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록으로

 

김  일  성

구월산을 피서지로 꾸리며 고려태조왕릉을

 개건할데 대하여

 

구월산피서지구 국토건설총계획사판과  고려태조왕릉형성안을 보고 일군들과 한 담화

1993년 1월 15일

 

구월산피서지구 국토건설총계획사판을 잘 만들었습니다.

구월산을 피서지로 꾸려놓고 여름철에 평양시민들이 거기에 가서 휴식을 하게 하면 좋아할것입니다. 지금 평양시에 로동자들과 과학자, 기술자, 사무원을 비롯하여 사람들이 많이 살고있지만 더운 여름철에 그들이 가서 휴식할수 있게 꾸려놓은곳이 별로 없습니다. 그래서 나는 구월산을 피서지로 잘 꾸리고 무더운 삼복철에 평양시민들이 거기에 가서 휴식하게 하자고 마음먹었습니다. 평양시민들이 삼복철에 대성산에 올라가 쉴수도 있지만 대성산에 가도 더운것은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삼복더위때에는 구월산 같이 선선한곳에 가서 휴식을 하게 하는것이 좋습니다.

구월산은 경치도 좋습니다. 옛날 소설책을 보면 많은 사람들이 구월산에 가서 경치를 구경하였습니다.

구월산은 평양에서 가깝기때문에 다니기도 좋습니다. 구월산에 휴식장소를 꾸려놓으면 평양시민들이 거기에 가서 며칠씩 휴식하게 할수 있습니다. 금요일 오후에 평양을 떠나 구월산에 가서 토요일과 일요일 이틀동안 휴식을 한 다음 일요일 저녁에 돌아와 월요일부터 직장에 출근하게 할수 있을것입니다.

구월산은 해발고를 따져보아도 피서지로 꾸리는데 적당한 곳입니다. 구월산은 해발고가 제일 높은곳이 한 950메터 되므로 해발고가 500메터 되는 계선부터 800메터 되는 계선사이에 휴식터를 꾸려놓으면 삼복더위때에도 선선하여 좋을것입니다. 원래 해발고가 500메터 되는곳에서 사는것이 사람의 건강에 제일 좋다고 합니다. 그래서 나는 구월산을 평양시민들이 무더운 여름철에 가서 휴식할수 있게 피서지로 꾸리라고 하였습니다.

구월산을 피서지로 꾸리자면 봉사시설을 갖추어놓아야 합니다. 구월산피서지구에 봉사시설을 잘 꾸려놓아야 삼복철에 평양시민들을 비롯하여 남포시, 황해남도안의 근로자들과 다른 나라 관광객들이 진강포에 가서 해수욕도 하고 구월산에서 휴식하면서 문화유적들도 참관하게 할수 있습니다.

구월산에 휴양각을 잘 지어야 하겠습니다. 휴양각은 우리 사람들이 집체적으로 들수 있는 각도 짓고 해외동포들이나 다른 나라 사람들이 들수 있는 각도 지으며 개별적으로 들수 있는 각도 지어야 합니다. 구월산에 짓는 휴양각은 해발고가 600~700메터 되는곳에 관광지와 좀 떨어져 지어야 합니다. 그래야 구월산에 와서 휴식하는 사람들이 걸어다니면서 경치를 보는 멋도 있습니다.

휴양각에서 쓸 물을 산아래에서 끌어올리는것으로 예견하였는데 샘물을 찾아보아야 하겠습니다. 옛날에도 사람들이 구월산에 와서 샘물을 먹었지 산아래에서 물을 길어다 먹지는 않았을것입니다. 대성산에도 샘물이 있는데 구월산이라고 샘물이 없을수 없습니다. 샘물을 찾아보고 휴양각을 샘물이 있는곳에 지어야 합니다.

구월산에 있는 문화유적들을 잘 꾸려야 하겠습니다.

구월산에는 단군이 태여났다는 단군굴과 단군이 무술을 닦고 공부를 하였다는 단군대도 있고 단군이 수도로 정하였다는 장소도 있으며 고구려시기에 쌓은 산성도 있습니다. 력사유적유물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적들에게 공산주의자들은 민족도 모르고 조상도 모른다고 악선전을 할수 있는 언질을 줄수 있습니다. 우리가 묘향산에 있는 력사유적유물들을 잘 보존하고 관리하기때문에 남조선사람들과 해외동포들이 그것을 와보고는 우리 공산주의자들에 대하여 좋은 인상을 가지고 돌아갑니다.

