적을 공포에 떨게 한 애국명장 연개소문​

연개소문이 정변을 일으켜 권력을 장악한지 2년후인 644년 정월 어느날이였다.

그때 당시 연개소문은 외세에 빌붙어 고구려와 백제를 반대해나선 신라를 징벌하기 위하여 출전한 고구려의 원정군을 지휘하고있었다.

고구려군사가 성을 련이어 함락시키면서 성과를 올리고있을 때 조정에서 연개소문앞으로 한통의 서신이 왔다. 임금이 내린 어지가 적혀있는 서신이였다. 내용인즉 당나라에서 사신이 도착했으니 막리지는 급히 상경하라는것이였다. 그러면서 사신이 온 취지는 우리 고구려가 지금 하고있는 신라원정을 그만두게 하는것이라고 덧붙였다.

《당나라놈들이 끝내…》

연개소문은 어지를 받자마자 분이 치밀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평양성에 도착한 연개소문은 집에 들릴 겨를도 없이 그달음으로 왕궁으로 향하였다.

연개소문이 돌아왔다는 전갈을 받은 보장왕은 속히 막리지를 들어오게 하라고 분부했다. 그렇지 않아도 당나라사신일로 하여 안절부절하며 연개소문이 돌아오기를 이제나저제나 학수고대하던 그였던것이다.

《막리지 헌신하였소이다.》하며 연개소문이 정전안으로 들어서자 보장왕은 룡상에서 달려내려오며 그를 맞아들였다.

《원로에 수고를 했소. 그지간에 전장에서 별고는 없었는고.》

연개소문에 의해 왕위를 차지했고 또 그의 결단과 보좌에 정사의 대부분을 의지하고있는 임금이였던만큼 그를 대하는 보장왕의 태도는 각별하였다. 그래서 당나라사신이 제기하는 문제도 막리지가 온 다음에 론의하자고 밀막아두었던 임금이였다.

임금은 연개소문에게 그동안 있었던 전후사연을 구체적으로 알려주고나서 당태종이 보냈다는 서신을 내밀었다.

그것을 받아들고 대강 읽어내려가던 그의 얼굴은 어느 한 대목에 이르러 이그러졌다. 거기에는 이런 내용이 씌여있었다.

《신라는 우리에게 운명을 의탁하고있는 나라로서 조공 역시 끊김이 없이 하고있다. 그러니 고구려와 백제는 각기 군사를 거두어야 한다. 만약 다시 공격한다면 명년에 군사를 내몰아 귀국을 징벌할것이다.》

처음부터 마지막까지 위협과 압력으로 일관된 글이였다.

《되지 않게, 우리 대고구려를 어떻게 알고 이따위 서편을 보내는가.》

연개소문은 서신을 다 보고나서 임금에게 말했다.

《대왕마마. 청컨대 소신이 직접 그 사신을 대면해 봄이 어떠하온지.》

《경의 소원대로 하오.》

《그럼 그 사신을 당장 여기로 불러주사이다.》

《여봐라. 사신을 지금 속히 불러오도록 해라.》

임금의 령이 떨어지기 바쁘게 사신이 들어있는 숙소로 사람이 뛰여갔다. 조금 있더니 《당나라사신 상리현장 래림하였소이다.》하는 궁인의 목소리가 울리고 뒤미처 사신으로 짐작되는 사나이가 들어섰다.

그 사신이 들어오는 품이 꼭 저희네 나라 임금을 먹고 게워 거만하기 이를데 없었다.

《사신은 알고 지내오. 이 대인이 우리 고구려의 막리지요.》

순간 사신의 얼굴은 긴장해졌다. 자기 나라에 있을 때 들어서 알고있던 연개소문을 막상 눈앞에 대하고보니 속이 두근거렸던것이다.

(이 사람이 그 유명한 연개소문인가.)

사신이 이런 생각을 하고있는데 연개소문의 목소리가 들렸다.

《사신은 우선 직함부터 알리오.》

연개소문은 그의 관직을 번연히 알면서도 우정 모르쇠를 하며 물었다.

《저, 사농시의 승이올시다.》

《사농승이라고 하면 내 소견에는 종6품관직이겠는데…》

《그-렇-소-이다.》

《그렇다면 언행거지를 정중히 해야겠소. 당신이 지금 서있는 이곳은 대고구려의 왕궁이며 일국의 대왕앞이라는것을 명심하기를 바라오. 자 그럼 사신의 사명을 자상히 진술해보시오.》

첫 대화에서부터 한풀 꺾여들어간 사신은 그래도 용기를 내여 자기가 온 까닭을 루루히 설명하였다. 그 내용을 쥐여짜면 신라를 치지 말라는것이였다. 당태종의 편지에 일관된 내용의 재현이였다.

《신라가 수고로이 거기까지 청병을 했소그려. 왕년에는 우릴 보고 백제를 쳐달라고 구걸하더니.》

연개소문은 입가에 쓴웃음을 지었다.

