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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막치기전술에 녹아난 《정 안 군》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항일무장투쟁시기 홍두산전투를 승리적으로 결속하신 다음 곧 부대주력을 이끄시고 중국 장백현 하강구방향으로 내려가시였다.

적들이 백두산주변일대에 다시금 대병력을 집중하여 대대적인 수색전을 펴고있는 조건에서 새로운 군사작전을 벌리기 위해서는 놈들의 주의를 다른데로 돌려야 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의 하강구방향에로의 이동은 적《토벌》력량을 분산시켜놓고 혼란을 조성한 다음 적의 《동기대토벌》을 결정적으로 분쇄하려는 전술적이동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6(1937)년 2월 중순 부대가 요방자근방마을에 이르자 숙영명령을 내리시고 도천리에 정찰조를 파견하시였다.

요방자부근에서 도천리까지는 30여리정도였다.

정찰조원들은 마을로 내려가던 도중 마침 적정통보를 가지고 부대를 찾아오던 도천리지하조직원을 만나게 되였다.

그가 가져온 통보에 의하면 위대한 수령님의 독창적인 전법의 하나인 대소부대유인전법에 걸려들어 이 골짜기, 저 골짜기로 끌려다니며 혼쌀이 난 《정안군》놈들이 이날 저녁에 도천리에 들린다는것이였다.

또한 도천리까지 가려면 봇나무, 자작나무, 가시나무와 키가 넘는 갈대들, 새초풀들이 얼기설기 뒤엉킨 무연한 소로길을 지나야 한다는데 대하여서도 보고드리였다.

이러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오중흡을 부르시여 수백명의 《정안군》놈들이 도천리로 온다고 하는데 사기도 저락되고 행군대오도 무질서한 놈들을 가시덤불속으로 끌고다니면서 토막을 내여 족쳐 놈들의 맥을 쭉 뽑아놓으라고 구체적인 전투임무를 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소부대유인전으로 적들을 잔뜩 피로하게 만든 다음 대부대매복전으로 모조리 소멸할것을 계획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2개 소대의 력량으로 유인조를 조직하여 등판의 올리막중턱에 배치하시고 주력부대의 기본력량인 제7, 8련대는 전진을 계속하도록 명령하시였다.

오중흡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명령하신대로 13도구골짜기와 14도구골짜기사이에 놓인 무연한 가시덤불속으로 적들을 끌고다니면서 토막쳐 족치기 위하여 골짜기어귀와 막바지에 2개의 매복진을 치고 유인조를 파견하였다.

유인조성원들은 도천리로 가는 큰길가까이에 몸을 숨기고 적의 행군종대가 나타나자 그 선두대렬에 일제히 불의사격을 가하였다. 그리고는 재빨리 몸을 피하여 매복조들이 잠복하고있는 가시덤불등판으로 이동하였다. 그것을 알리 없는 적들은 무작정 그들의 뒤를 쫓았다.

가시덤불은 적들에게 있어서 가시철조망과 같은 장애물이였고 그 때문에 적의 대오는 자연히 토막토막 끊어지게 되였다. 이때 매복조성원들이 적대렬의 도간도간에 불소나기를 들씌웠다. 적들은 골짜기를 따라 올리뛰고 내리뛰고 하면서 갈팡질팡하다가는 눈우에 피를 뿌리며 꼬꾸라졌다.

수백명의 적들이 위대한 수령님의 토막치기전술에 걸려 녹아나고말았다. 적들은 날이 어슬어슬해지기 시작하자 수많은 사상자들을 전장에 그대로 내버리고 도천리부락으로 도망쳤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천리지하조직으로부터 적들이 그날 밤중으로 저들의 소굴로 돌아갈것 같다는 통보를 받으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부대의 집결장소에서 도천리앞도로까지 가려면 적어도 2시간나마 걸려야만 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그 도로계선에 가닿을 시간을 얻으려면 구실을 만들어 적의 출발시간을 지연시켜야 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도천리지하조직에 될수록 적들의 저녁식사준비를 질질 끌라는 지시를 주시였다.

그리하여 도천리마을 사람들은 닭의 목을 비튼다, 쌀을 찧는다 하며 큰 《성의》라도 베푸는듯이 하면서 놈들을 붙잡아두었다.

적들은 한밤중이 거의나 되여서야 마을에서 떠나게 되였다. 그때는 이미 조선인민혁명군 부대가 도천리앞의 큰길 좌우에 매복을 끝내고 반시간가까이 적들을 기다리고있을 때였다.

하루종일 굶으면서 인민혁명군의 전술에 맥을 뽑다가 배가 터지게 저녁밥을 처먹은 놈들은 식곤증이 왔던지 맥을 놓고 걸음을 옮겼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이 매복권안에 완전히 들어섰을 때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이 매복전에서 조선인민혁명군 대원들은 《정안군》부대를 완전히 소멸하였다.

새초가 깔린 등판에 적의 주검이 한벌 널리였다.

유격대원들은 그 시체들에서 총만 벗겨가지고 유유히 철수하였다.

이 시체를 실어나르는데만 해도 24마리의 소가 동원되였다. 소발구 하나에 주검 9구씩 싣고 13도구까지 날라갔다는것이다.

이때부터 도천리사람들속에는 《소발구 하나에 아홉개씩 스물네발구면 모두 얼마요?》라는 류다른 통용어가 하나 생겨나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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