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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선개헌》반대투쟁

2016-02-01   박준혁

박정희괴뢰도당은 장기집권의 야욕밑에 1969년에 들어와 《대통령》을 두번 즉 8년이상 해먹을수 없게 되여있는 괴뢰헌법의 《련임금지》조항을 뜯어고치려고 책동하면서 2월 3일에는 《민주공화당의원총회》에서 음모적으로 꾸며오던 《3선개헌안》을 공개하였다.

그후 《국회》에서 야당의 반발에 부딪치자 8월 9일 《국회》의 형식적인 토의마저 없이 괴뢰행정부에 넘겨 《3선개헌안》을 공포케 하였다. 그리고 9월 14일 야당《의원》들이 다 잠든 사이에 회의장을 옮겨 새벽 2시 55분 《민주공화당의원》들만이 모인 《국회》에서 불과 6분만에 《개헌안》을 날치기로 통과시켰다.

놈들이 감행한 《3선개헌》조작책동은 남조선인민들의 의사와 요구를 란폭하게 거역한것으로서 그들의 강력한 반발에 부닥쳤다.

1969년 2월 5일 《전국학생총련맹》, 《자유수호학생협회》, 《6.3동지회》를 비롯한 청년학생단체들과 서울시안의 주요 대학교 학생대표들은 모임을 가지고 《3선개헌반대투쟁에 총력을 다할것》을 선언하는 한편 이 투쟁에 남조선 각계각층 인민들이 적극 합류할것을 호소하였다.

5월 14일에는 《3선개헌저지범청년기구》로서 《4.19 및 6.3 범청년민주수호투쟁위원회》를 조직하고 《4.19정신을 되새겨 모든 청년학생들은 총궐기하라》고 남조선의 전체 대학생들에게 호소하였다.

《3선개헌》반대투쟁은 서울대학교 법과대학 학생들의 궐기를 발단으로 하여 대중적인 투쟁으로 확대되였다.

이리하여 6월 12일부터 7월 12일까지의 한달기간에 남조선 전역의 36개의 대학교 및 대학, 16개의 중고등학교가 투쟁에 나섰으며 학생, 시민 약 8만명이 참가하였다.

그들의 투쟁에서는 《박정희하야하라》, 《반독재, 반개헌》, 《일당독재를 반대한다》, 《공화당은 장기집권을 위한 악랄한 수법을 쓰지 말라》, 《3선개헌은 4.19의 모독이다》, 《3선개헌결사반대한다》 등의 구호들이 제기되였다.

남조선청년학생들은 적들의 탄압을 박차고 완강하게 투쟁하였다. 《3선개헌》반대투쟁은 1967년 6.8부정《선거》를 반대하는 남조선청년학생들의 투쟁이후에 벌어진 가장 큰 규모의 투쟁으로서 여기에는 남조선전역을 포괄하는 55개의 대학교 및 대학들과 37개의 고등학교 학생들 연 15만 7천여명과 수많은 주민들이 참가하여 용감히 싸웠다.

남조선인민들의 《3선개헌》반대투쟁은 미제와 남조선괴뢰도당의 악랄한 파쑈통치에 대한 인민들의 쌓이고 쌓인 불만과 반감의 표시로서 파쑈독재를 뒤집어엎고 자유와 해방을 쟁취하려는 의로운 애국투쟁이였다.

이 투쟁을 통하여 남조선인민들은 남조선괴뢰도당의 장기집권책동에 커다란 타격을 주었으며 괴뢰도당을 궁지에 몰아넣고 그를 인민대중으로부터 더욱 고립시켰다.

한편 투쟁과정에 남조선인민들의 민족적 및 계급적각성이 한층 높아졌으며 반괴뢰투쟁이 더욱 강화되게 되였다.

그러나 이 투쟁은 일련의 제약성으로 하여 남조선괴뢰도당의 장기집권책동을 완전히 꺾어버리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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