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머니를 따르는 사람들

사람은 동물계에서 분리된 첫시기부터 혼자서가 아니라 집단을 이루고 살았다.

사람이 만일 제각기 행동했다면 짐승들과 비슷한 상태에 머물러있었을것이다.

집단생활은 수십만년의 기간을 통하여 비로소 자연계에서 인간으로 진화할수 있게 한 중요한 요인이다.

영국의 기자이며 작가인 다니엘 디포가 쓴 유명한 소설 《로빈손 크루소》의 내용이 그것을 잘 보여주고있다.

소설에서 주인공은 뜻밖에 바다에서 표류하여 무인도에 올라 28년이라는 기나긴 세월 혼자서 생활을 개척한다. 그는 자기의 힘으로 집도 짓고 짐승도 잡고 농사도 짓는다.

무인도에서 고난에 찬 생활을 하다가 끝끝내 배를 만나 고국으로 돌아오는 로빈손 크루소의 형상을 통하여 작가는 독자들에게 사람이 아무리 불행한 처지에 빠져도 리성에 의거하여 꾸준하고 인내성있는 노력을 기울인다면 능히 자기 앞길을 개척할수 있다는것을 심어주려고 하였다.

그러나 그것은 어디까지나 과장과 허구가 섞인 문학작품이다.

인간이 홀로 28년간이나 생활한다는것은 그렇게 간단하고 랑만적인것이 아니다.

실지로 로빈손 크루소의 원형인 선원의 섬생활은 그렇게 순조롭지 못하였던것 같다. 디포는 실지 있었던 어느 한 선원의 이야기를 소재로 하여 소설을 썼는데 그 선원은 배안에서 일어난 폭동의 주모자였다. 그는 처벌로 대양 한가운데에 있는 무인도에 혼자 내던져졌다.

세월이 흐른 뒤에야 그 섬을 찾아간 사람들은 그 선원이 짐승처럼 완전히 야생화되여 사람의 말도 제대로 할수 없게 된것을 발견하였다. 사람이라기보다는 짐승에 훨씬 가까운 상태에 놓여있었다고 한다.

이것으로 미루어보면 현대의 사람도 만일 혼자 떨어져산다면 사람으로 살아나가기가 매우 어렵다는것을 알수 있다. 하물며 창조력이 미약했던 원시인의 경우에는 더 말할것이 없는것이다.

사람은 모두 함께 살면서 힘을 합쳐 생활하였기에 그렇게 큰 짐승인 코끼리와도 싸워이길수 있었고 그렇게 무서운 공포의 대상이였던 불도 자기의 손끝에서 피워올릴수 있었다.

사람이 시작한 원시무리생활은 원인들과 고인들이 살던 100만년의 장구한 기간 지속되였다.

원인단계에서도 사람들이 원시무리라는 집단을 이루고 살기는 하였지만 그것은 째이지 못하고 견고하지도 못하였다. 그들의 집단생활에는 언제나 평온만이 깃든것이 아니였다.

중국 베이징시 주구점유적에서 알려진 원인들의 화석가운데는 치명적인 타격을 받은 흔적이 뚜렷한 머리뼈들이 적지 않은데 그것들은 몽둥이나 격지, 주먹도끼와 같이 예리한 석기에 맞아 생긴 흔적들이였다.

이것은 원인단계에 동물적인 리기심으로부터 출발한 집단안의 성원들사이의 충돌이 빈번하였다는것을 말하여준다.

그러나 고인단계에 와서는 이미 사람들속에 자기 집단에 대한 관념이 생겨났으며 그들이 이루고 산 원시무리도 어느 정도 공고하게 결합되였다. 자연적인 분업과 집단적인 생산로동, 불에 대한 공동관리 등은 고인들의 사회생활에서 앞선 시기에는 볼수 없었던 변화를 가져왔던것이다.

그러나 집단안의 단합은 원시무리의 발전을 촉진시키기만 한것이 아니였다.

