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대답

공화국에서 진행된 당대회와 당대표자회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알고싶습니다.
  

우리 나라에서는 7차례의 당대회와 4차례의 당대표자회가 진행되였다.

△ 당대회

당대회는 당의 최고지도기관,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검사위원회의 사업을 총화하고 당의 강령과 규약을 채택 또는 수정보충하며 당의 로선과 정책 및 전략전술의 기본문제를 결정하고 당중앙위원회와 당중앙검사위원회를 선거한다.

7차에 걸쳐 진행된 당대회는 다음과 같다.

① 우리 당력사에 처음으로 아로새겨진 당대회는 주체34(1945)년 10월 10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창립대회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 창립대회에서 《우리 나라에서의 맑스-레닌주의당건설과 당의 당면과업에 대하여》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대회에서는 위대한 수령님께서 제시하신 방침에 따라 당중앙지도기관으로서 북조선공산당 중앙조직위원회를 결성하고 우리 당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다.

② 우리 당력사에서 두번째로 진행된 당대회는 주체37(1948)년 3월 27일부터 30일까지 진행된 북조선로동당 제2차대회이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북조선로동당 제2차대회를 소집하시고 《북조선로동당 제2차대회에서 한 중앙위원회사업총화보고》《모든 힘을 민주기지의 강화와 조국의 통일독립을 위하여》라는 결론을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당의 투쟁과업에 대하여 밝혀주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경제건설을 다그쳐나갈데 대한 과업과 당을 질적으로 공고화하기 위한 과업, 조국통일을 실현하기 위한 방침과 그를 위한 방도를 당의 투쟁과업으로 제시하시였다.

③ 조선로동당 제3차대회는 주체45(1956)년 4월 23일부터 29일까지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대회에서 우리 당의 자주적이며 원칙적인 대외정책을 천명하시였고 사회주의기초건설을 완성하기 위한 5개년인민경제계획을 제시하시였으며 우리 나라 국가사회제도를 공고발전시키기 위한 과업과 조국의 자주적통일방침, 우리 당을 강화발전시키기 위한 과업을 명시하시였다.

④ 조선로동당 제4차대회는 주체50(1961)년 9월 11일부터 18일까지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대회에서 사회주의의 전면적건설을 위한 제1차 7개년계획을 제시하시였으며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투쟁과업, 우리 당을 강화하고 그 역할을 높이기 위한 과업, 우리 당의 자주적인 대외정책을 관철하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⑤ 조선로동당 제5차대회는 주체59(1970)년 11월 2일부터 13일까지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대회에서 사상, 기술, 문화의 3대혁명을 힘있게 벌려 우리 나라 사회주의제도를 공고발전시키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였고 남조선혁명과 조국통일을 위한 과업, 세계혁명을 다그치기 위한 과업, 당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⑥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는 주체69(1980)년 10월 10일부터 14일까지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대회에서 온 사회의 주체사상화를 실현할데 대한 강령적과업과 고려민주련방공화국창립방안, 반제자주력량의 단결을 강화하며 세계혁명을 발전시키는데서 나서는 중요한 문제, 우리 당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제6차대회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우리 당의 수뇌부에 높이 모시여 주체혁명위업의 완성을 위한 확고한 담보를 마련한 영광의 대회였다.

⑦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는 주체105(2016)년 5월 6일부터 9일까지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를 모시고 진행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 대회에서 위대한 수령님들의 현명한 령도밑에 우리 당이 혁명과 건설에서 이룩한 성과들을 긍지높이 총화하고 우리 혁명의 최후승리를 위한 휘황한 설계도를 펼쳐놓을 웅대한 과업들을 제시하시였다.

대회에서는 전체 당원들과 인민군장병들, 인민들의 한결같은 의사와 념원을 반영하여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를 조선로동당 위원장으로 높이 추대하였다.

 

△ 당대표자회

당대표자회는 당대회와 당대회사이에 새롭게 조성된 정세의 요구에 따라 당의 로선과 정책, 전략전술적문제들을 토의결정하는 각급 당조직대표들의 회의이다.

4차례에 걸쳐 진행된 당대표자회는 다음과 같다.

① 조선로동당 제1차 대표자회는 주체47(1958)년 3월 3일부터 6일까지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반종파투쟁을 총화하시고 당의 통일단결을 더욱 강화하기 위한 과업을 제시하시였다.

② 조선로동당 제2차 대표자회는 주체55(1966)년 10월 5일부터 12일까지 진행되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현정세와 우리 당의 과업》이라는 력사적인 보고를 하시였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보고에서 세계혁명의 기본전략과 그 실현방도를 제시하시였다. 그리고 당시의 조건과 환경속에서 사회주의건설을 다그치며 혁명기지를 강화하기 위하여 경제건설과 국방건설을 병진시킬데 대한 로선을 철저히 관철하기 위한 중요과업들을 제시하시고 그 관철에로 전체 인민을 불러일으키시였다. 계속하시여 남조선혁명을 다그치고 조국통일을 이룩하기 위한 방침을 제시하시였다.

③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높이 모시고 주체99(2010)년 9월 28일에 진행되였다.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는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조선로동당 총비서로 변함없이 높이 우러러모시고 조선로동당 최고지도기관을 선거하였다.

조선로동당 제3차 대표자회에서는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를 우리 당의 최고지도기관에 높이 모시였음을 엄숙히 선포하였다.

일찌기 혁명의 길에 나서신 때로부터 영생불멸의 주체사상, 선군사상을 불변의 의지로 간직하시고 자위적군사강국건설에서 특출한 정치군사적실력과 령도력을 남김없이 과시하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를 우리 당의 최고지도기관에 높이 모신것은 주체혁명위업, 선군혁명위업을 천추만대로 이어놓은 력사적사변이였다.

