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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명하나하나에도​

지난 시기 우리 나라 지명들가운데는 녀진족과 일제침략자들이 제멋대로 달아놓은 이름들이 적지 않게 있었고 조선봉건왕조시기 봉건통치배들이 큰 나라를 숭배하고 왕을 숭상하면서 그들의 비위에 맞추어 지어놓은 지명들이 그대로 남아있었다.

하지만 이에 대하여 아는 사람들도 없었으며 이에 대하여 문제시하는 사람들은 더우기 없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이런 지명들을 그대로 두면 우리 나라 력사에 오점을 남기는것으로 된다고 하시면서 그것을 바로 잡는것은 사대주의사상잔재를 청산하고 민족의 주체성을 확립하기 위한 중요한 문제의 하나이라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현지지도의 그 바쁘신 가운데서도 색다른 이름을 가진 고장에 들리시면 그 지방이름의 유래를 알아보시고 그것이 외래침략자들과 봉건통치배들에 의하여 생긴 이름이라면 그 명칭을 없애고 민족적인 정서와 현시대의 미감에 맞게 우리 식의 새로운 지명을 달아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70(1981)년 5월 어느날 경흥군을 현지지도하실 때 군책임일군에게 이 고장이름을 왜 아오지라고 부르는가고 물으시였다. 그러나 자기가 사는 고장이름의 유래도 알지 못하는 군의 책임일군은 아무 대답도 드리지 못하고있었다. 그들은 주인구실을 바로 하지 못한 자책감으로 하여 머리를 들수 없었다.

이날 오후 군에 화학공장과 화학건설사업소 일군협의회를 소집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장내를 둘러보시며 이 고장에서 제일 오래 산 동무가 누구인가고 물으시였다. 군책임일군이 탄광지배인이라고 말씀드리자 수령님께서는 탄광지배인에게 이 고장이름을 왜 아오지라고 부르는지 알고있는가고 물으시였다. 뜻밖의 물음에 대답을 올릴수 없어 머뭇거리자 군인민위원회 위원장이 자리에서 일어나 이곳이 사람못살 고장이여서 석탄을 캐려오는 품팔이군들을 보고 《아 오지 말라》라고 하였는데 이것이 굳어져서 아오지라는 이름이 되였다고 말씀올리였다.

그의 이야기를 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게 웃으시였다. 장내에서도 폭소가 터졌다.

이윽고 설레이던 장내가 수습되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전에 탄부들이 오소리굴같은 막장에 기여들어가 감독놈의 채찍밑에서 원시적인 로동을 강요당하다보니 너무 살기 어려워 지명을 그런 뜻으로 해석하는것같은데 사실 그 이름은 탄광이 생겨나기전부터 불리워졌다고 하시면서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아오지라는 말은 다른 나라 말인데 불타는 돌이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지금까지 아오지라는 말을 계속 써왔습니다. 이것은 아주 잘못되였습니다. 이런 말을 그대로 두면 우리 나라 력사에 오점을 남기는것으로 될것입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오지라는 말이 생겨나게 된 유래에 대하여 밝혀주시고 아오지리, 아오지역, 아오지탄광, 아오지화학공장을 비롯하여 아오지라는 말을 붙인 지방과 공장이름들을 다 우리 말로 고쳐야 한다고 하시면서 아오지리라는 행정구역명칭은 이 일대에 나와서 소부대활동을 하다가 희생된 김학송동무의 이름을 따서 학송리라고 부르는것이 좋겠다고 하시였다.

항일의 혈전만리길에서 먼저 떠나간 전사를 수십년세월이 흐른 오늘에도 잊지 않으시고 영생의 언덕우에 내세워주시려는 어버이수령님의 숭고한 혁명적의리앞에 일군들 모두가 감동을 금할수 없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학공장과 탄광이름을 어떻게 지었으면 좋겠는지 의견들을 들어보자고 교시하시였다. 한 일군이 군내인민들의 한결같은 의사를 담아 아오지탄광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주체57(1968)년 6월 13일 수직갱조업식에 참석하신 날을 기념하여 6월 13일탄광으로 고치고 아오지화학공장은 수령님께서 주체43(1954)년 7월 7일 이 공장을 현지지도하신 날을 기념하여 7월 7일화학공장으로 고쳤으면 좋겠다고 정중히 말씀드리였다. 순간 장내는 우뢰와 같은 박수갈채가 터져올랐다. 이 이름들에는 경흥땅에 아로새겨진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을 후세에 길이 전하려는 인민들의 한결같은 소망이 담겨져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손을 들어 장내를 진정시키고나서 동무들이 정 그렇다면 내가 양보하는수밖에 없다고 하시면서 동무들의 의견대로 하자고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결론하시자 다시금 박수소리가 장내를 진감하였다. 오랜 세월 외래침략자들에 의하여 아오지라고 불러오던 수치스러운 력사를 끝장내고 어버이수령님의 불멸의 업적이 아로새겨진 이름으로 부르게 된 긍지로 하여 회의참가자들은 가슴벅차오름을 금할수 없었다.

