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평양전쟁

제2차세계대전시기인 1941년 12월-1945년 8월 태평양지역에서 미영제국주의 및 기타 련합국들을 한편으로 하고 일본제국주의를 다른 편으로 하여 진행된 식민지재분할을 위한 제국주의적침략전쟁.

이 전쟁은 아시아 및 태평양지역을 지배하고 이 지역 인민들을 식민지노예화하려는 일본제국주의와 미국, 영국 등 제국주의렬강간의 제국주의적모순, 그가운데서도 미일간의 모순을 기본으로 하여 일어났다. 제2차세계대전을 전후한 시기 미영제국주의자들은 유럽에서 파쏘도이췰란드를 반쏘침략에로 내모는 한편 아시아에서는 일제의 침략예봉을 아시아인민의 민족해방투쟁과 쏘련을 반대하는데로 돌리게 하려고 음흉하게 책동하였다. 그러나 일제의 중국본토에 대한 대대적인 침공, 1940년 네데를란드 및 프랑스가 파쑈도이췰란드에 항복한 기회를 리용하여 감행된 인도지나반도 북부에 대한 그의 강점은 이 지역에 침략적리해관계를 가진 미영제국주의자들과 일본제국주의간의 모순을 첨예화시켰다.

일본제국주의자들은 1940년 9월에 일본, 도이췰란드, 이딸리아 《3국군사동맹》을 체결하여 아시아에서 《대동아공영권》의 망상을 실현하려고 날뛰였다. 미제는 일제에 의하여 저들의 침략적리권이 심히 침해 당하게 된 정황하에서도 비렬한 《극동뮨헨정책》에 매여 달리면서 대일수출제한과 같은 소극적인 대항정책을 썼으며 1941년 4월 워싱톤에서 있은 미일회담에서는 서로 《세력권》을 확정하여 타협하며 일제를 아시아의 혁명력량과 쏘련을 반대하는데로 내몰려고 책동하였다. 그러나 일제는 1941년 7월 당면하게 남쪽방향으로 침략하며 장차 쏘련-도이췰란드전쟁에서 파쑈도이췰란드가 유리하게 된 시기에 쏘련을 침공할데 대한 《남진방침》을 세우고 《관동군》을 대대적으로 증강하는 한편 인도지나반도 북부에 있던 저들의 침략군을 반도 남부지역으로 진출시켰다. 이를 계기로 미일간의 모순은 극도로 첨예화되고 미제는 미국에 있는 일본자산동결과 대일석유수출금지를 실시하였다. 이리하여 아시아와 태평양지역의 지배권을 위한 미일간의 제국주의적모순은 군사적충돌을 앞둔 날카로운 단계에 이르게 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지난날 미영제국주의자들과 결탁하여 그들의 비호밑에 조선을 강점하고 아세아대륙에 침략의 마수를 뻗쳤으며 아세아인민들에게 헤아릴수 없는 고통과 재난을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들은 또한 파쑈독일 및 이딸리아와 공모결탁하여 태평양전쟁의 불을 질렀으며 아세아의 <맹주>가 되려고 미쳐 날뛰였습니다. 일본군국주의는 침략과 전쟁으로 살쪄왔으며 결국 전쟁으로 망하였습니다.》  

도죠(1884-1948)를 두목으로 하는 일본군국주의자들은 쏘련-도이췰란드전쟁에서 자기의 동맹국인 파쑈도이췰란드가 승리하리라고 믿으면서 1941년 12월 8일 새벽에 하와이의 진주만기지에 있는 미제태평양함대를 불의에 공격함으로써 태평양전쟁을 도발하였다. 이리하여 미제는 일제에게 전쟁을 선포하였고 파쑈도이췰란드와 이딸리아가 또한 미제에게 선전포고하였다. 12월 10일 일제는 영국군함 2척을 격침시켜 서남태평양상의 재해권을 장악하였다. 일제는 저들의 해군, 공군, 륙군을 태평양전선에 집중하고 불의의 습격으로 전쟁초기에 일시적인 군사적우세를 보장할수 있었다. 일제침략군은 1941년 12월 18일에 말라이반도에 침입하였으며 25일에는 홍콩을 강점하였다. 1941년 12월 10일 필리핀의 루손섬에 기여 든 일제는 다음해 1월 초 마닐라를 강점하고 6월까지에는 필리핀을 완전히 타고 앉았다. 같은해 5월 7일에는 코레히도르섬을 강점하였다. 또한 일제는 1941년에 괌섬, 웨크섬, 보르네오섬(깔리만딴섬)을, 1942년 2월까지에는 비즈마크제도, 띠모르섬, 암본섬, 쑬라웨씨섬, 따라깐섬을, 1942년 2월-3월에는 인도네시아의 쑤마떼라섬과 쟈와섬을 강점하였다. 1942년 3월 8일에는 먄마의 양곤이 일제침략군에게 강점되였다. 침략과 팽창에 미쳐 날뛴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적도를 넘어 솔로몬제도, 뉴기니아섬 등을 강점하였다. 1942년 5월까지 일제는 동남아시아와 태평양일대의 거의 전 지역을 지배하였다. 일제침략자들은 강점지역에서 야만적인 폭압통치와 무제한한 략탈, 잔인무도한 학살만행을 감행하였다. 일제침략군은 태평양전쟁기간에 윁남과 인도네시아에서만도 각각 200여만명, 말라이에서는 120여만명, 필리핀에서는 110여만명의 무고한 인민들을 학살하는 천인공노할 만행을 감행하였다. 그밖에 타이, 먄마 등 여러 지역에서 수많은 인민들이 일제침략군에 의하여 무참히 학살되였다.

