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대답

106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식대로 살아나갈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게 된것은 무엇때문입니까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주체67(1978)년 12월 25일 당중앙위원회 조직지도부, 선전선동부 책임일군협의회에서 하신 연설 《당의 전투력을 높여 사회주의건설에서 새로운 전환을 일으키자》와 주체68(1979)년 12월 19일 당중앙위원회 책임일군들과 하신 담화 《우리 식대로 살아나갈데 대한 당의 전략적방침을 철저히 관철하자》에서 우리 식대로 살아나갈데 대한 전략적방침을 제시하시였다.

우리 식대로 살아나간다는것은 주체사상의 요구대로 제정신을 가지고 사고하고 행동하며 모든것을 우리 혁명과 우리 인민의 리익에 맞게 자체의 힘으로 풀어나간다는것을 말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1970년대 후반기 우리 식대로 살아나갈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게 된것은 당시 조성된 정세와 우리 혁명발전의 절박한 요구와 관련된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식대로 살아나갈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게 된것은 무엇보다먼저 1970년대 중엽에 조성된 정세의 절박한 요구와 관련된다.

이 시기 미제국주의자들과 일본군국주의자들, 남조선괴뢰들은 우리 나라의 분렬을 영구화하려고 미쳐날뛰면서 우리 공화국을 반대하는 침략과 전쟁책동을 더욱 로골화하였다. 또한 사회주의를 건설하고있던 일부 나라들은 로동계급의 혁명적원칙을 저버리고 기회주의의 길로 나아가고있었을뿐아니라 저들의 그릇된 로선을 다른 나라들에까지 내려먹이면서 지배주의적이고 대국주의적인 전횡을 일삼으며 민족리기주의에 사로잡혀 제살궁리만 하고있었다.

이런 정세는 우리 당과 인민앞에 어떤 립장에서 혁명과 건설을 다그쳐나가야 하겠는가, 제국주의자들과 지배주의자들의 압력에 굴복하여 자신이 선택한 사회주의의 길을 버리는가 아니면 모든 난관을 이겨내고 사회주의를 끝까지 고수해나가는가 하는 문제를 심각하게 제기하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조선혁명을 더욱 앙양시키며 복잡한 정치정세속에서도 주체의 혁명위업을 승리적으로 전진시켜나가기 위해서는 오직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야 한다는 철석의 신념을 지니게 되시였다.

위대한 장군님께서 우리 식대로 살아나갈데 대한 방침을 제시하시게 된것은 다음으로 1970년대 중엽 우리 혁명발전의 절박한 요구와 관련된다.

당시 우리 혁명발전은 사회주의위업을 자주적본성에 맞게 수행해나가며 새로운 높은 단계에 들어선 주체혁명위업을 더욱 힘있게 전진시켜나갈것을 요구하고있었다.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야만 우선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여 사회주의위업을 자주적본성에 맞게 수행해나갈수 있었다.

혁명투쟁과 건설사업에서 주체성을 견지한다는것은 자기 나라, 자기 민족의 운명과 인민대중의 운명을 인민대중자신이 주인이 되여 자주적으로, 창조적으로 개척해나간다는것이며 민족성을 살린다는것은 자기 민족의 고유하고 우수한 특성을 보존발전시키고 그것을 사회생활의 모든 분야에 구현해나간다는것이다.

혁명과 건설에서 주체성을 견지하고 민족성을 살려나가는것은 사회주의위업을 그 자주적본성과 력사적, 현실적조건에 맞게 수행해나가기 위한 원칙적요구이다.

당시 날로 더욱 우심해지는 제국주의자들과 대국주의자들의 간섭과 압력을 단호히 배격하고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독자적인 결심과 판단에 따라 자신의 요구와 리익에 맞게 자기 식으로 풀어나가는 방식, 다시말하여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야만 주체성과 민족성을 고수하고 혁명과 건설을 승리적으로 전진시킬수 있었다.

또한 우리 식대로 살아나가야만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힘있게 다그쳐 주체혁명위업을 끝까지 완성해나갈수 있었다.

어버이수령님에 의하여 개척되고 끊임없이 전진해온 우리 혁명은 1970년대 중엽에 이르러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를 실현해나가는 새로운 높은 단계에 들어서고있었다.

온 사회의 김일성주의화는 영광스러운 김일성주의기치밑에 인류사회의 가장 높은 단계로 나가는 위대한 혁명이며 그 누구도 걸어보지 못한 전인미답의 길을 개척해나가는 어렵고 생소한 사업이다.

