도일대, 연해주 남부지방까지 차지하게 되였다.

건국초기에 기껏해서 압록강중류와 혼강(압록강의 한 지류)중하류일대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에 국한되여있던 고구려는 10년후에는 사방 2 000리라는 넓은 령토를 가진 나라로 장성하였다.

B.C. 259년 9월 고주몽은 40살을 일기로 복잡다단하였던 자기 인생을 끝마치였다.

이렇게 동명왕은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서 봉건시대의 시초를 열어놓고 천년강대국 고구려의 터전을 튼튼히 마련함으로써 민족사발전에 크게 기여하였다.

그의 시호인 동명왕은 바로 동방을 밝게 한 임금이라는 뜻에서 붙여진것이다.

고구려사람들은 건국위업에 바친 그 업적을 영원히 기념하고 후손들에게 전하기 위하여 룡산에 그의 무덤을 크게 만들었다. 지금 평양시 력포구역 룡산리에 있는 동명왕릉은 고구려가 427년에 수도를 국내성으로부터 평양으로 옮길 때 옮겨온것이다.

고구려는 참으로 수많은 사건과 사변들로 자기 발전의 자욱을 자랑스럽게 새겨왔으며 중세동방력사에서 그 강대성을 힘있게 과시하였다.

오랜 세월이 흘렀어도 우리 인민들은 지난날 우리 나라를 동방의 강대국으로 만든 고구려의 건국자 동명왕을 잊지 못해하며 두고두고 전설처럼 이야기하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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