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역자의 말로​

흘러간 력사의 갈피마다에는 나라와 겨레를 위해 자기 한몸을 서슴없이 바친 애국자들과 함께 더러운 제 한목숨때문에 조국과 민족을 배반한 인간쓰레기들의 비참한 말로에 대한 교훈적인 이야기도 있다.

여기서 이야기하게 되는 고조선을 멸망하게 한 반역자들의 마지막운명은 반역자들의 말로가 얼마나 비참한것인가를 교훈적으로 보여주는 생동한 증거이다.

중국의 력사책인 《사기》와 《한서》에는 B.C. 2세기말에 벌어졌던 고조선-한전쟁의 력사적내용이 기록되여있다.

기록에 의하면 고조선-한전쟁은 두 나라의 운명을 건 큰 전쟁으로서 병력동원의 규모와 치렬성, 시간적지속성에서 그때까지 류례가 드문 전쟁이였다. 한두번의 회전으로 끝난 동서방의 고대초기에 있었던 전쟁과는 달리 이 전쟁은 근 2년간에 걸쳐 공방전을 거듭한 비교적 장기적이고도 간고한 전쟁이였다.

운명적인 이 전쟁에서 고조선이 패망하게 된 주요한 원인의 하나가 반역자들이 왕과 애국명장을 살해하고 적들에게 투항한 결과이라는것은 이미 세상에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고조선-한전쟁에 참가한 한나라의 관리들로서는 최고지휘를 맡은 좌장군 순체와 루선장군 양복, 좌장군 수하장수인 졸정 다, 무제의 특사로 파견되였던 위산과 공손수 등을 들수 있다. 그런데 이자들에게는 고조선군민의 용감한 항전에 의하여 한나라군대가 여지없이 참패당한 후과로 결국 전쟁과정과 전쟁이 끝난후에 그들에게 《승리의 월계관》이 아니라 모두 참형의 《단두대》가 차례졌다.

력사기록에 의하면 《좌장군은 졸정 다를 시켜 료동군사를 이끌고 먼저 싸우게 하였으나 패하여 흩어졌으며 다가 도망쳐돌아오니 그를 법에 의하여 목베였다.》라고 하였다. 적군장수의 첫 죽음은 전장에서 《영예롭게》이루어진것이 아니라 패전의 책임을 지고 자기 편의 칼끝에서 목이 떨어진것이였다.

그후 한나라 무제는 전쟁이 지연되고 두 장수가 전과를 올리지 못하게 되자 위산과 제남태수 공손수를 2차에 걸쳐 파견하여 사태를 수습하게 하였다. 그러나 그들도 맡은 직분을 제대로 수행하지 못하였다고 하여 각각 목이 잘리웠다.

뿐만아니라 한무제는 전쟁이 끝난 다음 침략군의 총사령관이였던 좌장군 순체가 돌아오자 공로를 독차지하려고 서로 질투하고 흉계를 꾸민 죄로 목을 잘랐고 루선장군 역시 군사를 이끌고 렬구에 이르러 좌장군을 기다리게 되여있었으나 함부로 먼저 쳐들어가 패배하여 많은 군사를 잃었으므로 마땅히 목이 잘리워야 하겠으나 그가 숱한 재물을 바치였으므로 죄가 용서되고 평백성으로 되였다.

결국 전쟁에 동원되였던 장수들가운데서 전장에서 싸우다 죽은 장수는 없고 모두가 패전의 책임으로 목을 잘리웠으며 살아남은 한놈도 장군의 직위에서 떨어져 평백성으로 되였다. 한나라는 비록 전쟁에서 《승리》하였다고 하는데 표창받은 적장은 한사람도 없고 대부분이 사형을 당하였던것이다.

반대로 고조선의 투항변절자들은 비록 일시적이기는 하지만 모두 제후로 책봉되였다. 이 대조적인 현상은 한나라군대가 싸움을 잘해서가 아니라 고조선통치층안에서 나타난 변절자들의 투항때문에 고조선이 무너졌다는것을 보여주고있다.

그러면 동족을 해치고 원쑤에게 《승리》를 가져다준 배신자들에게 력사는 과연 어떠한 운명을 안겨주었던가.

