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대답

88 일제가 조선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해 책동한데 대해 알고싶습니다​
  

얼마전 남조선 부산의 금정산에서 과거 일제가 박아놓은 쇠말뚝들이 발견되였다.

일제가 우리 나라의 명산들에 쇠말뚝을 박았다는 사실이 드러난것은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최근 몇해사이에만도 과거 일제가 평안북도 삭주군 문필봉에 쇠말뚝을 박아놓은 사실이 밝혀졌으며 개성지구의 송악산과 천마산에서도 여러개의 쇠말뚝과 그것들이 꽂혀있던 자리들이 발견되였다. 일제는 전조선땅의 명산들과 요충지들마다에 쇠말뚝을 박아놓았는데 지금까지 알려진것만도 360여군데나 된다.

일제가 우리 나라의 가는 곳마다에 쇠말뚝을 박아놓은것은 철저히 우리 민족의 정기를 말살할 목적밑에 감행된것으로서 조선민족말살정책의 직접적산물이였다.

지난 세기초 우리 나라를 날강도적으로 강점한 일제는 중세기적인 파쑈통치를 실시하면서 우리 인민에게 가혹한 식민지노예의 운명을 강요하였다. 그러나 일제에 대한 우리 인민의 분노와 항거정신은 세차게 폭발하였다. 당황한 일제는 총칼로 우리 인민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다. 하지만 우리 인민은 일제의 폭압책동에 대중적항거로 당당히 맞섰으며 조선민족의 강한 자주정신과 불굴의 기개, 열렬한 애국심을 보여주었다. 총칼만으로는 우리 인민의 민족정신을 거세할수 없다고 본 일제는 우리 민족의 기를 꺾고 넋을 짓밟아버리기 위한 조선민족말살정책실현에 달라붙었다. 이를 위해 일제는 조선의 말과 글을 빼앗고 민족문화유산을 닥치는대로 파괴략탈하였으며 《창씨개명》을 통해 조선사람의 이름과 지명까지도 없애버리려고 미쳐날뛰였으며 지어는 우리 나라의 명산들에 쇠말뚝을 박는 악랄한짓도 서슴지 않았다.

지난 세기 초엽 일제는 조선사연구회를 조직하고 그것을 통해 조선민족에 대한 동화정책을 골자로 하는 《조선통치론》이라는 도서를 만들어냈다. 일제는 조선사람들을 일본인으로 동화시키기 위해 사상정신분야에서의 노예사상주입책동을 벌렸다. 이 과정에 조선사람들이 산을 매우 중시하고 명산들을 신성시하고있으며 거기에 나라와 민족의 운명을 걸머질 뛰여난 인재배출에 대한 념원이 어려있다는것을 알게 된 일제는 그것을 원천적으로 짓밟아버리는것으로써 민족의 얼을 말살하려고 하였다. 그것이 바로 백두산으로부터 시작된 우리 나라의 모든 산줄기의 주요명맥들에 쇠말뚝을 박는것이였다.

일제는 여기에 수많은 인원들을 동원시켰고 해발고가 높은 산발을 오르내리면서 《국소》, 《국부》를 찾아 쇠말뚝을 박았으며 그것을 뽑지 못하게 하려고 끓는 류황을 부어넣고 세멘트다짐까지 하여놓았다.

일제는 조선의 지맥을 끊어버림으로써 인재가 나오지 못하게 해야 한다고 하면서 여러 산줄기의 허리부분을 파헤쳐 두동강, 세동강내거나 주요통로들을 큰돌로 막아버리는 놀음도 벌렸다.

오늘도 개성시 월정리의 한 마을뒤산에는 왜놈들이 산허리를 두동강낸 자리가 뚜렷하게 남아있다. 여기에는 10t에 달하는 거대한 바위돌로 산허리를 지질러놓은 곳이 있다. 이 돌은 일제가 산의 명을 끊고 정기를 짓눌러버림으로써 장수가 나오지 못하게 한다고 하면서 먼곳에서부터 날라온것이다.

