물음과 대답

1948년 9월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이 통일적중앙정부의
수립이라고 할수 있는 정당한 근거는 무엇입니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창건됨으로써 우리 인민은 자기의 의사와 리익을 대표하는 합법적인 통일적중앙정부를 가지게 되였으며 세계 민주진영의 여러 나라들과 어깨나란히 국제무대에 진출할수 있게 되였습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말하여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이 남조선에서의 《단독선거》에 의해 조작된 《단독정부》를 반대배격하고 전조선적인 통일적중앙정부수립을 지지하는  북남전체조선인민의 총선거에 의해 수립되였기때문이다.

남조선에서의 《단독정부》조작책동은 전조선을 저들의 식민지로 만들려는 미제의 침략적야망의 실현이였다. 그러기에 당시 북남전체 조선인민은 미제에 의한 《단선단정》책동을 결사반대하였으며 민주주의적인 진정한 인민의 정부수립을 념원하였다. 그렇기때문에 1948년 4월에 열린 남북련석회의에서는 미제와 그 주구 반동들에 의해 조작되는 그 어떤 《정권》도 인정할수 없다는것을 확인하고 《단선단정》조작책동을 반대하는 전민족적인 공동투쟁을 벌릴것을 호소하였으며 뒤이어 진행된 4월 30일 우리 당을 비롯한 북남조선 정당, 사회단체지도자들은 협의회를 가지고 통일적인 중앙정부로서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을 창건할데 대한 결정을 채택하였다. 

그리하여 1948년 8월말에 북남총선거가 실시되였다.

 

※ 북조선에서는 유권자 99.97%가 선거에 참가하여 99.49%가 민전립후보자들에게 찬성투표하였다. 남조선에서는 미제와 괴뢰도당의 류혈적탄압속에서 7월 15일~8월 20일까지 남조선전역에서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 대표자선거에 유권자의 77.52%가 참가하여 선출된 1 080명의 남조선인민대표자대회 대표자들이 선거에 참가하였다. 

 이리하여 조선최고인민회의 대의원선거는 빛나는 승리로 끝났다. 북남총선거의 결과 572명(북조선에서 212명, 남조선에서 360명)의 최고인민회의 대의원이 선거되였다.

 

조선인민의 한결같은 념원과 의사에 따라 1948년 9월 9일에는 통일적중앙정부인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 정부가 조직되였으며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의 창건을 온 세상에 선포하였다.

이처럼 조선민주주의인민공화국은 전조선적인 총선거에 의해 수립된 합법적인 통일적중앙정부이다.

작성자: 박철만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22 02:07:08
고구려문화의 특성은 무엇입니까?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고구려의 강대성과 높은 문화수준은 우리 민족의 커다란 자랑입니다.》

우리 나라 첫 봉건국가로서 근 1 000년동안 존속하면서 강대국으로 이름떨쳤던 고구려는 문화의 여러 부문에서도 높은 발전수준에 도달하였으며 삼국시기 문화의 주류를 이루었고 조선민족문화의 틀거리를 완성함으로써 중세조선의 문화전통을 마련한 우수한 문화였다.

고구려인민이 창조한 문화의 특성은 우선 다방면적으로 발전한 선진문화였다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고구려인민들은 자기의 창조적지혜와 슬기를 높이 발양하여 사회발전을 다그쳐나가면서 다방면적으로 발전된 우수한 문화를 창조하였다. 그들은 고대조선의 문화를 계승하면서 천문학과 기상학, 의학과 약학, 수학과 지리학, 제철제강, 금속가공, 요업, 건축기술 등 과학기술의 여러 분야에서 당시 세계적으로 선진적인 자리에 올라섰다. 문학예술의 여러 분야에서도 높은 발전수준에 이르렀다. 세계에는 나라도 민족도 많으나 봉건사회초기에 고구려만큼 다방면적으로 발전된 우수하고 선진적인 문화를 가진 나라와 민족은 얼마 없었다.