단군과 관련한 유적들을 잘 꾸려놓아야 합니다. 단군굴이요, 단군대요 하는 유적들은 모두 하늘에서 내려와 고조선을 세웠다고 하는 단군에 대한 신화와 관련되여있는것들입니다. 나는 단군이 구월산에 내려와 고조선을 세웠다는 전설을 어릴때 아버님한테서 들었습니다. 묘향산에도 단군이 경치가 하도 좋아 하늘에서 거기에 내려와 나라를 다스렸다는 전설이 있습니다. 단군에 대한 전설이 신화이기는 하지만 우리 민족과 조상을 내세우고 존중하는 의미에서 단군과 관련한 유적유물들을 잘 꾸려놓는것이 좋습니다. 단군신화를 누가 믿는가 믿지 않는가 하는것은 상관하지 말고 단군과 관련한 유적유물들을 잘 정리하여놓아야 합니다. 최덕신선생이 미국에 망명하여 가서 살때 조선사람을 배달민족이라고 하면서《배달신보》라는 신문을 발간하였는데 배달민족이라는 말은 단군의 후손이라는 뜻입니다.

구월산에 있는 단군과 관련한 유적유물가운데서 단군대를 잘 정비해놓아야 하겠습니다. 단군굴의 해발고가 705메터이면 관광객들이 다니기 좋을것입니다. 단군굴이 그리 깊지도 않고 높지도 않은 자연동굴이라고 하는데 관광시킬 가치가 있게 꾸릴수 있겠는가 하는것을 정무원총리가 구월산에 가서 알아보는것이 좋겠습니다. 구월산에 단군의 제사를 지내던 사당이 여러곳에 있었다고 하는데 단군대부근에 있는 단군사를 복구하는것이 좋겠습니다. 단군사를 지어놓지 않으면 관광객들이 구월산에 가서 단군굴이나 고구려시기에 쌓았던 성밖에 볼것이 없게 됩니다. 삼성사는 복구하지 않아도 될것 같습니다. 옛날에 삼성사에서는 제를 처음에는 목상을 놓고 지내다가 그 다음에는 흙으로 만든 신주를 놓고 지냈다고 합니다. 안악군 룡산리에 있는 수도터도 복구할 필요가 없습니다.

사판에 복구할것으로 예견한 절가운데서 패엽사만 복구하고 월정사는 잘 정비하여 지금있는 그대로 보존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패엽사를 복구하는것은 자재와 자금이 해결되는데 따라 천천히 하고 먼저 거기에 관광객들이 다닐수 있는 작은 길을 내야 하겠습니다.

고구려시기의 성은 허물어진 성들이 있는것만큼 그것을 모아서 대성산성을 복구한것처럼 복구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구월산에 길을 잘 닦아야 하겠습니다. 지금 인민군군인들이 구월산에 길을 닦고있는데 그것을 빨리 끝내도록 하여야 합니다. 길을 닦고 필요한 다리를 건설하며 포장도 하여야 합니다. 흙공사는 기본적으로 끝냈다고 하므로 이제 돌쌓기와 포장을 하면 될것입니다.

구월산에서 진강포로 가는 길을 잘 내야 하겠습니다. 구월산에서 진강포로 가는 길은 곧바로 내야 합니다. 구월산에서 은률군 금산포구를 거쳐 과일군 진강포로 갈수 있는 길을 초보적으로 닦아놓았고 은률군 구월리로부터 삼천군 달천온천을 거쳐 안악군 월정리로 하여 구월산으로 갈수 있게 륜환선도로도 기본적으로 닦아놓았다고 하는데 미진된 공사를 마저 하고 포장을 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구월산에 삭도를 놓을것으로 예견하였는데 그것은 더 연구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사람들이 구월산에 와서 휴식을 하면서 경치도 구경하게 하자고 하는것만큼 걸어다니면서 구경하게 하는것이 삭도를 타고다니면서 구경하게 하는것보다 낫습니다. 구월산에 삭도를 놓게 되면 경치에 손상을 줄수 있습니다. 얼마전에 내가 금강산에 갔다온 다른 나라 사람들도 만나고 남조선사람들도 만났는데 그때 그들에게 금강산에 오는 관광객들가운데 잘 걷지 못하는 로인들도 있기때문에 상팔담까지 삭도를 놓으려고 한다고 하니 그들은 경치구경은 걸어다니면서 하여야 재미있다고 하면서 금강산에 삭도를 놓으면 아름다운 경치를 못쓰게 만들수 있으므로 삭도를 놓지 않도록 하는것이 좋겠다고 하였습니다.