일제가 우리 나라의 명산들과 요충지들에 쇠말뚝을 박고 산허리를 끊어버리는것과 같은 비렬한 만행을 저지른것은 다 민족말살을 위한 국가정책에 따라 조직적으로 감행된 중대범죄행위이다.

일제가 조선민족의 정기를 말살하기 위한 목적은 어떻게 해서나 조선민족의 넋과 얼을 빼앗아 저들의 영원한 식민지로 만들려는데 있었다. 일제는 이런 만행을 감행한 후에는 조선의 명산의 정기를 다 없애버렸다느니, 이제는 나라를 떠메고나갈 큰 인물이나 장수가 나오지 않을것이라느니 뭐니 하는 소문을 고의적으로 퍼뜨리였다. 우리 조국의 귀중한 명산들을 손상시키고 모독하며 우리 민족의 넋을 거세하려고 미쳐날뛴 일제의 만행은 민족말살을 노린 반인륜적범죄로서 그 무엇으로써도 정당화될수 없다.

이처럼 일제는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는 물론이고 지어는 조선사람의 정기까지 영영 없애버리려고 악랄하게 책동한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다.

김국철 | 김일성방송대학 2017-07-28 16:07:01
87 미제를 타승한 조국해방전쟁시기 위대한 김일성주석님께서 제시하신
주체적인 군사전략사상의 기본내용은 무엇입니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조국해방전쟁의 승리를 위하여 우리 인민군대가 전쟁의 전과정에 일관하게 틀어쥐고 구현해나가야 할 주체적인 군사전략사상을 제시하시여 조국해방전쟁을 승리에로 이끄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전쟁시기 제시하신 주체적인 군사전략사상의 기본내용은 우선 정규전과 유격전, 대부대전과 소부대전을 옳게 배합하는것입니다.

정규전과 유격전, 대부대전과 소부대전을 옳게 배합할데 대한 사상은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혁명투쟁시기에 밝히신 정규전과 유격전, 대부대전과 소부대전이 차지하는 독자적지위와 그것들의 호상관계, 우리 인민이 진행하는 조국해방전쟁의 객관적요구 등을 전면적으로 분석하신데 기초하여 제시하신 새로운 군사전략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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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전이 현대적무장장비를 갖춘 정규부대들이 적을 소멸하고 령토를 보위하거나 적이 차지한 지대를 점령하기 위하여 적과 대치된 전선을 형성하고 정면으로 맞서싸우는 정규전법들을 위주로 하여 진행하는 무장투쟁의 한 형식이라면 유격전은 적의 통치지역에서 인민들과의 긴밀한 련계밑에 자유자재로 기동하면서 적을 끊임없이 소멸하는 유격전법을 위주로 하여 진행하는 무장투쟁의 한 형식입니다.

대부대전이 일정한 무장조직단위(대련합부대, 련합부대, 부대,구분대)의 전체 또는 대부분을 집단으로 하여 벌리는 싸움방법이라면 소부대전은 일정한 무장조직단위의 개별적 또는 일부분을 집단으로 하여 벌리는 싸움방법입니다.

한편 정규전과 대부대전이 주로 큰 집단을 형성하고 강한 화력밀도를 조성하여 적을 정면에서 냅다 답새기는 무장투쟁의 형식과 방법이라면 유격전과 소부대전은 주로 적의 종심에서 상대적으로 적은 군사인원들이 경편한 무기로 무장하고 적의 턱밑에 붙어 기민한 동과 불의의 기습타격으로 배후를 들부시는 무장투쟁의 형식과 방법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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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령님께서 조국해방전쟁시기 제시하신 주체적인 군사전략사상의 기본내용은 또한 산악전과 야간전을 잘하는것입니다.