조선로동당 제4차 대표자회는 주체101(2012)년 4월 11일에 진행되였다.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께서는 조선로동당 제4차 대표자회에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우리 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모시고 위대한 장군님의 혁명생애와 불멸의 혁명업적을 길이 빛내이도록 하시였다.

조선로동당 제4차 대표자회에서는 조선로동당이 위대한 김일성, 김정일동지의 당이며 김일성-김정일주의는 조선로동당의 영원한 지도사상이라는것을 천명하고 당규약에 명기하였다.

조선로동당 제4차 대표자회는 우리 당을 김일성, 김정일동지의 당으로 더욱 강화발전시키는데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였다.

70여년전 당창건을 선포한 그날로부터 오늘에 이르기까지 7차에 걸친 조선로동당 대회와 4차에 걸친 조선로동당 대표자회를 새겨볼수록 조성된 정세와 혁명발전의 요구에 맞게 가장 과학적이며 정당한 투쟁과업들을 제시하고 그 실현에로 천만군민을 힘있게 불러일으킨 위대한 조선로동당에 대한 격찬과 함께 감사의 마음을 금할수 없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를 조선로동당의 창건자, 령도자로,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를 조선로동당의 영원한 총비서로 높이 우러러모시고 조선로동당 위원장이신 경애하는 최고령도자 김정은동지의 령도따라 나아가는 우리 당은 어제도 그러한것처럼 오늘도 래일도 세인의 각광속에 승리와 영광만을 아로새겨갈것이다.

작성자: 김충일 | 김일성방송대학 2017-10-06 17:36:03
조선강점시 일제의 토지략탈책동에 대하여 알고싶습니다​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또한 일본제국주의자들은 조선농촌경리의 발전을 극도로 저해하였습니다. 그들은 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조선의 토지를 대량적으로 수탈하는 정책을 실시하였으며 봉건적착취방식으로 농민경리를 령락시키고 농촌의 수공업마저 파괴하였으며 높은 비률의 소작료와 가렴잡세 그리고 고리대와 강제부역 등으로 농민들을 기아선상에서 헤매게 하였습니다.》

20세기초 날강도적으로 《조약》아닌 《조약》을 날조하고 무력으로 조선을 완전히 타고앉은 일제가 토지략탈에 발벗고나선데는 음흉한 속심이 있었다.

당시 우리 나라의 농촌에는 봉건적인 토지소유관계가 지배하고있었으며 농민들이 인구의 80%이상을 차지하고있었다. 그러므로 우리 나라의 토지를 틀어쥔다는것은 농촌에서의 기본생산수단과 그에 매여있는 인구의 절대다수를 이루는 농민들을 지배하며 나아가서 조선에서 주인행세를 할수 있는 물질적조건을 가진다는것을 의미하였다.

이로부터 일제는 토지략탈을 저들의 식민지통치의 경제적지반을 강화하기 위한 주되는 목표로 내세우고 그 실현을 위해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았다.

이미 1904-1905년에 조선의 토지략탈을 위한 준비를 면밀히 갖추어놓은 일제는 1906년에 《토지건물증명규칙》을, 1907년에 《토지건물저당집행규칙》을 조작하여 저들의 토지략탈을 합법화하였다.

일제의 토지략탈은 1910년대에 들어서면서 《토지조사사업》이라는 구실밑에 더욱 본격적으로 감행되였다.

일제는 1910년 3월 《림시토지조사국관제》를 조작하고 제놈들이 직접 《측량사업》을 벌리였으며 이에 기초하여 《토지조사법》을 조작공포하였다. 그후 일제는 《토지수용령》, 《토지조사령》 등을 련이어 조작발포하였으며 1912년에는 토지략탈을 전면적으로 강화할 목적밑에 《조선총독부》안에 《고등토지조사위원회》와 《지방토지조사위원회》라는 략탈기구까지 내왔다.

교활한 일제는 《토지조사사업》이 마치도 토지소유권을 《보호》하고 그 리용을 《자유롭게》 하기 위한것인듯이 떠벌이였다. 하지만 그것은 저들의 강도적토지략탈행위를 은페하기 위한 음흉한 술책에 지나지 않았다.

당시 일제는 《토지소유권의 조사》라는 구실밑에 조선인토지소유자들로 하여금 토지소유권을 새로 《보고》할것을 강요하였는데 이것은 조선농민들의 토지소유권을 전면적으로 부인하고 저들의 《토지소유권》을 확립하기 위한것이였다. 일제는 악명높은 《토지조사령》에서 《토지소유자는 조선총독이 정한 기한내에 그 주소, 성명 또는 소유지의 명칭 및 소재, 지목, 글자번호, 목호, 등급, 지적결수를 림시토지조사국장에게 신고할것》이라고 규정함으로써 종래 조선봉건정부가 인정해온 토지소유권을 무시하고 오직 저들에게 《신고》하여 《승인》을 받은것만 토지소유권이 《법적으로 인정》된다는것을 법제화하였다.

특히 일제는 토지소유권에 대한 신고방법과 절차를 까다롭고 복잡하게 만들어놓아 순박한 조선농민들이 자기가 가지고있는 땅을 제때에 《신고》하지 못하게 만들어놓음으로써 여기에서 빠진 토지들은 모두 저들과 친일주구들의 소유로 되게 하였다.

결국 일제가 《토지조사령》을 실시하면서 떠벌인 《법적보호》란 조선농민들의 토지소유권에 대한 《보호》가 아니라 일제와 친일주구들의 토지소유권에 대한 보호였다.

이처럼 일제의 날강도적인 토지략탈행위는 세월이 아무리 흘러도 력사의 망각속에 묻어버릴수 없다.

작성자: 김국철 | 김일성방송대학 2017-10-03 23:52:5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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