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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립협회》

2016-02-18   리영남

1896년 7월에 《민권》운동자들이 조직한 우리 나라에서의 첫 근대적인 정치단체이다.

19세기말 조선봉건통치배들의 사대주의와 극도의 부패타락, 강도 일제를 비롯한 외래제국주의자들의 침략으로 말미암아 나라의 위기는 더욱 격화되였다.

《독립협회》는 이러한 정세밑에서 리상재를 비롯한 《민권》운동자들에 의하여 1896년 7월에 서울에서 조직되였다.

《독립협회》는 나라의 독립을 고수하는것을 투쟁목적으로 삼았다.

《독립협회》는 기관지 《독립신문》(1896년 4월부터 발간)과 《독립협회회보》(1896년 12월부터 발간)를 발간하였다.

《독립협회》는 창설되자 곧 인민들에게 독립사상을 고취할 목적으로 봉건사대외교의 유물인 영은문을 헐고 그자리에 독립을 상징하는 독립문을 세우며 그 주변을 독립공원으로 꾸리는 투쟁을 벌렸다. 광범한 군중의 물심량면의 지원밑에 1896년 11월에 착수된 독립문건설은 1897년 11월에 완공되였다. 《독립협회》는 1897년 5월에 독립문부근에 있는 사대외교의 유물인 모화관을 독립회관으로 이름을 바꾸어달고 활동본거지로 삼았다. 협회의 이러한 활동은 인민들에게 민족적각성을 높여주고 《민권》운동을 본격적으로 벌리기 위한 준비를 갖추는데서 일정한 기여를 하였다.

《독립협회》의 활동에서 새로운 전환이 일어난것은 로동자, 학생, 상인을 비롯한 각계각층의 군중이 광범히 참가하게 된 때부터였다. 창설초기에는 불과 수십명을 망라했던 《독립협회》는 광범한 군중이 참가하게 됨으로써 1898년에 이르러서는 그 회원수가 4 000여명으로 늘어났으며 그 조직은 평양, 대구, 의주, 선천, 강계, 북청, 황주, 목포, 인천 등 각 지방에까지 확대되였다.

《독립협회》의 창설과 그 활동을 계기로 다른 정치단체들이 창설되게 되였다. 1898년을 전후하여 서울시안의 학생들의 조직인 《협성회》, 《광무협회》, 상인들의 조직인 《총상회》, 중인출신들의 조직인 《친목회》, 녀성들의 조직인 《순성회》를 비롯하여 수많은 단체들이 출현하였다. 이러한 단체들은 비록 구성은 달랐으나 모두가 제국주의침략과 봉건적억압착취를 반대하고 나라와 민족의 자주권을 지키기 위하여 싸웠다.

《독립협회》는 부패한 봉건통치의 악페를 개혁하고 《민권》을 얻기 위하여서도 투쟁하였다. 《민권》운동의 대표자들인 리상재, 남궁억, 정교 등은 모두가 독립협회성원들이였다. 그들은 만민공동회투쟁을 적극 벌렸다. 특히 1898년 10월에 열린 만민공동회에서는 봉건정부의 반동적인 대내외정책을 폭로규탄하고 6개조항으로 된 결의안을 채택하여 국왕에게 들이댔다.

반동적인 봉건통치배들은 반동테로단체인 《황국협회》를 조작하여 《독립협회》에 대한 테로행위를 감행하게 하였으며 1898년초에는 끝내《독립협회》를 해산시키고 말았다.

《독립협회》는 19세기말 애국문화운동을 추동하는데서 일정한 역할을 하였다. 그러나 그 지휘부에 잠입한 친미분자, 투항주의분자들에 의하여 내부에서 분렬이 일어나고 인민대중속에 뿌리를 박지 못했으며 내외원쑤들과의 투쟁에서 견결하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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