여름철에는 구월산에 있는 폭포에 물이 많아져 볼만할것입니다. 구월산의 옛성터에서 내려다보면 안악, 재령, 신천 지대가 비행기를 타고 내려다보는것처럼 보인다고 하는데 옛성터까지 경치에 손상을 주지 않고 삭도를 놓을수 있겠는가 하는것을 잘 따져보아야 합니다.

구월산에 삭도를 놓으려면 백두산에 놓은것과 같은 궤도삭도를 놓아야 할것입니다. 궤도삭도는 우리 나라에서 만들수 있고 그것을 놓으면 안전하기도 합니다. 쇠바줄삭도는 파악이 없습니다. 쇠바줄삭도를 놓으려면 외화를 써야 하는데 외화를 쓰면서 파악이 없는 쇠바줄삭도를 놓을 필요는 없습니다. 우리는 건설에서도 주체를 세워야 합니다. 구월산에 삭도를 놓기로 예견한 지대는 경사가 너무 급하기때문에 궤도삭도를 놓기 힘들것 같다고 하는데 현지답사를 하여보고 궤도삭도를 놓을수 없으면 삭도를 놓지 말아야 합니다.

평양시민들이 구월산피서지구로 다닐 때 타고다닐 유람선을 무어야 하겠습니다.

그전에 내가 민주독일을 방문하고 돌아와서 그 나라에서 타본 유람선 같은 배를 만들어 대동강에 띄우라고 과업을 주었는데 그때 무은 유람선이 있을것입니다. 내가 민주독일에 갔을 때 타본 유람선은 기름을 쓰지 않고 석탄을 때는것이였는데 사람도 많이 타고 속도도 빠르지 않아 좋았습니다. 그런 려객선을 한 둬척 더 무어 평양시민들이 구월산피서지구로 다닐 때 타고다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려객선을 둬척 무으면 한척은 평양에서 서해갑문까지 다니게 하고 다른 한척은 평양에서 과일군 진강포까지 직행하게 하며 서해갑문과 진강포에서부터 구월산피서지구까지는 뻐스가 다니게 하여야 합니다. 구월산피서지구로 갈 때 평양에서 배를 타고 신환포까지 가서 거기서 뻐스를 타고 구월산피서지구로 가게 할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자면 재령강에 큰 배가 다닐수 없으므로 작은 려객선을 무어야 합니다. 평양시민들이 구월산피서지구로 뻐스를 타고 안악군으로 돌아다니게 할수도 있는데 그렇게 하는것보다 대동강으로 배를 타고 산천구경을 하면서 다니게 하는것이 더 좋습니다. 평양에서 구월산피서지구로 타고다닐 려객선은 외화를 쓰지 말고 우리의 설비와 자재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려객선을 타고 구월산피서지구로 다니게 하자면 배를 댈수 있는 부두를 꾸려야 합니다. 부두는 배를 대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는데 편리하며 뻐스를 갈아탈수 있는곳에 꾸리는것이 좋습니다. 과일군 진강포가 배를 대고 사람들이 내려 뻐스를 타고 구월산피서지구로 다니는데 좋으면 거기에 부두를 꾸리는것이 좋겠습니다. 진강포에 부두를 꾸리면 평양시민들과 남포시민들이 배를 타고 진강포에 가서 해수욕도 하고 구월산문화유적도 참관하기 편리할것입니다. 그전에 우리 아버님이 조선국민회 사업을 지도하러 다닐 때 배를 타고 은률군의 어느 포구에 가서 내려 회의를 지도하군하였는데 그 포구는 쪽배나 대던 포구이므로 큰 배를 댈수 없을것입니다. 부두를 서해갑문에도 하나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서해갑문에 부두를 만들면 평양시민들이 대동강에서 려객선을 타고 서해갑문 부두에 내려 서해갑문을 참관하고 거기서 뻐스를 타고 구월산피서지구로 갈수 있습니다.

신환포에는 작은 려객선을 댈수 있게 부두를 꾸리면 됩니다. 부두는 배를 대고 사람들이 오르내리는데 편리하게 세멘트를 좀 들여서 간단하게 꾸리면 됩니다.

구월산피서지구를 꾸리자면 휴양소와 소년단야영소를 비롯하여 여러가지 봉사시설을 꾸려야 하며 문화유적도 복구정비하고 부두와 도로 공사도 하여야 하므로 그것을 한꺼번에 다할수 없습니다.

