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대답

28 주체철학에서 사람에 대한 철학적해명을 사회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하는 리유는 무엇인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사람에 대한 철학적고찰에서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사회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하여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철학적해명이란 세계와의 관계속에서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밝힌다는것을 말한다.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해명하는데서는 그 출발점을 어디에 두는가 하는것이 문제로 나선다.

지난 시기 많은 철학가들이 사람에 대하여 각이한 견해를 내놓았지만 사람의 본질적특성에 대한 옳바른 해명을 줄수 없었던것은 사람에 대한 철학적해명의 출발점을 잘못 정한것과 관련된다.

사람에 대한 철학적해명에서는 사람이 사회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그것은 사람의 본질적특성이 사람이 사회적존재로서 가지는 특성이기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철학적해명에서 사람이 사회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할 때에만 자연적, 생물학적존재는 가질수 없는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옳게 밝힐수 있다.

만일 사람이 자연적,생물학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한다면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자연적, 생물학적속성으로 보게 된다.

사람이 사회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하여야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자연적존재가 가질수 없는 사람의 고유한 사회적속성에서 찾게 된다.

사람의 사회적속성은 사회적존재로서의 사람의 발생과 발전과정 다시말하여 사람의 사회적활동과 사회적관계의 력사적발전과정을 통하여서만 형성발전될수 있다.

사회의 발전력사가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력사라고 하는것은 곧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사회력사적으로 형성발전되는 사회적속성이라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철학적해명에서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사회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박준혁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08 23:52:00
27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야학에서 학습하시면서
깊이 체득하신것은 무엇입니까?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우선 야학에서의 학습을 통하여 계급투쟁의 본질과 혁명에 대한 자각을 깊이 인식하게 되시였습니다.

어리실 때부터 배움에 대한 열망이 남달리 높으시였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야학에 남먼저 나가시였습니다.

야학에서는 국어와 산수, 우리 나라 력사와 지리 등을 배워주었는데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느 과목학습에서나 모범을 보이시였으며 특히 《조선의 독립과 자유해방》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그 내용을 자자구구 익히시였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남다른 열정을 안으시고 야학공부를 열심히 하시였으며 야학에 나오기를 주저하는 녀성들에게도 글을 배워야 이 불합리한 사회를 알게 되고 락후한 봉건사상도 없애게 된다고 일깨워주시였습니다. 점차 야학에 나오는 녀성들이 늘어났고 밤에는 야학방에서 부르는 《녀성해방가》의 노래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비록 어리신 몸이였으나 그때에 벌써 녀성들을 무지와 몽매에서 벗어나 계급적으로 눈을 뜨게 하는 부암마을의 선각자이시였습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야학에서의 학습과정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깊이 간직하시였습니다.

야학생들은 이야기시간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이야기시간에는 옛이야기, 시국형편이야기 등 여러가지가 화제에 오르군 하였는데 그 많은 이야기가운데서도 야학생들을 제일 감동시킨것은 민족의 위대한 태양 김일성동지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우리 민족을 구원해주실 구세주,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소식을 혁명조직성원인 야학선생으로부터 전해들으시며 수령님에 대한 열렬한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간직하게 되시였고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혁명의 길에 한몸을 다바칠 굳은 각오를 다지게 되시였습니다.

참으로 야학은 김정숙동지께 있어서 주체의 혁명적세계관을 튼튼히 세우고 투철한 혁명의식, 계급의식을 더욱더 굳게 간직할수 있게 한 혁명의 학교로 되였습니다.

김충일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06 08:09:38
26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어떻게 되여 화성의숙에 입학하시였습니까
  

주체15(1926)년 6월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신 다음 김형직선생님의 친지들인 오동진, 량세봉, 장철호, 김시우를 비롯한 민족운동자들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전도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수령님을 독립운동인재로 키우려는 의도로 무관학교인 화성의숙에서 공부하실것을 권고하였다

화성의숙은 우리 나라 민족주의자들이 독립군지휘관들을 키워낼 목적으로 주체14(1925)년초에 세운 2년제 군사정치학교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의 친지들의 진심으로 되는 권고이기도 하고 또 무장한 일제와는 무장으로 맞서자면 군사을 알아야 한다는 의지 그리고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공부시켜주는 교육환경과 조건을 고려하시여 화성의숙에 입학하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회고록에서 의숙에 끌끌한 청년들이 많고 정치교육과 함께 군사교육을 하며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공부시켜준다는 사실이 자신께서 화전으로 갈 결심을 내리게 하였다고 쓰시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입학후  얼마 안되여 이곳에서 배워주는 모든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였다. 부르죠아민족주의운동의 력사가 수십년 되지만 의숙의 교육에는 그것을 집대성하고 비판적으로 분석총화하는 리론이 없었고 배워주는것은 민족주의사상과 구《한국》냄새가 나는 낡은 군사훈련뿐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주의사상에 깊이 물젖은 선생들이 비록 반일과 민족적독립에 대하여 말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투쟁방법이 시대착오적이라는것을 깨달으시고 그들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하시였다. 그리하여  주체15(1926)년 10월 17일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새형의 공산주의적혁명조직인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전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터치고 보다 광활한 무대에로 나가 《ㅌ.ㄷ》의 결성으로 첫 걸음을 뗀 공산주의운동을 더 높은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벌리시기 위하여 주체15(1926)년 12월초에 결연히 화성의숙을 중퇴하시였다.

