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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동지지》

2016-02-11   리영남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뛰여난 슬기와 재능을 가진 우리 인민은 예로부터 과학과 기술, 문학과 예술을 높이 발전시켜 나라의 명성을 떨쳤습니다.》

고전문헌 《대동지지》는 지난날 우리 나라가 지리분야에서 인류문화의 보물고에 기여한 가치있는 유산의 하나이다.

《대동지지》는 조선봉건왕조 말기인 19세기중엽에 당시 우리 나라의 뛰여난 지도지리학자이며 실학자의 한사람인 고산자 김정호에 의하여 만들어진것이다.

김정호가 활동하던 당시는 우리 나라가 여러가지로 심각한 위기를 겪고있던 때였다.

일찌기 자본주의적발전의 길에 들어선 서방의 자본주의나라들은 우리 나라를 원료원천지로, 상품판매시장으로 만들려고 호시탐탐 침략의 기회를 노리고있었다.

이러한 시대적요구를 반영하여 실학파학자였던 김정호는 우리 나라의 지리를 연구하고 지도를 제작할것을 결심하게 되였던것이다.

김정호는 자기가 직접 현지를 답사하면서 조사한 자료들과 선행시기에 제작된 각종 지도들, 특히는 농포 정상기와 그의 제자들에 의하여 완성된 《동국여지도》의 제작경험을 받아들여 측지측량법과 기술이 보다 발전하고 반영하는 내용이 풍부한 《청구도》를 1834년에 제작하였던것이다.

《청구도》는 그전에 만들었던 지도들보다 더 정밀하고 내용이 풍부할뿐아니라 리용하기도 편리하였다. 그것은 지도의 방안, 축척, 내용요소의 체계화 등에서 새로운 형식과 방법들을 적용하였기때문이다.

김정호는 《청구도》를 만들면서 지도의 수리적토대의 정밀성을 높이기 위하여 축적과 지도의 방안설정에 깊은 주의를 돌리였다.

김정호는 정상기의 《팔도도》에서 처음으로 적용된 100리척을 더욱 발전시켜 방안화함으로써 지도에서 내용묘사의 편리와 정밀성을 보장할수 있었으며 매개 지물의 위치와 거리, 방위 및 면적을 비교적 정확히 표시할수 있었다. 그리고 전체 지도를 유일적인 축척과 방안으로 묘사하고 그것을 첩본으로 만듦으로써 찾아보기 편리하게 하였다.

《청구도》는 지난 시기에 나왔던 지도들에 비하여 훨씬 발전한 지도였으며 우리 나라의 지도를 보다 정확하고 정밀하게 그릴수 있는 과학기술적토대를 마련하였다.

《청구도》에 반영된 내용들은 대체로 지난 시기에 만들어진 지도와 지지들을 참고하였다.

《청구도》의 범례에서 시사한바와 같이 여기에는 각 고을의  행정구역, 성곽, 창고, 도로 등 경제, 교통시설들과 산, 강, 섬, 나루 등 자연지리적인 대상 그리고 시장, 절간, 고적 등 사회력사적인 대상들을 지도에 표시하였다. 그러나 《청구도》는 지도작업의 기술적제한성과 내용요소의 번잡성, 자료의 부정확성으로 하여 도면구성이 조잡한것 등 적지 않은 부족점도 가지고있었다.

김정호는 《청구도》의 이러한 부족점을 극복하기 위하여 지도에 기입할 자료들을 실지 조사실측할것을 결심하게 되였으며 지도내용요소들의 복잡성과 도면의 착잡성을 피하기 위하여 지도방안을 도면에서 없애버리는 등 도면의 편성체계를 재검토하게 되였다. 그리하여 근 30년이라는 장구한 기간 현지조사 및 실측사업을 진행한 다음 1861년에 새롭게 만든 전국지도인 《대동여지도》를 제작완성하고 그를 판각하여 발행하였으며 1864년에 그것을 다시 정정 재판하였다.

《대동여지도》는 우리 나라의 전체 령역을 위도방향의 행선에 따라 22개의 부분으로 나누어 162 000분의 1 축척에 의하여 작성한 근대적인 지도였다.

