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대답

86 1920년대에 일제가 조선력사를 외곡날조한 목적과 내용은 무엇입니까?​
  

일제는 1920년대에 조선력사에 대한 전면적인 외곡날조책동에 미쳐날뛰였다.

일제가 조선력사를 외곡날조한 목적은 조선민족의 《후진성》과 《무능성》, 일제식민지통치의 《정당성》을 이른바 《력사적사실》로 《론증》함으로써 조선인민의 민족적긍지와 자부심을 말살하며 저들의 식민지노예로 길들이려는데 있었다.

일제는 이러한 목적을 실현하기 위해 조선력사날조기구로서 《조선사편수회》를 조작하고 조선《총독부》정무총감을 회장으로, 리완용, 권중현 등 친일매국역적들을 《고문》으로, 조선력사를 위조하는데서 악명높던 일본어용사가들을 위원으로 구성하였다.

일제는 1920년대말에 조선력사를 전면적으로 외곡날조한 6편 35권에 달하는 《조선사》(모두 2만 4 111페지)를 발간하였다.

이 책에서는 우선 조선력사의 시발점을 북쪽에서는 [hint |고조선-한전쟁(B.C. 108~B.C. 109년)에서 고조선을 멸망시킨 한나라통치배들이 고조선지역에 설치하였다고 하는 4개의 군(료동군, 현토군, 진반군, 림둔군)을 말한다.|]한사군[/hint], 남쪽에서는 신라때부터 설정함으로써 5 000년의 유구한 력사에서 3 000여년간의 력사를 잘라버렸다. 이것은 조선력사의 시발점을 락후한 일본력사의 시발점까지 끌어내려 저들의 후진성을 숨기고 우리 인민의 민족적긍지를 말살하기 위한 력사위조행위였다.

책에서는 또한 4~5세기에 [hint |락동강류역의 봉건소국이였던 가야지방|]조선의 임나지방[/hint]에 현지통치기관을 설치하고 신라를 《정복》통치하였다는 전혀 허황한 《미마나미야께》설을 날조서술하였다. 이것은 마치 조선이 옛날부터 일본의 지배하에서 발전해온듯이 력사를 외곡날조함으로써 조선에 대한 저들의 식민지통치를 력사적으로 정당화해보려는 흉악한 책동이였다. 조선의 력사를 아시아대륙의 강대국들에 《종속》된 력사로 위조서술함으로써 조선인민은 력사적으로 독립해본적이 없는 《무능한》 민족이라는것을 《론증》하려고 책동하였다.

이와 같이 일제침략자들은 1920년에 《문화정치》의 간판을 들고 우리 나라를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기 위하여 조선력사외곡날조책동에 광분하였다.

김국철 | 김일성방송대학 2017-07-24 17:18:52
85 김일성주석님께서 창건하신 반일인민유격대가 처음으로 진행한 전투는 무슨 전투입니까​?
  

주체21(1932)년 5월 20일 중국 안도현 소영자령에서 진행한 전투이다.

주체21(1932)년 4월 25일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그 다음달에 소영자령전투를 조직하시고 유격대가 조직되여 처음으로 진행하는 이 전투를 승리에로 이끄시였다.

소영자령은 안도에서 명월구로 넘어가는 중간지점에 있었는데 소사하에서 직선거리로 약 16km 남짓하였다. 산세는 험하지 않으며 골짜기를 따라 우마차길이 나있었다. 적들은 이 도로를 리용하여 안도지구에 투입된 병력들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보급하고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갓 창건된 반일인민유격대의 위력을 시위하고 전투를 통하여 대원들을 단련시키며 남만원정에 필요한 군수물자를 해결하기 위하여 소영자령전투를 조직하시였다.