김경희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04 08:38:36
25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혁명활동의 첫 자욱을 떼신데서
주목되는것은 어떤것입니까.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큰뜻을 품으시고 혁명의 길에 나서시였으며 외세의존의 낡은 사조와 대담하게 결별하시고 조선혁명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시였다. 수령님께서는 청년시절에 불멸의 주체사상을 창시하시고 항일무장투쟁을 승리적으로 조직령도하심으로써 민족해방의 구성으로, 전설적영웅으로 이름을 떨치시였습니다. 수령님을 모시고 조국광복을 위하여 영웅적으로 투쟁한 항일투사들도 대부분 10대, 20대의 청년들이였습니다. 우리 혁명이 청년장군이신 위대한 수령님의 령도밑에 청년투사들의 피어린 투쟁에 의하여 개척되였다는 점에서 우리 혁명의 뿌리는 청년운동으로부터 내리기 시작하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혁명활동의 첫 자욱을 떼신데서 주목되는것은 우선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민족의 운명을 한몸에 지니시고  혁명의 길에 나서신것이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는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나라찾을 원대한 뜻을 품으시고 혁명의 길에 나서시였으며 자력독립의 기치높이 《무장에는 무장으로!》라는 구호를 제시하시고 항일대전을 선포하시였다. 이런 위인은 동서고금 그 어디서도 찾아볼수 없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혁명활동의 첫 자욱을 떼신데서 주목되는것은 또한 외세의존의 낡은 사조와 대담하게 결별하고 조선혁명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시면서 혁명의 첫 걸음을 떼신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성의숙의 시대적락후성을 포착하시고 낡은 방식대로 해서는 안되겠다는 생각을 하시였다. 총 몇자루를 가지고 소규모의 무장단성원으로 압록강을 넘나들면서 왜놈순사나 몇놈 처단하고 군자금이나 모으러 다니는것과 같은 투쟁방법으로는 나라의 독립을 이룩할수 없다는 생각을 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새로운 방법으로 조국해방의 길을 개척해야 하겠다는 확고한 결심을 품고 조선혁명의 진로를 모색하시였다.이 과정에 수령님께서는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내놓으시였으며 그 실천투쟁은 곧 혁명활동이였다. 

위대한 김일성동지께서 혁명활동의 첫 자욱을 떼신데서 주목되는것은 또한 청년학생운동으로부터 혁명활동을 개시하신것이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10대의 어리신 나이에 민족의 운명을 구원할 큰뜻을 품으시고 혁명의 길에 나서시였으며 외세의존의 낡은 사조와 대담하게 결별하시고 조선혁명의 새로운 진로를 개척하시는 실천투쟁속에서 그리고 청년학생운동으로부터 혁명활동을 개시하시였다. 

이외에도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혁명활동의 첫 자욱을 떼신데서 주목되는것은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시작하시였다는데서도 찾아볼수 있다.

김경희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02 09:29:58
24 우리 민족을 왜 백의민족이라고 하는가?​
  

예로부터 하나의 혈통을 이어온 우리 민족은 백의민족으로 불리워져오고있다.

백의민족이라는 말은 흰옷을 즐겨입었던 우리 민족에 대한 호칭이였다.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흰색의 조선옷을 즐겨입었다.

이것은 단군을 시조로 한 민족의 단일성과 관련된다. 우리 조상들은 흰색을 하늘과 땅을 의미하는 색으로, 단군을 숭상하는 색으로 여겼다.

하늘에 제사를 지낼 때에는 언제나 흰옷을 입고 흰떡, 흰쌀밥을 해놓았는데 이것은 우리 민족의 하나의 관습으로 굳어져 전통화되였다.

우리 민족이 흰옷을 즐겨입은것은 깨끗하고 순결한것을 좋아하는 정서와도 관련된다.

우리 선조들은 일년사계절 항상 깨끗한 흰옷을 즐겨입었다. 특히 무명이 옷감으로 널리 리용되면서 흰옷을 해입는 풍습이 더욱 굳어졌다.

옛 력사책에는 부여에서 《흰옷을 숭상한다.》고 씌여져있으며 7세기에 편찬된 중국력사책 《수서》에도 조선민족이 흰옷을 좋아하였다고 기록되여있다.

13세기 후반기 고려시기 《음양오행설》에 따라 청색을 숭상하면서 흰색을 입지 못하게 하였을 때에도, 조선봉건왕조시기 옥색의 옷을 입도록 하면서 흰옷을 입지 못하게 하였을 때에도 우리 인민들은 흰옷을 즐겨입었다.

《백의종군》이라는 말도 있는데 이것은 평민들이 모두 흰옷을 입고 전장에 나갔으므로 벼슬에 있던 사람이 일반병사로 평민들과 같이 흰옷을 입고 전장에 나간것을 의미하는것이였다.

백의종군한 대표적인 사람으로서는 임진조국전쟁때 수군절도사로 있다가 간신들의 모함에 의해 병사로 강직된 리순신장군을 들수 있다.

3.1인민봉기때에는 온 나라 인민들이 흰옷을 입고 일제를 반대하는 시위에 떨쳐나섬으로써 일제에게 백의민족의 단결력과 항거의 정신을 보여주었다.

이처럼 예로부터 우리 인민이 민족의 단일성과 정서가 반영된 흰옷을 즐겨입은것으로 해서 우리 민족은 백의민족으로 불리워왔던것이다.

리영남 | 김일성방송대학 2016-10-30 13:15: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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