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대답

김일성주석의 어머님이신 강반석녀사의 성함에
깊은 뜻이 있는것같은데 그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부모는 태여난 자식의 앞날에 대한 희망과 기대, 념원을 담아 이름을 지어준다.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강반석녀사께서는 어리실 때 《작은녀》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어려서부터 5남매가운데서 제일 지혜롭고 총명하신것은 물론 부지런하고 근면하시면서도 마음이 굳세고 또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칠줄 아는 뜨거운 인간애를 지니신 강반석녀사에 대한 집안사람들의 기대는 남달리 컸다.

할아버님이신 강병희선생님께서도 작은 손녀의 성장을 무심히 보지 않으시였고 늘 강돈욱선생님께 《작은녀》가 자라는것을 보니 총명하고 지혜로움이 다른 애들과는 전혀 다르다고 하시면서 《작은녀》를 잘 키우고 좀 더 자라면 이름을 뜻있게 지어주어 그의 앞날을 기대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하시였다.

1903년 어느날 강돈욱선생님께서는 자제분들을 앉혀놓으시고 종이우에 기둥 4개와 그 우에 지붕을 그려놓으시고 이것이 무엇인가고 물으시였다.

자제분들모두가 집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강돈욱선생님께서는 기둥을 지워버린 다음 무엇인가 다시 물으시였다. 자제분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강돈욱선생님께서는 옳다고 하시며 기둥이 없으니 집도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나라가 지금 기둥없는 이 집과 같다고 하시면서 너희들이 앞으로 훌륭히 자라서 나라의 기둥이 되라고 말씀하시였다.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계시던 강반석녀사께서는 기둥도 중요하지만 그 기둥을 받들고있는 주추돌이 반듯하고 든든해야 기둥이 바로 서있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아버님께 말씀드렸다.

이로부터 2년후인 1905년 강돈욱선생님께서는 나라의 기둥을 떠받드는 주추돌이 되라는 의미에서 당시까지만 하여 《작은녀》라고 불리우시던 녀사께 소반반, 돌석자를 붙여서 뜻깊게 이름을 강반석이라고 지어주었다.

반석이라는 이름에 담긴 집안식구들의 소망을 헤아리신 강반석녀사께서는 새해를 맞이하여 아버님께 세배를 드리고나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읊으시였다.

               

                                                 이 딸은 반석이옵니다.

                                                 룡악산아래 추녀낮은 집에서 태여나

                                                 소녀의 작은 몸 키워

                                                 아버님 주신 이름 고이 받아안고

                                                 15살 동트는 이 아침에

                                                 설인사 드리옵니다

 

                                                 부디 반석이 되라 하셨기에

                                                 굳세고 변함없는 마음 간직하렵니다

                                                 숨져가는 나라의 딸이기에

                                                 겨레가 딛고 일어설 반석이 되렵니다

                                                 나라의 기둥을 굳건히 떠받드는

                                                 반석이 되렵니다   

                                                 이 딸은 반석이옵니다

 

그때로부터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강반석녀사께서는 한생을 성함그대로 변함없이, 굳세게 반석으로 사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한평생 나라의 독립을 위한 력사의 새벽길을 헤쳐나가시는 우리 나라 반일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과 아드님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애국위업을 받드시여 이름그대로 나라의 기둥을 받드시는 주추돌로 사시였다.

새겨볼수록 그 이름에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을 안아올리신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강반석녀사의 고귀한 한생이 그대로 담겨져있다.

김경희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15 17:11:53
주체사상이 밝힌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과 맑스주의가 밝힌 객관성의 원칙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주체사상이 밝힌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은 사회적운동, 혁명운동에서 사람을 중심에 놓고 그 주체인 사람, 인민대중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을 높이기 위한 원칙이다.

한편 맑스주의가 밝힌 객관성의 원칙은 사람의 활동의 객관적조건을 중심에 놓고 그에 전적으로 의거하는 방법론이다.

주체사상이 밝힌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은 변화발전하는 현실과 조건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고 잘 타산한데 기초하여 그것을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할수 있게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혁명과 건설을 진행해나가는 방법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정에는 사람의 활동의 객관적조건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준비정도도 포함되며 그것이 기본으로 된다.

혁명과 건설을 실정에 맞게 한다는것은 결국 주체인 인민대중의 준비정도를 기본으로 하여 혁명의 투쟁목표와 주타격방향을 규정하고 혁명력량을 옳게 편성하며 혁명투쟁의 형태와 방법을 정확히 규정하고 혁명의 적절한 시기를 옳게 선택한다는것이다.

따라서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을 구현할 때에는 그 주체인 인민대중의 주동적작용과 역할이 높아지고 부족한것은 찾아내고 없는것은 만들어내며 화를 복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면서 혁명과 건설의 목적을 성과적으로 달성하게 된다.