위대한 장군님께서는 우리 당앞에 나선 이 중대한 임무를 성과적으로 수행하기 위해서는 주체를 튼튼히 세우고 혁명과 건설에서 나서는 모든 문제를 우리 식대로 풀어나가야 한다고 보시였다.

참으로 지난 세기 70년대에 우리 식대로 살아나갈데 대한 독창적이고도 혁명적인 방침을 제시하신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는 천리혜안의 선견지명과 투철한 혁명적신념, 철의 의지를 체현하신 절세의 위인이시다.

박상욱 | 김일성방송대학 2017-09-15 22:13:36
104 김일성주석님께서 길림시절에
인민들속으로 들어가신 의도는 무엇입니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초기혁명활동시기 청년학생운동의 테두리를 벗어나 광범한 인민대중속으로 들어가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대중속으로 들어가신 의도는 인민대중을 혁명화하여 투쟁에 힘있게 불러일으키기 위해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인민들속에 본격적으로 들어가기 시작하신것은 길림육문중학교에 다니시던 주체16(1927)년 겨울방학부터였다.

당시에는 인민들속으로 들어가 계몽활동을 하는것이 하나의 사회적풍조로 되고있었다. 그 리유는 자기 민족을 렬등민족으로 보면서 민족의 후진성을 극복하기 위한데 있었다. 말하자면 인민들에 대한 계몽활동이 개량주의적운동에 머무르고있었던것이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인민대중을 우매하고 미개한 계몽대상으로만 보아오던 종래의 사고방식과는 달리 인민이야말로 선생이며 혁명을 추동하는 기본동력이라는 새로운 주체적관점을 세우시고 그것을 절대시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이런 관점으로부터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라!》 구호를 추켜드시였으며 인민행렬차를 타시고 인민들속으로 들어가시였다. 그때부터 《인민들속으로 들어가라!》는 구호는 위대한 수령님의 전생애를 관통하는 좌우명으로 되였다.

인민적풍격과 인민적인 사고방식을 지닌다는것은 결코 말공부로는 해결되지 않으며 오로지 인민들과의 직접적인 접촉을 통해서만 이루어지는 법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자신께서는 인민들속에 들어가는것으로 혁명활동을 시작하였다고 하시며 인민의 권리가 최대한으로 보장되고 인민의 지혜와 창조력이 무한정 발양되는 오늘의 우리 사회에 대하여 생각할 때마다 자신을 인민행렬차에 처음으로 태워준 길림시절에 감사를 드리군 한다고 감회깊게 회고하시였다.

김충일 | 김일성방송대학 2017-09-10 12:28:21
103 사회주의가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것은 무엇때문입니까?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사회주의가 인민대중의 지향이고 의지이며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가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로 넘어가는것이 력사발전의 필연적요구이기때문입니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습니다.

《사회주의는 그 과학성과 진리성으로 하여 반드시 승리한다.》

사회주의는 계급적원쑤들과의 치렬한 투쟁을 벌리며 전인미답의 길을 헤쳐나가야 하는것만큼 전진도상에서 일시적인 우여곡절을 겪을수 있습니다. 그러나 사회주의는 그 과학성과 진리성으로 하여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이것은 력사발전의 법칙입니다.

- 사회주의가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것은 우선 그것이 인민대중의 지향이고 의지이기때문입니다.

사회주의는 자주적으로 살며 발전하려는 사회적인간의 본성적요구를 실현하기 위하여 투쟁하는 인민대중의 리념이며 지향입니다. 사회적인간이 존재하는 한 사람의 자주적본성이 변할수 없고 인민대중이 력사의 주체로 남아있는 한 그들의 자주적요구가 변할수 없는것만큼 사회주의가 인민들의 지향으로 되는것은 결코 달라질수 없습니다. 사회주의를 부정하는것은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를 부정하는것이며 력사의 주체인 인민대중자체를 부정하는것으로 됩니다.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의 본성적요구를 구현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인민대중의 막을수 없는 지향으로 됩니다.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의 지향인 동시에 그들의 드팀없는 의지입니다. 인민대중은 사회주의가 자기의 자주적요구에 부합되는것이기때문에 그것을 끝까지 실현하려는 드팀없는 결심과 각오를 가집니다. 인민대중의 의지는 사회적인간의 자주적념원과 력사발전의 합법칙적요구를 반영하고있는것으로 하여 그 어떤 힘으로든 꺾을수 없는것으로 됩니다.

