간삼봉의 《호박농사》​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국내진공작전의 빛나는 승리로 하여 고조를 이룬 유격대원들과 인민들의 기세충천한 사기를 한층 더 북돋아주며 일제침략자들에게 조선인민혁명군의 본때를 다시한번 보여주기 위하여 중국 장백현 팔반도의 《집단부락》을 습격하기로 하시였다.

팔반도에는 300여명의 위만군《토벌대》가 주둔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을 모시고 주력부대가 간삼봉계선에 이른것은 주체26(1937)년 6월말경이였다.

이때 지방조직으로부터 사령부에 긴급한 적정통보가 들어왔다.

함흥 제74련대가 수십대의 자동차를 타고 혜산방면으로 밀려들어 신파쪽에서 압록강을 건넜는데 《토벌대》의 무력이 어찌나 많았던지 30~40명이 탈수 있는 목선으로 하루종일 신파나루를 건네였다는것이다.

적이 2 000명이면 유격대보다 훨씬 우세하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조선에서 건너온 일본군 대부대와 정면으로 맞서기로 결심하시였다. 적이 대부대로 공격해오면 재빨리 분산하여 기동전을 벌리는것이 유격전의 일반적인 전술이지만 이번에는 관례를 깨뜨려 대부대를 대부대로 치자는것이 수령님의 결심이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팔반도로 향하던 행군을 일단 멈추고 싸움터를 고르시였다.

싸움터로는 간삼봉이 제일 적당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6월 29일 저녁에 지휘관회의를 여시고 전투방안을 내놓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번 전투에서 적의 정규전법에 말려들지 말고 유격전법을 주동적으로 활용할데 대하여 강조하시면서 그러자면 인민혁명군부대들이 먼저 산릉선을 차지하고 적들이 골짜기에 몰리게 유도하며 부대배치에서도 도식을 범하지 말고 적들이 유격대가 주의를 덜 돌릴것이라고 볼수 있는 곳에 력량을 많이 배치하고 전투과정에 부대들이 수림을 리용하여 좌우로 빨리 기동하면서 림기응변하도록 하시였다.

다음날 아침 적들이 간삼봉으로 공격해왔다. 새벽부터 가랑비가 내리고 안개가 끼였는데 최현부대가 차지한 산봉우리에 있는 보초소에서 먼저 신호총소리가 울렸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곧 산릉선의 지휘처로 올라가시였다. 최현은 보초대가 적의 포위에 들것 같아 한개 중대를 거느리고 전방으로 맞받아갔다. 적들은 순식간에 최현이 인솔하는 중대를 포위하였다.

《이러다가는 최현동무마저 잃을것 같소.》

정황을 살피시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리동학에게 경위중대를 데리고가서 최현이 인솔하는 중대를 빨리 구출할데 대한 명령을 내리시였다. 전투에서는 시작을 어떻게 떼는가 하는데 따라 전투사기가 좌우되므로 어떻게 하든지 사태를 수습하여야 하였다.

일본군이 위만군을 총알받이로 앞세우고 맹렬하게 달려들었지만 최현부대와 리동학중대가 안팎의 협공으로 벼락같이 조겨대는 바람에 사태를 역전시킨 인민혁명군은 적들을 여러번 협곡에 몰아넣고 하루종일 답새기였다.

하지만 일본군은 자기 동료들의 시체를 타고넘으면서 파도식으로 계속 련달아 달려들었다.

유격대가 기관총을 10여정이나 배치하고 전방을 탄막으로 뒤덮는데도 적들은 그냥 새까맣게 달려들었다.

이런 공격을 종일토록 계속하였다. 그리하여 유격대도 어지간히 힘든 싸움을 하지 않으면 안되였다.

어떤 곳에서는 적이 아군진지에 들이닥치는 바람에 육박전까지 벌려야 하였다. 거기에 비까지 계속 내려서 전장은 더 처참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이 차지한 고지에서는 힘찬 노래소리가 터져나왔다.

녀대원들이 싸움을 하면서 부르는 《아리랑》이 전대오에 퍼졌다.

이 노래는 유격대원들의 전투사기를 무한히 북돋아주었으며 적들을 위압하고 공포에 질리게 하였다.

적들은 수많은 사상자를 내면서도 저녁때가 되도록 폭우속에서 공격을 중단하지 않았다.

이런 때 수령님께서는 팔반도쪽에 정찰임무를 받고 나갔다가 돌아오는 박성철소부대와 식량공작조에 련락하시여 적의 뒤통수를 때리게 하시였다.

적들은 앞뒤에서 얻어맞을 위험이 생기고 날까지 어두워지자 200명가량밖에 안되는 패잔병들을 모아가지고 싸움터에서 도망치고말았다.

간삼봉전투는 조선인민혁명군의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이 전투에서 유격대는 수많은 적을 살상하고 놈들의 《토벌》기도를 완전히 파탄시켰다.

전투가 있은 다음날부터 적들은 혜산, 신파와 간삼봉부근에 있는 마을들에서 담가와 우마차, 자동차를 징발하여 시체운반을 하였다.

적들은 시체마다 흰 광목을 덮어놓고 사민들이 얼씬하지 못하게 단속하였다. 적들이 제일 두려워한것은 저들의 패전상이 만천하에 드러나는것이였다. 적들은 신문에 간삼봉전투실황을 소개할 때에도 사상자수가 얼마 안되는것처럼 허위보도를 하였다.

적들이 유격대를 치겠다고 신파에서 압록강을 건너올 때에는 하루종일 걸렸는데 다시 건너갈 때는 반시간 남짓하게 걸렸다.

사상자수가 어찌나 많았던지 시체에서 머리만 잘라서 마대나 나무상자에 넣어가지고 우마차에 실어 자동차가 있는데까지 날랐다.

시체를 화장하는 연기와 냄새때문에 간삼봉지구 농민들은 며칠동안 숨도 제대로 쉴수 없었다.

시체운반에 동원된 일본병사에게 어떤 농민이 시치미를 떼고 물었다.

《달구지에 싣고가는것이 뭔가요?》

《가보쨔(호박)다.》

《〈가보쨔〉농사가 대풍이군요. 좋은 국거리니 많이들 자시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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