산악전과 야간전을 잘할데 대한 사상은 무장투쟁에 작용하는 객관적조건으로서의 지대(지형)와 시간 특히 우리 나라의 지형조건에 대한 과학적인 분석에 기초하여 제시된 독창적인 군사전략사상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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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악전을 잘할데 대한 사상은 산이 많은 우리 나라 자연지리적조건에 맞게 군사진지들을 튼튼히 꾸리고 복잡한 지형조건과 수림을 리용하여 기습타격전, 우회전, [hint |정면에서 행동하는 구분대, 부대들과 적의 익측 또는 후방에서 행동하는 구분대, 부대들이 직접적인 화력련계밑에 적을 소멸하는 전투행동.|]포초[/hint], 포위전 등 기묘하고 령활한 산악전법으로 무장투쟁을 벌려나가는 묘술을 밝혀줍니다.

야간전을 잘할데 대한 사상은 야간의 특성과 제국주의군대의 약점들을 효과적으로 리용하여 군사행동의 은밀성을 보장하고 불의성을 달성함으로써 낮에 이어 밤에도 적들을 끊임없이 타격소멸하며 야간습격전을 비롯하여 적에게 바싹 붙어 진행하는 여러가지 야간전투행동으로 적은 인원과 뒤떨어진 무기를 가지고도 많은 적유생력량과 전투장비들, 적지휘부와 보급기지들을 타격하여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우세한 적들을 소멸할수 있는 방법을 밝혀주고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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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산악전과 야간전을 잘할데 대한 군사전략사상을 제시하시면서 갱도전, 근거리전, 습격전 등 우리 나라 산악지형과 야간조건에 맞는 싸움형식과 방법을 옳게 적용할데 대하여 밝혀주시였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조국해방전쟁시기 주체적인 군사전략사상을 제시하심으로써 우리 인민군대는 전쟁의 주도권을 확고히 틀어쥐고 모든 작전과 전투를 성과적으로 벌려 세계《최강》을 자랑하던 미제침략자들을 서산락일의 운명에 처하게 하는 자랑스러운 전승신화를 창조하였으며 조국해방전쟁의 위대한 승리를 안아왔습니다.

차지혜 | 김일성방송대학 2017-07-27 09:05:17
86 1920년대에 일제가 조선력사를 외곡날조한 목적과 내용은 무엇입니까?​
  

일제는 1920년대에 조선력사에 대한 전면적인 외곡날조책동에 미쳐날뛰였다.

일제가 조선력사를 외곡날조한 목적은 조선민족의 《후진성》과 《무능성》, 일제식민지통치의 《정당성》을 이른바 《력사적사실》로 《론증》함으로써 조선인민의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말살하며 저들의 식민지노예로 길들이려는데 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력사날조기구로서 《조선사편수회》를 조작하고 조선《총독부》정무총감을 회장으로, 리완용, 권중현 등 친일매국역적들을 《고문》으로, 조선력사를 위조하는데서 악명높던 일본어용사가들을 위원으로 구성하였다.

일제는 1920년대말에 조선력사를 전면적으로 외곡날조한 6편 35권에 달하는 《조선사》(모두 2만 4 111페지)를 발간하였다.

이 책에서는 우선 조선력사의 시발점을 북쪽에서는 [hint |고조선-한전쟁(B.C. 108~B.C. 109년)에서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통치배들이 고조선지역에 설치하였다고 하는 4개의 군(료동군, 현토군, 진반군, 림둔군)을 말한다.|]한사군[/hint], 남쪽에서는 신라때부터 설정함으로써 5 000년의 유구한 력사에서 3 000여년간의 력사를 잘라버렸다. 이것은 조선력사의 시발점을 락후한 일본력사의 시발점까지 끌어내려 저들의 후진성을 숨기고 우리 인민의 민족적긍지를 말살하기 위한 력사위조행위였다.

책에서는 또한 4~5세기에 [hint |락동강류역의 봉건소국이였던 가야지방|]조선의 임나지방[/hint]에 현지통치기관을 설치하고 신라를 《정복》통치하였다는 전혀 허황한 《미마나미야께》설을 날조서술하였다. 이것은 마치 조선이 옛날부터 일본의 지배하에서 발전해온듯이 력사를 외곡날조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저들의 식민지통치를 력사적으로 정당화해보려는 흉악한 책동이였다. 조선의 력사를 아시아대륙의 강대국들에 《종속》된 력사로 위조서술함으로써 조선인민은 력사적으로 독립해본적이 없는 《무능한》 민족이라는것을 《론증》하려고 책동하였다.