- 사회주의가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것은 또한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가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로 넘어가는것이 력사발전의 필연적요구이기때문입니다.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는 불피코 계급적대립과 사회적불평등을 가져오며 인민대중에 대한 소수 지배계급의 착취와 압박을 동반하게 됩니다. 자본주의는 개인주의를 극소수 자본가들의 무제한한 탐욕으로 전환시키고 개인주의에 기초한 사회의 적대적모순을 극도에 이르게 합니다. 그리하여 개인주의에 기초한 적대계급사회에서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실현될수 없습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은 오직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에서만 원만히 실현될수 있습니다.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활동하는것은 사람의 생존방식이며 사람의 자주적요구는 오직 집단주의를 통해서만 실현될수 있습니다. 사람은 사회적집단을 이루고 활동해야 생존하고 발전할수 있으며 사회성원들의 집단적협력에 의해서만 자연과 사회를 개조하고 자주적요구를 실현할수 있습니다. 사회주의는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로서 사람의 자주적본성에 부합되는 가장 선진적인 사회로 됩니다. 그러므로 개인주의에 기초한 착취사회가 집단주의에 기초한 사회주의사회로 넘어가는것은 력사발전의 필연적요구이며 따라서 사회주의는 반드시 승리하게 됩니다.

- 사회주의가 반드시 승리하게 되는것은 사회주의가 인민대중의 자주적요구를 실현하는 새로운 사회라는것과도 관련됩니다.

새것이 승리하고 낡은것이 멸망하는것은 력사발전의 법칙입니다.

새로운 사회가 전진하는 과정에 우여곡절을 겪을수는 있지만 결코 력사발전의 이 법칙이 달라질수는 없습니다. 사회주의는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유린하는 온갖 낡은 사회와 근본적으로 구별되는 새로운 사회입니다. 인민대중의 자주성이 실현되는 새로운 사회를 건설하는 길은 사회주의길밖에 다른 길이 없습니다. 사회주의는 새로운 사회를 대표하는것으로 하여 필연적으로 승리하게 됩니다.

윤영광 | 김일성방송대학 2017-09-09 09:37:56
102 1960년대 후반기~ 1970년대 전반기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보급활동에서 주목되는것은 무엇입니까​

  

1960년대 후반기~1970년대 전반기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와 보급사업이 세계적판도에서 힘있게 벌어졌다.

여기에서 주목되는것은 우선 주체사상에 대한 보급을 전문적으로 진행하는 출판기관들이 세계 여러 나라들에 수많이 나온것이다.

이 시기 세계 여러 나라들에는 김일성동지로작출판위원회, 김일성동지로작번역위원회, 김일성동지로작출판편집부, 김일성동지로작출판인쇄소를 비롯한 출판기관들이 나와 어버이수령님의 고전적로작들을 전문적으로 번역출판하여 신문과 방송, 잡지들에 광범히 소개하였다.

이와 함께 《김일성전》과 같은 어버이수령님의 혁명활동력사를 수록한 도서들과 《주체사상》을 비롯한 정기간행물들을 수많이 번역출판, 발행하여 보급사업을 진행하였다.

주목되는것은 또한 세계 여러 나라들에 어버이수령님의 불후의 고전적로작들과 주체사상관련도서들에 대한 보급사업을 진행하는 문화기관들이 나와 보급활동을 힘있게 벌린것이다.

당시 여러 나라들에서는 김일성도서관과 보천보도서관 같은 수많은 문화기관들을 내오고 어버이수령님의 고전적로작들과 주체사상에 대한 보급활동을 진행하였다.

주목되는것은 또한 어버이수령님의 혁명사상,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와 보급을 전문으로 하는 주체사상연구보급소조들이 조직되고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토론회들이 활발히 진행된것이다.

1969년 말리에서 처음으로 주체사상신봉자들에 의해 김일성동지로작연구소조가 조직되였으며 이해 말까지 20여개 나라들에 김일성동지혁명사상연구소조, 김일성동지주체사상연구소조를 비롯한 다양한 명칭을 가진 수십개의 연구소조들이 조직되였다. 여기에는 정계와 사회계, 언론계와 출판계의 이름있는 인사들과 교수, 박사들을 비롯해서 각계각층 인민들이 망라되였다. 그후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부터는 5대륙의 많은 나라들에 소조들이 조직되여 그 수는 100여개에 이르렀다.

일본을 비롯한 여러 나라들에서 주체사상에 대한 전국토론회들이 진행되였으며 주체사상연구토론회는 점차 지역적인 범위를 벗어나 대륙적, 세계적규모로 확대되여갔다.

