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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 량 왜 변 》​

2017-10-15   리영남

1510년 삼포왜란후에도 왜적들의 침입은 계속되였다. 왜인들의 비법적인 준동이 심해지자 조선정부는 1541년 11월 쯔시마령주에게 냉이포에 와있는 일본인들에 대한 단속을 엄격히 할데 대하여 추궁하는 동시에 규정을 위반하는 경우에는 법에 의하여 엄격히 처형하겠다는것을 통고하였다. 조선정부는 또한 왜적들의 침략만행에 대처하기 위하여 1543년 그들의 주요한 기항지, 은거지로 되여온 가덕도에 진을 설치하여 방어군을 주둔시키는 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쯔시마도주를 비롯한 왜나라령주들은 조선봉건정부의 정당한 요구를 무시하고 그후에도 매해 무역선수를 증가하도록 할것을 집요하게 요청하였다. 이것이 거절당하자 그들은 앙심을 품고 다시금 무력침략을 감행하는데로 나갔다.

1544년 4월 12일 이른 새벽 쯔시마령주의 사촉밑에 왜적선 20여척이 경상도앞바다의 사량섬에 몰래 접근하였다. 섬에 상륙한 200여명의 왜적들은 방비가 약한 뒤면으로부터 사량섬에 달려들었다. 당시 섬에는 매우 적은 수의 방어군밖에 없었다. 그리고 적들이 불의에 달려들었으므로 섬안의 군인들은 미처 전투준비를 갖추지 못하였으며 가까운 진포인 경우에도 바다길로 수십리 떨어져있었기때문에 지원을 기대할수 없었다.

그러나 섬안의 군인들은 조금도 당황하지 않고 포를 쏘고 화살을 날리면서 적들을 무찔렀다. 전투는 오전 10시경까지 근 6시간동안 치렬하게 벌어졌다. 이 전투에서 적들은 수십명의 주검을 내고 많은 전투기재를 버리고 도망쳤다.

이리하여 왜적들의 침략은 완전히 격퇴되였다. 이 사건을 력사에서 《사량왜변》이라고 한다.

이 사건이 있은 후 조선봉건정부는 조선에 와있는 왜인들에 대한 대우를 낮추고 왜나라국왕(막부의 장군)이 보낸 무역선외에는 일체 무역선의 래왕을 금지하였다. 그후 쯔시마도주가 저들의 잘못을 사죄하고 그 금지령의 해제를 간청하여 조선봉건정부는 1548년 그전보다 훨씬 제한된 범위의 무역을 허가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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