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성-김정일주의기본》과목 제2편 주체의 혁명리론의 2장 1절에서는 무장투쟁의 기본형식인 유격전에 관해 비교적 상세하게 취급하고있습니다. 여기서 한가지 꼭 알고싶은건 유격전의 중요전법인 《피실격허》에 대해 리론적해석만을 했는데 좋기는 그 생동한 실례를 들어줬으면 합니다.
珍珠 [ 중국 단동시 - 학생 ] 2018-07-20 10:06:47
백현철 | 김일성방송대학 |       2018-07-22 18:26:18
《피실격허》의 의미를 풀이하면 실한것은 피하고 허한것은 친다는 뜻입니다. 이것을 항일혁명전쟁의 교범으로서의 군사전법으로 리해한다면 강한 적은 피하고 약한 적만 친다는것입니다. 다시말하여 적의 력량이 분산되였을 때에는 유격대가 힘을 합쳐 적들을 습격소멸하고 적들이 력량을 집결하여 쳐들어올 때에는 반대로 유격대가 력량을 분산하여 도처에서 적의 후방을 교란한다는것입니다.
이 전법을 활용한 대표적인 전투는 주체22(1933)년 11월부터 주체23(1934)년 2월까지 진행된 마촌작전이라고도 하는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입니다.
적들은 조선혁명의 참모부가 자리잡고있는 소왕청유격구에 공격의 예봉을 돌리고 이 일대에 관동군, 위만군,경찰,자위단으로 구성된 5 000여명의 대병력과 비행기와 대포, 그리고 간도특무기관이 주관하는 특별수사반까지 들이밀었습니다.
그런데 소왕청에는 2개중대의 유격대력량과 인민혁명정부의 혜택속에 참다운 평등과 자유를 누리던 인민들만이 있었습니다.
적들은 유격구로 쳐들어왔다가도 공격이 좌절되면 그날로 되돌아가는 종전의 피스톤식《토벌》로부터 공격이 실패해도 물러가지 않고 도달한 계선에 그대로 주저앉아 숙영하면서 한걸음한걸음 전진하여 차지한 지대를 공고히 해가는 《보보점령》의 전술로 이행하여 점령지역안의 모든 생명체들을 살륙하고 일체 부동산들을 파괴하였습니다.
이런 사태를 예리하게 간파하신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마지막 한사람이 살아남을 때까지 유격구를 지키는 사수전으로부터 대담하게 적후교란작전에로 넘어가도록 하시였습니다.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두개 조로 나누어 한 조는 유격구에 남아서 적극적인 방어전을 진행하도록 하시고 다른 한 조를 몸소 이끄시고 적 후방인 량수천자일대에 진출하시여 일제경찰 및 자위단과 일제침략군의 수송대를 습격소탕하는 교란작전을 벌리시였습니다. 련이어 신남구 북봉오동, 사동동골의 적을 치고 적들의 《토벌》거점의 하나인 왕청(대두천)시가에 대한 습격전투를 조직지휘하시였습니다. 적들은 유격구에 대한 《토벌》에서 패배를 거듭하는데다가 후방의 도처에서 저들의 거점들이 녹아나자 3개월간이나 펴고있던 포위망을 풀고 도망치고말았으며 일제의 《토벌》은 격파되였습니다.
이처럼 근 90일간에 걸친 소왕청유격구방위전투는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의 변화무쌍한 유격전법에 의해 항일유격대의 빛나는 승리로 결속되였으며 이 전투를 통하여 항일혁명전쟁의 교범으로 될수 있는 무수한 전법과 전술들이 창조되게 되였습니다. 그 전법들중의 하나가 다름아닌 《피실격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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