고구려문화의 특성은 또한 웅건하고 진취적이며 락천적인 고구려사람들의 기질을 반영하고있는 동시에 우아하고 조화롭고 아름다운것을 숭상하던 고구려사람들의 정서를 잘 반영하고있는 문화라는데 있다.

고구려사람들은 섬세하고 화려하고 현란한것을 숭상한것이 아니라 씩씩하고 기백이 넘치고 대범하고 소박한 문화재를 창조하였다. 그림을 그려도 기운이 생동하고 패기에 넘치는 민족적기상을 나타냈으며 음악, 무용도 씩씩한 행진곡이나 전투적이며 약동적인 탈춤, 북춤을 즐겨하였다. 기와막새무늬를 보아도 굵고 힘찬 무늬로써 웅건하고 활달한 성품을 잘 나타내고있으며 노래와 춤에서뿐아니라 민속놀이, 체육경기에서도 유쾌하고 해학적이며 날파람있는것을 좋아한데서 잘 표현되였다,

고구려문화는 이와 함께 우아하고 조화롭고 아름다운것을 숭상하는 고구려사람들의 정서를 잘 표현하고있다. 고구려사람들은 웅건하고 씩씩한것을 좋아하였지만 그저 크기만 하고 신비하고 복잡한것을 싫어하였으며 단순하고 류창하면서도 아름답고 자기 나라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는것을 창조하였다. 건축물이나 공예품을 보아도 섬세하고 복잡한 무늬, 장식으로 꽉 채우지 않고 대범하고 소박하면서도 은근하고 조화롭게 만드는데 힘을 넣었다.

건축물들을 그저 크게, 높게 만들거나 눈이 아플 정도로 복잡한 조각이나 그림들로 장식한것이 아니라 실용성과 예술성을 잘 결합시키고 우리 나라 자연풍치와도 잘 어울리도록 건설하였다. 고구려의 지붕형식 하나만 보더라도 물매가 굴렁선(최속하강선)을 이루어 비물이 가장 잘 흘러내리도록 합리적으로 만들었을뿐아니라 자연환경에 맞는 여러 형태의 지붕을 창안도입하였다. 우진각지붕, 합각지붕을 아울러 쓴 고구려의 궁전이나 사당, 사찰들은 장중하면서도 주위의 풍경과 잘 어울리여 보기에도 상쾌하고 아름다왔다. 

옷을 해입어도 비교적 단순한 형태로 되여있으나 단정하고 실용적인것을 지어입었고 색갈도 갖가지 색을 진하고 복잡하게 얽히게 하지 않고 시원하면서도 부드러운 푸른색, 연두색, 연분홍색, 연항색 등으로 단조로우면서도 조선의 자연환경과 잘 어울리는 색을 많이 썼다. 노래와 춤도 씩씩하고 전투적인것과 함께 부드럽고 서정적정서가 넘쳐나는것을 즐겨하였다.

고구려문화는 고대조선의 유구하고 찬란한 문화를 이어받은 터전우에서 고구려사람들의 창조적지혜와 슬기를 발양하여 다방면적으로 발전시킨 우수한 문화였으며 이 땅에서 유구한 력사를 창조하면서 살아온 우리 인민의 민족적기질과 성품을 구현한 특색있는 문화였다.

이처럼 고구려문화는 우리 인민의 민족성을 체현한 우수한 문화로서 민족문화를 가일층 발전풍부화시킴으로써 중세민족문화의 전통을 확립한 우수한 문화였다.

작성자: 리영남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18 23:24:58
1970년대 중엽 공화국에서 진행한 70일전투에서는 어떤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였습니까?​
  

1970년대 중엽에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력사적인 70일전투를 발기하시고 전투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들을 명확히 밝혀주심으로써 경제사업에 일시 조성되였던 난국을 타개하도록 하시였다.

위대한 령도자 김정일동지께서는 다음과 같이 교시하시였다.

《70일전투과정을 통하여 우리는 크게 두가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합니다.》 

1970년대 중엽 우리 공화국이 력사적인 70일전투를 통하여 해결하려고 한 문제는 크게 두가지였다.