22개의 부분을 다 모으면 무려 33㎡의 방대한 한폭의 지도로 된다.

《대동여지도》에는 각종 지형, 지물 등 자연지리적대상물들과 경제, 문화, 군사 등 넓은 범위의 내용들을 다 포괄하고있는데 도면우에 반영된 지도주기의 총수는 11 600여개에 달한다.

그리고 자연지리적요소인 바다와 해안, 강하천과 호수, 산과 산줄기, 벌판 그밖의 특이한 지형에 대하여서는 문자와 기호를 배합하여 비교적 정확하게 묘사하였으며 주, 군, 현 등 고을의 경계와 비래지 등 특수한 지역의 경계를 구분하여 표시하였고 주민지점들은 부, 읍, 리로 나누어 밝혔다.

또한 경제적의의를 가지는 저수지, 산림, 죽림과 염분, 시장 그리고 수공업생산시설들, 서원, 향교, 루각, 궁궐, 절간, 옛 전쟁터들까지 상세히 반영하였으며 군사작전상 의의를 가지는 지형조건과 해안상태, 주민지역에 대해서는 그 연혁과 시설의 배치정형까지 구체적으로 표시하였다.

이처럼 《대동여지도》는 지도제작에서 지켜야 할 가장 기초적이면서도 원칙적요구인 축척과 방위, 거리, 높이 등을 통일적으로 정밀하게 표시하면서 각종 표기내용을 정확하게 나타내기 위하여 최대의 노력을 기울인것으로 하여 지도제작의 과학기술적수준에서나 정밀성에 있어서 당시 우리 나라는 물론 세계적으로도 매우 발전한것이였다.

김정호는 도면작성기술이나 지도표기내용에서 우수한 우리 나라 전국지도인 《대동여지도》를 제작한데 뒤이어 1866년 이후에 전국적인 지리지 《대동지지》를 편찬하였다.

《대동지지》가 편찬될 당시 우리 나라에는 여러가지의 지리문헌들이 있었다.

우리 선조들은 자원이 풍부하고 경치가 아름다운 우리 나라를 매우 자랑스럽게 여기면서 생활상 필요한 자연부원을 리용하며 수려한 산천을 유람할 목적으로 여러가지 형태의 지리문헌들을 편찬하였던것이다.

김정호는 이러한 문헌들을 전면적으로 연구장악하고 자기가 직접 조사한 자료에 의거하면서 한편으로는 《삼국사기》지리지와 《고려사》지리지, 《동국여지승람》 등의 자료들을 토대로 하여 우리 나라의 자연과 경제, 력사 등 전반적인 내용을 포괄적으로 반영한 종합적인 지리문헌인 《대동지지》를 편찬하였다.

《대동지지》는 모두 32권으로 이루어졌는데 구성체계를 보면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수 있다.

첫째 부분은 1권으로부터 24권까지에 해당되고 둘째 부분은 25권부터 32권에 해당된다.

《대동지지》는 첫 머리에 총목록과 함께 전편의 서술요강이라고 할수 있는 《문목》을 주었으며 참고한 문헌들의 목록을 제시하였다.

《문목》은 《연혁》, 《고읍》, 《방면》, 《산수》, 《형승》 등 모두 22개의 항목인데 여기서는 《대동지지》에서 서술하려는 내용들을 총괄적으로 해설하였다.

실례로 《연혁》의 항목에 대한 기록을 들어보면 우리 나라의 력대 군현제도와 그 변천관계 그에 따르는 고을이름 및 경계의 이동과정 등을 반영한다고 하였다.

결국 《문목》은 김정호가 《대동지지》를 편찬하면서 연구하고 장악한 당시의 우리 나라의 전체 령역에 대한 고을별 해설인데 거기에는 해당 지역의 행정적소속관계로부터 력사, 자연, 경제, 교통운수, 문화유적 등의 대상이 전반적으로 포괄되여있었다.

조선봉건왕조의 수도를 제외한 나머지 전국의 군, 현들은 다 이러한 22개의 《문목》에 따라 내용이 배렬되여있었다.