그로부터 며칠후인 6월 8일 함경북도당 및 청진시당 련합확대회의를 지도하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함경북도에 와서 아오지라는 말을 고쳤다고 하시면서 함경북도에 있는 주을이라는 지명도 녀진족들이 와서 달아놓은 이름으로서 더운물이라는 뜻인데 우리 사람들은 그것도 모르고 주을온천이라고 하는데 이것은 결국《더운물, 더운물》이라고 반복하는 셈이라고 하시면서 이것을 보면 우리 일군들이 일을 얼마나 무책임하게 하는가 하는것을 잘 알수 있다고 지적하시였다. 계속하시여 해방후 30년동안 자기가 사는 지방이름을 남의 말로 불러온것이 얼마나 수치스러운 일인가고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거울처럼 맑은 호수가에 성이 있다고하여 경성군이라고 한것만큼 주을을 경성이라고 고치고 주을온천을 경성온천으로 부르도록 고쳐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세심한 가르치심에 의하여 우리 나라의 수많은 지명들이 낡은 잔재를 털어버리고 우리 인민들의 감정과 현대적미감에 맞게 고쳐부르게 되였다.

녀진족 우두머리의 한놈인 아롱이라는자가 둥지를 틀고있었다고 하여 부르던 자강도 동신군 아롱성리도 약수리로 고쳐주시였고 일제통치시기에 왜놈들이 차지하고있던 명치성과 북성정의 이름을 따서 명성이라고 부르던 청진시의 신암구역 명성동도 바다기숡에 자리잡고있는 마을이라는 뜻에서 해안동이라고 이름지어주시였다.

어찌 그뿐이랴.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지난 시기 조선봉건왕조통치잔재와 관련된 고장이름들도 우리 인민의 사상감정과 오늘의 현실에 맞게 새로 지어주시였다.

언제인가 함경남도를 현지지도하시던 어버이수령님께서는 본궁이라는것은 리성계의 옛집을 가리켜 지은 이름이고 신포시 련무동은 그전에 리성계가 활쏘기훈련을 하던 련무정이 있던 마을이라고 하여 그렇게 지은 이름이라고 밝혀주시면서 앞으로 리성계와 관련된 고장이름들은 다 고쳐야 한다고 교시하시였다.

함흥시의 반룡구역이나 반룡동은 리성계를 룡에 비겨 이름지은 반룡산을 끼고있다고 하여 그렇게 불러왔는데 어버이수령님께서는 우리 나라 동쪽에 자리잡고있는 함흥은 흥하는 도시라는 의미에서 반룡산을 동흥산으로, 반룡동을 동흥산동으로 고쳐부르도록 하시였다.

함경남도 금야군은 원래 리성계가 난 고장이라고 하여 영원히 흥하라는 뜻에서 영흥군이라고 불러왔는데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이 황금나락 물결치는 큰벌을 끼고있다고 하여 금야군으로 그 이름을 바꾸어주시였다.

강원도 창도군 점방리와 같은 심산오지의 지명도 미신과 관련된 이름이기때문에 분계연선의 특성에 맞게 철벽리로 고쳐주시였고 남포시 와우도구역에 자리잡고있는 억량기동도 일제시기 자본가의 재산과 결부시켜 달아놓은 이름이기때문에 진수동(해방후 400t급 기관선의 첫 진수식을 한 고장이라는 뜻에서)으로 지명을 바꾸어주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현명한 령도에 의하여 나라의 최북단 선봉군으로부터 분계선마을 철벽리에 이르기까지 사대와 굴욕의 자취로 얼룩졌던 지명들이 말끔히 가셔지고 우리 시대의 요구와 인민들의 지향과 념원에 맞는 새 지명들로 고쳐져 정다운 이름으로 불리워지게 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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