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주석님에 대한 그리움이 사무치는 7월인데요. 그분의 비범한 혁명활동을 생동하게 보여주는 조선예술영화 《조선의 별》 제7부 《남만에서》​를 정말 감명깊게 보았습니다. 그분께서 유격대를 창건하신후 첫 활동으로 왜 남만원정을 택하셨는가에 대해 정립해주었으면 합니다.​​
박현 [ 중국 베이징 - 대학생 ] 2018-07-16 14:47:19
김충일 | 김일성방송대학 |       2018-07-20 15:55:17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항일유격대를 조직하시고 유격대활동의 첫 사업으로 남만에로의 진출을 단행하신데 대하여서는 《민족의 태양 김일성동지》과목 제2장, 1절, 2에서 기본적으로 취급했습니다.
주체21(1932)년 4월 반일인민유격대를 창건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주력부대를 이끄시고 력사적인 남만진출의 길에 오르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유격대를 창건하신후 첫 원정으로 남만을 택하시게 된것은 우선 통화지구를 중심으로 활동하는 독립군을 비롯한 민족주의세력에게 혁명적영향을 주어 그들이 장차 반일민족통일전선에 적극 나설수 있도록 하자는데 있었습니다. 
그때 남만의 통화지방에는 량세봉이 지휘하는 독립군부대가 있었습니다. 그의 관할하에 있는 독립군력량이 수백명이나 되였습니다. 그들은 조선독립이라는 목표는 세웠으나 투쟁방략이 명확치 못하였고 또 당시 활동방향도 선명치 못하여 적극적인 활동을 하지 못하고있었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그들에게 신심도 주고 나아가서 반일민족해방투쟁에서 공동전선을 형성할데 대한 가르치심도 주시였습니다. 남만원정에서 이룩된 커다란 성과는 1930년대 중엽에 조국광복회가 창건된후 량세봉의 독립군부대에서 중대장을 거쳐 독립군사령으로 싸우던 최윤구가 300여명의 대원들을 이끌고 조선인민혁명군에 합류하는데서 유감없이 과시되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 유격대를 창건하신후 첫 원정으로 남만을 택하시게 된것은 또한 반일인민유격대를 확대강화하고 혁명무력전반을 확대발전시킬수 있는 대중적지반을 마련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진정한 인민의 군대로서의 유격대는 인민의 절대적인 지지를 받고 인민대중이라는 토양에 뿌리를 박아야 자기의 위력을 다 발휘할수 있었습니다. 안도를 떠날 때 40명에 지나지 않았던 대오가 몽강에 이르러서는 150여명으로 늘어났고 반일인민유격대 주력부대는 멀고도 험난한 원정과정에 사상의지적으로, 육체적으로 더욱 단련되였으며 전투와 행군, 숙영 등 군사활동에서 귀중한 경험을 체득하였습니다.
이와 함께 남만원정과정을 통하여 혁명조직을 확대해나가고 무장투쟁의 대중적지반도 넓혀나가게 되였습니다.
이렇게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단행하신 남만원정의 목적은 크게 두가지로 정립해볼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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