고인단계에 와서 사람들의 창조적능력이 높아지고 생산활동분야가 넓어지는데 맞게 한 집단의 범위에서 벗어나 다른 집단들과의 련계를 필요로 하였지만 원시무리상태로서는 그러한 접촉과 교류가 거의나 이루어지지 않았다. 단지 하나의 고립된 생활단위로만 남아있을뿐이였다.

혼인관계에서 그 필요성은 더욱더 절박하게 나섰다. 고인들의 무리에서는 근친결혼이 더욱 우심해져 자연도태와 같은 현상들이 빈번히 나타났다. 근친결혼은 생물학적으로 유기체를 퇴화시키는 유해로운것으로서 원시무리자체의 운명을 위협하고있었다.

원시무리가 안고있는 이러한 제한성은 결국 앞으로의 심각한 사회적변혁을 예고하는것이기도 하였다.

이러한 요구를 반영하여 발생한것이 바로 씨족제도이다.

씨족은 집단적로동을 둘러싸고 혈연적으로 맺어진 견고하고도 항구적인 그리고 긴밀히 련합된 집단인 동시에 사회생활의 기본단위였다.

사람이 최초에 형성한 씨족은 모계씨족공동체였다.

어느 씨족에서나 녀성들이 자연히 씨족성원들의 존경을 받았고 남성들보다 권위가 있었다.

그렇다면 어떻게 되여 녀성들이 씨족에서 주도적인 위치를 차지하게 되였겠는가?

당시 녀성들은 공동체의 살림살이를 꾸려나가는데서 주인의 역할을 수행하였다.

지금도 녀성들을 가정의 주부라고 부르는것은 녀성들이 한가정의 살림을 맡아 꾸려나가는 위치에 있기때문이다.

분업이 존재하였던 구석기시대 후기에 녀성들은 주로 채집을 하면서 씨족과 집안의 살림을 맡아보았다. 사냥해온 짐승을 손질하고 털가죽으로 옷을 지으며 식량을 저축하고 보관할뿐아니라 음식물을 가공하는 등 씨족의 크고작은 일을 조절운영해나가는데서 주인은 녀성들이였다.

남자들은 맹수들과 싸우며 사냥을 하느라고 떠돌아다니다나니 씨족의 살림에는 거의나 관심을 돌릴새가 없었다. 게다가 사냥이 실패하여 빈손으로 돌아와 녀성들앞에 얼굴을 내밀기가 멋적을때도 많았다.

녀성들의 손에서 음식도 지어지고 옷도 만들어지고 아이들도 키워졌다.

남자들의 눈에는 사람이 살아가는데 필요한 모든것이 마치도 녀성들의 손에서 다 이루어지는것만 같이 보였다.

사냥에서 돌아온 남자들에게 언제나 포근하고 아늑한 보금자리를 마련해주고 배불리 먹도록 음식을 차려주는 녀성들이 고맙기 그지없었다.

녀성들의 모습은 남자들과 온 집단의 명맥을 틀어쥔 자못 위엄스럽고 거룩한 군상이였다.

남자들이 녀성들을 그렇게 존경하는 세월에 아이들이라고 달리 될수 없었다.

자식들에게는 자기 어머니만큼 귀중한 존재가 없다. 하물며 자기 아버지를 모르고 지내던 그 시절에야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그때는 오늘날처럼 아버지, 어머니와 아이들이 단란하게 모여살지 않았다.

아버지란 사람은 혼인생활을 하는 기간에만 림시로 찾아들던 다른 씨족의 손님에 불과하였다. 이따금씩 오군 하는 아버지는 아이들과 아무런 관계도 없는 사람이였으며 아이들은 아버지에게 그 어떤 존경심도 품지 않았다.

오직 어머니밖에 몰랐다.

자연히 씨족은 어머니편으로 퍼진 자손들로만 이루어지게 되였다.

씨족의 집단생활에서 녀자는 한집안의 가장이였고 때로는 씨족의 우두머리이기도 하였다.

남자들우에 군림한 녀성들의 모습과 권위는 언제가도 변함이 없을듯 싶었다.

모계씨족사회는 발생한 그때부터 수만년세월이 흘러가서야 부계씨족사회로 이행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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