이처럼 《문목》은 종합적인 지리문헌으로서 《대동지지》의 서술내용을 안내한것이며 편찬체계를 밝힌것이다.

《대동지지》의 문헌적면모는 《문목》으로 설정한 항목들에서 뚜렷이 나타나고있다.

《대동지지》는 《문목》다음에 《인용서목》을 밝혀주었다.

《인용서목》에는 《대동지지》가 편찬될 때 리용한 국내외의 문헌 65종이 소개되여있다. 그 가운데서 대표적인것만을 실례로 들어보면 《삼국사기》, 《고려사》, 《동국유사》, 《동사강목》 등 력사문헌들과 《신증동국여지승람》와 같은 인문지리책 그리고 《남한지》, 《송경지》, 《관북지》 등 읍지들과 《발해고》, 《강역고》, 《동국지리지》 등 력사지리책들을 참고하였으며 《사기》, 《한서》, 《삼국지》, 《후한서》, 《명일통지》, 《광여기》 등 외국의 력사책들, 지리문헌들이 리용되였다.

이러한 문헌들가운데는 현재 전해지지 않거나 찾아보기 어려운 책들도 있다.

《대동지지》에 소개된 《인용서목》은 김정호의 해박한 지식과 진지한 탐구심을 보여주는 동시에 이 문헌의 과학리론적가치를 립증하여준다.

김정호는 《대동지지》를 편찬하면서 조선봉건왕조의 수도를 소개하는데 특별한 힘을 넣었다.

《대동지지》의 첫권에는 《경도》, 《국조기년》, 《도성》, 《궁궐》, 《제궁》, 《단유》, 《묘전》, 《진전》, 《궁묘》, 《동반부서》, 《서반부서》 등 11개의 항목아래에 당시 경도의 자연과 력사를 개괄하고 조선봉건왕조의 력대 왕들과 그들의 사당, 무덤들을 밝혀주었으며 경도에 있던 여러 궁전들과 관청들을 소개하였다.

이것은 조선봉건왕조의 제반사회상을 반영한것으로 하여 일정한 사료적가치를 가진다.

《대동지지》의 전편의 서술체계는 우리 나라에서 중세기 지리문헌편찬의 경험을 따르면서도 그것을 더욱 발전시킨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다시말하여 김정호는 《대동지지》를 편찬하면서 우리 나라의 력대지리문헌편찬의 성과와 경험을 집대성하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켜 새로운 편찬체계를 수립하였던것이다.

《대동지지》의 편찬체계를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편찬체계와 비교하여 보면 이러한 사실을 잘 알수 있다.

15세기말에 편찬하고 16세기초에 보충한 지리문헌인 《신증동국여지승람》도 전국을 도별로 나누고 그것을 다시 고을별로 구분한 다음 일정한 항목아래 필요한 내용을 서술하였다.

그런데 《대동지지》는 이러한 서술체계를 따르면서도 각 도의 마지막에 그 도의 실태를 전반적으로 리해하는데 도움이 되도록 부록을 첨부하였다. 이것은 종전의 지리문헌들에서는 찾아볼수 없었던것이다.

《강역》, 《전민》, 《역참》, 《봉수》, 《총수》의 항목으로 작성된 부록은 해당 도의 경계와 주민구성, 역참, 봉수망을 일목료연하게 리해할수 있게 한다.

실례로 《강역》의 내용을 들어본다면 이것은 고을들의 동서남북 사방의 경계를 표시한것인데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그것을 매 고을별로 기록하였기때문에 한개 도의 경계를 리해하기 어려웠고 매 고을의 사방경계도 뚜렷하지 못하였다.

그러나 《대동지지》에서는 이것을 한곳에 도표형식으로 종합해놓음으로써 각 고을의 경계를 호상대비속에서 분석할수 있고 도안의 전반 고을의 형편도 쉽게 리해할수 있다. 이것은 과학적으로 정밀하고 리용하기 편리한 지리지를 편찬하려는 저자의 진지한 노력의 산물이라고 말할수 있다.