일제침략자들이 아시아지역에서 략탈한 재부는 수천억딸라에 달하였다. 일제는 태평양전쟁을 도발한후 특히 조선에서 식민지적수탈과 파쑈적폭압, 학살만행을 전례없이 강화하였으며 강제징병과 징용으로 수많은 조선청년들을 침략전쟁터와 고역장에 내몰았다. 그러나 일제침략군의 피묻은 발길이 미치는 모든 곳에서 아시아인민은 굴하지 않았으며 강점자들을 반대하는 강력한 투쟁을 벌리였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현명한 령도밑에 조선인민혁명군은 맹렬한 군사정치활동을 벌려 일제침략자들에게 커다란 타격을 가하였다. 조선인민혁명군 소부대와 소조들은 일제의 경비초소와 수비대, 철도와 군용렬차 등을 련속 습격하여 파괴, 소멸함으로써 적의 후방을 교란하고 적들에게 심대한 군사, 정치적패배를 안기였다. 또한 아시아의 다른 나라 인민들도 일제침략자들을 반대하여 용감하게 싸웠다. 중국공산당의 령도밑에 팔로군과 신사군은 태평양전쟁이 일어 난후 일제침략군과 위만군을 격멸소탕하기 위한 전투를 더욱 힘차게 벌려 해방지구를 날로 확대하였다. 필리핀인민들은 1942년에 항일인민군을 무어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적극 벌리였다. 말라이에서도 항일인민군이 조직되여 항쟁운동이 벌어 졌고 먄마에서도 반파쑈인민자유련맹의 지도밑에 반일무장투쟁이 세차게 벌어졌다. 라오스인민들은 파테트 라오전투부대를 조직하여 일제침략자들을 소탕하였고 웰남, 타이 등지에서도 반일항전이 힘차게 벌어졌다. 아시아인민의 날로 강화되는 반일민족해방투쟁은 일제의 침략과 전쟁정책에 심대한 타격을 가하고 놈들을 궁지에 몰아 넣었다. 한편 일제의 공세앞에서 패배를 거듭한 미영제국주의자들은 1942년 6월 미드웨이해전을 계기로 겨우 반공격으로 나갈수 있었다. 미제는 1943년 5월 아쯔섬에, 6월 30일에는 뉴기니아와 그 주변섬들에 침입하였다. 9월에 일제는 마리아나-캐럴라인-길버트를 련결하는 선을 《방어선》으로 정하고 발악하였다. 그러나 미영제국주의자들은 동남아시아와 그밖의 지역에서 일시적으로 잃었던 식민지를 도로 찾으며 저들의 식민지세력권을 넓히는데 급급하면서 일제침략군에게 결정적타격을 가하지 않고 전쟁을 계속 끌었다. 미제는 태평양전쟁을 진행하면서 자신을 동남아시아인민의 《해방자》로 자처하였지만 사실에 있어서 이 지역 민족해방운동에 대한 악랄한 교살자였으며 일제를 대신한 악독한 식민지지배자였다. 1944년 10월 필리핀에 기여든 미제침략군은 필리핀항일인민군에 의하여 일제침략군이 녹아 나는 유리한 조건을 리용하여 이 나라를 강점하고는 곧 침략의 창끝을 민족해방운동에 돌리고 《군정》을 선포하였으며 서부이리안에서도 《해방자》의 탈을 쓰고 인민들을 닥치는대로 학살하였다. 교활한 미영제국주의자들은 앞으로 쏘련이 대일전쟁에 참가하게 되는 조건에서 그때 일제의 침략예봉을 쏘련에 돌리게 하여 그를 최대한으로 약화시킬 음흉한 목적밑에 중국 동북지방에 있는 일제의 군사전략적지대들에는 하나의 폭탄도 던지지 않았으며 일본본토에 대한 폭격도 군사적대상들은 될수록 피하고 주민구역에 감행하는 범죄행위를 저질렀다. 미제는 일제를 전후에 아시아침략정책수행의 도구로 리용할것을 기대하였으며 그의 침략무력과 군수공업이 파괴되는것을 원치 않았다. 그들은 일제와의 결정적전투를 회피하면서 일본본토상륙작전을 1946년에 수행할것으로 예견하였다. 미영제국주의자들의 이러한 책동으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자기의 동맹국인 파쑈도이췰란드가 항복(1945년 5월)한 조건에서도 100만의 《관동군》을 비롯한 많은 침략무력과 군사잠재력을 보존하고 그에 의거하여 장기전을 획책할수 있었다. 일제는 1945년 7월 26일 미국, 영국, 중국(장개석)의 항복요구를 묵살하고 장기전준비를 강화하였다. 미제는 일제의 패망이 가깝게 된 이 시기에 이르러 전후 국제문제처리에서 저들이 우세한 지위를 확보하려는 목적밑에 1945년 8월 6일 히로시마, 9일에는 나가사끼에 원자탄을 투하하였다.

백전백승의 강철의 령장이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945년 8월 9일 조선인민혁명군 전부대에 일제를 패망시키고 조국을 해방하기 위한 최후공격명령을 내리시였다. 조선인민혁명군 각 부대들은 적을 격멸소탕하면서 총공격에로 넘어 갔다. 같은날 쏘련군대가 대일전쟁에 참가하였다. 또한 몽골인민군도 대일전쟁에 나섰으며 중국을 비롯한 아시아의 여러 나라들에서 반일무장투쟁이 새롭게 앙양되였다. 조선인민을 비롯한 아시아인민의 반일무장항전과 쏘련군대의 공격으로 심대한 타격을 받아 더는 견딜수 없게 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1945년 8월 15일 무조건항복을 선언하고 그해 9월 2일 항복서에 조인하였다. 이로써 근 4년동안의 태평양전쟁은 일제의 패망으로 끝났으며 동시에 제2차세계대전도 종결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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