지방조직으로부터 무기와 후방물자를 실은 적수송대가 명월구에서 안도방향으로 떠났다는 통보를 받으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남만에 가기로 되여있는 대원들을 이끄시고 야간행군으로 소영자령에 진출하시였다. 목적지에 도착한 반일인민유격대 대원들은 길목 량쪽의 유리한곳에 매복하였다. 그리고 적아를 구별하기 위해 팔에 흰수건을 감았다. 밤이 깊어갈무렵 일본지도관놈이 지휘하는 적의 수송대가 나타났다. 적수송대는 모두 12대의 말파리로 편성되여있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적들의 행렬이 매복구역에 완전히 들어서자 사격명령을 내리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의 불의의 타격에 넋을 잃은 적들은 적아를 가려보지 못하고 눈먼 총질만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돌격명령을 내리시자 반일인민유격대 대원들은 돌격에로 이전하여 발악하는 적들을 쓸어눕히고 투항하는 적은 포로하였다.

전투는 아군의 승리로 끝났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투항한 적들앞에서 반일연설을 하시였다.

반일인민유격대는 이날 전투에서 보총 17정, 권총 1정 그리고 많은 량의 밀가루, 천 등 군수물자를 로획하였다.

소영자령전투의 승리는 갓 창건된 반일인민유격대의 위력을 시위하고 대원들에게 전투사기를 북돋아주었으며 주력부대의 남만원정준비를 갖추는데 적극 기여하였다.

소영자령전투는 유격대원들에게 령활한 유격전법을 솜씨있게 활용한다면 그 어떤 강적도 능히 때려부실수 있다는것을 실천적으로 보여주었으며 이 소식은 우리 인민들에게 승리의 신심을 안겨주었다.

김경희 | 김일성방송대학 2017-07-17 14:41:06
84 김일성주석님께서 혁명활동의 첫시기 청년학생들을 혁명의 주력으로
규정하신데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싶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길림에서 선진사상탐구와 체험을 통하여 청년학생들을 혁명의 주력으로 규정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청년학생들을 혁명의 주력으로 규정하신것은 혁명투쟁에서 청년학생들이 차지하는 지위와 역할에 대한 주체적인 견해와 립장에 기초한것이였다.

선행리론에서는 청년학생들을 혁명의 보조적력량으로 간주하며 청년학생운동을 단순히 교량자의 역할에 국한시켜보는것이 하나의 공식으로 되여있었다.

맑스-레닌주의에서는 청년학생들이 선진사상을 보급하고 대중을 계몽각성시켜 혁명운동에로 추동하고 안내하는 교량자적역할을 수행한다고 규정하였다.

이로부터 당시까지 로동자와 빈농을 기본으로 하여 혁명의 핵심대렬을 꾸리는것이 어길수 없는 계급적원칙으로 되여있었다.

인류가 아직 한번도 걸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을 헤치며 새로운 경험을 부단히 창조해온 조선인민의 풍부하고도 장구한 투쟁력사는 청년학생들을 하나의 계층으로조차 보지 않던 종전의 리론이 우리 나라의 실정과는 잘 맞지 않는다는것을 보여주고있었다.

3.1인민봉기와 6.10만세운동 등 1920년대 우리 나라 반일애국투쟁의 봉우리를 이루는 주요한 력사적사변들에서 청년들은 항상 앞장에서 싸웠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청년학생들이 논 역할을 과학적으로 분석하시면서 청년학생들의 역할에서 질적인 변화가 일어나고있다고 보시였으며 이로부터 청년학생들도 혁명투쟁의 당당한 주력을 이룬다는 새로운 견해를 세우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혁명의 동력을 로동자, 농민본위로만 규정하던 종래의 낡은 시각에서 벗어나 청년학생들이 혁명의 주력으로 된다는 새로운 견해와 립장을 세우신것은 참으로 중대한 결단이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이 결단으로 하여 청년학생들과 청년학생운동에 대한 기성의 견해와 관점을 근본적으로 혁신하고 청년학생들을 핵심으로 하여 혁명운동을 개척해나가는 새로운 력사가 창조되였다.