70일전투를 통하여 해결하려고 한 문제의 하나는 당시 일부 행정경제일군들속에서 나타나고있는 만성화된 요령주의, 형식주의, 보신주의, 보수주의와 같은 그릇된 사상잔재들과 사업태도들에 된타격을 주는것이였다.

당시 일부 행정경제일군들속에는 요령주의, 형식주의, 보신주의, 보수주의와 같은 낡은 사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사업을 책임적으로 하지 못하는 현상이 나타나고있었다. 이런 그릇된 사상잔재들과 사업태도들은 사회주의경제건설에 적지 않은 해독을 끼치고있었다.

다른 하나는 당조직들이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당적지도를 강화한다면 사회주의경제건설도 얼마든지 잘해나갈수 있다는것을 가르쳐주는것이였다. 특히 당일군들에게 당사업과 행정경제사업의 호상관계를 똑바로 인식시키고 당조직들이 행정경제사업을 어떻게 지도하여야 하는가를 실천을 통하여 배워주려는것이였다.

행정경제사업에 대한 당적지도는 당사업의 중요한 구성부분을 이루며 경제건설에 대한 당적지도는 정치적지도이다. 경제건설사업은 당이 대중을 옳게 발동하고 전진을 저애하는 온갖 낡은 사상들을 반대하는 투쟁을 강하게 벌려나갈 때 힘있게 추진될수 있다.

1970년대 중엽에 진행된 력사적인 70일전투에서 이러한 문제들이 극복됨으로 하여 긴장되였던 1974년도 년간계획이 넘쳐 수행되고 6개년계획을 앞당겨 완수할수 있는 확고한 전망이 열리게 되였다.

우리 당과 군대, 인민은 1970년대 중엽에 진행되였던 력사적인 70일전투승리의 전통을 이어 올해 초 력사적인 조선로동당 제7차대회를 앞두고 진행된 충정의 70일전투에서 또다시 승리의 개가를 높이 울림으로써 새로운 만리마속도로 비약하며 전진하는 위대한 당, 위대한 인민의 필승의 기상을 온 세상에 떨치였다.

작성자: 박상욱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16 20:37:43
김일성주석의 어머님이신 강반석녀사의 성함에
깊은 뜻이 있는것같은데 그에 대해 알고싶습니다.
  

부모는 태여난 자식의 앞날에 대한 희망과 기대, 념원을 담아 이름을 지어준다.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강반석녀사께서는 어리실 때 《작은녀》라는 이름으로 불리웠다. 어려서부터 5남매가운데서 제일 지혜롭고 총명하신것은 물론 부지런하고 근면하시면서도 마음이 굳세고 또 가난한 사람들을 동정하여 자신의 모든것을 다 바칠줄 아는 뜨거운 인간애를 지니신 강반석녀사에 대한 집안사람들의 기대는 남달리 컸다.

할아버님이신 강병희선생님께서도 작은 손녀의 성장을 무심히 보지 않으시였고 늘 강돈욱선생님께 《작은녀》가 자라는것을 보니 총명하고 지혜로움이 다른 애들과는 전혀 다르다고 하시면서 《작은녀》를 잘 키우고 좀 더 자라면 이름을 뜻있게 지어주어 그의 앞날을 기대하는것이 좋을것 같다고 하시였다.

1903년 어느날 강돈욱선생님께서는 자제분들을 앉혀놓으시고 종이우에 기둥 4개와 그 우에 지붕을 그려놓으시고 이것이 무엇인가고 물으시였다.

자제분들모두가 집이라고 대답하였다. 그러자 강돈욱선생님께서는 기둥을 지워버린 다음 무엇인가 다시 물으시였다. 자제분들은 아무것도 아니라고 대답하였다.

강돈욱선생님께서는 옳다고 하시며 기둥이 없으니 집도 아무것도 아니다, 우리 나라가 지금 기둥없는 이 집과 같다고 하시면서 너희들이 앞으로 훌륭히 자라서 나라의 기둥이 되라고 말씀하시였다.

