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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신문》기자들이 받은 충격​

  주체34(1945)년 12월 28일 남조선의 《서울신문》기자들이 삼엄한 경계선을 뚫고 38゜선을 넘었다.

  그들이 북행길에 오르게 된데는 사연이 있었다.

  김일성장군님께서 평양에 개선하시였다는 소식이 전해진 때로부터 남조선인민들속에서는 장군님께서 언제 서울로 오시겠는가 하는것이 가장 커다란 관심거리로 되였다. 더우기 미군의 강점으로 날이 갈수록 정치적혼란이 짙어가는 남조선의 현실을 두고 통탄하면서 이에 대한 질문이 편지로 혹은 전화로 매일같이 신문사로 날아왔다.

  남조선인민들의 이러한 요구를 외면할수 없었던 《서울신문》기자들은 시대를 선도하는 기자로서의 사명을 안고 김일성장군님을 만나뵙기 위하여 평양에 찾아왔던것이다.

  이에 대한 보고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다음날 12월 29일 아침 만사를 제쳐놓으시고 그들을 만나주시였다.

  추운 날씨에 38선을 넘어 먼길을 오느라고 수고가 많았겠습니다.

  남녘겨레에 대한 뜨거운 정을 담아 이렇게 말씀하시면서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의 손을 힘있게 잡아주시였다.  

  《장군님, 조선독립을 위하여 일제와 오래동안 싸우느라고 얼마나 많은 고생을 하시였습니까?》

  그들이 올리는 인사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겸허하게 별로 고생한것이 없다고 하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손에 무장을 잡고 일제와 싸운것은 조선의 아들로서 응당 해야 일을 한것입니다. 나의 고생보다 악독한 일제의 학정밑에서 시달린 우리 동포들의 고생이 심하였습니다. 

  그러시고는 친히 자리를 권하신 다음 마주 앉으시여 분계선을 넘을 때 위험하지 않았는가, 숙소는 어데다 정했는가를 일일이 알아보시다가 이렇게 권고하시는것이였다.

  당신들이 나를 보고 장군님이라고 하는데 그저 동무라고 불러주기 바랍니다.

  그이의 한없이 소탈한 풍모에  끌리운 기자들은 어려움도 잊고 지금 남조선인민들은 장군님께서 개선하시였다는 소식을 듣고 무한한 기쁨에 휩싸여있으며 하루빨리 서울에 오실것을 몹시 기다리고있다고 하면서 이렇게 말씀드리였다.

  《장군님께서 언제 서울에 오실수 있겠습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한동안 창밖을 바라보시다가 절절한 어조로 말씀하시였다.

  해방된 조국땅에서 그립던 동포형제자매들과 만난 나의 기쁨은 한량없습니다. 마음 같아서는 지금이라도 당장 서울로 가서 남조선동포들을 만나보고싶습니다.

  그러나 나라의 정세가 그것을 허락하지 않는다고 하시면서 북과 남에 조성된 판이한 정세를 알려주시면서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나라가 해방되였는데도 그리운 남조선동포들을 만나보지 못하는것이 매우 유감스럽습니다. 지금은 우리가 남조선동포들과 만날수 없지만 남북의 겨레들이 서로 만나게 그날은 반드시 올것입니다.

  이어 남조선기자들로부터 해방된 조선이 나갈 앞길을 밝혀주실것을 바라는 남조선인민들의 한결같은 요청을 전해들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해방된 우리 인민은 반제반봉건민주주의혁명을 수행하여야 하며 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건설하는 길로 나아가야 한다고, 그러기 위하여서는 먼저 각계각층의 모든 애국적민주력량을 망라하는 민주주의민족통일전선을 굳게 형성하여야 한다고 하시며 그 과업과 방도들을 알기 쉽게 해설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천리혜안의 예지와 뛰여난 웅변술에 반한 나머지 한 기자가 그만 불쑥 이렇게 말씀올렸다.

《지금 남조선인민들은 장군님께서 축지법을 쓰시며 일제침략자들과 싸우시던 항일무장투쟁에 대한 상세한 내용을 무척 알고싶어합니다. 장군님께서 령도하신 항일무장투쟁에 대하여 말씀하여주실수 없겠습니까?》

  별로 자랑할만한것이 없습니다.

  이번에도 이렇게 겸허하게 사양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러나 오랜 기간에 걸친 항일무장투쟁행정에 우리는 수많은 전투도 하고 지하정치공작도 하면서 여러가지 일들을  체험하였다고, 동무들이 그 이야기를 꼭 들어야 하겠다면 함께 투쟁한 동무들을 만나도록 해주겠으니 그들에게서 듣는것이 좋겠다고 권고하시였다.

  그러자 몹시 아쉬움을 금치 못하던 그 기자는 다시금 이런 청을 드리는것이였다.

  《장군님의 사진을 한장 주실수 없겠습니까?》

  사진은 해서 무엇하겠습니까. 내가 무슨 일이 있다고 신문에 사진을 내겠습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 또다시 사양하시였지만 남조선기자들은 물러설 차비가 아니였다. 그것은 남조선인민들의 간절한 부탁이 그들의 가슴을 쳤기때문이였다.

  그들의 거듭되는 간청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침내 사진이 요구된다면 있는가 알아보고 주도록 하겠습니다.라고 하시는것이였다.  

  소원을 성취한 기쁨속에 그들은 또다시 욕심을 내여 이런 청을 드리였다.

  《장군님께서 남조선인민들에게 전하실 말씀은 없으십니까?》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크나큰 기대속에 숨을 죽이고있는 그들을 이윽토록 바라보시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당신들이 남조선에 돌아가면 인민들에게 나의 열렬한 인사를 전하여주기 바랍니다. 나의 몸은 비록 여기에 있으나 마음은 언제나 남조선인민들과 함께 있습니다.

  그러시고 북조선인민들이 남조선인민들과 함께 새 민주국가건설을 원하고있는데 대하여 그리고 서울에 돌아가면 여기에서 와서 보고들은것을 그대로 알려줄데 대하여 부탁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접견을 받은 뜻깊은 이날 남조선기자들이 받은 충격은 실로 큰것이였다.  하기에 남조선에 돌아간  그들은 《서울신문》에 위대한 수령님의 영상사진을 정중히 모시고 이날에 받은 충격을 그대로 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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