또한 청년학생들과 그들의 운동을 자파세력확장과 종파적목적에 리용하려고 꾀하던 초기공산주의자들과 민족주의자들의 책동을 짓부셔버리고 첫걸음을 뗀 조선혁명발전의 절박한 요구에 맞게 새 세대의 핵심대오를 급속히 늘여나갈수 있는 넓은 길이 열려지게 되였다. 

김충일 | 김일성방송대학 2017-07-14 02:30:55
83 김일성주석님께서​ 유격전을 항일무장투쟁의
기본형식으로 규정하신 리유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20(1931)년 12월 16일 중국 연길현 명월구에서 당 및 공청간부회의를 소집하시였다.

회의에는 차광수, 리광, 채수항, 오중성을 비롯하여 안도, 훈춘 등 동만각지와 길림, 돈화, 녕안에서 온 혁명조직대표 40여명이 참가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일제를 반대하는 무장투쟁을 조직전개할데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연설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연설에서 빈부와 귀천, 당파와 종교를 가리지 말고 전민족이 반일민족해방투쟁에 총궐기할데 대하여 호소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회의에서 항일무장투쟁의 기본형식을 유격전이라고 밝혀주시였다.

이 회의에서 중요하게 론의된것이 바로 무장투쟁의 형식에 관한 문제였다. 무장투쟁의 형식을 어떻게 규정하는가 하는것은 혁명전쟁의 성과적수행과 그 운명을 좌우하는 근본문제이다.

력사적으로 보면 무장투쟁의 형태에는 정규전과 유격전이 있는데 정규전이 주도적인것으로, 유격전은 보조적인것으로 되여왔다.

다시말해서 유격전은 정규전을 돕는 일시적이며 보조적인 투쟁형태로만 보아왔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 어떤 기성리론에도 구애되지 않으시고 유격전을 식민지민족해방전쟁의 주되는 투쟁형식으로, 무장투쟁의 기본형식으로 규정하시였다.

유격전은 자체의 력량을 보존하면서도 적에게 커다란 정치군사적타격을 줄수 있고 적은 력량을 가지고서도 능히 수적으로나 기술적으로 우세한 적을 소멸할수 있는 무장투쟁방법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항일무장투쟁의 기본형식을 유격전이라고 하시자 일부 사람들은 땅크와 대포, 비행기와 같은 현대적인 정예무기로 장비된 수백만대군을 국가적후방이나 정규군의 지원도 없이 그것도 남의 나라 령토에서 유격대와 같은 비정규적인 무력으로 이겨낼수 있겠는가 하는 의문을 표시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우리는 비록 국권도 령토도 다 빼앗기고 남의 나라 땅에서 곁방살이를 하는 적수공권의 청년들이지만 일제놈들에게 주저없이 도전해나섰다, 과연 무엇을 믿고? 인민을 믿었기때문이다, 우리에게는 인민이 곧 국가이고 인민이 후방이며 인민이 정규군이다, 싸움이 시작되면 전민이 병사가 되여 일어날것이다, 그러므로 우리가 벌리게 되는 유격전은 인민전쟁이라고 할수 있다, 광범한 인민대중의 적극적인 지지성원과 유리한 자연지리적조건에 의거한다면 유격전으로 일제를 타승할수 있다고 하시였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을 믿고 그들을 항일전쟁에 총궐기시키며 유리한 자연지리적조건에 의거한다면 얼마든지 유격전으로 일제를 타승할수 있다고 보시고 항일무장투쟁의 기본형식을 유격전으로 규정해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내놓으신 유격전은 전체 회의참가자들의 열광적인 지지를 받았다.

김경희 | 김일성방송대학 2017-07-10 01:30:11
82 첫 당조직 건설동지사라는 명칭에 담겨진 김일성주석​님의
포부와 의지는 무엇입니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주체19(1930)년 7월 3일 중국 카륜의 진명학교에서 첫 당조직을 결성하시였습니다.