맑스주의가 밝힌 객관성의 원칙은 물질의 1차성에 관한 원리로부터 출발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사람밖의 주어져있는 객관적조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론으로부터는 사람보다 주어진 조건을 먼저 보고 사람의 역할을 높이는것보다 객관적조건을 마련하는데 선차적인 의의를 부여할데 대한 요구가 나온다.

따라서 객관성의 원칙에 의거할 때에는 혁명과 건설에서 그 주체인 인민대중의 역할을 보장할수 없으며 혁명과 건설을 목적의식적으로, 주동적으로 수행해나갈수 없다.

이와 같이 주체사상이 밝힌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은 사회적운동, 혁명운동에서 사람을 중심에 놓고 그 주체인 사람, 인민대중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을 높이기 위한 원칙이라면 맑스주의가 밝힌 객관성의 원칙은 사람의 활동의 객관적조건을 중심에 놓고 그에 전적으로 의거하는 방법론이라는데 근본차이가 있다.

박준혁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12 10:53:23
미제가 조작한 리승만의《단독정부》를 왜 비법적인 정부라고 하는가​
  

그것은 두가지로 볼수 있는데 하나는 미제가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이라는것을 꾸며내여 조작해낸 명실공히 괴뢰정권이라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선거》결과를 날조하여 세운 《정권》이라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우선 미제는 조선문제를 비법적으로 유엔에 상정시키고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이라는것을 꾸며내여 이른바 《국제련합의 감시》하의 선거놀음을 벌렸다.

 

※ 전조선을 타고앉을수 없다고 판단한 미제는 남조선에서만이라도 식민지통치기구를 조작할 목적밑에 모스크바3국외상회의 결정에 의하여 소집되였던 이전 쏘미공동위원회사업을 고의적으로 파탄시키고 1947년 10월 유엔에서 조선인민의 대표도 없이 조선문제를 토의결정하였으며 이어 유엔의 비법적인 결정에 의하여 조작된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을 남조선에 끌어들여 그 감시하에 남조선에서 《단독선거》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조선인민의 자주권을 란폭하게 짓밟고 우리 조국을 영원히 갈라놓으려는 미제의 침략정책에 따른것이다.

 

다음은 근로인민의 민주주의적자유를 완전히 박탈된 조건하에서 《선거》결과를 날조하여 세운 《정권》이라는데 있다.

 

※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인민대중의 창의에 의하여 수립된 인민위원회들을 해산하고 미군정을 설치한 미제는 저들의 손때묻은 매국노들과 국내에 있던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기본세력으로 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려고 미쳐날뛰였다. 특히 남조선에서 《단독선거》를 준비하는 시기에는 남조선주둔 미군과 반동경찰을 내몰아 애국적인사들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으며 《선거》전야에는 선거자들을 위협할 목적으로 허다한 명령서와 포고령들을 발표하여 《선거자명부》에 강제등록하게 하였다. 

하여 5월 10일 당일에는 많은 《선거》장소들에서 선거자들이 《선거자명부》의 번호를 기입한 투표지를 받았거나 투표지를 전혀 받지 않고 《선거자명부》에 자기의 도장을 찍어놓은 완전히 날조된 《선거》가 진행되게 되였다. 이것은 강제적으로 《선거》를 날조해내서라도 기어이 남조선을 타고 앉으려는 미제의 침략적본성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이와 같이 미제가 조작한 리승만의 《정부》는 합법적인 《정부》가 아니라 비법적인 정부이다.

박철만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10 10:52:12
주체철학에서 사람에 대한 철학적해명을 사회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하는 리유는 무엇인가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사람에 대한 철학적고찰에서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사회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하여야 합니다. 

사람에 대한 철학적해명이란 세계와의 관계속에서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밝힌다는것을 말한다.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해명하는데서는 그 출발점을 어디에 두는가 하는것이 문제로 나선다.

지난 시기 많은 철학가들이 사람에 대하여 각이한 견해를 내놓았지만 사람의 본질적특성에 대한 옳바른 해명을 줄수 없었던것은 사람에 대한 철학적해명의 출발점을 잘못 정한것과 관련된다.

사람에 대한 철학적해명에서는 사람이 사회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그것은 사람의 본질적특성이 사람이 사회적존재로서 가지는 특성이기때문이다.

사람에 대한 철학적해명에서 사람이 사회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할 때에만 자연적, 생물학적존재는 가질수 없는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옳게 밝힐수 있다.

만일 사람이 자연적,생물학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한다면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자연적, 생물학적속성으로 보게 된다.

사람이 사회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하여야 사람의 본질적특성을 자연적존재가 가질수 없는 사람의 고유한 사회적속성에서 찾게 된다.

사람의 사회적속성은 사회적존재로서의 사람의 발생과 발전과정 다시말하여 사람의 사회적활동과 사회적관계의 력사적발전과정을 통하여서만 형성발전될수 있다.

사회의 발전력사가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의 발전력사라고 하는것은 곧 사람의 자주성, 창조성, 의식성이 사회력사적으로 형성발전되는 사회적속성이라는것을 말해주는것이다.

