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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례총을 쏘고싶소!》

력사적인 카륜회의가 끝난 다음날인 주체19(1930)년 7월 3일 밤이였다.

쟈쟈툰 앞벌에 자리잡고있는 진명학교 교실에서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지도밑에 첫 당조직을 결성하는 회의가 진행되였다.

회의에는 청년공산주의자들인 차광수, 김혁, 최창걸, 계영춘, 김원우, 최효일이 참가하였다.

수령님께서는 《ㅌ. ㄷ》 시절부터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혁명의 초행길을 함께 걸어온 동지들을 믿음어린 눈길로 한명한명 둘러보시였다.

1928년 여름에 있은 국제공산당 제6차대회에서 조선공산당의 승인을 취소한다는 소식과 함께 국제공산당이 제정한 1국1당제원칙에 의하여 조선공산주의자들이 만주지방에서 독자적인 당을 창건하는것이 불가능한 일로 되여 의분을 참지 못하고 울화를 터뜨리던 열혈의 청년들…

수령님께서는 북받쳐오르는 격정으로 하여 잠시 말씀이 없으시였다.

그이께서는 흥분된 어조로 혁명을 하는데서 당을 창건해야 할 필요성에 대하여 강조하시고 대중과는 동떨어져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중앙을 선포하고 《령도권》쟁탈을 위한 파벌싸움만 일삼던 조선공산당의 교훈에 대하여 심각하게 분석하시였다.

《교훈은 당창건의 조직사상적기초를 축성하지 못한 상태에서 몇몇 사람들이 모여앉아 당중앙을 선포하는 방법으로 창건한 당은 혁명의 참모부로서의 역할을 할수 없으며 적들의 탄압도 이겨낼수 없다는것을 보여주고있습니다.》

그러시면서 이러한 교훈에 기초하여 아무런 준비도 없이 당중앙을 내오려고 조급하게 서두를것이 아니라 당창건을 위한 준비사업을 착실하게 진행해나가야 한다고 하시며 바로 이것이 당건설방침이라고 힘주어 말씀하시였다.

그이께서는 계속하여 당조직성원들이 해야 할 과업들을 구체적으로 밝혀주시였다.

회의참가자들은 흥분된 마음들을 억제하지 못하였다.

수령님께서는 믿음어린 눈길로 그들을 둘러보시며 잠시 동안을 두시였다가 이렇게 말씀하시였다.

《우리가 가야 할 혁명의 길은 아직도 멀고도 험난하며 우리의 투쟁은 시작에 불과합니다.

혁명적당조직의 첫 성원으로 된 우리들은 조국과 혁명앞에 지닌 무거운 책임을 깊이 자각하고 조선혁명의 승리를 위하여 고난에 찬 혁명의 길을 과감히 헤쳐나가야 하겠습니다.》

순간 모두가 자리에서 일어나 회의장이 떠나가게 박수를 쳤다.

끓어오르는 격정을 금할수 없어 열변을 토하는 청년들도 있었다.

《출범이다. 우리의 배는 항구를 떠났다. 우리는 격랑을 헤치며 먼바다로 노를 저어간다.》

김혁이 이렇게 즉흥시를 읊었다.

시랑송이 끝난 다음 최효일이 일어나서 일장연설을 하였다.

연설을 마치며 그는 격정에 넘쳐 이렇게 웨쳤다.

《성주, 여기가 교실이 아니고 산중이라면 기념으로 례총을 쏘고싶소!》

수령님께서는 일본놈들과 대결할 날도 멀지 않으니 그때가 되면 실컷 총을 쏘라고 하시며 통쾌하게 웃으시였다.

사실 그때 수령님과 첫 당조직성원들은 총이 아니라 대포라도 쏘고싶은 심정이였다.

자기의 당조직을 가지고 조선의 당원으로 시대와 력사앞에서 혁명을 위해 일생을 바치겠다고 선서한 그들의 기쁨과 자부심을 과연 그 무엇에 비길수 있으랴.

회의에 참가한 성원들과 함께 김리갑, 김형권박근원리제우 등도 첫 당조직의 성원으로 되였다.

첫 당조직은 이렇게 탄생하였다.

그후 수령님께서는 첫 당조직에 건설동지사라는 명칭을 붙이시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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