구월산피서지구를 7~10년동안 꾸릴것으로 계획하고 한두개 대상씩 꾸리도록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구월산피서지구를 꾸리는 사업을 국가에서도 맡아하고 평양시와 황해남도, 남포시에서도 맡아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구월산피서지구는 휴식장소로 꾸리는것만큼 거기에 가서 휴식을 할 사람들이 맡아 건설하여야 합니다. 국가에서는 큰 도로와 휴양각, 소년단야영소 같은 큰 대상을 맡아 건설하고 작은 대상은 평양시와 황해남도, 남포시에서 맡아 건설하도록 하여야 합니다. 구월산에 짓는 휴양각들가운데서 개별각은 국가에서 맡아 짓고 사람들이 집체적으로 들 각은 도들에서 맡아 짓도록 하는것이 좋겠습니다.

고려태조왕릉을 개건하여야 하겠습니다.

고려태조왕릉형성안에 대한 설명을 들어보니 왕건왕릉을 동명왕릉보다 더 요란하게 개건하려고 하는것 같은데 그렇게 하여서는 안될것 같습니다. 왕건왕릉의 크기는 다른 왕릉들의 크기를 잘 따져보고 정해야 합니다. 왕건왕릉의 크기를 정할 때 리조의 태조왕릉의 크기와도 대비하여 보아야 합니다. 우리 일군들이 리조의 태조왕릉이 얼마나 큰가 하는것을 똑똑히 모르고있는것을 보면 아직 연구가 부족합니다. 왕건왕릉을 동명왕릉보다는 작고 공민왕릉보다는 좀 크게 개건하며 거기에 놓을 문관, 무관들의 돌조각상의 크기도 그에 비례를 맞추어 정하는것이 좋겠습니다.

나는 동명왕릉을 여러모로 연구하여보고 크게 개건하도록 하였습니다. 지금의 동명왕릉은 개건공사를 시작할 때보다 크게 건설되였습니다. 나는 경주에 있는 신라왕릉들의 사진도 가져다 보았는데 그것은 다 쬐쬐하였습니다. 서울에 리조시기의 왕릉들이 많습니다. 리조는 500년이상의 력사를 가지고있는것만큼 리조시기의 왕릉이 많습니다. 리조시기의 왕릉들에는 문관이나 무관의 돌조각상은 적고 무덤을 쌓으면서 그 둘레에 돌을 좀 쓴것밖에 다른것은 별로 없습니다.

우리 나라 력대 왕릉들가운데서 제일 크고 잘된것은 동명왕릉입니다. 앞으로 왕릉들을 개건할 때에는 동명왕릉을 표준으로 하여야 합니다.

나는 요즘 조선력사책을 보고있는데 왕건을 력사학자들이 어떻게 평가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동명왕과 같은 큰 인물이라고 볼수는 없을것 같습니다. 왕건이 후삼국과 발해남부지역을 통합하여 우리 나라에 첫 통일국가를 세웠다고는 하지만 후삼국을 통합할 때 큰 전쟁을 한것도 없고 자랑할만한 공로를 세운것도 없습니다. 그는 내란으로 하여 국력이 쇠약해진 후기신라와 후백제를 식은죽먹기로 타고앉은 기초우에서 통일국가를 세웠습니다. 그때 후백제는 내란으로 하여 망하였습니다. 원래 후백제는 국력도 괜찮았고 싸움도 잘하였습니다. 그런데 통치배들속에서 왕위계승문제를 둘러싸고 권력다툼이 벌어지고 아들들이 아버지를 왕위에서 쫓아내면서부터 통치체계는 마비되고 국력이 몹시 쇠약해졌습니다. 왕건은 이렇게 내란으로 하여 쇠약해진 후백제를 크게 품을 들이지 않고 먹어버렸습니다. 결국 왕건이 고려라는 통일국가를 세운것은 동명왕처럼 천지개벽을 하여 세운것이 아닙니다. 그가 후기신라와 후백제를 내란으로 다 망할 때까지 기다렸다가 하나씩하나씩 먹어버린것을 보면 기회를 잘 볼줄 아는 사람이였다고 말할수 있습니다.

왕건왕릉에 놓을 문관, 무관, 범, 망두석, 석등, 상들, 12지신상을 돌조각축소모형으로 준비하였는데 돌조각축소모형들을 잘 만들었습니다.

