상투틀은 사나이​

B.C. 209년 후조선의 마지막왕 준이 통치할 때였다.

발해로 흘러드는 패수(대릉하)의 물결이 가을밤의 달빛을 안고 뒤채이는데 그 달빛을 산산이 부시며 한척의 나루배가 조선(후조선)의 나루로 소리없이 미끄러져왔다.

패수의 저쪽대안은 연나라땅, 그러니 필경 연나라에서 오는 손이련만 배안에 긴장하여 앉아있는 사나이는 연나라사람의 행색이 아니다.

소담하게 튼 상투와 배코자리가 어둠속에서도 완연한데다 안에는 흰색의 겸포저고리를 입고 겉에도 가을날씨라서인지 흰색의 《대메포》(소매가 큰 고조선사람들의 겉옷)를 껴입고 어둠속을 응시하는 그 사내는 조금도 의심스러운것이 없는 고조선사람의 몸차림새였다. 이는 바로 연나라땅에 살고있던 조선사람 만이였다.

수십년전 B.C. 284년(연 소왕 28년)경 연나라 장수 진개가 후조선땅 2 000리틀 침공하여 만반한(요양하일대)으로 경계를 삼자 이전의 접경선이였던 란하일대로부터 여기에 이르는 2 000리땅에 살고있던 후조선사람들은 뿔뿔이 고국으로 넘어가버렸다.

그때 이 지방에서 세력있는 노예소유자로서 쟁쟁하던 만의 아버지는 후조선으로 넘어가지 않고 그냥 눌러앉아있었다. 물론 땅과 재부에 대한 애착도 컸지만 보다는 고국에서 반드시 이 땅을 회복할것이니 구태여 갈 필요가 없을것이라는 타산에서였다. 그래서 그의 아버지는 어린 만을 늘 데리고다니며 여기 드넓은 땅은 지금은 연나라지경이지만 이전에는 후조선의 땅이였고 우리도 후조선사람이니 반드시 수복해야 한다고 귀에 못 박히도록 말해주군 하였었다.

물론 그후 후조선이 패수계선까지 장악한 결과 고국이 가까와 지기는 했어도 아직 패수서쪽지역은 연나라를 통합한 진나라의 땅으로 남아있었다.

성장한 만은 자기 소유지에서 같지 않게 놀아대던 진나라 관리들을 호되게 징벌하고 보복을 피해 이렇게 고국으로 넘어오는 중이였다.

그는 패수를 건너선 아침부터 하루길을 달려 조선의 서변지방 관청에 들어가 이주해오게 된 사연을 말하였다.

그곳의 관리들은 만의 이주요청에 대하여 준왕께 여쭈어보고서야 올려보내라는 어명을 받고 내려온 관리에게 딸려 그를 상경시켰다.

《그대가 패수 건너편에 살고있던 아무개의 아들이뇨.》

《그렇소이다. 우리 아버님은 고국인 조선의 어지신 대왕님의 통치를 늘 그리워하며 소인더러 크거들랑 거기로 찾아가라 하였나이다. 금번 비록 진나라 관리들의 핍박을 피하여 오기는 하였사오나 이것이 저의 소원이였으니 대왕께서 한미한 이몸을 용납해주신다면 그 은혜 망극이로소이다.》

《조선사람이래서 상투틀고 조선옷 입고왔다 그 소리겠다. 그 뜻이 갸륵하다. 저쪽형편은 어떤고.》

후조선땅으로 되여있을 때에 왕궁에 공물을 착실히 바쳐온 자기 아버지에 대해 은근히 기억해주며 각근히 대해주는것 같아 만은 에라 한걸음 더 짚어 이렇게 말하였다.

《지금 진나라는 통일되였다고는 하지만 진승, 오광의 란이 터져 어지럽기 그지없소이다. 이전 연, 제, 조나라백성들도 모두들 대왕님의 땅으로 찾아오고있는 형편이옵니다. 이 기회를 잘 리용하면 실지 회복은 식은죽먹기인줄 아뢰오. …황송하오나 제가 저 땅에서 사람들과 수많이 상종해봐서 그들의 습속을 손바닥 보듯 알고있사옵니다. 그네들에게 거처지를 마련해주고 변방을 방비케 한다면 전란을 피해 허겁지겁 넘어온 자들이여서 감지덕지해 할것이온즉 이민족으로 다른 나라의 침공을 막는 좋은 방도가 아니올지?》

부리부리한 눈매며 쩍 버그러진 어깨, 꺽쇠로 박은듯 든든히 박혀있는 목대는 무사다운 체취를 강하게 풍기고있었다.

저런자들을 잘 부려서 제말대로 《나라의 울타리》를 만든다면 변방에 대한 걱정은 한결 덜리겠는데, 눈가죽이 불그죽한게 꼭 흉심을 먹은 놈같이 께름하건만 손탁에 꽉 그러쥐고 잘 부리면 문제없으리라. 이렇게 저울질하던 준왕은 만에게 박사벼슬을 주고 특별히 《규》를 내리여 그에 대한 자기의 신임을 보여주었다. 그리고 서쪽변방 100리땅을 봉토로 주어 그곳을 변방 전초기지로 만들도록 하라고 신신당부하였다.

