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작성주 소부손의 용전​

이 력사이야기는 648년 고구려의 박작성의 성주였던 소부손의 지휘밑에 당나라침략군을 몰아내기 위한 싸움의 일단을 전하고있다.

648년 6월 말 고구려의 서북방에 위치하고있는 박작성(압록강하류의 한지류인 애하동쪽에 있는 호산두산성)은 아비규환의 싸움마당으로 화하였다.

군사들의 고함소리가 병쟁기들이 마주치는 소리와 한데 뒤엉켜 성벽을 뒤흔들고 하늘땅을 진감하였다.

《외적의 무리들을 사정보지 말고 쳐라!》

싸움이 한창 고조를 이루고있을 때 왼손에 붕대를 감은 한 사나이가 오른손에 틀어잡은 장검을 휘둘러대며 웨치고있었다.

그의 웨침소리에 화답하며 성우의 군사들은 더욱 기세가 등등하여 성밖에 몰켜있는 적들을 호되게 답새겼다.

화살과 창이 비발치듯 적들의 머리우로 쏟아지고 그에 뒤질세라 불뭉치와 돌벼락이 날아 내렸다. 성밑에는 화살에 맞아죽고 찔려죽고 불타죽은 시체들이 너저분했다.

《하하하- 잘한다.》

사나이는 또다시 호탕한 웃음을 터뜨렸다.

그가 바로 이 박작성의 성주 소부손이였다.

그리고 그의 지휘밑에 박작성의 군민이 호되게 족쳐대고있는 성밑의 적들은 여러해째 고구려를 침략하고있는 당나라군사들이였다.

3년전인 645년에 근 100만의 대병력을 내몰아 고구려를 침공했다가 패전의 쓰디쓴 맛을 본데다가 고구려군사의 화살에 맞아 외눈깔신세가 되여 제 소굴로 쫓겨갔던 당태종은 여기서 교훈을 찾기는커녕 황제의 체면이 깎이운 울분을 참을수 없어 647년에 이어 그 이듬해에도 또다시 군사들을 고구려침략에로 내몰았다.

정말 제버릇 개 못주는격의 처사였다. 하기는 612년에 수양제가 300만의 대군을 가지고도 함락시키지 못했던 료동성을 자기가 함락하였다는 쾌감에 도취되여 이제는 자기 배속에 든것과 다름없다고 여겼던 안시성에서 대참변을 당하고 한쪽 눈까지 멀고보니 그 아쉬움과 통분함에 분별을 잃을만도 하였다.

당태종은 설만철을 우두머리로 하는 3만명의 갑사(정예군사)들을 350척의 배에 태워 산동반도의 래주를 출발시켰다. 이것은 보병과 기병을 리용하여 주로 륙지로 해서 쳐들어가던 종전의 전술과는 달리 이번에는 바다길로 하여 불의에 고구려의 전선배후를 들이치려는 시도에서였다.

설만철을 놓고 말하면 그자신은 당고조의 딸인 단양공주와 결혼하여 부마도위로 된 자였다. 그리고 그의 애비인 설세웅은 30여년전 612년에 침략군의 한개 부대를 이끌고 수양제를 따라 고구려에 쳐들어왔다가 고구려의 반격을 받고 도망치던 중 백석산(백사산)에서 100여겹이나 되는 고구려의 포위속에 들었다가 간신히 목숨을 건지기는 하였으나 숱한 병졸들을 죽이고 잃은 죄로 파면까지 당했었다. 그러다가 그 다음해인 613년에 수나라가 다시 고구려를 침략하였을 때에 또 참가하였다.

그러고보면 그 아비에 그 아들이라고 결국 부자간이 다 고구려침략에 앞장서서 한몫한 자들이였다.

6월경에 설만철은 전함들을 끌고 압록강하구로 침입하여 먼저 대행성(오늘의 단동북쪽 고려문일대에 있던 성)을 공격하였다.

대행성에서 멀지 않은 박작성을 지키고있던 소부손은 자기 휘하의 보병과 기병 1만명을 거느리고 적을 요격하려고 성밖으로 나갔다가 중과부적으로 얼마간 손실을 당하고 물러나 성안으로 도로 들어왔다.

박작성은 압록강하구에서 130리정도 거슬러 올라간 지점에 위치하였는데 압록강을 자연해자로 하고 험한 산세를 리용하여 쌓은 성으로서 방어력이 매우 강하였으며 적들이 아무리 공격하여도 함락할수 없는 난공불락의 성새였다.

설만철이 지휘하는 당나라군사들은 죽기내기로 박작성에 달라붙었으나 성벽은 좀처럼 놈들을 붙여놓지 않았다. 아니 붙을수가 없었다. 시퍼런 하늘에서 화살소나기, 불소나기, 바위소나기가 쏟아지는데야 어떻게 감히 붙을수 있었겠는가.

적들이 박작성을 바라보며 닭쫓던 개신세마냥 헐떡거리고있는 사이에 고구려의 장군 고문이 오골성(수암)과 안지성(봉황성)의 군사 3만여명을 이끌고 와서 거꾸로 놈들을 포위함으로써 형세는 완전히 역전되였다.

사태가 불리하게 되자 설만철은 태종에게 원군을 요청했다. 하지만 박작성에서 장안(당나라의 수도, 오늘의 서안)까지가 어데라고 원군을 바랄수 있었겠는가.

적들은 고구려의 드센 공격앞에 도저히 지탱할수가 없어 결국 8월에 숱한 주검만을 고구려의 들판에 널어놓고 도망치고말았다.

설만철은 전쟁에서 패한 책임을 진데다가 원군문제를 두고 태종을 원망하였다는 죄명을 쓰고 귀국후 관직을 박탈당하고 귀양살이까지 하지 않으면 안되게 되였다.

그러니 648년전쟁에서 놈들이 당한 전패상이 얼마나 극심하였겠는가 하는것은 가히 짐작할 만 한것이다.

역시 고구려는 강대국이였다.

그런데도 당태종은 전쟁광신증을 버리기가 아까운지 또다시 침략전쟁에 미쳐날뛰다가 649년 4월에 몹쓸 병을 만나 죽어버렸다.

죽기직전까지도 고구려에 대한 침략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였던 그는 림종에 이르러서야 고구려침공을 중지하라는 유언을 남겼다고 한다. 아마도 저승에 가서 지옥에 떨어지고 싶지 않았던 모양인지 아니면 죽는 그 순간에나마 리성이 작용했는지는 모를 일이다.

하지만 그 유언도 지켜내지 못하였으니 그로부터 10년도 못되여 고구려땅에는 침략의 불길이 다시 타번졌던것이다.

불을 즐기는 자는 불에 타죽기마련이다.

력사는 자기의 실지체험으로 이것을 진리로 새겨주고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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