대양과 대륙을 넘어 광범하게 벌어진 주체사상에 대한 연구보급활동은 1960년대 후반기~1970년대 전반기 어버이수령님에 대한 열화같은 흠모심과 주체사상에 매혹되여 그를 따라배우려는 세계 진보적인류의 불같은 열의의 분출이였다.

박상욱 | 김일성방송대학 2017-09-05 06:22:54
101 일제가 조선어를 없애버리기 위해 어떻게 책동하였습니까.
  

민족어는 해당 민족의 존재와 뗄수 없이 련관되여있다. 이것을 간파한 일제는 국가통치기구를 발동하고 국가법령으로 조선어말살정책을 강행하였다.

당시 일제는 《황민화》, 《동인화》의 구호를 제창하며 조선민족과 일본민족의 《혼연융합》을 집요하게 떠들었다. 조선사람들이 매일 아침 동쪽을 향해 《궁성요배》와 《신사참배》를 하고 《황국신민서사》를 외우도록 강요하였으며 언어도 일본어, 머리형태도 일본식의 단발, 옷색갈도 일본식의 검은색, 신발도 일본의 게다짝만이 허용된다고 선전하였다.

일제는 조선어말살을 위한 국가통치체계를 수립하고 《조선총독부》, 도청, 군청, 면사무소, 경찰서, 주재소, 파출소 등 행정, 경찰기관은 물론 헌병까지 총동원하였다.

총독통치의 첫 단계에서 《관공서와 재판소 및 기타에서 쓰는 모든 공용어를 일본어로 한다.》고 공식선언하였으며 일본어는 조선사람들이 의무적으로 사용해야 할 《국어》라고 꺼리낌없이 선포하였다. 《조선총독부》는 1912년 11월부터 각 도의 지사급들이 《국어(일본어)강습상황보고》를 작성하여 총독부에 제출하는 제도를 세웠으며 1937년 3월에는 모든 관공청들에서 일체 공문서를 일본어로 작성하도록 전국의 도지사들에게 명령하였다. 이어 1938년부터 일본어강습소들을 대대적으로 조직할데 대한 총독부결정을 채택하고 이를 강행하였다.

일제는 조선어말살정책을 보다 철저히 실현하기 위하여 수많은 악법들을 날조하였다.

1907년 《신문지법》을 날조하여 우리 글자로 간행되던 신문들의 발간을 금지한 일제는 1909년에는 《출판법》을, 1910년에는 《출판규칙》을 발포하고 조선인민의 민족성과 민족어말살을 위한 폭압의 강도를 더욱 높이였다.

민족어말살을 위한 일제의 책동은 교육부문의 법령날조에서 더욱 우심하게 나타났다.

일제는 4차례에 걸쳐 《조선교육령》을 날조, 개악하여 소학교학생들까지 일본어교육을 받고 일본말을 하게 하였다. 일제는 교육부문만이 아니라 방송, 연극, 영화, 음악, 어학부문은 물론 가정생활에까지 민족어말살의 마수를 뻗쳐 그 어느 부문에서도 민족어를 사용하지 못하게 만들었다. 이것을 어기였을 때에는 구타, 체포, 재판, 징역과 같은 파쑈적인 방법을 다 동원하여 탄압하였다.

일제는 조선어말살을 위해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까지 빼앗았다.

일제는 1937년 4월 《사법법규개정조사위원회》를 조작하고 《창씨개명》과 관련한 모의를 벌렸으며 1939년 6월에 진행한 중추원회의에서 《창씨개명》을 시급히 다그칠 대책을 토의하였다. 그리하여 일제는 1938년, 1939년을 또 하나의 민족징표인 성과 이름을 말살하기 위한 계기로 삼고 조선의 민족정신말살전에 진입하였다. 일제는 《창씨개명》과 관련한 《법령》을 발포한 후 《조선총독부》로부터 도청, 군청, 면사무소, 경찰서, 주재소에 이르는 광범한 통치기구들과 각종 친일단체들을 동원하여 철저한 《창씨개명》의 시행을 위해 미쳐날뛰였다. 조선사람들이 성과 이름을 일본의 성과 이름으로 바꾸도록 강요하였으며 이에 응하지 않으면 《비국민》, 《불온한 사람》으로 몰아 박해하고 《징용》과 《보국대》의 첫째가는 선발대상으로 삼았다.

이처럼 일제는 우리 민족의 력사와 문화는 물론이고 지어는 조선사람의 민족어까지 영영 없애버리려고 악랄하게 책동한 우리 인민의 철천지원쑤이다.

김국철 | 김일성방송대학 2017-09-02 18:4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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