첫 당조직성원으로는 불요불굴의 혁명투사이신 김형권동지를 비롯하여 차광수, 김혁, 최창걸을 비롯한 공청 및 반제청년동맹의 핵심성원들이 망라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첫 당조직에 건설동지사라는 소박한 명칭을 붙이시였습니다.

건설동지사!

이 명칭에는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의 첫걸음을 떼였고 생사를 같이할수 있는 동지들을 끊임없이 찾아내고 결속시켜 혁명의 종국적승리를 이룩하시려는 위대한 수령님의 원대한 포부와 혁명적의지가 그대로 담겨져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찌기 동지를 얻는것으로부터 혁명활동을 시작하시였으며 숭고한 혁명적동지애의 새 력사를 펼치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동지는 곧 《제2의 나》이며 동지를 얻으면 천하를 얻을수 있다는것을 신조로 삼으시고 동지를 얻는 길, 동지를 위한 길이라면 자신의 한몸을 돌보지 않으시였으며 수천리길도 마다하지 않으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먼저 동지를 얻고 그 다음에 무기를 얻으시였으며 동지들을 묶어세워 당조직을 내오시고 동지들을 발동하여 혁명을 하시였습니다.

한마디로 말하여 위대한 수령님의 력사, 조선로동당의 력사는 동지애의 력사이며 《ㅌ.ㄷ》의 기치밑에 시작된 조선혁명은 동지애로 개척되고 동지애로 승리하여온 성스러운 위업입니다.

김경희 | 김일성방송대학 2017-07-08 22:39:50
81 김일성주석께서 길림에서의 혁명활동을 무엇으로부터
시작하시였습니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길림에서 선진사상을 더 깊이 연구하는것으로부터 혁명활동을 시작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체16(1927)년 1월 14일 길림으로 가시여 17일부터 길림육문중학교에 적을 두시고 청년학생운동을 적극 벌리시면서 선진사상에 대한 연구를 보다 심화시켜나가시였다.

선진적인 서적이 많이 나돌고 새것을 지향하며 진리를 찾아 모대기는 청년학생들이 앞을 다투어 모여드는 길림의 사회정치적분위기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화전에서 시작하신 선진사상에 대한 탐구를 더 깊이 파고드실수 있는 유리한 조건으로 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길림에서 맑스-레닌주의를 더 깊이 연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길림에서의 혁명활동을 선진사상탐구로부터 시작하신것은 단순히 학자가 되고 그 무슨 출세의 길을 톱으려고 한것이 아니였다.

그것은 어떻게 하면 일제를 물리치고 나라를 찾겠는가, 어떻게 하면 사회의 불평등을 없애고 근로하는 인민들을 잘 살게 하겠는가 하는 문제들에 대한 해답을 찾으시기 위해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학교에서 배우는 학과목들에 대한 학습에 열중하시는 한편 《공산당선언》, 《자본론》, 《국가와 혁명》, 《임금로동과 자본》을 비롯한 맑스-레닌주의고전들을 탐독하시면서 우리 나라의 구체적실정과 결부하여 연구하시였다.

이 과정에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맑스-레닌주의를 교조가 아니라 실천의 무기로 대하는 립장을 지니시였으며 조선혁명에 관한 리론과 전략전술을 깊이 탐구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 시기 《어머니》, 《철의 흐름》, 《축복》, 《압록강가에서》, 《아큐정전》과 같은 혁명적인 소설들과 당시의 현실생활을 반영한 진보적인 문학작품들도 많이 읽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혁명적인 책을 보시면서 그리고 불평등한 사회현실들을 수많이 체험하시면서 착취계급과 착취사회를 증오하는 계급의식과 총대로 사회를 개조하고 변혁하여야 한다는 혁명적각오를 더욱 굳히시였다.

이처럼 길림에서의 탐구와 체험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혁명적세계관을 드팀없는것으로 굳히시고 자주적인 혁명사상의 골격을 세워나가시는데서 중요한 계기로 되였다.

김충일 | 김일성방송대학 2017-06-30 18:20: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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