그 서쪽변방이란 패수(대릉하)이동 요양하이서지역의 100리땅이였다. 후조선은 갓 태여난 진나라와의 외교관계에 신중성을 기하여 여기를 완충지대처럼 비워놓고있었던것이였다.

준왕으로부터 생각밖의 큰 신임을 받게 된 만은 임지에 도착하자 즉시 기별을 띄워 일가권속들과 조선사람들을 불러오게 하였으며 한편 후국의 체모를 갖추는데 전심전력하였다. 그는 험독에 후국의 도읍을 꾸리고 통치기관들을 하나하나 꾸려나갔다. 고위 중앙관료들에게 진상품을 괴여올려 하늘에 뻗친 자기의 충성을 과시해보이는것도 잊지 않았다.

후국내부가 어느정도 안정되고 또 많은 피난민들까지 받아들여 만명이나 되는 후국무력을 거느리게 된 만에게는 점차 후조선왕조를 뒤집어엎고 제가 왕이 되여보려는 불칙한 마음이 자라게 되였다.

만이 후왕으로 된지 10여년 지난 B.C. 195년에 한나라에서는 연왕 로완의 반역사건이 일어났다. 이보다 앞서 B.C. 206년 통일국가 진나라를 거꾸러뜨리고 한나라를 세운 류방은 연제후국의 땅에 자기 심복 로완을 임명하였었는데 로완이 자기 봉지에서 반란을 일으키는 바람에 중국은 또다시 전쟁마당으로 변하였다. 주발을 총 지휘자로 하는 한나라의 중앙토벌군이 로완의 반란군을 진압하기 위하여 연나라지역으로 쳐들어오자 수많은 피난민들이 살길을 찾아 후조선으로 넘어왔다. 만의 후국이 후조선의 서변에 있었으므로 수많은 피난민들이 여기로 밀려들자 만은 그들을 전부 받아들여 살곳을 마련해주고 식량을 내여 구제하여줌으로써 그들의 환심을 샀다. 그리고는 그들속에서 군사를 징발하여 무력을 늘이고 은밀히 군사조련을 다그치게 하였다. 그의 생각인즉 한나라 주발의 군대가 서변으로 밀려들고 피난민들이 대거 넘어오는 이 혼란의 와중에서 자기의 계책을 실현해보려는것이였다.

B.C. 194년 만단의 준비를 갖춘 만은 사람을 시켜 준왕에게 한나라군대가 10개의 길로 쳐들어오니 내가 가서 왕궁을 지켜드리겠노라고 거짓보고를 하게 하면서 준왕의 승인이 내려오기도 전에 직접 제가 철기들을 이끌고 수도 왕검성으로 기동하여왔다. 10여년동안 꾸려온 철기부대들이 시뿌연 먼지를 료동벌판에 휘날리며 달렸고 며칠후에는 벌써 왕검성(평양)으로 다가왔다.

여러 후국들을 지나 부수도 왕검성을 통과할 때까지도 그곳의 후왕들과 관료대신들은 만의 말을 곧이듣고 왕궁수위를 잘하라며 군량과 마초까지 대주었다. 그러나 만의 사람됨을 잘 알고있던 관리들은 그의 급작스러운 《왕검성보호》에 의심을 가지고 준왕에게 급보를 띄웠다.

만의 반변소식이 왕검성안에 날아온것은 그들이 왕검성을 공격하기 불과 며칠전이였다.

만이 올린 보고를 받고 웬걸 그러랴 하며 아무런 방비대책도 세우지 않고있던 준왕과 관료들이 미처 왕기내의 수비군도 불러들이지 못하고있던 차에 반란군은 벌써 성밑까지 몰려왔다. 이 소식에 준왕은 채머리를 떨며 고래고래 소리질렀다.

《만, 이 역적, 네놈이 날 속여넘기다니, 알몸이로 굴러들어온 네놈을 그만큼 믿어주고 봉토까지 주었는데 배반해… 어이쿠. 내 눈이 멀었구나.》

연신 넉두리만 하는 준왕앞에서 신하들은 얼굴이 새까매서 아무말도 없다가 누군가 이렇게 여쭈었다.

《수성군은 얼마 안되여 왕검성이 오래 버텨낼것 같지 못하오이다. 오늘의 치욕을 래일 씻기로 하고 지금은 바다길로 빠지는게 상책이오이다. 저기 우리 왕조의 후국이였던 진국땅으로 내려가심이 좋을듯 하오이다.》

아무리 생각해야 대책이 묘연한 준왕은 참으로 허무하고 억울한 가슴을 부여안은채 근신들과 수많은 비빈, 내시들, 호위군사들을 데리고 대동강나루로 빠져나갈수밖에 없었다. 차디찬 새벽안개를 헤치며 수십척의 배가 대동강을 따라 진국을 향해 내려가는데 왕검성안에서는 만의 군대가 벌써 알아채고 입성하였는지 북, 바라소리가 진동치듯 했다.

이리하여 천수백년에 걸치는 후조선왕조가 품안에서 반역아를 키운탓으로 크게 손 한번 못쓰고 무너지고말았다.

후조선을 뒤집어엎은 만은 자기를 조선왕으로 선포하고 종전의 통치기구와 관료귀족들을 그대로 포섭하여 왕조를 꾸려나갔다.

이렇게 되여 고조선의 셋째 왕조 만왕조가 수립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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