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십니까. 《민족의 태양 김일성동지》과목강의를 수강하느라면 리해못할것들이 없지 않은데요. 1938년 가을에 있은 남패자회의에 대한 강의에서 취급한 일제의《문화토벌》은 어떤 《토벌》이고 일제가 어째서 그런 수를 쓰게 됐는지...그에 대해 좀더 구체적으로 알고싶습니다.
공철 [ - ] 2018-07-09 14:00:59
김해 | 김일성방송대학 |       2018-07-12 10:49:52
한마디로 말하면 《문화토벌》은 일제가 항일무장투쟁시기 조선인민혁명군과 동북항일무장부대들을 노리고 벌린 《귀순공작》, 《사상공작》을 골자로 하는 비군사적토벌을 말합니다. 원래 토벌이라고 하면 무엇을 쳐서 징벌한다는 뜻입니다. 다시말하여 상대편의 군사력량이나 반대세력을 무력으로 쳐없애는것 또는 그런 군사활동을 토벌이라고 합니다. 이런 견지에서 보면 일제가 당시에 감행한 《문화토벌》은 목적자체는 항일무장세력을 없애자는데 있으나 그 수단은 군사적력량이 아니라 비군사적력량을 동원하였다는 의미에서 《문화토벌》이라고 하는것입니다. 때문에 일제는 《문화토벌》에서 기본을 《귀순공작》으로 하고 감행해나섰던것입니다.
적들이 조선인민혁명군에 대한 《귀순공작》을 대대적으로, 보다 악랄하게 벌리기 시작한것은 1930년대 후반기부터입니다.
초기에 일제는 항일무장부대들과의 싸움에서 《귀순공작》을 기본으로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일제는 청소한 항일유격부대들과 반일부대들을 군사적으로 제압하는데 모든 힘을 집중하였습니다. 그들은 군사적방법외에 그 어떤 방법도 인정하지 않았고 또 쓰지도 않았으며 허용하지도 않았습니다. 문자그대로 《토벌제일주의》만을 주장하고 내밀었습니다.
일본군수뇌부는 군사적《토벌》만을 유일한 수단으로 삼으면서 《유도적귀순엄금주의》라는 계률까지 내놓았습니다. 이것은 일본군부가 조선인민혁명군을 비롯한 동북의 항일무장부대들을 군사적방법만으로도 능히 제거해버릴수 있는 대상으로 보고 대응해왔다는것을 의미합니다.
그러나 군사적타격만으로써는 항일유격대가 장성하고 항일무장투쟁이 발전하는것을 막을수 없었습니다. 결국 일제는 《문화토벌》이라는 새로운 창안품을 조작해냈던것입니다.
일제가 1930년대 후반기에 와서 《문화토벌》과 같은 비군사적방법을 보다 적극적으로 활용하였다는것은 저들이 그때까지 만능으로 삼아오던 군사일변도의 정책이 여지없이 파탄되였다는것을 잘 보여주고있습니다.
《문화토벌》의 주되는 과녁은 위대한 수령 김일성동지께서 이끄시는 조선인민혁명군이였습니다. 그것은 조선인민혁명군이 일본제국주의자들을 드세게 위협하는 주도적력량으로 되고있었기때문이며 또 동북지방의 항일무장대오들가운데서 제일 전투력이 강하고 소멸하기 어려운 존재로 되고있었기때문입니다.
남패자회의가 벌어지던 당시 일제는 혁명의 배신자들인 리종락과 같은자들을 리용하여 위대한 수령님에 대한 《귀순공작》을 벌리려 했습니다.
그러나 위대한 수령님께서는 일제의 비렬한 속내를 꿰뚫어보시고 오히려 이를 기회로 만드시여 적들을 혼란시키고 조선혁명의 주체를 강화하고 계속 앙양시키기 위한 회의를 진행하셨습니다.
이처럼 위대한 수령님의 비범한 예지와 탁월한 령군술로 하여 일제의 《문화토벌》은 여지없이 파탄되고 조선혁명은 중첩되는 시련과 난관을 뚫고 승리적으로 전진할수 있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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