범돌조각상을 왕릉의 앞뒤에 다 놓겠다고 하는데 왕릉뒤에도 놓겠는가 하는것입니다. 동명왕릉에는 왕릉뒤에 범돌조각상을 놓지 않았습니다. 왕건왕릉에 원래 범돌조각상이 앞에 2상, 뒤에 2상 하여 모두 4상 놓여있었으면 범돌조각상을 왕릉뒤에도 놓아야 하겠습니다. 범돌조각상을 왕릉앞뒤에 암펌과 수펌을 쌍쌍이 네곳에 놓아 8상을 놓기로 하였다는데 그렇게 많이 놓을 필요는 없을것 같습니다. 력사학자들의 말에 의하면 왕릉에 범돌조각상을 8상 놓았다는 력사기록이 없다고 합니다. 그런것만큼 미술가들의 의견대로 왕릉에 범돌조각상을 많이 놓아 보기 좋게만 하려고 하지 말고 력사기록대로 하여야 합니다. 력사유적유물을 개건하거나 복구할 때에는 반드시 력사주의적원칙을 지켜야 하며 력사기록과의 관계를 잘 따져보아야 합니다. 왕건왕릉에 범돌조각상을 앞뒤에 각각 2상씩 4상 놓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암펌돌조각상과 수펌돌조각상을 릉앞에도 1상씩 따로따로 놓고 릉뒤에도 1상씩 따로따로 놓아 모두 4상 놓아야 하겠습니다.

왕건왕릉에 문관돌조각상과 무관돌조각상을 4상씩 놓겠다고 하는데 그렇게 하는것이 좋을것 같습니다. 동명왕릉에도 문관돌조각상과 무관돌조각상을 4상씩 놓았습니다.

망두석과 석등을 비롯한 돌조각상들은 왕건왕릉에 놓을 돌조각축소모형대로 만들어야 하겠습니다.

최근에 왕건왕릉에서 벽화를 비롯한 여러가지 유물이 발굴되였다는데 그것을 잘 보존하기 위한 대책을 세워야 하겠습니다. 왕건왕릉에서 나온 유물들가운데서 벽화는 그냥 두고 다른 유물들은 력사박물관에 가져다 진렬하였다고 하는데 력사유적유물은 본래의 위치에 원상 그대로 보존하는것이 원칙입니다.

벽화를 원상대로 보존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벽화에 소나무와 참대가 그려져있다고 하는데 벽화가 괜찮은것 같습니다. 그 벽화는 고려시기의 미술작품인것만큼 잘 보존하여야 합니다.

벽화를 사람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대책도 세워야 하겠습니다. 왕릉뒤에 문을 자그마하게 하나 내고 참관자들이 들어가 벽화를 볼수 있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벽화를 모든 참관자들에게 다 보여주기 곤난하면 력사학자를 비롯한 과학자, 연구사들에게만 보여주도록 하여야 합니다. 벽화를 왕릉안에 들어가서 보지 못한 사람들에게는 력사박물관에 벽화모조품을 만들어 놓고 그것을 보여주면 될것입니다.

왕건왕릉개건공사는 고려태조왕릉형성안에 예견한대로 추진하여야 하겠습니다.

서해갑문에 물고기길을 잘 내야 하겠습니다.

서해갑문에 물고기길을 잘 만들어놓아야 대동강에 물고기가 많이 올라올수 있습니다. 서해갑문을 건설할 때 물고기길을 만들기는 하였지만 잘 만들지 못하다보니 대동강에 숭어를 비롯한 물고기가 얼마 올라오지 못하고있습니다. 미림갑문, 봉화갑문에도 물고기길을 만들어놓았지만 숭어를 비롯한 물고기가 올라오지 못합니다. 원래 숭어는 민물과 짠물이 합쳐지는곳에 많이 모여드는 물고기이므로 대동강에는 남포앞바다에서 서식하던 숭어가 많이 올라왔습니다.

