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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 유 수​

2017-08-09   김충일

중국 길림성 이통현 송화강지류 이통하강변의 농촌마을이다.

이통하동쪽에는 리가툰, 조가툰부락들이, 서쪽에는 소왕가툰, 연가툰부락들이 있었다.

1920년대말~1930년대초에 고유수일대에는 300여호의 농가가 있었는데 그가운데서 리가툰에는 100호이상에 달하는 조선사람들이 소작농사를 하면서 살고있었다.

조선사람들의 대부분은 3.1인민봉기이후 일제의 탄압과 략탈에 못이겨 평안도, 경상도, 황해도지방에서 이주하여온 사람들이였으며 그들은 주로 벼농사를 하였다.

고유수는 1920년대 중엽부터 정의부계통의 세력이 강하게 미치고있던 곳이였다. 여기에는 독립운동자들 조직한 구공소라는 자치기관과 남만녀자교육련합회 고유수리가툰지회라고 불리우는 부인회, 남만소년회가 있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18(1929)년 5월 중순 리가툰에 며칠동안 계시면서 민족주의자들이 내왔던 청년회, 부인회, 소년회를 개편하여 반제청년동맹지부와 농민동맹, 반일부녀회 등을 내오도록 하시였으며 인민들을 혁명화하시였다. 그리고 민족주의자들의 영향밑에 있던 창신학교를 혁명적인 삼광학교로 개편하시였으며 주체19(1930)년 여름에는 여기에 2년제고등과를 내오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9(1930)년 7월 6일 고유수에서 조선혁명가들의 첫 혁명적무장조직인 조선혁명군을 결성하시였으며 그후 그 소조들을 국내와 만주의 여러 지방에 파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20(1931)년 3월 돈화, 철령, 공주령을 거쳐 또다시 고유수에 오시여 혁명조직들의 사업을 지도하시며 적극적으로 활동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곳에서 국민당반동군벌들에게 체포되여 장춘에 호송되시였으며 20여일만에 석방되시였다.

고유수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정력적인 활동에 의하여 혁명화된 마을로 전변되였으며 이곳 인민들은 위대한 수령님을 민족의 태양으로, 조국해방의 구성으로 높이 우러르며 억세게 싸워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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