아버님의 말씀을 듣고 계시던 강반석녀사께서는 기둥도 중요하지만 그 기둥을 받들고있는 주추돌이 반듯하고 든든해야 기둥이 바로 서있을수 있다고 하시면서 자신께서는 앞으로 그런 사람이 되겠다고 아버님께 말씀드렸다.

이로부터 2년후인 1905년 강돈욱선생님께서는 나라의 기둥을 떠받드는 주추돌이 되라는 의미에서 당시까지만 하여 《작은녀》라고 불리우시던 녀사께 소반반, 돌석자를 붙여서 뜻깊게 이름을 강반석이라고 지어주었다.

반석이라는 이름에 담긴 집안식구들의 소망을 헤아리신 강반석녀사께서는 새해를 맞이하여 아버님께 세배를 드리고나서 다음과 같은 시를 지어 읊으시였다.

               

                                                 이 딸은 반석이옵니다.

                                                 룡악산아래 추녀낮은 집에서 태여나

                                                 소녀의 작은 몸 키워

                                                 아버님 주신 이름 고이 받아안고

                                                 15살 동트는 이 아침에

                                                 설인사 드리옵니다

 

                                                 부디 반석이 되라 하셨기에

                                                 굳세고 변함없는 마음 간직하렵니다

                                                 숨져가는 나라의 딸이기에

                                                 겨레가 딛고 일어설 반석이 되렵니다

                                                 나라의 기둥을 굳건히 떠받드는

                                                 반석이 되렵니다   

                                                 이 딸은 반석이옵니다

 

그때로부터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강반석녀사께서는 한생을 성함그대로 변함없이, 굳세게 반석으로 사시였다.

강반석녀사께서는 한평생 나라의 독립을 위한 력사의 새벽길을 헤쳐나가시는 우리 나라 반일해방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김형직선생님과 아드님이신 위대한 김일성동지의 애국위업을 받드시여 이름그대로 나라의 기둥을 받드시는 주추돌로 사시였다.

새겨볼수록 그 이름에는 민족의 위대한 태양을 안아올리신 우리 나라 녀성운동의 탁월한 지도자이신 강반석녀사의 고귀한 한생이 그대로 담겨져있다.

작성자: 김경희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15 17:11:53
주체사상이 밝힌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과 맑스주의가 밝힌 객관성의 원칙은 어떤 차이가 있는가​
  

주체사상이 밝힌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은 사회적운동, 혁명운동에서 사람을 중심에 놓고 그 주체인 사람, 인민대중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을 높이기 위한 원칙이다.

한편 맑스주의가 밝힌 객관성의 원칙은 사람의 활동의 객관적조건을 중심에 놓고 그에 전적으로 의거하는 방법론이다.

주체사상이 밝힌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은 변화발전하는 현실과 조건을 구체적으로 따져보고 잘 타산한데 기초하여 그것을 인민대중의 자주성을 실현하는데 이바지할수 있게 계획을 세우고 그에 따라 혁명과 건설을 진행해나가는 방법이다. 여기서 말하는 실정에는 사람의 활동의 객관적조건만이 아니라 사람들의 준비정도도 포함되며 그것이 기본으로 된다.

혁명과 건설을 실정에 맞게 한다는것은 결국 주체인 인민대중의 준비정도를 기본으로 하여 혁명의 투쟁목표와 주타격방향을 규정하고 혁명력량을 옳게 편성하며 혁명투쟁의 형태와 방법을 정확히 규정하고 혁명의 적절한 시기를 옳게 선택한다는것이다.

따라서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을 구현할 때에는 그 주체인 인민대중의 주동적작용과 역할이 높아지고 부족한것은 찾아내고 없는것은 만들어내며 화를 복으로, 역경을 순경으로 전환시키면서 혁명과 건설의 목적을 성과적으로 달성하게 된다.