이와 같이 일제침략자들은 1920년에 《문화정치》의 간판을 들고 우리 나라를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조선력사외곡날조책동에 광분하였다.

김국철 | 김일성방송대학 2017-07-24 17:18:52
85 김일성주석님께서 창건하신 반일인민유격대가 처음으로 진행한 전투는 무슨 전투입니까​?
  

주체21(1932)년 5월 20일 중국 안도현 소영자령에서 진행한 전투이다.

주체21(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다음달에 소영자령전투를 조직하시고 유격대가 조직되여 처음으로 진행하는 이 전투를 승리에로 이끄시였다.

소영자령은 안도에서 명월구로 넘어가는 중간지점에 있었는데 소사하에서 직선거리로 약 16km 남짓하였다. 산세는 험하지 않으며 골짜기를 따라 우마차길이 나있었다. 적들은 이 도로를 리용하여 안도지구에 투입된 병력들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보급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갓 창건된 반일인민유격대의 위력을 시위하고 전투를 통하여 대원들을 단련시키며 남만원정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영자령전투를 조직하시였다.

지방조직으로부터 무기와 후방물자를 실은 적수송대가 명월구에서 안도방향으로 떠났다는 통보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만에 가기로 되여있는 대원들을 이끄시고 야간행군으로 소영자령에 진출하시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반일인민유격대 대원들은 길목 량쪽의 유리한곳에 매복하였다. 그리고 적아를 구별하기 위해 팔에 흰수건을 감았다. 밤이 깊어갈무렵 일본지도관놈이 지휘하는 적의 수송대가 나타났다. 적수송대는 모두 12대의 말파리로 편성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행렬이 매복구역에 완전히 들어서자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의 불의의 타격에 넋을 잃은 적들은 적아를 가려보지 못하고 눈먼 총질만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돌격명령을 내리시자 반일인민유격대 대원들은 돌격에로 이전하여 발악하는 적들을 쓸어눕히고 투항하는 적은 포로하였다.

전투는 아군의 승리로 끝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투항한 적들앞에서 반일연설을 하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이날 전투에서 보총 17정, 권총 1정 그리고 많은 량의 밀가루, 천 등 군수물자를 로획하였다.

소영자령전투의 승리는 갓 창건된 반일인민유격대의 위력을 시위하고 대원들에게 전투사기를 북돋아주었으며 주력부대의 남만원정준비를 갖추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소영자령전투는 유격대원들에게 령활한 유격전법을 솜씨있게 활용한다면 그 어떤 강적도 능히 때려부실수 있다는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이 소식은 우리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김경희 | 김일성방송대학 2017-07-17 14:41:06
84 김일성주석님께서 혁명활동의 첫시기 청년학생들을 혁명의 주력으로
규정하신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싶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길림에서 선진사상탐구와 체험을 통하여 청년학생들을 혁명의 주력으로 규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청년학생들을 혁명의 주력으로 규정하신것은 혁명투쟁에서 청년학생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주체적인 견해와 립장에 기초한것이였다.

선행리론에서는 청년학생들을 혁명의 보조적력량으로 간주하며 청년학생운동을 단순히 교량자의 역할에 국한시켜보는것이 하나의 공식으로 되여있었다.

맑스-레닌주의에서는 청년학생들이 선진사상을 보급하고 대중을 계몽각성시켜 혁명운동에로 추동하고 안내하는 교량자적역할을 수행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로부터 당시까지 로동자와 빈농을 기본으로 하여 혁명의 핵심대렬을 꾸리는것이 어길수 없는 계급적원칙으로 되여있었다.

