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구려의 력사와 문화에 관한 학술토론회 진행

 

고구려의 력사와 문화에 관한 학술토론회가 18일 과학기술전당에서 진행되였다.

관계부문 일군들, 과학, 교육, 문학예술, 출판보도, 민족유산보호부문의 연구사, 교원, 작가, 기자, 편집원들이 여기에 참가하였다.

학술토론회에서는 사회과학원 력사연구소 연구사 후보원사, 교수, 박사 조희승동지, 고고학연구소 고적발굴대장 박사 차달만동지, 민속학연구소 소장 교수, 박사 공명성동지, 김일성종합대학 력사학부 강좌장 박사, 부교수 리광희동지가 토론하였다.

토론자들은 위대한 수령님들의 유훈과 당의 민족유산보호정책을 높이 받들고 민족문화유산들에 대한 과학연구사업을 진행하는 과정에 더욱 심화시킨 우리 나라의 첫 봉건국가이며 동방의 천년강국인 고구려의 력사와 문화에 대하여 해설론증하였다.

427년 고구려의 평양천도가 삼국시기 우리 나라 력사발전에서 중요한 의의를 가지는 력사적사변이라는데 대하여 그들은 언급하였다.

그들은 고구려가 여러차례 평양에 중심지를 옮긴것은 평양이 민족의 원시조인 단군의 출생지이며 고조선의 건국지로서 민족의 넋이 깃들어있고 삼국통일을 위한 투쟁에서 유리한 지리적위치를 차지하고있었기때문이라고 강조하였다.

평양이 고구려의 기본수도로 정해짐으로써 민족의 성지로서의 평양의 지위가 확고히 보장되고 국토통일위업수행의 중심지, 유력한 거점으로 되였으며 나라의 대외적권위도 한층 높아지게 되였다고 그들은 해설하였다.

그들은 최근에 락랑구역 보성리에서 발굴된 벽화무덤을 통하여 고구려가 3세기 전반기에 강력한 군사력을 가진 강대국이였으며 이 지역에 대한 정치군사적지배가 강화되여 평양천도의 유리한 조건이 마련되였다는데 대하여 론증하였다.

5세기초 고구려의 수도성이였던 대성산성과 안학궁의 규모, 형식, 건물배치, 건축수법, 성방위체계 등을 놓고도 고구려가 명실공히 동방강대국의 면모에 맞는 수도를 가지고있었다는것을 잘 알수 있다고 그들은 강조하였다.

그들은 민족고유의 생활풍습을 창조하고 오랜 세월을 이어오며 주변나라들에도 커다란 영향을 준 고구려풍습이야말로 우리 민족의 귀중한 유산이라고 언급하였다.

토론자들은 고구려의 력사와 문화에 대한 과학연구사업을 더욱 심화시켜 민족의 우수성을 만방에 빛내이는데서 맡은 책임과 본분을 다해나갈 결의들을 표명하였다.

주체106(2017)년 12월 19일 《로동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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