전쟁이 장기화되고 형편이 어려워지자 투항분자들이 나타났다. 조선상 로인, 한음, 니계상 참, 장군 왕협 등은 신심을 못가지고 동요하면서 비겁하게 우거왕에게 투항을 설교하였다. 저들의 더러운 정체가 드러나 애국의 량심에 의하여 준엄한 처벌을 받게 된 로인과 한음, 왕협은 한나라로 도망쳤고 간악한 니계상 참은 우거왕을 살해하였다. 우거왕의 측근 대신이였던 성기가 또다시 반한투쟁의 기치를 들었으나 투항한 로인의 아들 최는 우거왕의 아들 장각과 함께 성기를 또다시 살해함으로써 애국세력에 치명적손실을 주고 한침략군에게 결정적인 《승리의 계기》를 마련해주었다.

바로 이 《공로》로 하여 한나라 무제로부터 참은 획청후, 한음은 적처후, 왕협은 평주후, 장각은 기후, 최는 렬양(강)후의 제후감투를 썼다고 한다.

나라를 팔아먹은 더러운 대가로 일시적이나마 반역자들은 제후의 감투를 썼지만 결국 산설고 물설은 이국땅에서 그들에게 차례진 운명이란 천대와 멸시뿐이였고 그속에서 더러운 한목숨조차 부지하지 못하고말았다.

더러운 목숨때문에 제일먼저 투항한 조선상 로인은 투항도중 길가에서 죽어버리였다. 그가 말똥에 묻혀도 살아보자고 반역의 걸음을 내디디였다가 황토길에서 비명에 횡사한것은 혹시 그의 몸종이 상전의 역겨운 반역에 의기가 동하여 좁은 놋단검의 예리한 칼끝으로 그놈의 더러운 몸뚱이에 맞구멍을 뚫어놓은것으로도 생각된다.

그 애비에 그 자식이라고 애비의 뒤를 따라 애국장군 성기를 살해하고 투항하였던 로인의 아들 최는 제후로 책봉된지 5년도 채 못되여 뒤를 이을 자식 하나 남기지 못하고 죽고말았다.

목숨이 아까워 전장을 버리고 달아난 왕협도 제후로 책봉되여 4년을 넘기지 못하고 죽었다.

아버지 우거왕의 뜻을 배반하고 변절자들의 강요에 못이겨 역시 투항의 길에 나섰던 우거왕의 아들 장각은 B.C. 107년 기후라는 벼슬을 받았으나 자기의 어리석음을 깨닫고 고조선유민들과 반한투쟁을 꾀하다가 탄로되여 6년만에 비참한 죽음을 당하고말았다. 우거왕을 살해하였던 니계상 참은 B.C. 99년 투항한지 9년만에 고조선의 탈주자를 감추어주었다는 죄목으로 감옥에 갇히워 병사하였고 그의 제후국도 페지되고말았다.

투항변절자들가운데서 그래도 좀 오래 살았다고 하는 한음도 결국은 투항후 16년만에 죽고 무제는 한음의 아들이 아버지의 지위를 계승하지 못하게 하였으며 마지막후국마저 페지해버리고말았다.

한나라 무제는 처음 그들이 투항하여왔을 때에는 후작이요 뭐요 하며 대우를 해주는척하였으나 《승리》의 열기가 식기 바쁘게 그들을 거치장스럽고 쓸모없는 존재로 가차없이 차버리였다. 뿐만아니라 무제는 자식들이 투항분자들의 뒤를 잇지 못하게 하고 그의 제후국마저 페지해버렸다.

쓸모가 있을 때는 품에 안지만 사냥개로서의 가치가 떨어지게 되면 주저없이 내동댕이치는것, 이것이 바로 침략자들이 변절자들을 대하는 방식이라는것은 력사가 주는 교훈이다.

나라와 겨레를 배반한 반역자들이 적들의 품에서 일시 《환대》와 《대우》를 받을수 있을지라도 태를 묻은 고향산천을 영원히 떳떳이 밟을수 없으며 대를 두고 저주와 규탄을 면할수 없다는것은 고조선반역자들의 말로가 보여주는 또 하나의 귀중한 교훈이라고 할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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