둘째 부분인 25권부터 32권까지는 후편으로서 지리문헌이 반드시 언급해야 할 내용들을 부분별로 종합하여 해설하였는데 이것은 종전의 지리문헌들에서는 찾아볼수 없는 새로운것이였다.

《대동지지》의 후편에는 우리 나라의 자연지리적대상물들과 국경지방의 방어시설물을 종합적으로 해설한 《산수고》와 《변방고》가 있었다.

이러한 체계는 역시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여 외래침략자들의 침입을 막자는데 목적을 두고 설정한것이였다.

현재 전해지는 필사본 《대동지지》에는 이상의 두 편목이 목록에만 있고 원문이 없어서 그의 전반내용은 잘 알수 없다.

그러나 《동국문헌비고》의 《산수고》와 《관방》편과 그밖의 문헌자료들에 근거하여 추측해보면 거기에는 우리 나라의 산, 봉우리, 산줄기, 고개, 언덕, 벌판, 강하천, 샘, 폭포 등 자연지리적대상물들과 거기에 깃든 력사적사실들 그리고 우리 나라의 국경지대의 군사시설들과 그의 변천과정, 나라의 방비를 강화하기 위한 저자자신의 주장 등이 서술되였을것이다.

특히 1861년에 편찬한 《대동여지도》의 《지도류설》을 본다면 《변방고》에 반영된 내용이 명백히 나라의 방위력을 강화하기 위한 자료였을것이다.

김정호는 《지도류설》에서 《… 위정자들이 나라를 다스리려면 모든 변방요새들의 리로운것, 해로운것과 군사배치에 적당한 곳을 몰라서는 안된다.》라고 하였다. 그러면서 당시의 형편에서 위정자들은 백성들의 생활을 안정시키고 군사시설을 강화하는데 소요되는 자금에 대하여 알아야 하며 나라를 부강하게 하려면 구체적인 자연지리적조건과 그 리용의 가능성을 알아야 한다고 강조하였다.

《대동지지》의 《산수고》와 《변방고》는 바로 이러한 애국적인 립장으로부터 나라를 부강하게 하고 방위력을 강화하는데 필요한 온갖 자연지리적 및 군사지리적 대상물들을 집중적으로 자세히 서술한 부분이였을것이다.

《정리고》는 우리 나라의 도로망과 그 거리 그리고 청나라와 일본으로 가는 륙로와 해로의 로정과 리수를 밝힌 부분이다.

《대동지지》에서는 이러한 내용을 《궐문분로》와 《성문분로》,《10대로와 제주로》, 《발참》, 《연변해로》, 《제주해로》 등 항목으로 자세히 기록하였다. 이것은 당시 우리 나라의 교통운수망과 통신망, 다른 나라들로 오고가는 통로 등을 다 반영한것이라고 말할수 있다.

《대동지지》에서는 도로망을 기록하면서 단순히 고장이름과 리수를 기록하는데 그친것이 아니라 해당 지역의 대표적인 지형, 지물과 그것을 경유할 때 참고가 될수 있는 여러가지 사항들을 빠짐없이 서술하였다. 이것은 《대동지지》를 한갖 문헌으로서 자료를 정리하는데 그치지 않고 실지 사람들이 리용하는데 편리를 도모하도록 하는데 힘을 넣었다는것을 보여주는것이다.

후편의 《력대지》는 우리 나라 력사지리를 개괄한 부분이다.

여기에는 고조선으로부터 삼국시기를 거쳐 고려에 이르기까지 력사자료들을 종합하고 그에 대한 필자의 견해가 첨부되여있다.

이처럼 《대동지지》는 독특한 구성체계를 설정하고 그에 립각하여 전국적인 범위에서 자연지리적대상물들과 교통운수망, 력사지리적인 내용들을 종합하여 서술하였다. 이것은 이전에 나온 지리문헌들에서는 찾아볼수 없었던 독특한 체계이다.

《대동지지》가 편찬되기 이전에도 개별적인 실학파학자들에 의하여 우리 나라의 지리에 대한 연구가 진행되였으며 그 결과 문헌들도 편찬간행되였다.