맑스주의가 밝힌 객관성의 원칙은 물질의 1차성에 관한 원리로부터 출발하고있는것으로 하여 사람밖의 주어져있는 객관적조건에 전적으로 의존하는 방법이다.

이 방법론으로부터는 사람보다 주어진 조건을 먼저 보고 사람의 역할을 높이는것보다 객관적조건을 마련하는데 선차적인 의의를 부여할데 대한 요구가 나온다.

따라서 객관성의 원칙에 의거할 때에는 혁명과 건설에서 그 주체인 인민대중의 역할을 보장할수 없으며 혁명과 건설을 목적의식적으로, 주동적으로 수행해나갈수 없다.

이와 같이 주체사상이 밝힌 실정에 맞게 하는 방법은 사회적운동, 혁명운동에서 사람을 중심에 놓고 그 주체인 사람, 인민대중의 주동적인 작용과 역할을 높이기 위한 원칙이라면 맑스주의가 밝힌 객관성의 원칙은 사람의 활동의 객관적조건을 중심에 놓고 그에 전적으로 의거하는 방법론이라는데 근본차이가 있다.

작성자: 박준혁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12 10:53:23
미제가 조작한 리승만의《단독정부》를 왜 비법적인 정부라고 하는가​
  

그것은 두가지로 볼수 있는데 하나는 미제가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이라는것을 꾸며내여 조작해낸 명실공히 괴뢰정권이라는것이고 다른 하나는 이른바 《선거》결과를 날조하여 세운 《정권》이라는데서 찾아볼수 있다.

우선 미제는 조선문제를 비법적으로 유엔에 상정시키고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이라는것을 꾸며내여 이른바 《국제련합의 감시》하의 선거놀음을 벌렸다.

 

※ 전조선을 타고앉을수 없다고 판단한 미제는 남조선에서만이라도 식민지통치기구를 조작할 목적밑에 모스크바3국외상회의 결정에 의하여 소집되였던 이전 쏘미공동위원회사업을 고의적으로 파탄시키고 1947년 10월 유엔에서 조선인민의 대표도 없이 조선문제를 토의결정하였으며 이어 유엔의 비법적인 결정에 의하여 조작된 《유엔림시조선위원단》을 남조선에 끌어들여 그 감시하에 남조선에서 《단독선거》를 실시하였다. 이것은 조선인민의 자주권을 란폭하게 짓밟고 우리 조국을 영원히 갈라놓으려는 미제의 침략정책에 따른것이다.

 

다음은 근로인민의 민주주의적자유를 완전히 박탈된 조건하에서 《선거》결과를 날조하여 세운 《정권》이라는데 있다.

 

※ 남조선을 강점한 첫날부터 인민대중의 창의에 의하여 수립된 인민위원회들을 해산하고 미군정을 설치한 미제는 저들의 손때묻은 매국노들과 국내에 있던 친일파, 민족반역자들을 기본세력으로 하여 《단독정부》를 세우려고 미쳐날뛰였다. 특히 남조선에서 《단독선거》를 준비하는 시기에는 남조선주둔 미군과 반동경찰을 내몰아 애국적인사들을 야수적으로 탄압하였으며 《선거》전야에는 선거자들을 위협할 목적으로 허다한 명령서와 포고령들을 발표하여 《선거자명부》에 강제등록하게 하였다. 

하여 5월 10일 당일에는 많은 《선거》장소들에서 선거자들이 《선거자명부》의 번호를 기입한 투표지를 받았거나 투표지를 전혀 받지 않고 《선거자명부》에 자기의 도장을 찍어놓은 완전히 날조된 《선거》가 진행되게 되였다. 이것은 강제적으로 《선거》를 날조해내서라도 기어이 남조선을 타고 앉으려는 미제의 침략적본성을 그대로 보여주고있다.

 

이와 같이 미제가 조작한 리승만의 《정부》는 합법적인 《정부》가 아니라 비법적인 정부이다.

작성자: 박철만 | 김일성방송대학 2016-11-10 10:52: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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