면도날 못지 않게 예리한 잔돌날​

세석기라고 하는 자그마한 석기에서 가장 대표적인것은 잔돌날이다. 작은 돌날이라는 의미에서 잔돌날이라고 한다. 잔돌날을 떼여내고 남은 속돌은 잔돌날속돌이라고 한다. 잔돌날은 《조립식도구》의 끼움날로 많이 쓰이기때문에 유적들에 잘 남지 않고 잔돌날을 떼여낸 잔돌날속돌이 주로 남아 유적의 문화적특징을 나타낸다.

돌날은 베고 자르는 기능을 수행하는 구석기시대의 날있는 석기가운데서 가장 발전된 석기의 하나이다. 잔돌날은 돌날가운데서도 가장 발전된것이라고 할수 있다.

잔돌날은 좁고 긴 삼각기둥모양의 작은 격지(길이가 너비의 2배이상 되는 평평한 쪼각돌)인데 이것은 주로 우리 나라를 비롯하여 중국, 몽골, 로씨야의 씨비리, 일본 등 동북아시아와 알라스카, 카나다 등 북아메리카일대의 넓은 지역에 분포되여있다. 정교한 기하학적형태를 갖춘 세석기의 한 종류인 잔돌날은 구석기시대 후기 중엽에 출현하여 중석기시대를 거쳐 신석기시대 초기까지 존재하였다.

우리 나라에서는 잔돌날속돌이 황해북도 승호군 만달리유적을 비롯하여 14개소에서 알려졌다. 만달리유적은 거기에서 동굴히에나와 같은 중부갱신세 말엽의 사멸종이 발굴된것으로 보아 구석기시대 후기의 유적이라고 인정된다. 중석기시대의 유적은 지질학적으로 현세에 형성되기때문에 사멸종의 짐승화석이 나올수 없다.

잔돌날은 그대로 긁개나 밀개와 같은 도구로 직접 쓰기도 하였으며 《조립식도구》의 끼움날로 리용되기도 하였다.

이 돌날에 날을 세울 때에는 눌러뜯기수법을 적용하였다. 눌러뜯기는 작고 얇은 쪼각돌을 뜯어내여 날을 세우는 수법인데 그것은 떼여내기가 쉬운 흑요석의 경우에도 너비 1.8cm, 길이 5cm이상 되는 격지에는 적용할수 없는 부족점을 가지고있기는 하지만 반면에 두께가 0.2~0.3mm되는 예리한 날을 세울수 있게 한다. 날의 두께는 오늘날의 면도날에 견줄만 하다.

우리 나라에서 발견된 잔돌날을 두고 어떤 학자들은 그것이 씨비리에서 들어왔다고 하고있다.

그러나 이것은 허황한 억지주장이다. 우리 선조들은 독자적으로 잔돌날속돌을 창조하고 발전시켜 그것을 씨비리 등 주변지역에 전파보급하였지 발전된 다른 나라의 잔돌날속돌을 받아들인것이 아니다. 그 근거를 두가지를 들어 명백히 말할수 있다. 하나는 우리 나라에서 잔돌날속돌이 나온 만달리유적에서 조선사람의 모습을 지닌 신인단계의 인류화석이 발견되였다는데 있다. 《만달사람》은 형태학적특징, 그의 얼굴생김새로 보아 씨비리에서 들어온 《나그네》인것이 아니라 현대조선사람의 직계선조이며 아직 잔돌날을 쓰지 않던 우리 나라 이른 시기의 신인화석인 《룡곡사람》의 후예라는데 있다. 다른 하나는 우리 나라에서 잔돌날속돌을 남긴 유적이 동북아시아에서 가장 이르다는데 있다. 절대년대를 측정한데 의하면 잔돌날속돌을 남긴 유적의 년대가 우리 나라에서는 2만년전을 넘어서는데 씨비리에서는 어느 유적도 2만년전에 이르는것이 하나도 없다. 이른 시기의것이 늦은 시기의것에서 올수는 없는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는 구석기시대문화에서 가장 발전된 잔돌날속돌의 발원지의 하나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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