《이보시오, 사신은 내 말을 듣소. 우리가 신라와 더불어 원한이 생기고 틈이 벌어진지는 이미 오래오. 몇십년전 수나라사람들이 우리 고구려를 침공했을 때 신라는 우리가 북쪽에 주력하는 틈을 타서 우리의 땅을 500리나 빼앗았고 거기에 있는 고을들을 아직까지도 점유하고있소. 그러니 그네들이 우리한테서 뺏어간 땅을 스스로 돌려주지 않는다면 아마도 싸움은 끝을 볼것같지 못하오.》

《만일 귀국에서 정 그렇게 나온다면 칙서에도 있듯이 황제께서는 명년에 귀국을 징벌하시겠다하옵니다.》

현장의 위협적인 말이였다.

그러나 다음순간 《수양제의 꼴을 되풀이하고싶소?》하는 연개소문의 으름장에 그도 뜨끔하였다.

《그러지 말고 신라와의 싸움을 거두십시오. 이미 지나간 일을 가지고 어찌 재론할수 있겠소이까. 지금 료동에 있는 여러 성들도 본래는 한나라의 군현이였지만 한나라이후 더 말하지 않지요. 그런데 고구려만이 어떻게 옛땅을 찾자고 할수 있겠소이까.》

《그따위 동에도 닿지 않는 말은 하지도 마시오. 료동땅은 자고로 우리 선조들이 물려준 고구려의 강역이요. 한나라의 군현이라고…》

연개소문의 말은 준절했다.

현장은 괜히 말 한마디 했다가 본전도 못찾고 코만 떼운 격이 되고말았다.

이 일이 있은 다음 당태종은 고구려에 대한 군사적침공기도를 로골적으로 드러내놓고 숱한 침략무력을 만리장성근방에 집결시키고 물자를 마련하는 등 전쟁준비를 다그치는데 광분했다. 그리고는 다시 장엄이라는 자를 사신으로 고구려에 들여보내여 최후통첩을 들이댔다.

그렇다고 하여 여기에 굴복할 연개소문이 아니였다. 연개소문은 당태종의 이른바 최후통첩적인 위협에 사신을 토굴속에 가두어넣는것으로 대답하였다.

이제 남은것은 군사적대결뿐이였다. 전쟁의 검은 구름이 각일각 고구려로 밀려들었다.

마침내 645년 고구려-당전쟁이 터졌다.

고구려의 애국적인 군대와 인민은 연개소문의 지휘밑에 침략자들을 쳐물리치고 조국을 보위하기 위한 성전에 떨쳐나섰다.

이 전쟁에서 고구려군민은 건안성, 신성, 안시성전투를 비롯하여 여러 전투들에서 침략자들에게 무리죽음을 주고 큰 승리를 거두었다. 고구려는 당태종이 오산한것처럼 결코 작은 나라이거나 약한 나라가 아니라 의연 강대국이라는것을 떳떳이 시위하였다.

어쨌든 당나라는 전쟁에서 여지없이 참패를 당하였다. 여북하면 침략군을 거느리고 고구려땅에 더러운 발을 들여놓았다가 고구려군사의 명중화살에 맞아 애꾸눈신세가 되여 쫓겨간 당태종이 이때의 료동걸음을 두고두고 후회하였겠는가.

한편 연개소문은 그때 쫓겨 달아나는 침략자들을 추격하여 만리장성을 넘어 베이징근방까지 진출하였다. 베이징북방 30리지점인 순의현이라는 지방에는 지금도 연개소문의 군사가 진을 치고있었다는 《고려영》이라는 지명이 있고 당태종의 진영자리도 있다고 한다. 그뿐아니라 하북성의 만리장성안팎에는 황량대라는것들이 수많이 있는데 전설에 의하면 그것들은 고구려군사들의 진격을 막기 위해 마련해둔 식량저장고였다고 한다.

연개소문은 그후 20여년동안 고구려군민을 옳게 이끌어 여러차례에 걸친 당나라의 침공을 그때마다 격파하고 고구려의 위력을 만방에 떨쳤으며 침략자들을 공포에 떨게 하였다.

당시 당나라에서는 용맹스러운 연개소문장군한테 얼마나 혼쌀이 났던지 《연개소문이 온다!》고 하면 울던 아이도 울음을 뚝 그쳤다고 한다.

이처럼 연개소문은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고 외적의 거듭되는 외교적 및 군사적위협과 무력침공에 조금도 굴하지 않고 당당한 자세를 취하였다. 그리하여 고구려는 연개소문때에 강대한 나라로 더욱 소문이 났다.

물론 연개소문은 봉건귀족관료출신으로서 그가 발휘한 애국심은 봉건국가-고구려를 위한것이였다.

하지만 그가 세운 공적은 우리 민족사발전의 견지에서 볼 때 긍정적인것으로 찬양받을만 하다. 그러기에 우리 인민은 지금도 연개소문을 조선민족이 낳은 애국명장이라고 부르고있는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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