그러므로 사람에 대한 철학적해명에서는 어디까지나 사람이 사회적존재라는데로부터 출발하여야 한다.

박준혁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08 23:52:00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 야학에서 학습하시면서
깊이 체득하신것은 무엇입니까?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우선 야학에서의 학습을 통하여 계급투쟁의 본질과 혁명에 대한 자각을 깊이 인식하게 되시였습니다.

어리실 때부터 배움에 대한 열망이 남달리 높으시였던 김정숙동지께서는 야학에 남먼저 나가시였습니다.

야학에서는 국어와 산수, 우리 나라 력사와 지리 등을 배워주었는데 김정숙동지께서는 어느 과목학습에서나 모범을 보이시였으며 특히 《조선의 독립과 자유해방》이라는 제목이 마음에 들어 그 내용을 자자구구 익히시였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남다른 열정을 안으시고 야학공부를 열심히 하시였으며 야학에 나오기를 주저하는 녀성들에게도 글을 배워야 이 불합리한 사회를 알게 되고 락후한 봉건사상도 없애게 된다고 일깨워주시였습니다. 점차 야학에 나오는 녀성들이 늘어났고 밤에는 야학방에서 부르는 《녀성해방가》의 노래소리가 울려나왔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비록 어리신 몸이였으나 그때에 벌써 녀성들을 무지와 몽매에서 벗어나 계급적으로 눈을 뜨게 하는 부암마을의 선각자이시였습니다.

항일의 녀성영웅 김정숙동지께서는 또한 야학에서의 학습과정에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에 대한 끝없는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깊이 간직하시였습니다.

야학생들은 이야기시간을 제일 좋아했습니다. 이야기시간에는 옛이야기, 시국형편이야기 등 여러가지가 화제에 오르군 하였는데 그 많은 이야기가운데서도 야학생들을 제일 감동시킨것은 민족의 위대한 태양 김일성동지에 대한 전설같은 이야기였습니다.

김정숙동지께서는 일제의 식민지통치밑에서 우리 민족을 구원해주실 구세주, 태양이신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소식을 혁명조직성원인 야학선생으로부터 전해들으시며 수령님에 대한 열렬한 존경과 흠모의 마음을 간직하게 되시였고 수령님께서 이끄시는 혁명의 길에 한몸을 다바칠 굳은 각오를 다지게 되시였습니다.

참으로 야학은 김정숙동지께 있어서 주체의 혁명적세계관을 튼튼히 세우고 투철한 혁명의식, 계급의식을 더욱더 굳게 간직할수 있게 한 혁명의 학교로 되였습니다.

김충일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06 08:09:38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어떻게 되여 화성의숙에 입학하시였습니까
  

주체15(1926)년 6월 우리 나라 반일민족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 김형직선생님께서 서거하신 다음 김형직선생님의 친지들인 오동진, 량세봉, 장철호, 김시우를 비롯한 민족운동자들은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전도에 많은 기대를 가지고 수령님을 독립운동인재로 키우려는 의도로 무관학교인 화성의숙에서 공부하실것을 권고하였다

화성의숙은 우리 나라 민족주의자들이 독립군지휘관들을 키워낼 목적으로 주체14(1925)년초에 세운 2년제 군사정치학교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아버님의 친지들의 진심으로 되는 권고이기도 하고 또 무장한 일제와는 무장으로 맞서자면 군사을 알아야 한다는 의지 그리고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공부시켜주는 교육환경과 조건을 고려하시여 화성의숙에 입학하게 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후날 회고록에서 의숙에 끌끌한 청년들이 많고 정치교육과 함께 군사교육을 하며 돈을 받지 않고 무료로 공부시켜준다는 사실이 자신께서 화전으로 갈 결심을 내리게 하였다고 쓰시였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입학후  얼마 안되여 이곳에서 배워주는 모든것이 마음에 들지 않으시였다. 부르죠아민족주의운동의 력사가 수십년 되지만 의숙의 교육에는 그것을 집대성하고 비판적으로 분석총화하는 리론이 없었고 배워주는것은 민족주의사상과 구《한국》냄새가 나는 낡은 군사훈련뿐이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민족주의사상에 깊이 물젖은 선생들이 비록 반일과 민족적독립에 대하여 말을 많이 하고는 있지만 그들이 주장하는 투쟁방법이 시대착오적이라는것을 깨달으시고 그들과는 다른 새로운 길을 모색하시였다. 그리하여  주체15(1926)년 10월 17일 우리 나라에서 처음으로 되는 새형의 공산주의적혁명조직인 타도제국주의동맹을 결성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화전이라는 좁은 울타리를 터치고 보다 광활한 무대에로 나가 《ㅌ.ㄷ》의 결성으로 첫 걸음을 뗀 공산주의운동을 더 높은 단계에서 본격적으로 벌리시기 위하여 주체15(1926)년 12월초에 결연히 화성의숙을 중퇴하시였다.

김경희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04 08:3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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