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건​

(1918. 6. 23-1950. 9. 8)

항일혁명투사, 군사활동가.

10살나던 해에 부모를 따라 중국 동북지방의 녕안현 주가툰으로 갔다. 주가툰에서 아동단에 입단하였고 주체20(1931)년부터는 주가툰아동단 책임자로 활동하였다.

주체22(1933)년 4월 반일인민유격대에 입대하여 분대장, 소대장, 중대정치지도원, 련대정치위원, 지대정치위원의 직책을 지니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을 관철하기 위하여 자기의 정력과 지혜를 다 바쳤다. 조선인민혁명군 주력부대가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북만원정을 단행하였을 때에 녕안땅에서 그렇게도 흠모하던 수령님을 만나뵈옵는 크나큰 영광을 지니였으며 이때 수령님만을 믿고 싸울 충정의 결의를 더욱 굳게 다지였다.

그후 위대한 수령님의 사상과 의도대로 살며 싸우기 위하여 언제나 노력하였다. 인민들의 생명재산을 목숨으로 지킬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교시를 항상 심장속에 지니고 투쟁해온 그는 주체25(1936)년 대흥구전투때에 위급한 정황속에서도 적들을 멀리까지 끌어내여 족쳐버림으로써 전투는 보다 어렵게 진행되였으나 인민들의 생명재산에는 조금도 피해가 없게 하였다. 소부대활동시기에는 한 소부대를 이끌고 중국 요하현 보마정자에서 보청현 쟈무쓰까지의 행군과정에서 벌린 전투들과 주체29(1940)년말 북만의 도가선의 신가점-맹가강구간에서 벌린 여러차례의 렬차매복전투, 주체30(1941)년 12월 목가선 신가정부근에서의 군용렬차매복전투 등 도처에서 적에 대한 습격전과 군용렬차, 철교, 도로, 군수창고에 대한 파괴전을 벌려 일제침략자들에게 심대한 타격을 줌으로써 위대한 수령님께서 소할바령회의에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 관철에 크게 이바지하였다. 이 시기 또한 로동자, 농민을 비롯한 광범한 군중을 혁명조직에 묶어세우며 분산되였던 혁명가들과의 련계를 맺고 파괴된 혁명조직들을 복구정비하는 사업을 힘있게 벌렸다.

조국해방의 최후결전준비시기 조선인민혁명군 백두산 동북부예비대 부대장으로 임명되였으며 주체34(1945)년 8월 9일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최후공격작전을 개시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이 하달되자 예비대들을 지휘하여 만주의 여러 도시와 마을을 해방하면서 압록강, 두만강대안의 작전지대로 진격하였다.

일제의 무조건 항복이후 국경지대에서 활동하고있는 조선인민혁명군 예비대들이 형제적중국인민을 도와 중국해방전투에 참가할데 대한 위대한 수령님의 명령을 받들고 중국의 해방을 위한 수많은 작전에 참가하여 프로레타리아국제주의의 산모범을 보여주었다.

해방후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새 조국건설로선을 높이 받들고 건당, 건국, 건군을 위한 보람찬 투쟁의 길에 한몸바쳐 일하였다. 조국해방전쟁시기 조선인민군 총참모장으로서 최고사령관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제시하신 전략전술적방침을 받들고 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온갖 지혜와 정력을 다 바쳤다.

특히 서울과 대전해방작전을 성과적으로 수행하며 공화국남반부의 넓은 지역을 해방하는데 이바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의 크나큰 은정에 의하여 주체39(1950)년 9월 공화국영웅칭호가 수여되고 군사교육기관 등에 그의 이름을 달아 부르게 되였으며 주체57(1968)년 공화국창건 20돐을 맞으며 사리원시에 그의 동상이 세워지고 강건거리가 꾸려졌다.

주체79(1990)년 10월 31일부터 사리원의학대학이 강건사리원의학대학으로 불리워지고있다. 주체64(1975)년 10월 조선로동당창건 30돐을 맞으며 혁명렬사릉에 그의 반신상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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