인류가 아직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을 헤치며 새로운 경험을 부단히 창조해온 조선인민의 풍부하고도 장구한 투쟁력사는 청년학생들을 하나의 계층으로조차 보지 않던 종전의 리론이 우리 나라의 실정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3.1인민봉기와 6.10만세운동 등 1920년대 우리 나라 반일애국투쟁의 봉우리를 이루는 주요한 력사적사변들에서 청년들은 항상 앞장에서 싸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년학생들이 논 역할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시면서 청년학생들의 역할에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있다고 보시였으며 이로부터 청년학생들도 혁명투쟁의 당당한 주력을 이룬다는 새로운 견해를 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동력을 로동자, 농민본위로만 규정하던 종래의 낡은 시각에서 벗어나 청년학생들이 혁명의 주력으로 된다는 새로운 견해와 립장을 세우신것은 참으로 중대한 결단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 결단으로 하여 청년학생들과 청년학생운동에 대한 기성의 견해와 관점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청년학생들을 핵심으로 하여 혁명운동을 개척해나가는 새로운 력사가 창조되였다.

또한 청년학생들과 그들의 운동을 자파세력확장과 종파적목적에 리용하려고 꾀하던 초기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의 책동을 짓부셔버리고 첫걸음을 뗀 조선혁명발전의 절박한 요구에 맞게 새 세대의 핵심대오를 급속히 늘여나갈수 있는 넓은 길이 열려지게 되였다. 

김충일 | 김일성방송대학 2017-07-14 02:30:55
83 김일성주석님께서​ 유격전을 항일무장투쟁의
기본형식으로 규정하신 리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0(1931)년 12월 16일 중국 연길현 명월구에서 당 및 공청간부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에는 차광수, 리광, 채수항, 오중성을 비롯하여 안도, 훈춘 등 동만각지와 길림, 돈화, 녕안에서 온 혁명조직대표 40여명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빈부와 귀천, 당파와 종교를 가리지 말고 전민족이 반일민족해방투쟁에 총궐기할데 대하여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항일무장투쟁의 기본형식을 유격전이라고 밝혀주시였다.

이 회의에서 중요하게 론의된것이 바로 무장투쟁의 형식에 관한 문제였다. 무장투쟁의 형식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것은 혁명전쟁의 성과적수행과 그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이다.

력사적으로 보면 무장투쟁의 형태에는 정규전과 유격전이 있는데 정규전이 주도적인것으로, 유격전은 보조적인것으로 되여왔다.

다시말해서 유격전은 정규전을 돕는 일시적이며 보조적인 투쟁형태로만 보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어떤 기성리론에도 구애되지 않으시고 유격전을 식민지민족해방전쟁의 주되는 투쟁형식으로, 무장투쟁의 기본형식으로 규정하시였다.

유격전은 자체의 력량을 보존하면서도 적에게 커다란 정치군사적타격을 줄수 있고 적은 력량을 가지고서도 능히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우세한 적을 소멸할수 있는 무장투쟁방법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의 기본형식을 유격전이라고 하시자 일부 사람들은 땅크와 대포, 비행기와 같은 현대적인 정예무기로 장비된 수백만대군을 국가적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그것도 남의 나라 령토에서 유격대와 같은 비정규적인 무력으로 이겨낼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비록 국권도 령토도 다 빼앗기고 남의 나라 땅에서 곁방살이를 하는 적수공권의 청년들이지만 일제놈들에게 주저없이 도전해나섰다, 과연 무엇을 믿고? 인민을 믿었기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인민이 곧 국가이고 인민이 후방이며 인민이 정규군이다, 싸움이 시작되면 전민이 병사가 되여 일어날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벌리게 되는 유격전은 인민전쟁이라고 할수 있다, 광범한 인민대중의 적극적인 지지성원과 유리한 자연지리적조건에 의거한다면 유격전으로 일제를 타승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을 믿고 그들을 항일전쟁에 총궐기시키며 유리한 자연지리적조건에 의거한다면 얼마든지 유격전으로 일제를 타승할수 있다고 보시고 항일무장투쟁의 기본형식을 유격전으로 규정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유격전은 전체 회의참가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김경희 | 김일성방송대학 2017-07-10 01:30:1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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