해방전에도 대동강에 숭어가 많았습니다. 그때 김형록삼촌은 대동강에서 숭어낚시질을 하여 숭어를 잡아 팔아 좁쌀을 사서 식량보탬을 하였습니다. 조선을 강점한 일제는 조선민족을 말살하려고 조선사람의 성과 이름까지 일본식으로 고치도록 강요하였지만 나의 조부모님들은 그에 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 고향에서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지 않고 끝까지 버티여낸것은 우리 집 하나밖에 없었습니다. 일제놈들은 조선사람들이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지 않으면 학교에도 다니지 못하게 하였고 배급도 주지 않았으며 나쁜 사람으로 취급하였습니다. 그렇지만 김형록삼촌은 성과 이름을 일본식으로 고치지 않고 꿋꿋이 살았습니다. 그때 김형록삼촌은《창씨개명》에 응하지 않는다고 하여 매도 많이 맞았고 주재소의 호출도 여러번 받았습니다. 일제순사놈들이 형록삼촌에게 네 이름이 뭐냐고 물으면 삼촌은《김형록이외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순사놈들이 삼촌의 뺨을 때리면서《다시 말해봐. 이름이 뭐야?》하고 또 물으면 삼촌은 여전히《김형록이외다.》하고 대답하였습니다. 삼촌은 김형록이라는 대답 한마디에 뺨을 한대씩 맞았지만 끝까지 굴복하지 않았습니다. 그때 우리 할아버지는 삼촌에게 이름을 일본말로 고치지 않은것은 정말 잘한 일이다, 지금 성주가 왜놈들과 싸우고있는데 네가 이름을 일본말로 고치면 되겠느냐, 맞아죽으면 맞아죽었지 절대로 이름을 일본말로 고쳐서는 안된다고 하였다고 합니다. 김형록삼촌은 순사놈들이 매일같이 시끄럽게 굴기때문에 대동강철다리밑에 가서 숭어낚시질을 하군하였다고 합니다.

해방전에 평양에서는 숭어탕과 랭면, 온반, 지짐이 유명하였는데 평양에 왔던 사람들이 숭어탕을 사먹지 못하고 가면 평양구경을 하지 못하였다고 하였습니다. 나는 전후에 증산군 풍정리쪽에 나갔다가 바다가에 있는 한 저수지에 숭어가 많기때문에 그것을 잡아다 평양에 있는 숭어국집에 보내주도록 하였습니다. 지금 평양시에 있는 숭어국집에서는 숭어가 없어 시민들에게 숭어탕을 정상적으로 만들어 팔지 못하고있습니다. 언제인가 양어총국장에게 평양숭어국집에서 숭어탕을 어떻게 끓여서 파는가고 물으니 그는 숭어가 없어 숭어탕을 정상적으로 만들어 팔지 못하며 숭어탕을 가재미매운탕을 끓이는것처럼 끓여 판다고 하였습니다. 숭어탕은 찬물에 숭어를 넣고 끓여야 제맛이 나지 가지미매운탕을 끓이는것처럼 끓이면 제맛이 나지 않습니다.

이번에 서해갑문 물고기길을 1호갑실옆에 건설할것으로 예견하였는데 그곳으로 물고기가 많이 모여들면 거기에 물고기길을 내는것이 좋겠습니다. 서해갑문 물고기길건설은 군인들이 맡아하고 설계와 기술지도는 국가건설위원회에서 하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서해갑문 물고기길건설을 인차 시작하여 빨리 끝내도록 하여야 하겠습니다.

석도항을 계획대로 건설하여야 하겠습니다.

석도항은 10만톤짜리, 20만톤짜리 배를 댈수 있게 전망적으로 건설하여야 합니다. 남포항에 5만톤짜리 배는 많이 댈수있지만 그이상 되는 배는 들어갈수 없으므로 10만톤, 20만톤짜리 배는 댈수 없습니다.

앞으로 원유와 콕스탄, 철광석을 많이 실어와야 하는데 그런 물동은 10만톤짜리이상 되는 큰 배로 실어야 합니다. 우리 나라 서해에 원유가 많이 매장되여있다고 합니다. 서해에서 원유가 생산되면 관으로 수송할수도 있고 배로 실어다 부두에 부리울수도 있습니다. 원유를 관으로 쏘아서 가져오자면 바다에 관을 늘여야 하므로 힘들것입니다. 원유를 어떤 방법으로 수송하는것이 좋겠는가 하는것은 경제일군들이 타산해보아야 하겠습니다. 앞으로 서해에서 생산되는 원유를 가공하기 위한 몇백만톤 능력의 원유가공공장을 서해안에 하나 건설하여야 합니다. 원유를 관으로 수송한다고 하여도 철광석, 콕스탄은 배로 실어와야 하므로 석도항을 건설하여야 합니다. 부두 같은것은 지금부터 건설하는것이 나쁘지 않습니다. 석도항 건설을 인민군군인들이 맡아하고있는데 건설은 군인들이 하여도 건설주는 정무원이 되여야 합니다.

내리적재 하시겠습니까?내리적재
보안문자