실례로 정약용의 《대동수경》, 신경준의 《도로고》와 《동국문헌비고》의 《산수》, 《관방》편과 리곤수의 《정리표》, 우하영의 《천일록》에서 《경도》 등을 들수 있다. 이러한 문헌들은 어디까지나 우리 나라 지리학의 한 분야 또는 그 한 부분을 취급한것에 불과하다.

그러나 《대동지지》는 우리 나라의 지리를 전국적범위에서 다루면서 어느한 분야의 자료를 종합하여 정리한것이 아니라 자연, 경제, 군사, 력사, 교통운수 등 당시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서 제기되는 지리학적문제들을 모두 종합하여 체계화하고 그것을 사람들이 필요에 따라 참고리용할수 있게 서술하였다.

그러므로 이 책은 사실상 우리 나라의 자연지리, 력사지리, 경제지리, 군사지리 등 지리학분야에 대하여 쓴 국내의 문헌은 물로 외국문헌들의 연구성과들을 집대성하였다고 말할수 있다. 그리고 이 책은 포괄하고있는 내용에서뿐아니라 지리책으로서의 서술체계와 자료들에 대한 분석방법에서도 종전의 도식적인 틀에서 벗어났다.

책에서는 직접 조사하여 얻은 생동한 자료들에 기초한 근대적인 분석과 리론에 따라 내용들을 서술하고있다. 특히 책의 서술체계는 지난 시기의 지리문헌들과는 달리 해당 항목에 필요한 자료를 라렬해놓는 방법으로 서술하거나 남이 고증한 자료를 그대로 옮긴것이 아니라 방대한 문헌자료들을 자신의 견해에 따라 분석평가하고 그에 현실적자료를 제시하는 새로운 방법들을 리용하였다.

《대동지지》는 지리책으로서 분량이 방대할뿐아니라 반영하고있는 내용이 다종다양하며 19세기 중엽의 사회현실을 전반적으로 파악할수 있게 하는 귀중한 자료들을 담고있어 사료적가치가 크다.

《대동지지》는 한편 당시로서는 매우 자세하고 정확한 전국지도인 《대동여지도》의 자료를 보충해주는 귀중한 문헌이다. 《대동여지도》는 축척과 표식이 매우 정교롭고 구체적인 지도로서 무려 11 600여개의 각종 대상물이 표시되여있다. 그러나 지도는 지도로서의 자기 특성으로 하여 지면에 놓인 대상물들과 그 위치를 단면우에 그러넣기때문에 어떤 대상의 외적특징을 한눈에 파악할수 있는 가능성은 있지만 그대신 내용을 다 반영하지 못하는 부족점을 가지고있었다. 이로부터 김정호는 지도를 그리면서 표시하지 못한 내용을 《대동지지》에서 구체적인 항목을 설정하고 자세하면서도 풍부하게 서술하였다.

《대동지지》는 이와 같이 자연지리, 정치관계의 자료들만이 아니라 모든 분야의 자료들을 종합적으로 풍부하게 싣고있음으로 하여 각 부문의 력사를 연구하는데 없어서는 안될 귀중한 문헌으로 된다.

그러나 《대동지지》에는 일련의 부족점도 있다.

그것은 각종 《문목》서술방식을 다 정비하지 못하고있는것인데 대표적으로 평안도 의주이하 벽동에 이르는 22개의 고을들에 대하여 우와 다른 항목으로 서술한것과 《력대지》의 편목설정에서 력사적사실과 맞지 않게 하고있는것을 들수 있다.

그러나 《대동지지》는 그 체계와 내용서술방법 등에 있어서 종전의 지리문헌들을 분석종합하여 새로운 단계에로 발전시킨 봉건사회말기의 종합적이며 전국적인 지리문헌인것으로 하여 우리 나라 지리학발전력사상 중요한 자리를 차지한다. 또한 여기에 담겨진 풍부한 내용들은 이 시기의 사회, 력사, 경제, 문화, 군사 등 기타 각 부문의 연구에 중요한 자료로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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